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4화
컴공과를 찾아가다(2)
교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교수님, 한번 해보면 될 것 아닙니까? 손해 보는 거 있습니까?”
“…….”
‘닳는 거 아니거든, 이 양반아!’
“해봐야 돌멩인지 보석인지 분간도 될 거고.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알아야 만들 시도라도 할 거 아닙니다. 맨날 C 언어만 붙들고 있다고, 답이 나옵니까?”
“…….”
“보나 안 보나 뻔한데.”
또다시 눈치 없는 조교가 끼어들었다. 자기 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가 본데.
“뭐가 뻔하다는 말이에요!”
나도 말이 과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급했다. 예의 따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게 생겼다. 차라리 도발이 낫다.
난 그녀를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협상의 당사자인 교수는 가만히 있는데, 나대면 밉보인다. 이미 찍혔지만.
“교수님, 제가 말이 지나쳤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거 2.0 버전하고 많이 다릅니다. 택스쳐 넣은 것도 많이 다르구요. 조명은 아예 생각도 못 하셨겠네요. 지금 모델링이나 제대로 하면 다행일 겁니다. 2.0 버전이랑 인터페이스 차이도 많이 나서 사용하기 힘드시죠?”
‘다 알고 왔으니까. 얼른 내놔라. 시간 없다. 내가 그걸로 먹고살았다.’
맥스는 비싸다. 그 뒤로도 버전이 몇 번이나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제작사도 많이 바뀐 걸로 알고 있다.
매해마다 새로운 버전이 나오는데 그걸 매번 사재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탕 가격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 덕분에 그나마 가장 안정적이고 쓸 만했던 2.5 버전을 사람들이 많이 썼다. 부끄럽지만 나는 불법 다운로드로 사용했었다. 나는 가난했다.
그러던 맥스는 어느샌가 맥스 9버전이 나왔고, 그때부터는 품질 차이가 확연하게 나서 사용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생계가 달렸는데,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그 기능 하나보다 못하다면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2.5 버전을 3년 이상 사용했던 것 같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 읊는다. 나는 어땠을까?
‘캐드야 R14 버전 많이 안 써봐서 버벅거렸지만, 맥스는 다르거든.’
내가 했던 말 중에 틀린 곳을 찾을 수 없었던지 붉으락푸르락하다가, ‘힘드시죠?’라는 말에는 위로가 되었는지 약이 올랐는지는 몰라도 허락을 했다.
진중한 어투로 ‘장난치는 거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어쩔 건데! 나한테 고맙다고 절이나 하지 마라!
컴퓨터공학과의 교수가 건축과 학생을 징계할 요소는 많지 않다. 애초에 남인데…….
뭐 어쩌겠는가? 그런 식으로 엄포라도 놔야 어린 학생이 겁이라도 먹지 않겠는가! 내가 어리지 않아서 안 먹혔던 거지.
‘아! 감회가 새롭구나. 이 촌스러운 인터페이스여!’
이제 더 이상 만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맥스 2.5! 이놈은 이때도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았구나.
‘뭘 보여줄까요?’라고 묻지도 않았다. 애초에 나는 건물 투시도를 만들기 위해서 왔으니 말이다.
교수와 조교를 등 뒤에 앉혀놓고 슥슥 건물을 만들어 올렸다. 도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이미 머릿속에 다 있는데, 굳이 본다는 것도 귀찮았다.
명령어 버튼을 마우스로 일일이 클릭한다? 그런 초보 같은 짓을 하면서 쪽을 팔 김성훈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진정한 실력자는 버튼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단축키를 사용할 뿐이다. 약간 귀찮은 설정 과정을 거치기만 하면 된다.
왜? 습관이기도 하지만 폼 나거든! 프로페셔널한 삘이 팍팍 나지 않는가! 황제 임요완이 SCV 생산 버튼 눌러가며 버벅거리면서 게임하는 거 봤나? 그런 건 초보 때나 하는 짓이다.
오른손은 마우스, 왼손은 자판에 올리고 스타크래프트를 하듯이 모델링을 했다. 전체 화면과 분할 화면을 오가면서.
역시 컴퓨터과라 그런지, 사양이 우리 사무실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좋다. 손가락이 자판 위를 날아다닌다.
교수나 조교가 나의 노하우를 훔쳐 가거나 뭘 하는지 알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화면이 훅훅 바뀌고, 무슨 명령어를 치는지도 모르지만 이미 건물이 쭉쭉 올라가고 있으면 그때부터는 ‘연구’가 아니라, 그냥 ‘구경’이다.
묘기를 본다고 하지 않는가?
묘기는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는 것이고, 구경하는 순간 관찰자가 아니라 구경꾼이 된다.
교수와 조교는 구경꾼이었다. 단언컨대! 이런 광경은 한 번도 못 봤으리라. 이 사람들은 기계언어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복잡한 명령어와 부호가 아무리 많아도 척 보면 아는 사람들. 진짜 전문가였다.
다만 프로그램을 짜고 만드는 데는 전문가지만 사용하는 것은 초보일 뿐이다. 나는 그 반대 입장이고.
모델링을 하고 택스쳐를 입히고 조명을 넣어서 그림자를 만들었다. 어렵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생각을 손으로 전달하기 전에 이미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최고 사양의 컴퓨터를 쓰고 있는데 버벅거릴 일이 없었다.
우리 사무실이었다면 두 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 전에 내가 열 받아서 부숴 버렸을지도 모르고.
원하는 뷰를 잡고 그림자를 빼고 렌더링을 돌렸다. 실제 렌더링에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그림자의 위치값을 연산하는데 CPU와 그래픽카드 메모리의 대부분이 이용되기 때문이다.
이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시간이 부족할 때는 포토샵으로 그림자를 그려 넣기도 하는데, 아주 복잡한 건물이 아니라면 그렇게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복잡한 건물이면 그림자가 아주 어색해지고, 건물과 그림자가 따로 놀게 된다. 그렇게 망작이 탄생한다.
“흠, 좋아!”
오랜만에 사용한 것치고는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실력 어디 안 가는군!
뷰를 지정하고 그림자 렌더링을 돌렸다. 이건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다. 장당 30분 정도!
“절대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세요. 알았죠!”
등 뒤의 둘에게 엄포를 놓았다. 모니터에서는 선이 1㎜씩 내려가며, 사진 파일을 만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동안 옆의 컴퓨터에 가서 미리 구해놓은 사진 파일을 넣고 배경을 만들었다. 건물이 놓일 위치를 생각하면서.
조감도였다면 주변 상황을 실제적으로 꾸며야 하기에 조금 더 까다로웠겠지만, 투시도는 다르다. 거기가 거기 같고, 여기가 거기 같다. 나무 몇 개 조경으로 늘어놓으면 구분하기 어렵다.
투시도와 조감도의 가격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훨씬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3D 그래픽. 척 보기엔 굉장히 고급스러운 일 같지만, 알고 보면 순수 노가다다. 손가락 노가다!
둘의 관심사는 포토샵이 아니었지만, 내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컴이 멈춘 사이 슬쩍슬쩍 내가 하는 작업을 훔쳐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이 사람들아. 모니터에 다 비친다.’
포토샵을 그 자리에서 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단지 컴퓨터가 고사양이라 작업하기 편하다는 이유.
둘째, 내가 멍하니 있으면 뭔가 질문을 던질 것 같아서였다.
‘어떻게 배웠나?’, ‘어디서 배웠나?’ 한 교수처럼 ‘혹시 미래에서 왔나?’ 하는 소리를 들으면 곤란하고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그러니 뭔가를 하고 있으면 최소한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게 이유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궁금한 건 그 사람들이고 나는 해당사항 없다. 전혀 안 궁금하다.
‘뭐가 어쩌고 저째! 니네 과가 못하는데 건축과가 어떻게 하냐고!’
하나가 완성되고, 네트워크로 파일을 옮기면서 다시 렌더링을 돌렸다. 그다음은 반복 작업이다.
옮겨온 건물의 사진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뜯어내고 미리 만들어둔 배경에다가 올려서 뷰를 자연스럽게 맞춘다. 그리고 레이어들을 정리하여 전후좌우가 적절하도록 배치하는 작업을 했다.
조감도 작업은 렌더링만 해놓고 다음에 하기로 했다. 이것만큼은 건물이 없으면 작업을 미리 해놔도 소용없다.
뷰가 약간이라도 안 맞으면 전체 구도가 어색해져서 다시 해야 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