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5화
Competition(3)
잠시 후, 마사키가 물었다. 재밌다는 표정을 하고 말이다.
“맥스를 쓰는 사람들은 다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는 겁니까?”
“아뇨. 저만 하는 겁니다.”
그렇다. 이 방법은 적어도 이 시절에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방법이다. 얼마 뒤에는 상용화될 것이다.
그저 발상의 전환일 뿐인데, 그 전환이 뒤늦게 이루어졌다. 적어도 내가 알던 대다수의 사람은 이 방법을 알지 못했고, 나는 그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왜? 내 밥줄이었거든. 남들과 경쟁에서 시간적 우위를 차지할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내가 던진 부메랑에 뒤통수 맞는 거랑 다를 게 없었다.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문파의 비기는 적장자에게만 전해지는 법이다.
미간을 찌푸린 마사키가 물었다.
“성훈 상! 왜 이런 걸 가르쳐 주는 겁니까?”
“일이니까요. 지금 우리는 시간이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마사키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성훈 상! 일본어를 잘하시네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은 내가 일본 말을 모른다고 생각했을 텐데 말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습관이 이래서 무섭다. 갱상도 말로 물으면 갱상도 말이 나오고, 서울말로 물으면 서울말이 나오는 법. 칙쇼!
“아닙니다. 그냥 몇 마디 합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해요.”
마사키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달눈에서 나오는 온화한 웃음이다. 어찌 보면 일본 가면 같은.
“저희가 첫날 비웃는 걸 들으셨겠네요.”
뭐라고 답을 하기가 애매했다. 그것도 당사자가 저렇게 대놓고 고백을 하면 말이다.
그냥 웃었다.
“왜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가신 겁니까?”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을 줄이야!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하하! 그럼 거기서 민족 감정을 드러내며 싸웠어야 합니까?”
“하지만 화나지 않으셨습니까?”
“화는 났지만 일로 무시를 당했으면 일로 갚아줘야지. 엉뚱한 걸로 갚아준다고 해서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일로 무시를 당했는데, 어쭙잖은 민족 감정을 드러내면 ‘내 수준이 이따위요. 당신을 못 이기겠으니, 나는 욕이나 하겠소’ 하고 자랑하는 것이다.
축구로 졌으면 축구로 되갚으면 될 일이다. 유도로 졌으면 유도로 누르면 되고.
뺨 맞아서 열 받는다고 사시미 칼을 들면 그건 병신이다. 병신 중에서도 상병신!
“하하, 그렇군요. 할 말이 없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조용조용 나누는 대화가 들렸음인가? 저쪽에 있던 소세키와 쿠라사키의 손놀림이 멈췄다. 아니, 어쩌면 마사키와 일본말로 대화할 때부터 멈춰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사키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말했다.
“따라잡힌다고 생각하면 두렵지 않으십니까?”
‘안 따라잡히는 것도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들은 무엇을 목표로 이 일을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들의 생각이 알고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일인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일인자가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마사키는 나의 질문에 질문으로 대응했다. 참 독특한 화법이다.
예, 아니오로 대답하는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이 될 것이다. 이다음에 따라오는 질문은 당연히 ‘왜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일 것이다. 굳이 그의 페이스에 말리고 싶지 않았다. 다른 질문을 던졌다.
“영화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하셨지요?”
“네!”
“저는 영화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는 판타지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대단한 예술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애니메이션계의 일인자라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일본 영화계의 거장이시지요. 많은 사람이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야자키 감독이 목표가 되어서는 일본의 발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순간 마사키의 얼굴에 어둠이 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과연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없었다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있었을까요? 아니, 애초에 둘 중에 누가 ‘승자’ 혹은 ‘강자’라는 말을 할 수나 있을까요?”
나는 일인자란 결과일 뿐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인자를 목표로 하는 것은 사람에게 기준을 두는 것이다.
일인자가 있으면 일인자가 못 되는 것이고, 일인자가 없어져야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그 기준선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다른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 기준이라면 일인자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 앞의 사람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물론 그 세월 동안 뒷사람에게 추월당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런 마인드는 백이면 백. 다 추월당한다.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아온 일인자‘들’은 사람을 목표로 잡지 않는 자들이었다.
일인자가 목적인 사람은 자신이 이인자라는 것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한다. 대부분은 스스로 무너진다.
대부분의 일인자가 걸어온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애초에 누군가를 이기겠다는 마음이 없다.
그들의 경쟁자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것, 혹은 어떤 일이다.
그 일을 하다 보면 다른 길을 개척하기도 하고, 그 길에서 독보적인 존재. 즉 일인자가 된다.
일인자가 되는 길은 수만 가지다. 그러나 내 앞의 일인자에게 집착하는 순간 일인자의 길은 하나가 된다.
“따라잡히는 것을 두려워해서 뒤돌아보는 자는 일인자가 될 수 없다고 봐요. 목표는 뒤가 아니라 앞에 있는 거죠. 고로 일인자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그의 뒤에서 �i아가는 것이 아니라 옆에 서는 게 아닐까요?”
마사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무런 반론도 없이 듣고만 있었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려고 할 때 겨우 같은 위치에 서는 거죠. 당신의 생각과는 다를지 몰라도 전 일인자란 사람 앞에 서는 자가 아니라 일의 뒤를 �i고 그걸 앞지르기 위해 경쟁하는 자라 생각합니다.”
마사키가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너무 건방진 이야기 하는 거 아냐? 이상하게 보이겠지!’
너무 말이 많았다. 여기서 말을 접기로 했다.
“제가 볼 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하며 마사키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마사키 상은 당신의 길에서 일인자입니다. 그 실력이 증명합니다. 그리고 소세키 상과 구라야마 상도 각기 자신의 길에서 일인자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인정합니다.”
마사키가 파안대소를 지었다.
“정, 정말입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었다. 나는 이전의 삶에서 그들처럼 집중한 적도, 진심이었던 적도 없었다. 일을 대하는 것은 어디까지 돈벌이였을 뿐이다.
나는 이들을 일인자가 아니라고 말할 자격도, 질투할 자격도 없었다.
이들은 진짜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