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6화
Complete(1)
모델링과 매핑은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조명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렌더링.
조명과 시뮬레이션을 할 카메라 동선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렌더링은 컴퓨터가 하는 것이다.
사실 그래픽 작업은 조명에서 모든 것이 결정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들도 모델링과 매핑은 아랫사람에게 시켜도 조명은 거의 직접 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종적으로 설계자가 원하는 색상과 질감을 만들어내는 것은 빛이다.
그 빛에 의해서 원하는 색과 질감이 나오며, 그림자에 의해 볼륨감이 생성된다.
여기서부터는 아마추어가 건드리지 못하는 전문가의 영역. 경험이 빛을 발하는 구간이다.
소세키가 물었다.
“성훈 상, 여기 이 부분은 어떻게 할까요?”
세상에 빛을 만들어내는 것은 태양만이 아니다.
호롱불도, 전구도, 가로등도, 그리고 유리에 반사된 것도 모두 빛이다.
제각각의 색과 강도로 오브젝트를 비추며 256가지 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3D가 지향하는 바는 3D처럼 보이는 모델이 아니라,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퀄리티를 내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자연스러움이다. 조명이 하는 것도 3D로 구현한 형상을 가장 현실감 있게 구체화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3D 프로그램의 구동 시 가장 용량을 많이 차지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바로 빛!
실제로 그림자를 구현하지 않는 렌더링은 용량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그림자가 들어가는 순간, 렌더링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느려진다.
언제부턴가 이 세 명의 일본인이 나에게 물어보기 시작한다.
‘내가 감독이냐? 전문가는 당신들이라고. 나는 당신들에게 배우고 싶다고.’
그러나 이런 방식이 일하기는 편하다. 알아서 물어봐 주고 자기 고집을 내세우지 않으니 얼마나 편한가?
“일단 조명이 필요한 곳에는 모두 설치를 하세요!”
“하지만 성훈 상, 헐리우드 쪽의 워크스테이션 컴퓨터가 아니면 이거 못 돌릴 겁니다. 용량이 너무 커요!”
그들의 걱정을 알고 있다. 가용 용량보다 너무 큰 데이터가 들어오면 CPU가 멈춰 버린다. 일명 빠가가 난다.
“일단 설치만 하세요. 나중에 온오프를 결정하도록 하죠.”
내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소세키는 질문을 반복하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가 지시를 할 뿐이다.
‘무슨 변덕이냐. 그렇게 투덜대며 딴지만 걸더니! 그래, 말만 잘 들으면 됐지 뭐.’
하긴 닷새 동안의 밤샘작업은 서로의 불신을 없애고 팀워크를 다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강자에겐 강자의 방식이 있고, 약자에겐 약자의 방식이 있다.
철저하게 조명이 쓰일 부분과 조명이 닿지 않는 곳의 동선을 구분했다. 조명이 하나가 덜 활성화되면 렌더링 시간이 반으로 단축된다.
소세키들이 작업하는 곳에서는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빵빵한 시스템을 가진 곳에서는 고민하지 않는 방식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나 시간이 아니라 퀄리티니까.
시간이 모자라면? 두 대를 쓰면 되고, 그래도 모자라면 더 쓰면 된다. 돈질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할리우드다.
여기는 마이어의 사무실이다. 할리우드에 비하면 처참할 정도로 약자다.
“호오, 이런 식으로도 작업을 할 수 있군요.”
역시 소세키의 말처럼 이들은 이런 작업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도 완벽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어마어마한 용량이 들어갈 매핑을 입힐 수 있는 것이다.
나라면 어떻게 텍스쳐 하나라도 뺄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부자와 빈자의 관점 차이다.
“시스템이 안 되니까 이런 대책이라도 마련해야죠. 하하.”
“흐음!”
세 명의 일본인이 팔짱 낀 손으로 턱을 받치고 나의 분할 작업을 주시하고 있다.
영상에서 가장 포인트가 될 만한 구간을 잘라서 소세키의 컴퓨터로 렌더링을 시작했다. 그게 가장 좋은 거니까, 그리고 나머지 부분도 조각조각으로 분할해서 각자의 컴퓨터에 배분을 했다.
최대한 작은 단위로 분할하는 것은 컴퓨터가 멈춰 버렸을 때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대신 이어붙이고 편집하는 귀찮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시스템이 딸리면 사람이 좀 고생하면 되는 거지.’
먼저 렌더링되는 것부터 파일을 옮긴 후, 마이어를 불렀다.
지금부터 마이어는 붙박이다. 꼼짝 못 한다. 못을 박았다.
“지금부터 어디 싸돌아다닐 생각하지 마세요.”
마이어의 작업이니 마이어의 의도에 맞게 나와야 한다.
내 의도가 드러나서는 마이어의 것이 아니게 되고 그러면 마이어의 명성은 거품이 될 것이다.
컴퓨터로 렌더링을 돌리는 동안, 할 일이 없어진 일본인들도 아예 내 의자 뒤로 자리를 잡았다.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들의 전문 분야는 3D 제작 분야다. 나중에는 프로그램이 좋아지면서 한 사람이 편집까지 관여를 하게 되지만 아직은 아니다. 이들도 자신들의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최종 결과물이 되는지 보고 싶은 것이다.
6명이 있지만 들리는 소리는 마이어와 내 목소리뿐이었다.
모든 작업이 끝났다.
“휴! 이제 현장에 가져다 거는 것만 남은 것인가?”
한 교수와 마이어도 내 옆에서 작업이 끝나는 것을 보고 나를 안아주며 격려했다.
“성훈아, 수고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성훈! 브라보.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이야.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겠어.”
마이어로서도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애초의 설계보다 더 화려하게 나왔다.
이유는 한 가지!
“어차피 안 지을 거잖아요.”
중간에 설계가 변경되면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겨우 빠듯하게 마감에 맞춰서 작업을 끝냈다. 일본인들도 저들끼리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축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갔다. 시작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마무리를 감정의 잔재 없이 깔끔하게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소세키 상, 쿠라야마 상, 마사키 상. 세 분 다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니 이런 작품이 나오는 군요. 대단하세요.”
대화의 포문은 칭찬으로 열었다.
세 명의 일본인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들은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물론 나를 누르기 위해 시작된 일이지만.
“성훈 상, 죄송합니다!”
세 명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며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일본 영화에서 야쿠자들이 하는 그런 인사!
살짝, 아니, 많이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사과할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일본인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도 허리를 올리지 않는다. 정말 당황했다. 영화에서 많이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당해보니 그 느낌이 달랐다.
사과의 기세라고 해야 할까! 진심이 느껴지는 사죄!
그리고 당하게 되면 아무리 화가 나 있어도 화를 풀어줘야 할 것 같은 느낌!
안 받아주면 할복할 것 같은 진지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