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7화
Complete(2)
“이렇게 사과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많이 친해졌잖아요.”
소세키가 허리 숙인 채 말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성훈 상!”
그 옆의 둘이 복명복창한다.
“용서해 주십시오! 성훈 상!”
그때 느낀 압박감이란 정말!
한때는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미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를 실력자로 인정하고 있다. 무시하지 않는다.
반드시 이런 사과를 받아야 할 정도로 악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얼른 이런 분위기를 피하고 싶었다. 사과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마감을 축하하러 온 거다.
당황하고 있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한 교수가 내 어깨를 짚었다. 귀에 대고 한국말로 말했다.
“성훈아! 뭔지 몰라도 얼른 용서하고 지나가라. 쟤들 배 가르겠다.”
마이어도 영문은 모르지만 이 상황이 나에게 달린 것은 알고 있다.
“성훈! 이거 좀 어떻게 해봐!”
뭘? 나보고 어쩌라고. 결론은 하나뿐이다. 용서해 달라고 했잖은가!
“네, 용서해 드릴게요. 그리고 제 마음에서 안 좋았던 기억은 지우겠습니다. 됐습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이 허리를 벌떡 세웠다. 힘들었나 보다. 얼굴이 벌겠다.
“감사합니다, 성훈 상.”
차례로 악수를 청했다. 이거야 뭐!
촌극 한 편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순서가 거꾸로 된.
보통은 처음 봤을 때 인사로 악수를 하지 않나! 시작이 꼬여서 하지 못했지만, 이제 관계의 시작이라는 건가!
언제 저 뒤로 갔는지 한 교수와 마이어는 우리와 떨어져서 뭔가를 쑥덕거리고 있다.
‘두고 봐라, 한 교수. 이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
“한! 저거 물건이다. 물건이야! 저 콧대 높은 일본인들을 저렇게 만들 수 있냐?”
“레벨이 다른 거지!”
“햐! 실력이야 인정 안 할 수 없는 거지만, 난 저 친구 사람 다루는 게 정말…….”
마이어가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전문가의 영역이니 끼어들지 못한 것은 그렇다고 치고, 그놈의 장인 정신을 내세우며, 완벽을 기할 때는 숨이 턱턱 막혔다.
시간 없어 죽겠는데, 장인 정신은 개뿔!
그런 고집쟁이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턱턱 긁더니, 실력으로 눌러 버리고, 칭찬하면서 띄워주고, 뒤에 가서는 종 부리듯이 하더니, 마지막에는 스스로 사죄하게끔 한다?
“한! 나는 살면서 저런 인간을 본 적이 없어. 쟤 25살 맞아?”
“나도 가끔 그게 의심스러워. 속에 구렁이가 앉아 있는 거 같아! 한 50 먹은 거 같아.”
“난 언제 저렇게 되냐?”
“마이어, 당신은 이미 50으로 보여 걱정 안 해도 돼!”
“크크크. 한국에서는 나 같은 사람 지하철 타면 자리 비켜준다며?”
“응. 당신 자리는 항상 비어 있을 거야. 노약자석이라고 따로 있어!”
***
박람회 마지막 날이다.
마이어의 작품은 오늘에야 시연이 되었다.
위원회장의 특별한 배려로 한쪽 벽에다가 통째로 스크린을 설치했다.
주변 관계자들의 빗발치는 항의가 있었지만 위원회장은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그는 뻔뻔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특별 행사로 기획한 거요!”
“이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무슨 특별 행사요?”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거요.”
“흥! 기밀은 무슨? 이 건으로 문제가 생기면 가만있지 않을 거요!”
‘흥? 내가 흥이다! 이 건으로 내 입지가 굳혀지면 넌 퇴출 일 순위야!’
위원회장이 말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걸어!”
마지막 날이라 회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복잡하다.
거기다 빔 프로젝터와 스크린의 설치로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마이어의 ‘트랜스포머’가 방영된다. 마이어가 적극 추천했던 배경 음악이 깔린다. 사람들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몰렸다.
저 멀리 보이는 사막의 작은 도시.
태양은 집으로 돌아가고, 암흑만이 존재한다.
둥근 원형의 외곽에서부터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멀리 하늘을 날던 독수리는 이게 뭐야 하면서 도시로 접근한다. 시원한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다가갈수록 건물의 외관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갓 지은 듯한 건물 화강석 외벽에서는 돌가루 냄새가 날 것 같다. 아스팔트 위로 바람을 타고 횡단하며 좌우를 살핀다.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않은 곳이 없다. 눈으로만 봐도 시멘트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막과 어울리지 않는 콘크리트의 도시. 어느새 독수리는 불빛의 물결을 앞질러 중앙광장에 도달했다. 텅 비어 있었다. 광장을 한 바퀴 둘러서 중앙에 내려앉았다.
귀를 간질이던 바람은 잦아들었다. 바람 소리는 사라지고 땅을 울리는 거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쿵. 쿵. 쿵. 쿵.
잠시 후 진동은 사라졌다. 아니, 이 소리에 묻혔다고 할까? 땅 속에서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려왔다.
윙. 철컥! 윙. 철컥.
곧이어 땅이 흔들렸다. 그리고 바닥에 푸른 불빛이 일렁였다. 놀란 독수리가 화들짝 날아올랐다. 소리와 불빛에서 떨어져서 기현상을 지켜본다.
땅 속에서 거대한 사각 기둥이 솟아오른다. 하늘을 찌를 기세로 힘차게!
솟아오른 네 개의 구조물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사방으로 큐브가 한 칸씩 튀어나온다.
윙. 철컥! 윙. 철컥.
“우와! 저게 뭐야?”
사람들의 탄성이 커져만 간다.
“오호라! 아예 피라미드 모양이 되었는데.”
무한 확장을 한 큐브는 ‘十’자 모양의 역피라미드가 되어 있었다.
“저게 정말 가능한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실제로 된다고 해도 저걸 지을 이유가 없잖아.”
“그냥 디자인일 뿐이야. 그래도 생각이 참신하잖아. 그냥 보자구.”
실현 가능하다고 하는 사람, 말이 안 된다는 사람, 그냥 영화처럼 즐기는 이, 각양각색의 인종이 생각을 뿜어낸다.
박람회장은 열기로 후끈거린다.
회장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보는 사람만 없었으면 박장대소를 하련만 체면 때문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크크크, 마이어 교수! 이번 박람회는 대, 대, 대성공이오. 고맙소!”
“크흐흐. 뭘 고작 이런 걸로…….”
겸양을 하는 마이어라고 별다를 바가 있으랴?
그도 마주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다. 각고의 인내심으로 벌어지는 입술을 오므리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독수리는 열린 창을 통해 구조물의 내부로 침투했다.
문어발처럼 늘어나는 이 괴물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날카로운 눈으로 내부를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텅 빈 넓은 복도였다.
하지만 건물의 확장이 끝나자, 천정의 일부분이 ‘ㄱ’자로 꺾이더니 바로 벽이 되어버렸다. 이미 벽에는 문이 달려 있다.
그리고 다시 모듈화된 벽이 차례로 내려오면서 공간을 벽으로 나누었다.
한 쪽은 집, 나머지 좁은 쪽은 복도가 되었다. 인테리어는 완벽하게 심플하다.
먹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자, 독수리는 흥미를 잃어버렸다. 창밖으로 나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래도 신기했던 모양인지, 창공에서 밝게 빛나는 사막의 도시를 뚫어지듯 바라본다.
찰나의 순간에 광휘의 오아시스가 되어버린,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를…….
“와우! 저거 한 층만 있으면…….”
“저걸 어떻게 들고 다니냐? 그리고 어디다가 설치하냐!”
“쓸 곳은 많지! 당신 같으면 아프리카에 난민 구할 때, 시멘트 들고 갈래, 저거 헬리콥터에 싣고 갈래?”
“끙!”
말문이 막힌 사내가 신음을 삼킨다.
“만들기만 하면 쓸데가 왜 없어? 섬에 가서 집 지을래? 가져갈래?”
“그렇지. 다만 지금의 기술로 만들 수 있느냐가 문제지!”
다시 한 번 박람회장은 뜨거운 토론으로 후끈 달아오른다.
상영이 끝나고, 조명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영상이 있던 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객장이 소란스럽다.
스크린 아래에 마련된 단상에 마이어가 올라갔다. 사람들은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관객들을 죽 둘러본 마이어가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제가 아는 바로는, 아직은 실현이 불가능합니다.”
“아우! 진짜.”
아쉬움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관객들의 반응을 본 마이어가 말을 이었다.
“기술은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인간이 밤에도 볼 수 있었다면, 플래시는 발명되지 않았을 겁니다. 우주여행을 꿈꾸지 않았다면, 달에 가지 못했겠지요. 미래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지만, 그 시발점은 상상의 힘입니다.”
마이어는 불가능의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했던 대부분의 것은 지금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늘을 날 수 있고, 전화를 할 수 있으며, 해저로 터널을 뚫었습니다. 불가능은 없습니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죠. 우리가 만들지 못하면, 후손이 만들면 됩니다. 우리는… 그 기반을 만들어 줄 겁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저 영상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이 트랜스포머 큐브는 미래를 알리는 시작일 뿐입니다.”
간단한 인사말로 마무리하며, 마이어가 단상에서 내려왔다. 위원회장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감사합니다. 베를린 대학의 마이어 교수였습니다.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에 박람회장이 흔들릴 정도였다.
아직 마이어는 강단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위원회장을 비롯한, 한자리 한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와 마이어를 붙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곧이어 기자들도 따라붙었다. 우리 자리로 오려면 차례 멀었다.
한 교수가 아쉬워했다.
“저 작은 것들을 대형 큐브로 이어붙이면 그대로 우주건축이었는데!”
그의 말도 완전히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네모난 큐브 하나에서 무한 확장한다는 컨셉이었으니, 달에 하나 던져놓으면 사람이 존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공기와 중력 문제는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가있는데, 몸까지 우주로 보낼 순 없지.’
난 아직 한 교수가 필요했다.
한 교수는 집요했다.
“사랑하는 제자야, 내가 설계할 테니까. 너는 만들어주기만 하면 돼! 어떠냐?”
‘어떻긴 뭐가 어때요. 어림도 없지.’
대꾸하지 않았다. 한 교수의 미래는 전통 건축과 연관이 있다. 그는 전통 건축에 흥미가 있기도 하지만 잘 파고든다. 그와는 궁합이 잘 맞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그리고… 아쉽지만, 그가 늘상 주장하는 우주 건축은 아직은 시기상조다. 그걸로는,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미치광이 소리를 듣기 딱 좋다.
마이어의 개념을 저기서 더 확장시키지 않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그저께 밤에 마이어와 한 교수가 한 목소리로 외쳐댔었다.
“성훈, 여기서 기둥을 비틀어 보자고, 그럼 꽈배기처럼 건물이 돌아갈 거 아냐?”
“그래. 얼마나 스펙타클하겠어? 그 모습을 한 번 꼭 봤으면 한다고!”
‘그건 시기상조라고요. 한 오 년쯤 있다가 2차 발표회 때나 써먹으라고요. 그 때도 센세이션일 테니!’
만능열쇠로 써먹을 마이어를 한 번의 점프로 EU 건축 협회 의장 자리에 앉히기는 어렵다. 먼 훗날 적절한 시기에 한 번 더 도약이 필요할 때, 터뜨리면 될 것이다.
내가 말했다.
“시간 없어요. 지금 이것도 빠듯해요. 할 거면 직접 하시든가 저 일본인들한테 시키세요. 그럼 전 손 놓을 테니까.”
둘이 씩씩거리며 나에게 인상을 써 댔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들에게 나는 ‘갑’이었다. 적어도 그때 그 순간만큼은.
그리고 이 정도가 딱 적당했다. 적당히 허구적이어야 개념으로 통한다. 너무 현실성이 없으면 아무리 유럽이라고 해도 망상으로 취급받는다.
‘지금도 충분히 로봇 같다고 할 사람 많다고요. 마이어.’
굳이 사적인 감정을 좀 넣자면, 한 교수와 마이어에 대한 소소한 복수라고나 할까!
***
지금 내 옆에 정말 바쁜 일본인 세 명이 붙어 있다.
그들의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사과를 받아줬더니, 이제 아주 잡아먹을 듯이 친한 척을 한다. 그 입에서 나오는 내용도 그만큼 귀찮다.
소세키가 말했다.
“성훈 상, 우리랑 같이 영화 찍자고. 내가 스필버그랑 같이 일하게 주선할게. 응?”
구라야마가 말했다.
“성훈 상, 그럽시다. 난 정말 기겁하는 줄 알았어. 말이 돼? 집이 그렇게 움직인다는 게! 그런 집을 우리 손으로 만들게 될 줄이야.”
마사키는 한 술 더 뜬다.
“성훈 상, 그 실력이면 스필버그가 모시고 갈 거라고. 그 실력과 기획력에 우리처럼 움직여줄 사람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우리랑 같이 일하자고. 부탁이야.”
‘이 양반들아, 영화배우도 아니고. 뭐! 지금처럼 그렇게 일했다가는 손가락 관절 나가! 난 늙어서도 내 손가락으로 젓가락질 하고 싶다고. 꿈 깨! 얼마나 사람을 부려먹으려고.’
마이어를 도운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이 있어서다. 그리고 설계 변경을 한 것도 말이다.
어차피 지을 집도 아니다. 목적은 오직 하나! 마이어를 띄우기 위해서다. 마이어는 나의 공을 잊지 않을 거고, 앞으로 유럽 연합의 건축계에서 입지를 확실히 굳힐 것이다.
이 정도 인지도를 받고, 명성을 굳히지 못한다면 마이어는 바보일 것이다. 그 정도 융통성은 충분히 있는 사람이었다.
‘어중간하게 튀어서는 죽도 밥도 안 되지. 튈 거면 잊지 못하도록 인을 박아야지.’
나는 튀고 싶지 않은데, 발판은 마련해야 되니 마이어만큼 좋은 재목은 없었다. 그리고 마이어가 좋고, 마이어도 나를 좋아한다. 이보다 더 좋은 관계가 어디 있는가?
“아오! 됐거든요. 당신들이나 스필버그랑 해요. 전 생각 없어요!”
버럭 고함을 질러도 꿈쩍도 안 한다.
소세키들도 이미 알고 있다. 나란 인간이 이 정도로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네 나라를 까대도 눈 하나 꿈쩍 안 하는 사람인데, 이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런 간악한 일본 놈들!
내가 그림을 그려도, 걸음을 걸어도, 화장실까지 따라와서도!
뭘 할 때마다 엄지를 들며 치켜세운다. 흠, 화장실에서 쌍 엄지 치켜든 건 기분이 좋았다. 크흠!
‘이러다가 교주라도 되는 거 아냐!’
시켜준 대도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이런 특촬물 오타쿠들의 주인이 되어서 뭘 한다는 건가? 세라복 입은 처자들이면 눈이라도 즐겁지.
‘난 박람회를 보러 온 거라고. 제발 저리 꺼지라고. 공부하는데 방해된다고! 아흑, 돌아버리겠네.’
집요한 일본인들은 포기를 모른다. 젠장.
한 교수와 마이어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관객들에게 설명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얄밉다.
‘자기 부스에서 설명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저 구석탱이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어허, 웃기까지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