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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5화 (25/427)

건축의 신 25화

컴공과를 찾아가다(3)

렌더링을 돌리는 데만 장장 세 시간이 걸렸다.

그 세 시간 동안 내 뒤의 두 사람은 숨도 쉬지 않은 것 같다. 대단한 집중력을 보이며 나를 지켜봤다.

‘집중력만큼의 결과를 얻었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줄게.’

포토샵은 히스토리가 남는다. 그래서 어떤 명령어로 어떤 작업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그것도 머지(Merge)를 해버리면 알 수 없지만… 맥스에서도 그 기능이 있다.

하지만 이 버전에서는 사용하면 좌표값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좌표가 엉망이 되는 것이다.

‘쯧. 그래도 사용한 양심이 있어서, 그건 남겨둔다. 연구해 보세요.’

말 몇 마디 없이 작업이 끝났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교수에게 사용하는 법을 보여줬다.

보고도 배우지 못한 것은 자기네 사정이지, 내 사정이 아니다. 파일을 저장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고개가 날 따라 움직였다. ‘자네, 뭐 하나!’ 하는 표정이다.

“감사합니다, 잘 썼습니다.”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내 볼일은 끝났거든! 집에 가야지. 밤도 늦었는데.

교수가 말했다.

“가려구?”

잘 가라는 인사의 뉘앙스가 아니었다.

‘이렇게 사람을 멘붕으로 만들어놓고 편하게 가기를 바란다는 말이더냐!’ 딱 이 뉘앙스!

나도 안타까웠다.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컴퓨터가 좋아서 렉이 안 걸리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그럼요! 못 하면 작살을 내신다고 엄포 놓으신 분은 교수님이시고, 저는 했잖습니까?”

건축과 학생이 건축물 투시도를 뽑았다. 아마 꼭 필요하니까 뽑았을 것이고, 그걸 뽑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컴퓨터 공학과에만 있었다. 교수가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내가 교수였다면 결과가 완전히 나오기 전에 딜을 걸었을 것이다. 절대로.

왜냐고? 이미 오줌 싸고 털털 털고 나왔는데, 화장실 사용료 내놓으라고 하면 낼 놈이 어디 있나? 적어도 오줌 줄기가 끊어지기 전에는 사용료를 받아야지. 그게 장사고, 그게 거래다.

엘리트들은 돌발 상황에 상당히 약하다. 더러운 꼴을 겪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나 같은 놈은 만나본 적이 없다는 말이지.

난 이미 먹을 거 다 먹었고 입까지 싹 닦았다.

교수가 얼굴이 벌게졌다. 수줍음을 많이 타시나?

내가 틀린 말을 한 건 없는데, 그… 감정적 손해라는 것이 있지 않나. 딱 그 상황이었다.

‘교수님아! 뭔가 딜을 걸어봐! 맘에 들면 받아주지. 아까의 괘씸죄야.“

“아까는 테스터를 할 거라면서.”

‘겨우 꺼내는 게 그건가? 버스 지나간 지가 언젠데.’

내가 영업용 미소를 띠우며 웃었다.

“네, 그랬죠. 아까는.”

“…….”

“그런데 저 친구 말을 들어보니, 건축과 학생은 별로 맘에 안 드시는 것 같아서요.”

“내가 대신 사과하지. 그건 우리 조교가 경솔했네.”

교수의 사과에 조교는 얼굴이 벌게졌다. 다행히 더 떠들지는 않았다.

‘오오, 의외로 솔직담백하네. 젊은 친구가.’

감탄했다. 젊은 사람의 오기로는 저렇게 곧바로 시인하기 쉽지 않은데, 거기다 직함도 교수이지 않나!

그냥 가려다가 걸음을 멈췄다.

“뭐, 어린 친구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고맙네. 그리고 테스터를 꼭 해줬으면 하네. 솔직히…….”

말을 했으면 끝을 맺으십시오. 교수님!

“나는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하네.”

“…….”

조건은 필요한 자가 내놓는 것이다. 나는 들어보고 선택하면 된다.

처음의 나는 건방진 건축과 학생이었고,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는 도전자였으며, 지금의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내 눈빛은 냉랭했다. 작업을 하는 세 시간 동안 한 말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건드리지 말라고.

세 시간이나 공간을 공유했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

“나는 자네를 공으로 부릴 생각은 없네. 근로장학생으로 채용하고 싶네. 한 달에 50만 원!”

호오, 꽤 세게 부르시는데. 보통 근로장학생이 30을 받는다. 물론 시간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일반 학생의 입장에서 50만 원은 작은 돈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일반 학생 기준에서.

“쩝.”

‘50만 원 주고 학생 구해서 쓰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당장 급하지 않다.

컴퓨터 공학과와의 관계를 만들고 싶지만, 그것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 그런데 교수는 마음에 들었다. 다소 경솔하기는 했지만 솔직담백하고 진지한 사람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프로그램이다. 물론 사서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버전 업이 될 때마다 사서 쓸 수는 없다. 지속적인 사용만 할 수 있으면 된다. 왜 그는 그것을 모를까?

교수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하면 저놈을 잡을 수 있을까!’

꼭 말로 해야 아는 것이 아니다. 세월의 연륜이 쌓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 교수는 고민 중이었다.

‘괜찮은 사람 같은데, 힌트나 좀 주자. 안 되면 사서 쓰지 뭐.’

맥스 8.0 버전이나 9.0 버전 나올 때까지는 2.5으로 버티지 뭐. 계산은 이미 끝났다. 급한 불은 껐으니 말이다.

“교수님! 전 알바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교수도 깨닫고 있었다. 애초에 이놈은 프로그램을 쓰려고 온 놈이라고. 자신이 격장지계에 당한 거라고.

“그건 나도 알아. 투시도를 뽑으러 왔겠지. 알았다면 먼저 조건을 걸었을 거야.”

약 오른 교수에게 이죽거렸다.

“못 거셨죠!”

“크흑!”

교수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원하는 걸 말해. 들어주지.”

“교수님!”

옆에 있던 조교가 교수를 말렸다.

“됐어! 어차피 저놈 말대로 쓰지도 못 하고 버벅거리는 거. 가지고 있어봐야 쓸모도 없어. 뭐야, 말해!”

백기 들고 나오는데, 더 약 올리면 반감만 사게 된다.

“프로그램을 계속 쓰고 싶습니다. 그것뿐입니다.”

“계속 쓰고 싶다고? 그 말은 이후에 나오는 버전도 포함된 말이겠지?”

좋아. 알아들으면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대신 이 친구한테 가르쳐 줘!”

이걸로 돈을 벌 생각인데, 어느 천 년에 하나씩 가르치고 있나! 그건 안 되지.

“교수님, 그건 말이 안 되죠. 꼴랑 50만 원 받고 과외하게 생겼어요? 옆에서 보고 능력껏 배우라고 하세요!”

50만 원은 끼워 넣었다. 그것도 돈인데 무료 봉사하고픈 마음은 쥐꼬리만큼도 없었으니까.

“대신 유출하는 건 안 돼. 그러니까 쓸 때는 여기 와서 써!”

무슨! 지금 불사조 모가지 비트는 소리를.

“그건 안 되죠. 그럴 거면 뭐하러 저 친구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요?”

“저 대학원생이거든요!”

자꾸 친구라고 하자,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조교가 소리를 빽 질렀다.

“내가 오빠거든! 그리고 니 선생이거든! 싫으면 말고!”

어디서 어린 것이! 내가 먹은 밥에 몇 그릇인데.

저 기집애는 데리고 다니면서 시다바리로 써먹어야 되겠다. 짐꾼으로. 작업보조로.

“그리고 너! 맥스 책이란 책은 다 사서 읽어. 실력 안 되면 잘라 버린다.”

내가 아쉬울 거? 없었다. 그리고 교수에게 말했다.

“유출되면 안 되니까, 이 컴퓨터로 쓸게요. 그리고 가지고 나갈 때는 저 친구를 통해서 할게요.”

당연한 말이지만, 컴퓨터 사양은 여기 있는 게 최고다. 맥스 같은 프로그램은 내 걸로 돌리지도 못 한다.

‘이참에 그래픽 카드도 최고로 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이 기집애야. 넌 짐꾼 당첨이다. 고생 좀 해 봐라.’

이게 내가 컴퓨터공학과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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