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9화
입주자 조사(2)
세 명 정도가 모여서 뭔가 토론을 하고 있었다.
“구텐 탁!”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다. 완전히 독일인처럼 행동하지는 못 하지만,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서 독일로 건너갔을 때, 그들의 예절에 대해서 공부를 했었다.
글로 배운 예절이라 맞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리 무례하지 않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상대방을 존중하며, 약속만 잘 지켜도 웬만한 경우는 외국인임을 감안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일하고 있던 독일인들의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에 이채가 어렸다. 통역사가 아닌 한국인이 독일어를 하는 것은 처음 봤기 때문이리라.
그들도 마주하며 ‘구텐 탁’으로 인사했다. 독일 사람들을 만나면 무엇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역시 독일은 역시 호프브로이 맥주…….”
‘아차, 실수다!’
독일 뮌헨의 호프브로이 맥주가 진짜로 맛있더라는 말을 하려고 했었다.
기술자들의 출신지가 뮌헨이라고 쓰여 있었기에 들었던 생각이다. 바이어를 따라가서 먹었던 그 맥주 맛을 지금도 잊지 못했다. 그런 탓에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독일에 갔다 왔다는 얘기는 죽었다 깨나도 못 한다.
생각을 못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독일을 조금 알기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다. 헛다리 짚었지만!
말을 끄는 내가 이상해 보였던 것 같다. 인사하고 다른 말들은 잘만 하더니 왜 벙어리처럼 ‘어어’ 하고 있냐 말이다.
나는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전생에 격투기를 보는 것은 좋아했었다. 특히 UFC를. 그 단체가 생기기나 했을까? 아무 도움 안 되는 취미였다. 젠장, 축구나 즐길걸.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바이에른 뮌헨…….”
찰나의 순간,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아니면 바로 말을 바꾸어야 했다.
독일 사람은 축구 매니아다. 십중팔구는 그렇게 보면 된다. 그리고 연고지에 대한 사랑이 깊다.
그리고 내 앞의 이들은 그중 팔구에 속했다. 진지하게 말을 나누던 그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눈에 생기가 돌았다.
‘가까스로 성공! 휴.’
“…이죠!”
환하게 웃으며 엄지를 들었다. 독일에서 아는 구단은 세 개밖에 없다.
차범근 선생님의 레버쿠젠,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
소 뒷걸음질에 쥐가 밟혔다. 크흑. 이렇게 기쁠 수가!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자기들끼리 축구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이따금씩 나를 대화에 끼워주었다.
그럼 나는 말이 어눌한 척하며 ‘야!(ja!)’, ‘야!’(영어의 ‘yes’와 같은 의미)만 반복했다. 축구 몰라도 된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
그것으로 나는 한국의 이방인들, 바이에른 뮌헨의 광팬들과 절친이 되었다.
물론 통역사가 왔지만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통역사와 장 주임, 두 한국인만 빼고 우리는 잘 어울렸다.
축구 이야기를 하는 독일어 소리가 공장 전체로 퍼졌는지, 어느새 독일인들이 슬금슬금 몰려들었다.
두 명의 한국인만 꿔다놓은 보리자루마냥 멍하니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1998년 월드컵을 독일이 우승할 거라는 예측까지 나왔으니까.
‘아쉽다. 친구들아. 프랑스 월드컵은 프랑스가 우승한다네. 머리까진 지단이 헤딩골까지 넣으면서.’
하지만 나는 그들의 친구였다. 독일인들은 친구를 배신하지 않는다. 적어도 친구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기로 했다.
그들은 직선적이다. 말을 비비 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딱 내 스타일이었다.
“내가 오늘 찾아온 것은 당신들이 살 집을 설계하기 위해서 찾아온 거요. 반드시 필요하다거나 혹은 피해줘야 할 것들이 있으면 의논하여 말해주시오.”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내장자재로는 무슨 나무를 쓰지 말아 달라.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알레르기가 있다. 창을 통창으로 하지 말아 달라. 통창 공포증이 있다.
이유는 가지가지다. 30명이나 있는데, 의견이 통일될 수는 없다.
나는 그 의견 통일을 그들에게 맡겼다. 자기들이 살 집이니, 싸우더라도 자신들이 싸우고 결론을 내면 된다.
예상한 대로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다.
“내일까지 결론을 내서 전화를 주거나 팩스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당케 쉔!”
인사를 하고 빠져나왔다.
40대 중반의 통역사가 물었다.
“학생인 거 같은데, 어떻게 그리 독일어를 잘하시오?”
“제2외국어로 배웠습니다. 고등학교에서요.”
그는 납득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걸로 다 써먹을 수 있으면 어떤 미친놈이 자식을 독일, 영국, 미국 같은 만리타향으로 연수를 보내겠는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뭐, 천재라고 생각하겠지. 중요한 거 아니니까. 넘어가자. 쩝!’
우리와 함께 의뢰를 받은 설계사무실에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장 주임에게 확인했다.
물론 전화로 문의를 한 것은 장 주임이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무사안일. 책임회피. 딱 돈 주는 만큼만 일한다.
물론 그렇게만 해도 잘하는 축에 속하지만. 내 경험상 돈 주는 게 아까운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특징은 자기 제품의 최종 소비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에게 돈을 주는 사람에게만 신경을 집중시킨다. 그들도 누군가에게 물건을 팔거나 혹은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 말은 곧. 누가 진정한 갑인 줄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돈을 준다고 갑인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돈이 누구를 위해서 쓰이느냐에 따라서 갑이 정해진다.
기숙사가 독일인들의 요청에 의해서 지어지는 것인지, 혹은 회사 측에서 지어주는 것인지 아직은 모른다.
그럼에도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이 독일인들을 위해서 지어진다는 것이고, 그 결정의 마지막 열쇠는 이 사람들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생색내며 지어줘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못 살겠다고 하면 헛돈을 버리는 것이다.
재벌들은 바보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돈을 적재적소에 잘 사용했기 때문에 재벌이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에는 맨땅에서 굴지의 사업을 일으킨 대한민국 경제의 거인이 있다.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다.
“아! 깜박했다.”
전화를 한다는 것을 잊었다. 교수실에 들어오는데 생각이 났다.
나도 나름대로 그들과 대화하며 얻은 소스로 머리를 굴리느라 바빴다.
손은 운전하랴. 발은 클러치 밟으랴. 당연히 내 차는 수동이다. 남자라면 스틱이지!
순간적으로 기어를 탁탁 넣을 때, 여자들이 뿅 가는 건 해본 사람만 아는 스킬이다.
내가 본 사람들 중에 스틱 차를 모는 여자는 없다. 인생 사십 년을 살면서 나는 한 번도 못 봤다.
교수는 여전히 상상 속에 있었다.
교수들 비품 중에 가장 많은 교체되는 것이 의자라는 사실! 한 교수가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한 교수도 교수였다.
띨릴릴리!
독일어로 된 문서가 드르륵거리며 출력되고 있었다.
“역쉬, 아우토반!”
한 교수가 잠이 깼는지 침을 닦으며 물었다.
“무슨 아우토반? 벌써 독일 갈 준비하는 거야?”
‘자! 이제 your turn이라고. 이 양반아!’
이제 상상이 아니라 실제가 시작된다. 한 교수님, 실력 좀 발휘해 주시죠.
실력?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잘하는 사람 옆에만 있어도 레벨이 올라간다.
보는 것이 고수의 실력이고, 듣는 것이 고수의 말인데, 어찌 생각하는 것이 하수일 수 있겠는가?
이제!
한 교수의 실전 강의가 시작된다.
나는 그 한 교수가 한국에서 하는 첫 프로젝트에 내 이름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