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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8화 (38/427)

건축의 신 38화

박람회

성훈은 박람회 부스에서 관객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 교수와 마이어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 자넨 도대체 뭐하는 친구야! 저런 걸 어떻게 가르쳤나?”

“내가 가르친 거 아냐! 지가 알아서 하는 거지.”

“그럼 혼자서 독학했단 말이야?”

“그렇다고 봐야지. 적어도 난 가르친 적이 없거든. 그리고…….”

“…….”

“저걸 가르칠 만한 사람이 있나?”

마이어가 턱을 괴고 천정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흔든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어. 있을 리가 없지.”

“그래도 이 바닥은 마이어 자네가 더 잘 알잖나. 잘 생각…….”

하지만 마이어는 단호하게 말했다.

“없어! 절대로 없어. 내가 아는 한 저 친구들이 최고였어. 그저께까지는. 스필버그한테 직접 추천받았다고.”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

“그런데 한. 봐봐. 저 자존심 강한 인간들이 꼼짝도 못 하잖아.”

“하긴 나라도 그러겠다. 배우고 싶어서 옆에서 안달이 났네.”

“젊은 친구가… 정말 대단해.”

“그런데 마이어. 웃긴 게 뭔지 알아?”

“뭔데?”

“그냥 손 기술이래! 자기 옆에서 전문가들이 어떻게든 배우려고 알랑방귀를 끼고 있는데, 정작 저놈은 저게 전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허허허, 그냥 손 기술이라고? 손 기술이라. 허허참.”

마이어가 힘 빠진 너털웃음을 흘린다.

“자네도 그렇지? 나도 그랬어. 내가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참?”

“저게 손 기술이면 미켈란젤로는 천재라고 불릴 하등의 이유가 없어.”

한 교수가 그런 마이어를 바라보며 말을 붙였다.

“더 무서운 건 뭔지 알아?”

“이제 더 놀랄 것도 없어. 말해봐.”

“나도 모르겠어.”

“허, 이 친구가 장난치나. 모르는 게 뭐가 무서워?”

“저 친구 밑바닥을…….”

나름 천재라 불리며 건축을 해왔다. 뭉실뭉실 떠오르는 상상력, 그리고 그 구름을 잡아서 솜사탕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대다수의 인간이 할 수 없는, 가늠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을 넘나드는 자들을 천재라고 부른다. 그런 자들이 세상의 흐름을 바꾼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한다.

그러기에 천재인 것이다. 전혀 교집합이 없었던 한승원과 마이어가 친구가 된 것은 그것 때문이리라.

성훈이 천재라고 속으로 인정한 사람들이다. 즐기는 천재들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한 교수가 자조적인 미소를 띠었다.

“저 녀석은 베일에 가린 게 너무 많아. 그리고 하나씩 들출 때마다 경악을 금할 수가 없어. 나 나름 천재잖아.”

스스로의 얼굴에 금칠을 마다 않는 한 교수다.

“그렇지. 나도 인정하지. 한! 넌 천재야.”

“그런데 녀석의 일을 보면, 가끔씩… 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하하.”

이게 배우는 자가 가르치는 자에게 느끼게 할 감정인가?

“잘난 척이라도 하면 화라도 낼 텐데. 녀석은 그런 것도 없어. 그냥 손 기술이래. 기가 막혀서.”

“그런데 왜 데리고 있냐?”

“내가 데리고 있는 거 아냐. 지가 제 발로 스스로 찾아온 거지.”

“한! 그렇게 신경 쓰이면 �i아내 버려!”

마이어가 실실 웃는다. 무슨 생각일까?

“크크. 누구 좋으라고.”

한 교수가 마이어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마이어의 웃음에 담긴 의미를 한 교수는 안다.

제 마음에 들면 머리라도 조아려서라도 옆에 두려하는 아주 괴상막측한 천재. 마이어!

그가 다음에 머리 조아릴 인간은 성훈일 것이다. 한 교수가 없다면 말이다.

“좋겠다, 한!”

“그래, 좋다. 부럽지?”

“부러우면 지는 거래매. 한국 속담에. 불쌍하면 빌려줘.”

“안 돼. 내 거야. 얼마나 재밌을지 자네도 알 텐데.”

“쳇. 그럴 거면 뭐 하러 그런 말을 해. 사람 약만 오르게.”

약올라 하는 마이어를 보며 한 교수가 피식 웃었다.

“자네도 나도 스스로 천재입네 하지만 녀석에 비하면 초라하지.”

“큭, 너무 훅 들어오는데… 속은 쓰리지만 인정할 수밖에.”

“녀석은 언젠가 세계무대에 발을 디딜 거야. 한국이라는 땅에서 머물 인재가 아니야.”

“그것도 인정! 성훈에게 한국은 너무 작아.”

“그때 제대로 된 레드카펫을 깔아주라고. 떡고물이라도 떨어질지 알아?”

“흐흐, 좋아. 그때는 내가 바톤을 이어받지.”

“지금 정도의 명성으로는 녀석의 눈에 차지도 않는 거 알지?”

“알지! 알고말고.”

“천재의 등장을 제대로 준비하라고.”

두 교수가 농담하며 성훈을 바라보았다.

나는 신이 났다. 신명났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닷새 동안 한숨도 못 잤지만, 버틸 수 있는 것은 지금 내 앞의 관객들이 보내는 시선 때문이다.

마이어의 작품이지만 내 작품이기도 하다. 그 작품의 컨셉은 마이어보다 내가 더 잘 안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물어보자 정신없이 대답을 해줬다. 그림까지 슥슥 그려 가면서 말이다.

일본인들? 그들도 바쁘다.

내가 이렇게 말했거든.

“알았어요, 생각해 볼게요. 나중에!”

소세키들이 환호를 지르며,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저들은 한국인의 ‘나중에’라는 의미를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중에. 나중에. 아주 아주 나중에!’

그 말 이후, 순한 양이 되어 옆에서 나랑 똑같이 그림을 그려가면서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뭐라도 시키지 않으면 계속 달라붙어 귀찮게 할 것 같아서 손님 응대를 시켰더니 잘한다.

일본인 특유의 싹싹함으로 손님들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한다. 그림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는 실력자들이다.

소세키를 필두로 두 사람이 보조하며, 작품의 내용을 설명 중이다.

내 앞에도 한 열댓 명의 사람이 있다. 나에게는 관심이 없다. 내 손만 바라보고 있다.

거칠 것 없이 종이 위를 가로지르는 내 손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설명을 마치고 박람회장을 돌아다녔다. 건축에 관련된 많은 회사가 참가했다.

설비 배관, 독특한 스위치, 에어컨. 심지어 시멘트와 타일까지. 건축이란 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망라하는 분야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마이어의 시뮬레이션에 쏠려 있어서 그런지 다른 곳은 전혀 붐비지 않았다.

“어? 빌트인 부품이네.”

앞으로 한국에서는 빌트인 가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했다.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땅도 좁고, 지가가 비싸니, 한국에서는 필연적으로 아파트 건축이 붐을 이룬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빌트인이 대세지. 암!”

마이어였다. 왔는지도 몰랐는데 어느새 두 명의 교수가 내 뒤를 따라 붙었다.

‘지금 당신 작품 걸려 있다고, 뭐가 중요한지 알긴 아는 거야?’

저기 보니 일본인 세 명이 식은땀을 흘리며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쿠라야마와 마사키는 연신 ‘아노… 아노…’를 연발하고 있었다.

‘대체 왜 날 따라 오는 거냐고!’

나의 인상 찌푸림은 신경도 쓰지 않고 한 교수가 말했다.

“그래, 한국에도 헤펠레 제품이 꽤나 많이 쓰이는 것 같던데.”

“당연하지. 제품의 정밀도와 품질은 아무도 독일 못 따라와!”

독일인의 자부심이 넘치는 마이어의 호언장담이었다. 뭐 사실이기도 하고.

빌트인 가구가 많이 사용되면서 건축 설계의 방향도 많은 변화를 겪는다. 설계 시작점에서부터 가구의 공간을 확보해 둬야만 한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터인가 주방에서 빌트인이 당연시되어 있었고, 일반 가구-주방가구를 제외한 장롱류-쪽은 아직도 발전할 것이 많았다.

‘헤펠레’를 비롯한 유수의 빌트인 가구 관련 업체들이 줄지어 신제품을 홍보하고 있었다. 마이어 말대로 이제는 ‘빌트인’이 대세였다. 가구가 들어가지 않으면 아파트의 완공이 되지 않는 시대가 온다.

한 교수가 말했다.

“이젠 일반 주택을 지어도 빌트인 가구를 고려하지 않으면 고객들이 화를 낸다고.”

마이어가 말을 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편리함만 추구하다 보니 클래식 가구가 많이 죽었어. 가구도 건축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데.”

편리함은 단순함과 비슷한 말이다. 공정의 단순화는 비용의 절감으로 이어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최고의 미덕이다. 우아한 라인과 화려한 문양의 클래식이나 앤틱 가구는 장식적인 용도로만 쓰임새가 고정된다.

편리함이 미덕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차가운 직선만이 존재하는 집에서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간다.

자연의 향은 배제되고, 단색으로 가득한 무채색의 공간에서, 유령처럼 잠들고 기계마냥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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