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2화
전문가들(2)
가운데 끼인 마이어가 안절부절못했다.
최고 전문가라며 돈을 주고 부른 일본인들은 자신을 불안하게 하고, 도움을 주러 온 나는 그들과 융화되지 못한다.
배가 점점 산으로 가는데, 선주가 불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대로 일본인이 땡깡을 부려 버리면 돈은 둘째 치고 일 자체가 무산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손해는 금액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다. 신용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누가 약속을 두려워하겠는가!
내가 말했다.
“마이어, 일단 응접실로 가요. 그리고 이 사람들이랑 어디까지 계약이 된 거예요?”
마이어가 급히 계약서를 가지고 돌아왔다. 다행스럽게 독일어가 아니라 영어였다. 알아볼 수 있었다.
보통은 돈 주는 사람이 갑이다. 돈 받는 사람이 을이다. 그게 일반적인 갑을관계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계약서는 아주 급하게 날림으로 계약된 문서 한 장이다. 누가 갑인지 애매할 정도의 문서였다.
여태껏 내가 본 독일인의 계약서 중에 가장 허접했다. 마이어가 얼마나 급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허접한 독일인 같으니라고. 분명히 조상 중에 그리스 사람이 있을 거야.’
그동안 일본인들끼리 쑥덕거리더니 리더로 보이는 이가 말했다.
“이런 식으로 우리를 농락할 줄 몰랐소. 이 계약은 파기요!”
맨 처음 나와 말하던 남자였다. 이름은 소세키라고 했다. 소 새끼보다 못한 놈!
마이어가 볼 살이 씰룩거린다.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다.
“이거 보쇼. 소세키! 당신네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줬고, 계약금도 미리 반이나 당겨주지 않았소! 그런데 뭐라고?”
“우린 계약 위반한 거 없으니까. 고소하든지.”
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참 꼴이 우습게 돌아간다. 일에 대한 책임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대충 봐도 견적 나온다.
‘영화 쪽의 일을 하다 보니 건축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어라! 자기들이 하던 거랑 다르거든. 시간 내에 못 끝낼 것 같거든! 그래서 무슨 핑계를 댈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내가 떡하니 끼어든 거다.
‘이때다’ 하고 도망칠 궁리하는 거지. 이해한다. 영화 일 하다 보면 건축 일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지. 니네라고 사정이 왜 없겠니!
이해는 하겠는데 설마 이대로 똥 싸질러 놓고 내뺄라고? ‘마이어만 엿 먹어’ 되겠네! 그런데 내가 그 꼴은 못 보지.
계약서를 테이블로 픽 밀어 놓으며, 소파에 풀썩 앉았다.
“이봐! 소세키! 당신들 사기꾼 아니야? 전문가는 지랄하고…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소세키가 얼굴이 벌게졌다. 소파에 기댄 나를 노려본다.
‘한참 어린놈에게 사기꾼 소리를 들으니 기분 나쁘지! 나쁘라고 하는 소리야! 어쩔 건데?’
그를 올려다보며 내가 피식 웃었다.
“난 애초에 당신들이 전문가라는 게 의심스러웠어. 쥬라기 공원에서 뭘 맡은 거지? 혹시 공룡 똥 싸는 신이라도 만든 거야? 하긴 그것도 죽을 똥을 싸면서 만들었겠네.”
“칙쇼! 말이면 다하는 건 줄 알아?”
벌게진 얼굴로 대번 덤벼들 듯이 몸을 들이민다. 그럼 나야 좋고. 기왕이면 가라데로 덤비라고!
오히려 나는 싱글싱글 웃었다.
“억울하면 실력으로 한판 붙자고! 그 잘난 주둥이 말고 말야.”
예술가들은 자존심에 목숨을 거는 존재들이다. 저치들도 예술가이니!
부모 욕하는 건 참아도 자기 작품 욕하는 건 못 참는 게 이쪽 계통의 인종들이다.
‘뭐, 딱 걸렸지!’
한 교수가 마이어에게 윙크를 날렸다. 마이어는 한 교수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했다. 그런 건 나한테 하라고!
끝까지 자기들이 다 하겠다는 소세키에게 절충안을 날렸다.
“시간이 촉박하니까, 당신이 앞에서 해왔으니 나는 뒤에서 해 갈게요.”
“됐어. 우리가 다 할 테니, 당신은 빠져 있어!”
‘이 순진한 친구야. 지금 자존심 세울 때가 아니라고. 마이어 얼굴 하얘진 거 안 보여?’
“좋아요. 그럼 저런 쓰레기 계약서 말고 다시 씁니다. 정식으로. 100% 완성이 불가능할 시에는 계약금은 물론이고 손해배상까지 하는 것으로. 물론 그 손해배상에는 마이어의 정신적 피해보상도 포함됩니다.”
“큭, 그건…….”
소세키의 말문이 막혔다.
‘어때, 자신 있으면 콜 하라고. 그럼 쿨하게 빠져주지!’
정신적 피해보상! 진짜로 애매한 조항이다.
물론 어느 정도 기준은 있겠지만 귀, 코, 입술, 하다못해 눈두덩이에 걸어도 되는 게 저거다.
계약 조항의 ‘지니’라고 할까?
나중에 청구하면 몰라도 계약서에 떡 하니 써 있으면 이건 신체포기각서나 별다를 바 없다.
‘계약 못 지키면 맘대로 하시어요. 맘이 풀리실 때까지.’ 그런 의미지.
물론 자존심만 강한 소세키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신감은 좀 없었나 보다. 아니면 베팅을 해본 적 없던지!
계약 관계에서 블러핑하는 인간들. 진짜 많다. 부도내고 배째라고 하는 인간들도 많고.
뭐 어쩌나! 나도 같이 배째라고 누워야지. 돈 못 받아 가면 어차피 잘릴 거고, 잘리면 굶어죽는 건 매한가진데.
왜 굶어 죽냐고? 집에 가도 밥 안 주면 굶어야지, 어떡하나! 집에서는 마누라가 ‘갑’이었다.
1 대 3의 싸움이었다. 물론 내 쪽에도 2명이나 있기는 하지만 그 둘은 열외로 치고.
자꾸 뒤에서 힐끔거리며 신경을 쓰이게 하길래 버럭버럭 고함을 질렀다.
“마이어! 저기 가서 쟤들이나 잘 보라고.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한 교수님도요!”
열외 정도가 아니라 없는 게 도와주는 거다. 한 교수도 내가 작업하는 걸 본 적이 없거든.
기숙사 설계 건 이후, 한 교수가 물었었다.
“성훈아! 너, 천재 아니냐?”
그래서 내가 말해줬지. 짬밥이 20년이라고? 설마. 안 그래도 미래에서 왔냐는 터무니없는 멘트를 날리는 인간에게.
“교수님, 하찮은 손기술일 뿐입니다.” 라고.
몇 년만 지나고 3D 프로그램이 정착이 되고, 게임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취업을 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된다. 지금이야 신기해 보이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사람? 그게 손기술이 아니면 뭔가!
그래서 한 교수는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봐서 참고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컴퓨터공학과 교수와 조교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됐는데, 한 교수가 알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없다.
게임하듯이 단축키로 슥슥 몇 번 움직이면 매스가 만들어지는데, 뭐로 만드는지, 무슨 키를 쓰는지 알 수 없다.
이게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이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 눈뜬 봉사가 되는 것은 순간이다. 봐도 모른다.
도움도 안 되고 거치적거리기만 하는 것들은 다 �i아내야 한다.
집중해도 시간이 간당간당한 마당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