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6화
설계 의뢰(1)
뻑! 뻑! 뻑! 뻑! 뻑!
“성훈아, 좀 살살 차라고. 그래서 샌드백 터져?”
지금 다니고 있는 킥복싱 체육관의 관장의 고함 소리였다.
모든 것은 기본이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내 지론이다. 그래서 지금 모든 킥의 기본이 되는 로우킥을 연습 중이다.
“언젠가는 터지지 않겠어요?”
관장의 고함을 씹으며 샌드백을 찼다. 터질 리도 없지만, 터지면 제품 불량이지 내 잘못은 아니다.
내가 슈퍼맨이냐?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른다. 벌써 중간고사가 끝났다.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뭐 하는 거냐고?
‘올 ‘A+’! 그렇게 공부했는데 그 정도도 안 나오면 나는 죽어야지.’
그렇게 자신 있냐고? 그럼! 다 맞췄는데 어쩌라고.
선영이 기집애가 진짜로 시험지 어디다가 안 흘리면 모조리 ‘A+’다.
공부에 재능은 필요 없다. 노력이 있을 뿐이다.
교수들은 학생들과 경쟁 관계가 아니다. 절대로 맞힐 수 없는 문제는 내지 않는다. 모두 시험 범위에서 나온다.
그걸 달달 외우느냐 외우지 못하느냐의 문제고, 공학은 공식을 달달 외우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다.
뭐 약간의 응용은 있겠지만, 모두 상식의 범위 안에 있다. 그러니 공부하면 된다.
모자라는 머리를 보충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복잡한 머리를 비우기 위해, 하루에 두 시간씩 샌드백을 차고 있다. 배관 수련의 연장이다.
“왜 그렇게 열심이야? 시합 나갈 것도 아닌데, 쉬엄쉬엄 하라고.”
뚱땡이 관장은 내가 하는 것을 보더니, 자기도 살을 빼겠다고 줄넘기를 집어 들었다. 초심으로 돌아왔다나 뭐라나.
왕년에 챔피언으로 이름 좀 날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여염집 아저씨보다 더 배불뚝이다.
“너 땜에 내가 이 무슨 고생이냐?”
“제가 하라고 했어요? 관장님이 먼저 시작해 놓고는?”
한마디 날려주고는 로우킥을 날렸다.
뻑. 뻑. 뻑. 뻑. 뻑.
경쾌한 파열음이 체육관에 울려 퍼진다. 이렇게 땀을 한번 빼고 나면 속이 다 시원하다.
체육관을 다닌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이제 로우킥은 신물 나게 했으니, 미들킥을 차야겠다.
혹자는 ‘일만 시간의 법칙’을 말하지만, 나는 ‘10만 번의 법칙’을 쓴다.
단순하다. 로우킥을 올바른 자세로 10만 번을 차고 나면 미들킥으로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산수하면 다 한다. 십 초에 5회, 일 분에 30회, 한 시간에 1,800회, 두 시간에 3,600회, 한 달 108,000회, 계산 끝!
필요한 것은 오로지 인내 하나.
속성으로 로우킥 익히는 법이 난무하고, 샌드백 덜 때리고 고수되는 방법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기본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방법도 아니다. 다만 힘들 뿐.
로우킥을 차고 나면 허벅지가 가장 아플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더 아픈 것은 복근이다. 해보면 안다. 찢어진 것처럼 아프다.
허리 회전에서 나오는 회전력이 다리로 가면서 증폭되고, 이 힘을 채찍처럼 후리는 것이 로우킥이다.
제대로 맞으면 뼈에 금이 가거나 혹은 부러진다.
상체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복싱 자세로 방어를 하고 로우킥을 찬다.
뻑.
차는 것이 반이다. 다시 시작 자세로 돌아와야 그것이 한 번이다. 전반적인 하체 운동이다.
찰 때는 복근이, 돌아올 때는 척추기립근, 둔근을 비롯한 하체후면 근육이 모두 사용된다.
‘다리 힘으로 킥을 찬다, 허벅지 키우는 데는 로우킥이 최고다’라는 것은 운동 껍데기를 핥아본 초짜들의 말이다.
들어줄 가치도 없다. 허벅지를 키우려면 의자에 앉아서 레그 익스텐션을 하거나, 레그 프레스를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첫날하고 나면 상쾌하지 않다. 햄머에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고통스럽다.
‘아, 씨발’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 말이 나오지 않으면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고통은 인간을 철들게도 하지만, 보통은 여기서 포기한다. 스트레칭을 해도 첫날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관문을 넘으면 신세계가 보이지.’
고통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자세가 잡힌다.
처음에는 기본자세를 중시하지만, 자기 몸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조가 끝나면 자신에게 맞는 자세가 나온다.
그리고 자기 몸에 맞는 근육이 붙는다. 그 기본의 고통스러운 관문을 지나면 기초 과정이 시작된다.
기초 과정은 기본 과정을 좀 더 힘들게 하는 것이다. 레벨만 높일 뿐이다.
결국은 반복의 연속이다. 반복이 주는 성장. 레벨업의 즐거움을 모르는 자들은 운동을 할 수 없다.
절정에 다다른 운동선수들은 전부 변태다. 자신의 몸을 혹사함으로써 그 절정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공부가 쉬웠어요’ 하는 말을 들어봤어도, ‘운동이 쉬웠어요’ 라는 말은 전생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운동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수양이고, 자기 극복이다. 계룡산에 입산했다가 실패한 사람에게는 운동을 추천한다.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한 교수가 제안한 ‘베를린 박람회’였다.
평생을 살면서 못해봐서 후회되었던 것이 ‘혼자서 여행하기’였다.
출장을 많이 다니긴 했지만, 그걸 여행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을까?
정해진 시간에 특정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것은 여행이 아니다.
거기다가 반드시 완수해야할 사명을 가지고 가는 것을 여행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시간이 없을 때는 여행하지 못했고, 시간이 있을 때는 여행할 수 없었다.
부양할 가족이 없는 젊은이들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평생을 후회했었다.
이런 좋은 기회가 왔으니, 그것도 꽁돈으로, 확실히 즐기고 와야 했다.
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설렘, 기대감, 그리고 두려움이었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처럼 속 늙은 사람은 뒤를 보게 된다.
항상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하게 된다. 그건 육체가 젊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실패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은데, 죽거나 병신이 되면 모두 끝! 그보다 허망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함에 있어서도 무대책으로 일관할 수 없었다.
길거리를 가다가 만나는 깡패 2명 정도는 묵사발을 만들 힘을 키우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제 로우킥 10만 번을 채웠다. 이것만으로도 자신감이 붙었다.
‘어떤 놈이든 걸리기만 하라고, 정강이를 수수깡 부수듯 아작 내줄 테니까.’
내 자신감은 연습에서 나왔고, 그 연습은 부단한 반복이었다.
반복의 힘은 인생을 살아본 자만이 아는 비밀무기! 재미가 붙었고, 중독이 되었다. 이거 은근히 짜릿하다.
여행가기 딱 좋은 시점이었다. ‘EU’도 창설이 되었으니, 여행하기에 불편함이 줄었고, 시기도 방학이다.
두 달을 꽉 채울 예정이었다. 그런 만큼 체력 또한 완벽해야 했다.
음식이라도 안 맞으면 설사만 하다가 똥꼬가 헐어서 조기귀환을 해야 할 것이다. 수치스럽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유럽 아가씨들이 얼마나 늘씬하겠어! 엘프지. 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