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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6화 (26/427)

건축의 신 26화

나에게 돈이란…

1998년. 지금도 투시도 업체는 꽤 존재한다.

수작업 투시도!

그림 좀 그릴 줄 알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이 세계에도 고수는 존재했지만, 돈이 아깝지 않은 A급 업체가 적었고, 그나마 B급도 가격은 무시무시했다.

지금의 투시도 그리는 일은 꿀 빠는 일이었다.

업체는 적은데 일은 많다. 즉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생긴다면 당연히 단가는 올라간다.

단가가 맘에 안 들면 퇴짜 놓으면 된다. 그래도 갈 곳이 없으니, 다음 날 고개 숙이고 돈 들고 찾아왔다. 일 좀 해주세요! 하고.

진정한 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울산처럼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에는 투시도 업체가 없었다. 울산에 지점이 없어도 일 맡기러 오는데 굳이 울산까지 분점을 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을 위해 한 건당 몇백만 원씩 하는 투시도를 맡길 건축사무소는 없었다. 지금은 IMF 직후였다.

나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승부를 걸었다.

그림이 아니라 그림자가 살아 있는 사진으로 출력된다. 지어질 건물을 미리 볼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거기서 나는 어중이떠중이의 의견이 끼어드는 것을 100% 막았다. 외국인들이 바보라도 알 수 있게. 거기에다가 포토샵으로 아주 약간의 보정을 가했다. 트윙클하게!

‘어느 건물이 더 맘에 드냐?’

나는 정면승부를 걸었다. 아마 울산에서는 처음이 아닐까!

서울에서도 막 그래픽 업체가 생겨나고 있을 즈음이었다. 현재 정도의 대기업은 접해 보기는 했을 거다.

현재 건설이라면! 해외의 건설기업들과 상대를 해야 하므로 그 수준 또한 높을 수밖에. 하지만 중공업이라면. 과연?

“성훈아, 이거 다 보냈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하나만요. 전측면 투시도요.”

한 교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술을 장난스럽게 비틀었다. ‘그랬단 말이지’ 하는 눈빛으로. 무슨 짓을 하려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한 교수가 통화 중이었다. 아주 편안한 자세였다.

“그러니까 기획실장님! 그건 서비스라니까요. 서비스 몰라요? 서비스! 이후로 나오는 건 당연히 비용 처리 해주셔야죠. 초면에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교수가 손으로 전화를 받으라고 표시했다. 같은 전화를 훔쳐 들으라는 말이다.

얼굴에는 장난기가 다분한데 목소리는 더없이 근엄했다. 조용히 수화기를 들었다.

-교수님, 사정 좀 봐주시죠!

누군가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획실장이다. ‘누군 어리바리 주임 붙이고, 누군 직접 전화하냐!’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죠! 누구는 땅 파먹고 삽니까! 그것도 내가 부탁해서 겨우 한 건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부탁이라니. 저 꼬장꼬장한 인간이 누구한테 부탁을 해! 가당찮은 소리를.

사람들이 오해를 할 수 있다. 한 교수의 온화한 겉모습을 보고 부드러운 사람일 거라고.

나에게 부드러운 것은 이유가 있다. 알다시피 전통 건축! 한 교수는 양동마을에 다녀온 뒤, 완전히 내 팬이 되었다.

오해할까 봐서 하는 말인데. 한 교수 저 인간! 생긴 건 얌전해도 성질 드럽다. 지금도 현재중공업의 기획실장이나 되는 사람을 상대로 갑질 하고 있잖은가!

날 보고 웃으며 입에 침을 슥 돌려 바른 교수가 시동을 걸었다.

“다른 뷰에서 보는 투시도 장당 100만 원, 부분 투시도 장당 50만 원. 조감도는 거기서 쩜오 플러스! 그 정도는 받아줘야 나도 면이 서지 않겠어요. 내 얼굴보고 도와 준건데.”

우물은 목마른 자가 파는 거다. 한 교수는 오아시스에 앉아서 딜을 하고 있다.

‘조건을 말해봐. 맘에 들면 받아줄게.’

딱 그 마인드다. 직접 봤다면 열불이 쳐 올랐을 텐데… 혼자 보기 아깝다.

의자에 등을 기대앉아서 두 다리를 책상에 턱 올려서 꼬고는 코를 후비고 있다. 한 손은 수화기를 잡은 채.

“아 참! 실장님도. 많이 깎아준 거예요. 정 미심쩍으면 서울 업체에 전화해 보세요.”

‘오호! 한 교수. 장사 많이 해본 솜씨인데.’

정말이지, 이 사람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사람을 놀래킨다.

한 교수가 나를 보며 손가락을 말았다. ‘OK?’ 사인이다.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수화기를 막고 ‘풋!’ 하고 웃어버렸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지? 완전 체질인데!

그냥 정방형의 건물이면 전면과 좌면, 후면과 우면, 그렇게 두 장만 있으면 전체적인 모습을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ㄷ’자형의 건물은 그렇게 봐서 모든 부분을 볼 수 없다. 몇 개의 뷰를 더 찍어야 알 수 있다.

결국 기획실장은 승복했다. 결재를 받아서 다시 전화하겠는 말을 남기고 끊었다.

“단가는 어떻게 아신 거예요?”

“뭘 어떻게 알긴. 전화해 봤지. 서울에.”

“투시도 업체요?”

교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홈페이지 봤거든. 허접하더라. 네가 한 게 훨씬 낫더라. 그런데도 투시도 한 장에 150 달라던데? 그래서 난 좀 깎아 불렀지. 이번만 하고 말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생각해 줘야지. 안 그러냐?”

난 말없이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투시도 한 장만 물었으니까 그렇지! 한 건물로 몇 컷 찍는다고 하면 컷당 100이면 떡을 치거든. 지금은 IMF라서 더 쌀 수도 있고.’

교수가 말했다.

“나오면 용돈에 보태 써라.”

몇 장이나 나올 줄 알고 저렇게 호탕하게 나오는가! 배포도 크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그 돈 다 받았다.

조감도 150, 투시도 추가로 3장 300, 부분 투시도와 내부 투시도까지 원해서 450. 현관 복도 내실 등등 찍을 곳은 많았다. ‘ㄷ’자 건물이니 꺾이는 곳이 좀 많아야지. 도합 900만 원을 받았다.

어지간히 서울 투시도 업체 실력이 허접했었나 보다. 그게 아니면 가격을 세게 불렀든지.

우리 설계비로 책정된 금액이 2,500이었다.

중완 선배가 대박이라고 할 만했다. 이런 결과를 예측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한 교수가 말했다.

“술 사라!”

난 정중하게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가시죠, 보스!”

이번 수입의 공신은 누가 뭐래도 한 교수였다. 그는 이런 대접을 받을 만했다.

‘솔직히 내가 말했으면 씨알도 안 먹히거나, 단가를 후려 쳤겠지.’

그런 귀찮은 과정 없이 그 단가 그대로 다 받았으니, 진정한 대박이었다.

‘이렇게 기특한 짓을 하는데, 조만간 시간 내서 부석사 구경이나 시켜줘야겠어!’

중완 선배와 장 주임, 한 교수, 선영이까지 불러서 크게 한턱을 쐈다. 언양 불고기집에서 말이다.

남은 돈? 몽땅 주식에 넣었다.

난 내 스스로에게 물어봤었다.

“야! 김성훈이. 넌 왜 그렇게 주식에 목을 매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새로운 인생과도 직결되는 문제였으니.

남들이 내 행동을 본다면 미래를 안다는 알량한, 어떻게 보면 사기적인 지식으로 돈을 번다고, 어린놈이 돈독이 올랐다고 욕할 것이다. 욕심에 취했다고 하겠지. 알고 있다.

나의 그런 질문에 내 안의 김성훈은 이렇게 말했다.

“너. 돈 없이 꼴 보기 싫은 거 안 하면서 살 수 있어?”

나는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나를 속일 수 없었다.

단지 숫자에 불과한 그 돈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너무나 처절하게 겪은 나다. 그래!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몸이 망가지는 줄 모르고 야근을 했고, 술에 찌들어 살다가 차에 치어 죽었다. 그깟 돈 때문에.

나에게 돈이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도구가 아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안 해도 되게 만드는 배경이다.

흔한 졸부들의 갑질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졸부들의 갑질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튕겨 보낼 실드가 될 것이고, 나를 온전하게 나다운 모습으로 자존하게 만드는 발판이 될 것이다.

있는 자에게 돈은 도구에 불과했지만, 없는 자에게 그것은 자존심보다, 아니, 목숨보다도 귀중한 것이었다.

없어서 구걸하듯 살았던 나는 그 과거를, 아니, 지금 이후에 다가올 미래를 너무 잘 안다.

휴대폰 사업으로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고, 천정부지로 오를 땅을 미리 선점함으로써 부동산 부자가 될 수도 있으며, 누군가가 대박을 칠 아이템을 가로챔으로써 저작권을 훔칠 수도 있었다. 그들의 알량한 실력과 운 따위는 모두 내 것으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 인간이기에 졸부 갑질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깟 돈 좀 있다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수 없다. 겨우 그깟 돈 때문에.

쥐꼬리만 한 권력으로 사람을 깔보는 놈은 권력으로 뭉갤 것이고, 일 가지고 갑질 하는 놈은 일로 역관광을 시킬 것이며, 돈으로 갑질 하는 놈은 돈으로 밟아주겠다.

적어도 갑질을 하려면, 당하는 사람이 승복하도록 제대로 갑질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전의 나는 갑이었던 적이 거의 없다. 항상 당하는 자의 입장이었다. 없기 때문에 당했다.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돈 많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엘리트교육을 받지 못했다.

물론 게으른 내 본성이 어디 가는 거 아니니까, 여전히 찌질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겠지. 단지 억울한 것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 내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공평함, 실수를 만회할 수 없는, 아니, 만회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갑들의 잔혹함이었다. 저들은 처음부터 잘났었나?

적어도 그 사람에게 다시 생각할 기회를 만드는 갑질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반성의 계기가 되는 갑질!

그것을 내 새로운 인생의 원칙으로 삼았다. 진짜 인생을, 김성훈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누군가에 억눌려서 살고 싶지 않고, 돈에 구애받으면서 살기 싫다. 보기 싫은 꼴은 안 보면서 살고 싶다.

주식은 그 삶을 받치는 기초석이 될 것이다. 내 계산으로 내가 죽었던 그 시점에, 마흔두 살이 될 때의 내 주식의 값어치는 5,000억이 넘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내 노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미래에 태어날 내 아이에게 자랑할 수 없을 것 같다.

당연히 물려줄 생각도 없고, 물려줘서도 안 된다. 있다는 티도 내지 않을 것이다.

내 안의 김성훈에게 물었다.

“그럼 쓰지도 않을 돈을 뭐 하러 모으냐?”

“그거라도 없다면 어려움이 닥쳐올 때, 지금처럼 당당할 수 있겠어?”

그 말에 나는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그 배경 없이도 당당해 져야겠지만 아직은 두렵다. 그것이 내가 주식에 목을 매는 이유다.

김성훈이 말했다.

“욕해! 욕하라고! 비겁하다고 하든 치사하다고 하든, 난 두 번째 인생도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지 않으니까!”

과연 나는 김성훈을 비겁한 놈이라고 욕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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