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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4화 (34/427)

건축의 신 34화

Competition(2)

“그런데 마이어! 해줘야 할 게 있어요.”

“말해! 커피 타다 줄까?”

마이어가 히죽 웃으며 말한다.

커피는 내가 타먹어도 되거든! 아가씨도 아니고, 머리 허연 노인네한테는 받아먹을 생각 없어!

참, 내가 말을 왜 이렇게 하냐면 마이어 저거, 겉 늙은이다.

마흔둘이란다. 한국 나이로 마흔셋, 나랑 동갑이다. 쯧쯧! 머리는 허예 가지고. 전생에 잡지에서 봤을 때 허예진 게 아니라 이때부터 액면가 할배였다.

“박람회 진행자한테 이야기해서 이거 일정 좀 미뤄요. 마지막 날 오픈 하겠다고 해요.”

마이어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될까? 안 된다고 할 건데.”

“안 된다고 하면 모레 아침에 여기로 데리고 와요.”

“왜?”

답답한 양반이다. 마이어! 박람회는 고상한 학술회의가 아니다. 흥행이 아주 큰 요소를 차지한다.

흥행을 하려면 홍보가 중요한데, 전년도에 흥행이 대박을 쳤다면 다음 해에는 홍보를 할 필요가 없다.

스폰서를 잡으러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스폰서가 돈 보따리 들고 알아서 찾아온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명성 있는 자들을 특권을 줘서라도 초대하는 것이다. 그럼 지금의 마이어의 설계는 과연 흥행을 할 수 있는가?

이걸 몰라본다면 그들은 장사 접어야 한다.

“주인공은 나중에 등장하는 거예요. 그쵸? 마지막에 짜잔!”

마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데리고만 와요. 그 밑의 부하직원이라도 괜찮아요. 그다음은 알아서 굴러갈 테니.”

한일전의 양상을 띠고 경쟁이 진행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소세키들의 입장이다. 나는? 져도 잃을 것이 없다.

25살짜리가 10~20년 차 경력자 3명에게 진다고 해서 잃을 것이 있을까?

나처럼 사기 캐릭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 방면의 실력을 쌓아온 자들인데, 하는 말은 밉상이라도 그 실력은 진짜였다.

매핑 쪽의 퀄리티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다. 물론 이겨낼 방법은 있었다. 몇 개의 매핑 소스를 더 첨가함으로써 더 좋은 품질을 만드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걸리는 시간과 렌더링에 걸리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인정해 줬다.

“정말 매핑 실력은 따라갈 수 없군요. 대단하십니다.”

엄지를 치켜들었다. 내 말에 일본이 세 명이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에게 격려했다.

“봤지. 하면 할 수 있다고!”

내 말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나는 진심으로 이들이 부러웠다.

한 길만 죽어라고 파지 않는다면 이런 실력이 나오지 않으니까 말이다. 격장지계를 하느라 깔아뭉개기는 했지만 실력은 진짜였다.

나중에 프로그램들이 발전을 하면서는 지금의 그들이 쓰는 매핑 기법은 대중화되겠지만, 이들의 실력은 알아줄 만 했다. 프로그램이 나아질수록 이들의 실력도 더 많이 발전할 것이다.

프로그램이란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 그 기술을 선도하는 자들을 인정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성훈 상도 실력이 대단합니다. 그 나이에 그렇게 한다는 것은 정말… 신의 손입니다.”

내가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자 금간 자존심이 회복이 되었던지 나에 대한 칭찬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인들 중의 하나인 마사키가 어눌한 영어로 말했다.

“우리는 건축을 모릅니다. 의뢰를 받아들인 것은 마이어란 사람의 명성 때문입니다. 우리 커리어에 도움도 되고요.”

“그러셨군요.”

그렇게 대단한 줄 아는 사람에게 그런 땡깡을 부렸던 거냐? 어떤 의미로는 이들도 대단하다.

“그런데 성훈 상은 어떻게 저런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겁니까?”

어쩌면 이들의 눈에는 월권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하라고 한 것을 ‘못 한다’고 하는 것과 먼저 나서서 ‘이것 하자’ 라고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니까.

“그냥 의견을 말한 거지. 그게 어디 명령한 겁니까? 마이어도 받아들일 만하니까 받아들이는 거죠.”

생각해 보니 이것이 일본인들과 처음으로 한 대화다운 대화였다.

다시 작업이 시작되었다. 파티션은 치워지고, 마사키는 내 옆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제 좀 한 팀 같네.’

내가 ‘따’를 당한 것인지, 내가 ‘따’를 시킨 것인지 몰라도 겉돌던 분위는 많이 사라졌다. 한 번의 칭찬이 그들의 자존심을 살린 것 같다. 역시 칭찬은 좋은 것이여!

옆에서 작업하던 마사키가 작업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일본어로 뭐라고 투덜거리고 있다.

“아, 진짜. 왜 이렇게 폴리곤이 깨지는 거지?”

옆을 힐끗 보니 아까 만들었던 벽체에서 폴리곤 좌표가 흐트러지는 바람에 매핑 입힌 것이 뭉개지고 있었다.

모델링을 하는 과정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매핑을 입히게 되면 좌표가 엉킨 부분은 눈에 도드라진다.

지극히 정석적인 방법으로 모델링을 해놓았다.

작은 건축물 혹은 창이 몇 개 없는 것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나, 창이 많은 경우에는 해당면의 세그먼트(Segment : 매스의 임시분할선) 개수를 늘려야 좌표로 인한 트러블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건물을 만들 때, 일반적인 3D 프로그램의 정석적인 모델링 순서는 건물을 짓는 것과는 좀 다르다.

박스를 생성시켜서 벽의 크기와 두께, 높이를 설정하고, 무브로 옮겨서 원하는 위치에 놓는다.

창을 뚫기 위해 창 크기만큼의 박스를 생성한다. 기존의 벽에서 뚫을 위치에다가 박스를 겹친다. 그리고 ‘Boolean’한다.

그러면 원하는 크기만큼의 창이 생성된다. 그 이후에 마감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이것이 기본이다.

마사키도 그런 기본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창이 몇 개 되지 않을 때는 충분히 사용 가능한 방법이다. 마사키는 건축물 작업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쥬라기 공원’에서 건물이 몇 개나 나오겠는가?

그리고 영화 제작 기법은 잘 모르지만, 그렇게 3D로 만들어서 컴퓨터의 용량을 늘리는 것보다 세트를 만드는 것이 훨씬 비용이 저렴할 것이다.

즉 건축물을 만들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럴 여유 용량이 된다면 공룡 한 마리라도 더 넣는 것이 그들에겐 이익일 것이다.

그리고 마사키는 그 정석을 따르고 있었다. 한쪽 벽에 창만 수십 개가 넘는 것을 말이다. 당연히 좌표가 흐트러지고, 매핑을 입히면 택스쳐가 뭉개진다.

마사키에게 말했다.

“마사키 상, 그렇게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캐드에서 도면을 불러와서 ‘Extrude’시켜서 사용해 보세요. 건축 쪽에서는 그렇게 사용합니다.”

미심쩍은 듯하면서도 마사키는 내 말대로 했다.

어차피 본전이니까!

지금 상태에 익숙해서 그렇게 할 뿐이지, 그것이 얼마나 용량을 많이 차지하는지는 마사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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