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1화
도면을 그리다(2)
“입면도부터 시작하고 있어. 회의 끝나고 바로 올게!”
한 교수는 교수 회의가 있어서 자리를 비웠다.
나는 제도판이 아니라 컴퓨터 앞에 앉았다.
“뭐 해요, 선배?”
선영이가 물었다.
“도면 뽑아야지. 캐드 깔려 있지? 14버전?”
“깔려 있기는 한데. 캐드 할 줄 알아요?”
‘이 사람아, 내가 이걸로 먹고살았다.’
가구 디자인하는데 손으로 했다가는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바로 공장으로 파일 넣고, 기계로 문양을 파내야 하는데 손으로 그려서 뭘 할 거란 말인가?
컴퓨터는 뭐든지 수치화되지 않으면 입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컴퓨터는 예술을 이해할 줄 모른다. 공장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술자지, 예술가가 아니다.
“뭐 대충.”
“정말? 군대 제대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공부 열심히 했나 보네요. 대다네요!”
오크가 귀여움을 떨면서 나를 칭찬했다.
조카 같은 녀석에게 칭찬을 받는 기분이란 참! 하지만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한 10분 정도 지났다. 무지하게 헤맸다. 이렇게 구닥다리를 쓰기는 했었던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일 년 후에는 캐드 2000이 등장한다. 제도 문화의 혁명이 일어난다. 하지만 지금의 최신판 CAD R14.
극악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비롯하여 아직도 DOS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명령 체계는 순간적으로 사람을 멍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DDos 아니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팍팍 들었다. 그나마 메모리와 CPU는 나름 빵빵해서 돌리는 데 무리가 없었다.
펜티엄 II, 128 램. 하드 300메가. 그리고 윈도우 95. 마이크로 소프트를 성장하게 한 일등 공신!
몇 년 만 지나도 갖다버리는 데도 돈을 내야 할 구닥다리가 되지만, 지금으로서는 준수하다 못해 뛰어났다. 젠장!
숙달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명령어를 기억하고 있었으니.
단지 매번 수치를 넣을 때도 명령어를 일일이 넣어야 한다는 것이 귀찮았을 뿐이다.
‘에잇, 귀찮아! 짜증 나!’
정말 귀찮아서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빈자리는 안다고. 정말 옛날이 그리웠다.
‘얼른 1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주식도 올라 있을 테니. 그때도 세상이 이따위라면 그 돈 가지고 돈질이나 하면서 살 테다.’
입을 댓 발이나 내민 채 작업에 몰두했다.
“휴, 무슨 회의를 세 시간이나 하는 건지.”
교수가 돌아왔다. 정신력 소모가 어마어마했던지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의자에 털썩 앉으면서 말했다.
“도면 얼마나 그렸냐? 나도 같이하자.”
선영이가 웃으면서 도면을 내밀었다. 아까 두고 간 도면들이 이미 결과물로 나와 있었다.
“헉, 이거 뭐냐? 캐드로 다 그린 거야? 그새?”
도면을 훑어보던 교수는 또 한 번 놀랐다.
“내장, 외장 자재까지 다 되어 있네. 대단한데. 바로 취직해도 되겠어, 선영!”
교수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성훈 선배가 다 했어요.”
“그래? 그런데 성훈이는? 어디 갔어?”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도면을 향하고 있었다.
“야! 이거 대학교 2학년짜리 솜씨가 아닌데. 야! 그놈 물건이네. 손댈 게 없어.”
“대단해. 한 십 년은 도면만 친 것 같잖아. 관록이 보여. 야! 구름 표시로 주의사항까지 세심하게 적었네.”
“어! 내장 도면까지 다 뽑았네? 이걸 언제 다 생각했대? 대체 그놈은 못하는 게 뭐야?”
중얼거리면서 도면을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선배는 뭐 좀 구할게 있다고 나갔어요.”
이미 선영이의 말은 교수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도면을 넘기며 자기만의 철학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수정과 보완을 거쳤다.
한 교수의 철학이 담긴 설계도는 세련미가 돋보였다. 물론 내 철학도 충분히 반영되었다. 선영이 것도 손톱만큼.
똑같은 선으로 된 설계도였지만,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고 할까.
아마도 선과 선이 만드는 공간,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지극히 미국적인 실용성에 동양적 여유가 담겨 있었다.
한 교수는 설계자란에 나와 선영의 이름을 집어넣었다.
‘같이 고생했으니까, 되면 같이 나눠 먹자’라는 말과 함께.
‘한 교수 전성기에 비하면 살짝 모자라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첫 작품치고는 근사하잖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한 교수의 호의를 입었다. 그는 됨됨이가 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내 이름이 새겨진 처녀작이었다.
‘초라하게 데뷔하느니, 아예 하지 않는 게 낫지.’
한 교수에게 신세를 지우려면 더 확실한 임팩트가 필요했다. 그리고 현재건설에 한 교수의 이름을 박으려면 더더욱.
그날, 나는 밤을 새웠다.
“포장을 할 거면 완벽하게 해야지!”
남들이 충분히 예상하는 것으로는 의외성을 줄 수 없었다. 그저 ‘좀 하네!’ 하고 끝날 뿐이다.
컴퓨터로 도면을 뽑는다고는 하지만 그건 기능적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 교수의 실력을 알아볼 것이다.
다만 말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갖다 댈 말은 많다.
“아주 좋은 작품이기는 하나,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시기상조다.”
“아주 좋은 시도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정서와 맞지 않다.”
나보고 대라고 해도 수십 개는 댈 수 있다.
결국은 ‘아주 좋은 제품인 건 맞는데, 네가 했기 때문에 맘에 안 든다.’ 그 말이다.
왜 이런 말이 통용될 수 있느냐?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법조인은 법률용어로 말하고, 미국인은 영어로 말하고, 수학자들은 숫자로 말하지만, 건축하는 사람들을 선으로 말한다.
도면만 보고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일반인들이 알 수 있을까?
하얀 종이 위에 ‘Green’이라고 쓰여져 있으면 ‘녹색’으로 인지하는가?
그 느낌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까? 전문가들도 쉽지 않다.
나름 이름 있다는 전문가들의 몇 마디로 천재들이 묻히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다.
좁은 나라에 수많은 천재가 태어났지만, 꽃피우지 못한 것은 단지 나라가 좁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기득권자들의 대가리도 좁아터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