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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0화 (20/427)

건축의 신 20화

도면을 그리다(1)

한 교수는 루이스 칸의 추종자였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건물에 인간에 대한 배려를 담으려 했다.

그 배려란 기능성과 효율성, 그리고 인간의 감성을 모두 포함한 의미였다.

겨우 30명이 거주할 좁은 땅에서 그는 모든 시설을 만들어 냈다. 100평 정도의 대지에 3층짜리 건물을 설계했다.

비대칭의 ‘ㄷ’자 형태로 구성되어 맞은편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으며, 그림자가 지는 곳이 최소화되게 만들었다.

안에 내부로 파여진 곳은 산 쪽으로 향하게 하여 도시의 소음에서 가급적 멀어지도록 했다.

채광에 유리하면서도 자신들만의 프라이버시를 만들 수 있는 구조였다.

무려 한 달 동안 고심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주도는 한 교수가 했지만, 내부의 실용성과 보이지 않는 곳의 배관이나 설비는 내가 주로 조언을 했다.

직접 집을 지어보고, 현장을 뛰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설계의 초기 단계부터 그런 것들이 고려되지 않으면, 시공 단계에서는 그것들을 풀기 위해서 애를 먹고, 공사는 난항을 겪게 된다.

시공은 시공사가 알아서 하는 것 아니냐고? 어허, 현장 가서 인부들한테 싸다구 맞을 소리를…….

현장에서 해머로 콘크리트 안 까봤으면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배려 없는 설계는 여러 사람 곡소리 나게 만든다.

전생에 알바를 할 때, 난 직접 콘크리트를 까봤다.

점심식사가 끝난 후, 현장 기사가 말했다.

“이거 다 까면 야리끼리(할당량 채우면 바로 퇴근)다. 할래?”

건축과 학생임에도 콘크리트의 견고함을 체감하지 못했던 나와 친구들은 수락했다.

30㎝ 보에 직경 15㎝ 정도의 구멍을 내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기사는 친절하게 파쇄기도 제공했다.

결과는?

해머와 파쇄기를 모두 동원하고 쉬는 시간 없이 작업하고도 우리는 5㎝밖에 뚫지 못했다.

‘해머로 때리면 부서진다’라는 진리는 개똥만큼도 안 통했다. 뉴턴의 3법칙. 작용반작용은 통하지 않았다.

간악한 현장 기사의 간계였지만, 우리는 우리가 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줄 알았다.

다음 날 우리는 노가다 알바를 나가지 못했다. 온몸의 격통으로 인해 꼼짝도 못 했다. 조금만 경험이 있었더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아파서 울었다. 곡소리까지는 오버지만.

시공은 시공사가 한다는 말은 맞다. 시공사만 믿고 있다가는 최종 결과물이 나온 뒤에 후회하게 된다.

왜냐고?

분명히 내가 설계한 건물은 맞는데, 다른 건물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초기 단계에 고려되지 않은 배관을 만들기 위해서 시공 단계에서 소소한 설계 변경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일일이 설계자와 상의하다가는 만 년이 가도 골조 안 올라간다. 현장에서는 현장만의 원칙과 노하우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공사만 탓할 수 없다. 전기 없이 살 수 있는가? 똥 안 싸고 살 수 있는가?

전기와 배관은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생각 없는 건축가들이 설계한 것을 도면 그대로 지으면 아무도 살 수 없는 집이 된다.

에어컨? 생각도 하지 말아야 된다. 단열, 보온? 장난치나!

기본 설계를 할 때는 후에 이루어질 실제 공정들이 움직일 여백을 만들어 둬야 공사에 차질이 없다.

예일대 출신 한 교수를 납득시키기 위해 애를 먹었다. 그는 여기가 미국인 줄 알고 있었다.

‘결국 공사하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라고. 이 양반아!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속으로 화를 삭일 뿐이다. 역시 엘리트는 엘리트였다.

‘현장을 개뿔도 몰라! 크앙.’

한 교수가 물었다.

“성훈이 너, 현장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저 노가다 열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전문가예요.”

맞다. 나는 전문가였다. 이전 삶에서 땜빵 처리 전문가였다.

어떤 놈이 설계를 했는지 현장을 갈 때마다 매번 같은 요구를 해야 했다. 한국의 대학에서는 그런 걸 가르쳐야 한다. 마감 공정 생각하면서 설계하라고.

“이거 배선이 왜 안 보여요? 배수구는요? 환풍구는요?”

보통 집을 구입하는 고객들도 가구는 턱턱 놓으면 되는 줄 안다. 가구가 장난감이냐. 턱턱 놓게?

추가 공정 없이 정해진 일만 하고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장 기사들이 후속 공정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구 공사는 건축의 가장 마지막 공정이다. 가구가 들어가야 건축 공사가 끝난다는 말이다. 가구가 없으면, 멋진 드레스를 입어놓고 마지막에 지퍼를 잠그지 않은 거나 같다. 속살이 다 보이기 때문이다.

일을 그따위로 해놓고도,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체되냐고 닦달하는 것이 그런 놈들이다.

‘어쩌랴, 고객인데 참아야지.’

지금 생각해도 울화가 치미는 것은 하도 당한 게 많아서 그럴 것이다.

‘능력은 쥐뿔도 없는 것들이 갑이라고 나대기는. 확!’

그렇게 수정을 거치고 나온 것은 기능성을 강조하면서도 하나의 마을 같은 느낌을 주는 건축물이었다.

건물 바로 앞에는 화단으로, 건물의 비어 있는 부분에는 테니스 겸 족구장을 2개 만들었다.

공 두개만 있으면 언제든지 대항전을 벌이고, 맥주 한잔 기울일 수 있는 배치였다.

일과 피로에 찌든 이방인들이 하루 피로를 풀고, 고향의 향수를 그나마 적게 느낄 수 있고, 동료들과 축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튀어나온 양 날개는 계단식으로 배치하여 비어 있는 옥상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고급진 테라스의 느낌이랄까. 빨래를 말리기도 하고 소그룹으로 맥주도 한잔씩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외부에서 볼 때는 직선의 교차로 인해 세련됨을 강조했고, 내부에서 볼 때는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유려한 곡선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엄마의 품처럼 아늑한 느낌을 준다.

내부의 인테리어는 널찍한 욕조를 가진 샤워실과 세탁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한 교수와 나, 선영이의 머리를 맞댄 설계였다.

큰 틀을 한 교수가 잡고, 대지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고안했고, 나와 선영이가 내부 실의 배치와 인테리어를 고민했다.

방 내부의 인테리어야야 크게 돈을 들이지 않겠지만, 복도의 인테리어는 의미가 달랐다. 이곳은 독일인들의 현관이기도 했지만, 현재의 자부심이다.

지금의 독일인 이후에 다른 기술자가 오더라도 현재의 수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건설 후에 중공업 사장이 보러 왔을 때도 후질구레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적은 돈으로 최대한 돈을 썼구나 하는 마음이 들도록 인테리어를 꾸몄다.

여러 장의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었다.

손으로 슥슥 그려진 개념도, 입면도 여러 장, 평면 및 배치도.

이제 손이 바빠질 것이다. 청사진을 뽑으려면 말이다.

‘뭐든지 같은 값이라면 포장이 좋아야죠. 한 교수님!’

나는 맛있는 음식을 포장까지 제대로 해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 것이다. 내 것에 손이 안 갈 수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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