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5화
교수의 추천(2)
“그럼 올 때도 같이 와야 합니까?”
“뭐, 꼭 그럴 필요는 없어. 다른 볼일이 있나?”
“간 김에 유럽 여행 좀 하고 와도 될까요?”
“굿 아이디어! 유럽 건축은 그 자체로 문화재지. 수백 년이 넘은 것이 수두룩하니까.”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 일정이 있어서 못 가겠다고 아쉬워했다.
‘나도 아쉽습니다. 당신 같은 가이드도 없을 텐데.’
한 교수 없이 혼자서 여행을 할 수밖에. 하지만 그 아쉬움은 금방 지울 수 있었다.
뒤쪽 책장을 뒤적거리더니 오래된 노트 하나를 꺼내 들고 내 앞에 내밀었다.
“내가 예전에 유럽을 여행하고 나서 적은 노트야. 이걸 바탕으로 자네만의 노트를 만들어 보라고.”
한 교수는 정말 같이하고 싶었다면서 아쉬워했다.
대신 유럽에 있는 동안에 그곳에 적힌 곳 중의 몇 군데는 꼭 같이 가보자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의 배려가 고마웠다.
노트에는 어렸을 때의 한 교수가 여행을 다니면서 느꼈던 감상이나, 갈 만한 곳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서 돌려주기로 했다. 그것이 그의 배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한승원 교수는 학생들과 토론하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자신만의 답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한 달 전 즈음인가, 내가 물었다.
“교수님, 건축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까?”
“마음가짐? 그건 스스로가 만드는 거야. 건축에 정답이 있겠어? 기준선만 있을 뿐이야. 건축하는 사람은 말이야. 뭔가 만들고 싶으면 만들면 되는 거라고. 이러쿵저러쿵해도 살기 좋은 집이 최고야.”
“그럼 한 교수님은 어떤 건축을 하고 싶습니까?”
“난 그런 거 없어. 매번 새로운 걸 시도해 보고 싶어 하지.”
너무 광범위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가 어디까지를 마지노선으로 잡는지 알고 싶었다.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스스로 힘들지 않으십니까?”
“성훈아, 오늘 최고의 결과물이 나왔다고 해서 그것이 내일도 최고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모두 상대적인 거야. 실패작은 자신만의 터닝 포인트가 되겠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기념비가 될 거야. 한국에는 반면교사라는 말도 있다면서. 실패 좀 하면 어때. 잘되면 하나 건지는 거지. 나는 아직도 인류에게 최적화된 건축양식은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해. 건축가는 구속되면 안 돼. 자유로워야 해.”
내가 보는 한 교수는 너무 자유로웠다.
그런 것치고 크게 실패작이 나오지 않은 것은 마지막 마무리를 정상적으로 하는 센스가 뛰어났다.
그의 자유로운 구상을 규격화된 박스에 넣을 줄 안다는 것, 그것은 한 교수의 강점이었다.
한 교수의 세미나는 인기가 없었다. 취업에 대한 불안이 학생들로 하여금 모험을 하지 않게 만들었다.
100% 실력만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면 학생들이 왔겠지만, 자격증이 있어도 취업하기 힘든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직장인도 잘려 나오는 판에 새 사람을 들일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와 선영이, 그리고 졸업반 선배 3명이 있었지만, 선배들은 취업을 위해서 뛰어다니느라 거의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했다.
교수도 그것에 대해서 굳이 간섭하지 않았다.
결국은 취업하기 위해서 대학을 온 것인데, 참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점을 낮게 주거나 방해되는 행동을 한다면 고소할지도 모른다. 지금 시절은 그렇게 절박했다.
교수와 학생. 일 대 이 수업이었지만 지겹지 않았다.
끊임없는 질문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집을 지으면 어떤 집을 짓고 싶어. 설계해 볼까?”
“무슨 우주는 우주예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교수에게 핀잔을 주었다. 한 교수는 승복하지 않았다. 이상한 데서 고집을 세우는 인간이다.
“‘2020 원더키디’ 못 봤냐? 30년 내로 우주 개발이 진행된다고, 네가 50일 때, 내가 60일 때 된다고. 준비해야지.”
원더키디가 할매 된 지가 언젠데, 원더키디 할매도 헛소리라고 말할 것이다.
‘이 사람아, 내가 다 보고 왔거든. 적어도 내가 있을 때는 달에 가본 사람도 10명이 안 됐다네, 그게 사는 거냐. 여행이지! 아직 어림없어.’
그 이후의 미래가 어떨지 나는 감히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상식선에서 예측할 때, 2015년 이후 5년 내로는 제대로 된 우주 여행도 불가능했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볼 때!
여행도 안 되는 마당에 사는 것은 어폐가 있지 않을까?
좋게 좋게 설득해서 헛소리 말라고 일축시켰다.
창의성도 좋지만, 그럴 바엔 차라리 드래곤볼에 나오는 우주선을 그대로 보고 베끼는 게 낫다.
건축가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허무맹랑함이 지나치면 정신병자 취급받는다.
내 동료가 될 사람이 미친 사람이라면 내가 하는 짓은 헛짓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주제를 돌렸다. 더 이상 창의적이 되다가는 내가 돌아버릴 것 같았으니.
“예일대에서는 어떤 것을 배우셨어요?”
내가 정작 알고 싶은 것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예일대 건축과에서는 뭘 배우느냐 하는 것이었다.
2015년에도 예일대와 하버드는 건축이라고 하면 손으로 꼽아줬었다. 혹시 아는가? 내가 거기로 유학이라도 가게 될지.
“아까 얘기했던 그런 거 했는데?”
우주 건축? 이런 젠장! 본전도 못 찾았다.
한 교수는 미국 시절에 그의 상상력을 현실감 있게 잘 갈무리하는, 아주 좋은 파트너를 둔 것 같다.
이러고도 졸업을 했으니. 그것도 우수한 성적으로. 나 참!
‘창의성 하나는 인정한다.’
계속 말 안 될 것 같은 소리도 그럴싸하게 말이 되게 만들었으니!
지금의 상황에서는 한국 교육이 문제인지, 미국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 교육은 백년대계. 백 년 후에나 알 수 있다.
얼른 일이 들어와야 저런 헛소리를 안 할 텐데. 일이 없으니 교수의 공상 세계는 무한히 확장되어 가고 나는 괴롭다.
오늘도 한 소리 들었다.
“부석사 언제 가? 심심하다고.”
작다고 무시하지 않을 테니. 들어오기만 해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