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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30화 (30/427)

건축의 신 30화

마이어의 고민

당연히 다음 날 하루의 휴식은 잠으로 채워졌다. 구경?

‘염병! 시차에 숙취에 죽는 줄 알았구만. 윽. 아직도 어지럽다.’

아까운 인생의 한 페이지가 잠과 술로 인해 날아가 버렸다.

한 교수가 그렇게 술꾼일 줄이야. 소주는 젬병이더니, 맥주는 아주 들이 붓는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우리끼리 10리터짜리 오크통을 비웠다. 안주는 소시지 하나로.

이제 술 이야기는 그만!

골이 웅웅 울린다. 오늘은 박람회 사흘 전이다.

왜 이렇게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느냐? 내가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교수를 너무 신뢰했다.

어제 차 안에서 한 이야기를 분석해 보면 처음의 티켓은 박람회 기간이 맞았다. 그건 확인했었다.

그리고 이후에 티켓의 날짜가 바뀐 것으로 보아, 중간고사 이후에 한 교수가 뭔가 장난을 친 것이다.

그러고도 뻔뻔스럽게 그 기간 동안 독일 구경을 시켜준다고 했었다. 뭐. 그것도 물 건너가 버렸지만.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화를 낼 옹졸한 인간이 아니다.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그 정도로 일희일비해서야! 정해진 수명 못 다하고 화병으로 죽는다고. 릴렉스. 릴렉스.’

이번 생은 제 명대로. 나름의 소망이다.

참, 지금 시간은 밤 10시!

두 천재가 한 시간 전에 일어났다. 이제 시차 따위는 상관없다.

그리고 이 시간에 뭐 하냐고? 베를린 대학으로 가는 중이다.

“보여줄게 있어.”

다짜고짜 따라오라며 차에 태운 마이어의 말이다.

마이어의 사무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마이어도 박람회에 뭐 제출한다더니, 이렇게 농땡이 피워도 돼?’

이런 내 맘을 알기라도 하는지 마이어가 말했다.

“우리 기술자들은 시간관념이 확실하거든!”

안 물어 봤거든. 이 초뺑이야!

“일단 이것부터 봐줘.”

마이어가 화면에 띄운 것은 내가 익숙하게 아는 투시도였다.

건물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마이어가 설계한 건물인 것 같다.

건물이라기보다는 계획 단지였다. 마이어가 생각하는 개념을 집어넣어 구체화시킨 작은 도시였다. 도면과 비교하니 아직 50%정도나 완성이 되었을까? 아직 빈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엇!

“이건 뭐죠, 마이어?”

‘소프트이미지’라는 3D 프로그램이었다. 실행창 상단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 알아보는 것은 쉬웠다.

나중에 3D 분야를 주름잡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3D 맥스, 소프트이미지, 마야, 이렇게 3개 정도가 주류를 형성한다.

초반에는 소프트 이미지가 초강세를 띤다. 어쩌면 가장 선발주자이니 당연한 노릇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맥스와 마야가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나는 소프트이미지를 잘 알지 못한다. 영화 쪽에서 많이 쓰인다는 것 정도? 그리고… 가격대도 2,000만 원대다. 300만 원인 맥스에 비하면 아주 고가의 제품이었다.

세 프로그램 간의 각각의 장단점은 확실하다. 어느 것이 가장 좋다라고 하는 것은 사용자의 취향일 뿐, 나도 맥스가 편해서 주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건축 쪽에 가장 특화되어 있다. 만약 영화 쪽으로 종사를 했었다면 마야나 스프트이미지를 주력으로 삼았을 것이다.

‘마이어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건물이다. 그런데 왜 소프트이미지를 사용했을까? 강점은 애니메이션과 렌더링 정도일 텐데.’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어떤 프로그램이기에 2,000만 원씩이나 하는 것일까?

“마이어. 내가 만져 봐도 돼요?”

마이어가 반색했다.

“그럴 수 있겠어?”

오히려 반기는 느낌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를 내밀었다. 하는 모양이 수상쩍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의문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그리고 못 하면 못 한다고 하면 그만이다.

툴의 사용은 거기서 거기다. 사용상의 차이점과 표기된 단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달리기할 때, ‘뛰어!’, ‘달려!’ 뭐 이 정도의 차이가 되는 것이니.

그마저도 경쟁 프로그램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낱말이니 큰 의미를 둘 이유는 없었다.

물론 매우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전문가의 솜씨가 맞네. 다만 영화계 쪽에서 많이 일한 느낌이네.’

왜 나는 이런 확신을 가졌을까?

건축은…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노출 콘크리트의 디테일을 볼 필요가 없다. 어떤 건축주도 콘크리트의 밀도가 제대로 나왔는지 확인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모공을 표현하는 것은 영화에서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디테일이 많이 살아 있었다. 영화 쪽에서는 각광받을 실력임이 분명하나 건축에서는 뻘짓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작품을 만들어 놓으면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용량은 많이 먹고 렌더링은 느리고 가격만 비싸다. 결국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디테일이 강한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각광받겠네. 대단한 실력이라고!’

나도 실력만 보고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물론 나도 만들 줄은 안다!

“잘 만들었네요.”

“그렇지. 당연히 세계 최고의 기술자들을 불렀는데…….”

하지만 칭찬을 해주면서도 짜증이 났다. 솔직히 이 작품은 마이어의 작품이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마이어가 이런 질감의 디테일을 원했을 리가 없다. 절대로. 왜 이렇게 확신하냐고?

건축가들은 이런 디테일 원하지 않는다.

가우디의 ‘파밀리에 성당’ 정도 되는 건물이라면 목숨 걸고 디테일을 원하겠지만 마이어의 작품은 다른 스타일이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실력자지만 마이어의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지극히 자기중심의. 이런 사람은 남의 돈을 받으며 일할 자격이 없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했으니 말이다.

마이어가 이것을 영화제에 출품하려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실력만큼은 인정한다.

“그런데 마이어, 뭔가 맘에 안 드는 게 있는 거죠?”

“그게 말이야.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더라고. 렌더링인지 뭔지를 하는데 말이지.”

당연하지! 이 양반아.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저렇게 디테일하게 만들었는데. 장인의 기운이 느껴질 정도거든!

마이어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모른다는 것.

하긴 거의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아직 3D라는 분야는 지극히 전문가의 영역이다.

그 전문가의 벽은 두꺼워서 20년 후에도 존재한다.

뭐 일부러 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실력 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프로와 아마 사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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