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31화
전문가들(1)
마이어에게 물었다.
“이거 언제 시작한 거예요?”
“한 일주일쯤 되었지.”
“이제 사흘 남은 거구요?”
마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면을 보니, 모델링이 반밖에 안 끝나 있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마감에 맞출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내 짐작이 확실할 것이다. 마이어는 소프트이미지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모른다.
그저 전문가이니 전문가의 말을 따르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물어보지 않았다. 괜히 분란만 일으킬 게 뻔했고 마음의 상처만 줄 것 같았다.
한 교수가 부연 설명을 했다.
“실은 이것 때문에 먼저 온 거야. 저번에 통화를 하다가 네가 만든 작품을 마이어에게 보여줬거든. 메일로.”
그것은 한 교수의 작품이기도 하니 그럴 자격이 있다. 그리고 한 교수는 자랑하는 것 참 좋아한다. 그 대상이 마이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랬더니 마이어가 며칠 좀 빨리 와주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
한 교수가 멋쩍은 듯이 눈썹을 으쓱인다. 저 눈빛 속에 담긴 의미는 ‘이제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였다.
가끔 한 교수는 말도 못 하게 미울 때가 있다. 이럴 때 말이다. 미션임파서블을 던져 놓고 ‘해봐’ 할 때!
한 교수의 구상 자체가 임파서블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100% 걸려든다는 거다.
지금 내 뇌리에는 이런 생각이 차오른다. 도전할 거리가 있으면 그냥 못 지나간다.
‘한번 해봐? 재밌겠는데.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나는 개인적으로 저 소탈한 독일인이 참 좋다. 훗날의 유명세를 떠나서라도 마음에 들었다.
“일단 지금 작업하시는 전문가들이 오시면 협의를 해보죠.”
다른 사람의 작품을 허락 없이 건드리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나는 짓이고,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이미 작업을 시작했다.
아까 말한 협의란 것은 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마이어와 협의를 하며 어떤 식으로 카메라 동선을 돌릴 것인지 협의가 나왔을 것이다.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건축물 올리기!
과연 사흘 만에 끝낼 수 있을 것인가? 전문가들도 일주일 동안 했는데도 반밖에 못 한 것을?
‘할 수 있으니까 시작했지. 그리고 시작하면 끝을 본다고. 나 김성훈이야!’
나는 나름 자신했다. 왜냐고? 잠 좀 줄이면 된다. 그럼 빠듯하게 시간 맞출 수 있다고 확신했다.
물론 확신의 근거는 경험이다. 20년의 내공으로 도면 보면 견적 나오고, 마감 시간까지 나온다.
때려죽여도 못 하는데 젊은 패기로 덤볐다가 욕이란 욕은 다 먹은 뒤로는 철저하게 시간 계산부터 하는 버릇이 생겼다.
난 마이어가 잘되기를 바랐다. 사돈이 땅 사면 배 아프지 않느냐고? 무슨 그런 웃긴 소리를!
그 사돈이 나하고 친하면 그 땅에 농사라도 짓게 해준다. 그리고 땅 사는 데 도움이라도 되었다고 해봐라. 입 싹 안 닦는다.
고로 사돈이 땅을 산다고 하면 가서 축하해 주고 도와줘야 한다. 그게 사람 사는 거다.
나도 솔직히 나중에 마이어 덕 좀 보고 싶었다. 유럽 건축계는 전통이 길다. 그리고 자부심이 강하다. 유색인종이 끼어드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 마이어를 앞세우고 입장하면 된다. 마이어는 열쇠다!
그 열쇠가 만능이라면 더더욱 편하다. 그러므로 나는 마이어의 일을 도와줄 충분한 명분이 있고, 무엇보다 내가 즐거웠다.
‘이건 돈 주고라도 해야 되는 일이야. 돈 주고도 못 배우는 거라고. 크흐흐.’
전생에서 이런 유능한 건축가와 일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을까?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앞에 있다.
‘노하우는 배우는 게 아냐. 훔치는 거지. 왜냐고? 진정한 노하우는 가르쳐 주지 않는 법이거든.’
제 밥그릇을 남에게 넘기는 사람은 없다. 비장의 한 수는 숨겨두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훔칠 수 있는 이유는 그게 자연스럽게 배어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옆에 있지 않으면 절대로 훔칠 수 없다는 거지. 잘난 스승 밑에서 잘난 제자가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유럽의 거장이 될 마이어의 노하우는 어떤 것일까. 벌써부터 군침이 질질 흐른다.
다음 날 아침.
의외의 전개였다.
마이어가 불러왔다는 전문가들은 일본인들이었다.
어제 마이어가 ‘쥬라기 공원’의 제작에도 참여한 실력자들이라고 해서 미국인일 거라 생각했었다. 지레짐작이었다.
실력이 있는 자들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일본인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었다.
“지금 우릴 무시하는 거요? 마이어 교수!”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인가?
내가 나타나자 화를 내던 일본인도 흠칫 놀란 것 같았다. 같은 생각이겠지. 동양인일 거라고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대뜸 내게 물었다.
“중국인이오?”
“아니, 한국인이오!”
그의 인상이 찌그러졌다. 어이없다는 듯 뒤를 보며 일본어로 말했다.
아마도 이 남자는 영어에 능하고 다른 두 명은 아직 어눌한 것처럼 보였다. 그가 대화하고 뒤의 두 사람에게 통역을 해주는 느낌이랄까? 그 내용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야! 참. 한국이란다. 진짜 어이가 없구만.”
조센징이라고 안 하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가 돌아서서 말했다.
“3D를 다룬다고 들었소. 뭐로 다루시오?”
“맥스를 씁니다.”
“맥스!”
또 돌아서서 일본어로 말한다.
“야, 맥스 따위를 쓰는 이런 애들이랑 일을 해야 하냐?”
건방지고 교만하다. 상대방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격을 높이는 것. 최하급이다.
그리고 외국 사람과 말하면서 자기네 나라말을 쓴다는 것.
눈앞에서 뒷담화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아니다. 상대가 그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전제가 있으면.
안타깝게도 나는 다 알아들었다. 한국인이 가장 쉽게 배우는 말이 일본어일 것이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일본인이 가장 배우기 쉬운 것도 한국어가 아닐까? 어순이 똑같거든. 단어만 외우면 끝.
중국어보다 영어보다 더 배우기 쉬운 일본어를 왜 한국인이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느낀 바로는 같은 한자 문화권이지만, 중국어는 완전 외국 말의 느낌이다. 성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반면, 일본어는 상당히 익숙한 발음들이 많았다. ‘신속 정확(迅速 正確)’을 일본어로 하면 ‘じんそく せいかく’ 한국 발음으로 ‘진소쿠 세이카쿠’ 정도로 읽을 수 있겠다. 유사한 부분이 많지 않나?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히라가나로만 된 단어라면 외우면 되고, 익숙한 한자들은 듣다 보면 상당 부분 우리발음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었다.
여기서 욱하면 나도 저 우스운 촌극에 동참하는 꼴이 된다.
저쪽에서도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해서 맘대로 지껄였는데, 알아들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스스로 부끄러워질 것이고, 이후의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당황해서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세우다가 결국 최악의 결과로 끝이 나게 된다.
민족 감정? 그것을 앞세우기에는 내가 너무 이성적이고 나이가 많다.
똑같은 놈이 되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상한다.
순수한 25살 젊은이였다면 나도 아마 저 일본 놈들 죽이겠다고 팔뚝을 걷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 비웃어라. 그 시간도 길지 않을 테니까.’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상대해 줄 가치가 없는 인간이다.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감히 내 앞에서는 얼굴도 들지 못하게 될 테니.
한 교수는 일본어를 모르니 궁금한 모양이다.
“성훈아, 쟤네들 뭐라는 거냐?”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아 좋은 말이 아닌 것은 눈치를 챈 것이다.
비웃는 말은 어느 나라 말로 해도 안다. 그건 단어가 아니라 억양과 뉘앙스에서 나오는 거니까.
“별말 아니에요. 자기들끼리 일 이야기 하는 거예요.”
눈치 빠른 한 교수! 한마디로 정리했다.
“밟아버려!”
“옛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