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4화
교수의 추천(1)
“성훈 군. 저번에도 그 책 들고 다니더니 관심이 많은가 봐.”
빌 리제베로라는 사람이 쓴 라는 책이었다. 번역하면 ‘서양 건축 이야기’다.
유럽의 건축 양식을 역사, 문화, 사회상과 연관시켜 설명해 놓은 책이다.
필자의 스케치가 들어 있어서 이해하기 편하고,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지루하지 않은 좋은 책이었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건축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할 정도로 인지도도 있었다.
“네, 관심이 있어서요.”
“흠. 하지만 난 원서 들고 다니는 친구는 처음 본 것 같은데.”
“그냥 폼이죠. 보기 좋잖아요.”
“그래? 영어 좀 하나 보지?”
“교수님보다야 못하죠.”
지난주에 교수와 양동마을을 다녀왔다.
한국의 도로 상황을 잘 모르는 교수에게 운전대를 맡기느니,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직접 운전을 했다.
그리고 가이드 노릇을 하며 마을 곳곳을 안내했었다.
어떤 집에서는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고, 일부의 집에서는 예약이 안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보여줄 수 없다고 하였다.
학교 교수와 같이 왔다고 하면서 사정사정을 하여 거의 대부분의 집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집들을 둘러보던 한 교수는 길고 긴 미사여구가 필요 없다는 듯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감동에 겨워 눈물을 찔끔거렸다. 흑백사진을 보며, 상상만 했던 그의 판타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느낌일 것이다.
교수의 감상평은 이랬다.
“판타스틱이야. 정말!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집은 볼 수 없을 거야. 한국에 오길 정말 잘했어!”
그의 감탄은 양동마을을 다 둘러볼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감탄의 연속, 집주인들이 다 뿌듯해할 정도였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아니었다. 작고 아담한, 아니, 아담보다는 소담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기와집이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집들의 내부가 똑같은 구조로 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리고 십 년 후에, 그러니까 내 기준으로 5년 전에 봤을 때보다 상태가 좋았다.
사람들도 순박했고 말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갔었을 때는 걸핏하면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짜증을 냈었다.
TV 다큐에 방영되고 나서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했다.
지금은 훨씬 사정이 좋았다.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고건축에 관련된 사람들만 아는 일종의 보고였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가 있는 거지! 이거 설명 좀 해줘 봐.”
그는 궁금증이 많았고,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아는 것을 약간 포장해서 말하는 것은 나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한 교수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고건축에 대한 경외는 깊어갔다.
그 뒤로 한 교수는 나를 일반 학생 대하듯 하지 않았다. 마치 동년배의 교수를 대하듯 친근하게 굴었다.
‘고건축은 정말 내가 배워야 되겠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그에게는 뜻깊은 답사였다. 한 교수라는 사람이 얼마나 뜨거운 열정의 사람인지 알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경외를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영어를 좀 할 줄 안다면 좋은 기회가 하나 있는데.”
장난스레 웃으며 내게 말했다.
“Sir. No Problem.”
간단한 영어로 장난을 쳤다.
교수도 그런 나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까! 느닷없이 영어로 물었다. 유창한 미국 발음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번 여름에 베를린에서 국제 건축 박람회가 있는데, 그 곳 대학에 있는 친구에게서 초대권이 왔어. 같이 갈 의향이 있나? 물론 비행기값은 그 친구가 대는 거야.”
물론 영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건축은 말이 필요 없는 예술이니까. 그리고 제안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당연히 가야죠. 제게 그런 기회가 또 올까요. 교수님을 만난 건 제 인생의 행운입니다.”
나도 영어로 답했다.
오는 것이 영어라면 가는 것도 영어라야 하지 않겠는가!
오랜 구력이 있어서인지,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전혀 막히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아도 술술술! 물론 나는 살짝 본토 발음이다. 한국 본토.
그럼에도 내가 사용하는 영어나 다른 외국어 발음들이 의사소통에 문제를 일으킨 적은 별로 없었다.
입이 안 떨어져서 문제가 생긴 적은 있어도. 못 알아들으면 한 번 더 말해주면 된다.
천천히. 또박또박! 그리고 약간의 너스레를 섞어주면 노 프라블럼이다.
거의 대부분의 비즈니스 관계의 외국인들은 정통 발음이 아니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자기들도 한국어로 하라면 한마디도 못 할 테니 말이다.
국제적 비즈니스에 편견이 있으면 그건 거래하지 말자는 거나 마찬가지다.
발음 문제로 딴지를 거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 같은 한국 사람뿐이었다.
자기도 본토 발음은 아니면서! 우습지만 그게 현실이다.
말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아름다운 발음을 하고 싶으면 팝송이나 샹송을 부르지. 일을 왜 하나!
적당히 교수를 띄워주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바보가 되는 거다.
한 교수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의 학생들이 영어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나와 같이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간다면 영어를 공부시켜서 가고 싶어 했고.
보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는 것에서 오는 지식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라? 했을 것이다.
“잘하네. 내가 공부하라고 할 필요가 없겠는걸. 괜한 걱정이었어.”
“언제 갑니까?”
“음, 7월 4일부터 시작한다고 했으니까, 비행기 환승하고 하면……. 보자. 아! 7월 2일에 타고 오라고 되어 있네. 이 친구도 꽤나 알아주는 친구야. 알아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야.”
자존심 강한 한 교수는 친구 이름을 팔아 명성을 얻기를 원치 않았었다. 뭐 십 년 뒤에나 밝혀질 일이고.
그의 친구들도 그 시기 즈음에는 거물이 되었다.
그의 인맥들은 나의 비밀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