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3화
컴공과를 찾아가다(1)
“야, 김성훈이. 무슨 짓을 한 거야!”
교수실로 들어서는 나에게 교수가 한 말이다. 선영이는 아직이다.
“네?”
“도면에다가 무슨 장난을 쳤길래, 이런 대박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거야. 엉!”
교수의 목소리는 흥분되어 있었다.
아직 설계 결과가 나오려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결과 발표가 난 건가? 물론 결과는 기대한 대로겠지만.
“벌써 결과 나왔대요?”
한 교수가 체통도 없이, 내게 헤드락을 걸었다. 순간 나는 습관적으로 교수를 번쩍 들어 똥꼬 찍기를 할 뻔했다. 그랬다가는 아무리 친한 교수라고 해도, 얄짤 없겠지!
‘이봐요, 교수님아. 지금 나는 살인병기라고! 알아!’
유럽 여행을 대비해서 체육관에서 관장의 조카 녀석과 실전을 하고 있다. 매트에서만 연습하다가 드디어 링에 올라간 것이다.
실전과 연습은 다르다나 뭐라나 하면서. 나도 알거든! 그리고 녀석은 타격의 달인이었다. 전직 권투선수!
물론 죽 싸게 얻어터졌다. 솔직히 킥은 해놓은 보람이 있어서 크게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로우킥은 더 강했다. 녀석의 입에서 윽 하는 신음이 나오게 했으니.
하지만 짬밥이 어디 가는가? 길다란 리치로 툭툭 거리를 잰 다음부터는 샌드백 취급을 당했지만. 아! 자존심 상해. 이 이야기는 이따가 하기로 하고.
교수가 말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안 났지. 박중완이한테서 연락 왔더라. 더 볼 것도 없다고. 얼른 말해봐! 무슨 짓을 했는지.”
“잠깐만요, 교수님. 이거 놓고…….”
“야, 임마. 그렇게 재밌는 게 있으면 먼저 털어놔야지. 내가 늦게 알아서야 되겠어?”
“그럼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뭐라고 하셨는데요.”
“뭐라고 하긴. 알고 있는 척했지. 한국에서는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해야 된다면서.”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몰라도, 햐! 한 교수 한국 사람 다 됐네.
“누가 그래요?”
투덜대면서 컴퓨터를 켰다. 일단 보여줘야 진정이 될 것이다.
“지가 그래 놓고는 무슨!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였냐?”
“아뇨, 잘하셨어요. 교수님 짱!”
컴퓨터 화면에 사진이 떴다. 우리가 설계한 건물 투시도사진이었다.
“헉! 이거 우리가 설계한 건물이잖아!”
한 교수가 투시도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벙찐 얼굴로 나를 이상한 놈 보듯이 바라본다.
“너 혹시 타임머신 타고 미래에서 온 거냐?”
뜨끔! 알고 있는 건가? 그럴 리가?
하지만 내 얼굴에는 관심이 없는지, 사진에 눈동자를 박아 넣고 있었다. 휴! 십년감수했네.
“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냐? 뭐로 만들었냐?”
“맥스요. 2.5”
“이런 거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온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진짜로 되네!”
어디서 정보를 듣기는 했나 보다. 넋을 놓고 보던 한 교수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다른 쪽에서 본 투시도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나를 재촉했다.
대여섯 컷을 확대 축소해서 보더니 미소를 한껏 머금고 엄지를 들었다.
“굉장한 실력이야. 솔직히 한국에서 이런 걸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아직 미국에서도 상용화되지 못했거든. 기껏 해야 영화 쪽하고 방송사에서나 쓸까.”
전혀 모를 것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영 맹탕은 아닌가 보네.
“며칠 전에 친구랑 통화하면서 우연히 컴퓨터 투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거든! 그래서 아는 거야.”
그럼 그렇지!
“아직 미국도 걸음마 단계인데, 한국 학생인 자네가 쓴다니, 안 신기하겠어? 이건 토픽감이야.”
이때는 즉각적으로 해명을 해줘야지.
“컴퓨터공학과 쪽에 친구가 많아서요. 저도 이런 쪽 정보가 빠르죠.”
고개를 갸우뚱하고 미소를 날려주며,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 말에 납득을 했다.
사실이었다. 컴퓨터 공학과 쪽에 친구가 많았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되니까. 비록 사귄 지 며칠 안 되긴 하지만.
사실, 도면이 완성되기 전에 ‘3D MAX 2.5’를 구하려고 억수로 노력을 했다. 하지만 도저히 시간 내로 구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뭔가 정보를 찾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이기도 하고, 가격이 무려… 300이 넘었다. 정품 말고는 구할 곳도 없었다. 구한다고 해도 오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에라, 모르겠다. 컴퓨터 과니까 있겠지!’
정말 있더라. 빌려달라고 했다. 조교는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하긴 나 같아도 그러겠다. 내 뭘 믿고!
‘일단 있기는 있다는 말이지. 그럼 방법이 있지!’
학과장을 찾아갔다. 나이 마흔 정도 되는 담당 교수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역정을 냈다.
“얼마짜린 줄은 알고 하는 소리야?”
당시 한 학기 등록금이 200 정도 했었다. 일 년 치 등록금이 있어야 사는 물건이다. 물론 구하기는 그보다도 더 어렵고. 당시 컴퓨터과와 자동차과는 지원이 빵빵했기에 그런 비품의 구입이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말만 안 했지, 속으로는 미친놈이라고 했을 것이다.
돌직구를 날렸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 패도 보여줘야 하는 법 아닌가?
“교수님, 어떻게 쓰는지는 알고 구입하신 겁니까?”
“대충은 알고 있지. 험!”
알면 아는 거고, 모르면 모르는 거지. 대충이 어디 있나!
‘아주 대놓고 모른다고 하는구만. 저 표정 봐라.’
당황하는 표정을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내겐 훤히 보였다. 어린놈이 어디서 통하지도 않을 구라를. 데끼!
“그 프로그램 테스터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훗날이야 3D 프로그램이 애들 장난감이 되지만, 이때는 전문가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훗날에도 비전문가는 모델링이나 하는 정도였지, 실제로 조명과 텍스쳐는 고급 기술이었다.
V-ray가 발전하면서 쓰기 쉽게 바뀌기는 했지만, 전문가의 영역은 아직도 건드리기 어려웠다.
용량도 무시할 수 없고, 빵빵한 CPU와 메모리가 있어야 가능했다. 일반인들이 그걸 살 돈이 어디 있나!
그런 물건을! 출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겨우 컴퓨터 언어나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이 사용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드는 것과 사용하는 것은 그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칼 만드는 대장장이가 반드시 일류 검객일 수는 없지 않는가? 난 그 부분을 찍은 것이다. 난 할 수 있다고.
교수 옆에 있던 조교가 끼어들었다.
“믿을 수 없어요, 교수님! 우리 과 학생들도 아직 잘 못하는데. 저 사람은 건축과잖아요!”
그래서 뭐. 니들이 입시 성적이 높아서 뭐. 건축과 돌대가리라고? 속으로 울컥했다.
자격지심 아니냐고? 아니다. 이놈의 기집애가 말하는 톤이 꼭 그랬다. 말로 해야만 의미 전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 것이 아주 싸가지가 없다. 쥐뿔도 모르는 게 어른이 말하는 데 끼어들어서는…….
내가 필요한 것만 아니었으면 대번 책상 뒤집어엎고 나왔을 것이다. 참았다. 참을 인(忍)자 네 번 쓰면 인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