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7화
공장문을 나서다.(2)
뉴스만 틀면 씹어대던 열대야도 한풀 꺾였다.
“성훈아, 집을 좀 샀으면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집에 대해서 알기는 아는 건가? 것보다 네 집이잖아!
“형님이 집 사는데 그걸 저한테 왜 물어요?”
“야. 너 건축과래매. 그럼 집 좀 알 거 아냐?”
정말 이 인간이!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영문과한테 미국 어디로 이민 가면 좋으냐고 물어보지!
“건축과가 집 짓는 거나 알지. 사고파는 걸 어떻게 알아요?”
“나 공고 나왔잖냐. 그래도 좀 더 배운 네가 낫겠지. 너 때문에 주식으로 500만 원이나 벌었는데.”
하도 ‘돈돈’ 하고 노래를 부르길래 빚 갚는 셈 치고 농심 주식을 넌지시 말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덜컥 2,000만 원이나 때려 박았단다. 순진하고 겁 없는 사람이다.
솔직히 무서웠다. 잘됐으니 망정이지. 손해라도 봤으면 일자리를 잃을 뻔했다.
그 뒤로도 아무리 귀찮게 해도 모른다고 딱 잡아뗐었다.
이미 빚은 갚았다. 귀찮게 하지 마라. 그 돈이면 저번에 얻은 토익 강의 10세트를 산다.
“그때는 아는 형님이 그 주식 사라고 했단 말이에요. ‘생생우동’이 좀 잘 팔렸어요? 이제 진짜 몰라요.”
“그러냐. 아깝네, 쩝!”
그래도 이 말은 하고 넘어가야 했다. 좋은 사람인데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형님, 그래도 지금은 집 사지 마세요.”
구구절절이 IMF 어쩌고 해도 믿지도 않을 거고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올 연말에 대통령 선거 있어요. 알죠?”
“그럼 이제 두 달 남았는데. 넌 누구 찍을 거냐?”
행님아! 누굴 찍으나 마나 이미 정해져 있다네. 김대중 선생님으로.
“전 맘에 드는 사람 없어요. 그때 가서 결정할래요.”
“그런데 대통령은 왜?”
“아시겠지만 대통령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잖아요.”
“그래도 집권 정당이 안 바뀌면 별로 변하는 거 없지 않냐?”
‘그러니까! 지금의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요. 이 단순무식아! 금융 위기로 작살나고 경제 대통령 세운다고!’
“하여간 도박하듯이 하지 마시고, 육 개월만 있다가 사세요.”
나의 이런 만류에도 그는 전혀 납득하지 않았다.
“네 말이 틀린 건 아닌데, 이렇게 집값 오르다가 영원히 집 못 살까 무섭다. 더 오르면 어떡하냐?”
집은 사면 이득이다. 집값은 절대로 안 떨어진다. 그것이 이 시대의 상식이요, 진리였다.
“제 생각에는 아마 김대중이 될 겁니다.”
특별한 미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추론이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나는 미래가 바뀌는 것이 두렵다. 항상 조심스럽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강점이 그거 하나인데, 나의 부주의함으로 인해 변해 버린다면 내 손으로 내 무기를 버리는 셈이 된다. 그건 아주아주 멍청한 짓이다.
“가능성이 높겠지. 그 사람이 정치 경력이 얼만데, 저번에도 거의 될 뻔했잖아.”
“형님. 대통령 바뀌면 정책도 바뀝니다. 그러니까 대통령 바뀐 다음에 사세요.”
조장이 웃었다. 어린 녀석이 알면 얼마나 아냐! 그런 눈빛이었다. 그리고는 장난치듯이 물었다.
“바뀔지 안 바뀔지 어떻게 아냐? 근거 있냐?”
“95년에 9.2%, 96년에 7.1%, 올해는 아직 5%가 안 돼요. 결국 별다른 이변이 없으면 계속 떨어진다는 말이죠.”
역시 사람을 설득하는 데는 숫자만 한 것이 없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
그러나!
나의 이런 논리적인 말이 그의 어벙벙함에 묻혔다. 왜 그런 표정이지? 잘못 말했나? 맞는데!
“……금리?”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내가 그거 몰라서 이러고 있을까! 가슴에서 튀어나오는 목소리를 내리눌렀다.
“형님, 그거 경제 성장률입니다. 금리는 11%대로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구요.”
“대가리 떼고 말하면 누구라도 못 알아듣지, 인마!”
억울하다는 듯이 조장이 따졌다.
“당연히 아시는 줄 알았죠.”
“그래서! 성훈이 네가 하려는 말이 뭔데?”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는데. 최고의 집값, 최고의 금리로 집을 산다? 저 같으면 절대로 그렇게 안 해요.”
“너무 심한 비약 아니냐? 잠시 주춤하는 거지.”
설명하기 답답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굴뚝에서 허연 연기가 춤을 추고 있었다.
‘하긴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하네. 내가 말한다고 해도 미친놈 되겠지.’
대한민국이 망해도 화학공장에서는 지금처럼 연기를 뿜어낼 것이다.
공장이 이처럼 잘되고 있는데 나라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까? 조장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였구나!
“그럼 육 개월도 필요 없고, 3개월만 기다려요.”
“그사이 집값이 오르면 어떡하고?”
‘집값이 오르기는! 경매로 나오는 매물이 줄을 섭니다요. 골라잡으면 된다고요. 쫌.’
“나중에 형님 저한테 고맙다고 절할 날 올 겁니다.”
조장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가자미눈으로 나를 볼 뿐이다. 이 양반 눈탱이를 그냥!
‘나이 많은 내가 참자. 휴!’
“대출 없이 형님 돈으로만 사는 거면 이런 말 안 합니다. 집은 사놓으면 언젠가는 오르니까요.”
조장도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출 끼고 사면 그거 형님 집 아닙니다.”
“……?”
“원금, 이자 다 갚을 때까지는 은행 거예요. 등기부등본에 은행이 지 거라고 침 발라 놓는다고요. 아무것도 못 하게.”
‘몰랐냐?’
“…….”
‘아이고! 이 양반아. 차를 사도 이것저것 따질 게 많은데, 그냥 내버려 둘 걸 그랬나? 공부 좀 하게.’
이런저런 고민하며 설명하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처음부터 부동산에 대해 아냐고 물어볼걸!
“사든가 말든가 맘대로 하세요. 한두 푼짜리도 아니고, 일억이 가까운 물건을 사면서 그런 고민도 안 합니까?”
여전히 집에 미련이 남은 조장에게 짜증 내고는 일하러 갔다.
‘나도 저 나이 때는 저랬지. 저 사람도 공고 졸업하고 바로 일 시작했으니…….’
일터로 향하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그렇다. 집은 물건이다. 좀 비싼 물건이다. 들고 도망칠 수도 없는 좀 많이 비싼 물건이다.
그러기에 구입을 하기 전에는 아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나는 그 물건을 제대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다.’
11월 3일. 나라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몸살을 앓았다. 책임을 말하기 이전에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단물을 빨아먹던 정치인들은 안면을 바꾸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매일 환전과 입금을 반복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결국은 극복할 일이었다.
‘설마 나라를 위해 희생하려고 돌아온 건 아닐 거야.’
나는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했다. 책임질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를 마음의 부채가 생겼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51,000달러가 약간 넘는 달러를 모두 한화로 바꾸었다. 수수료를 제한 9,844만 원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떨어지는 일만 남은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이후 2월 28일까지 받은 일당은 모두 통장으로 입금했다.
공장 문을 나서는 날. 통장에는 우수리 떼고 1억 1,300만 원이 있었다.
“내가 태워다 줄게. 가자.”
조장이 운전을 하면서 물었다.
“야, 독하다 독해. 너처럼만 일하면 부자 안 될 사람이 없겠다. 어떻게 9개월을 하루도 안 빠지고 일하냐? 얼마 모았냐? 돈쓸 시간도 없었으니까. 그 돈 그대로 있겠네?”
나는 손가락 6개를 내밀었다. 열 개를 내밀었다가는 귀찮은 일이 생긴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그럼에도 조장에게는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헉! 이 자식. 남들은 10년 모아도 그렇게는 어렵다. 함부로 쓰지 말고… 하긴 네가 어떤 놈인데.”
그걸로 뭐할 거냐는 말에 그냥 슬며시 웃어줬다.
‘마지막 빚을 갚아야지!’
그와의 정은 차치하더라도 내가 그동안 그에게 받은 정신적 부채를 청산하기로 했다.
“형님, 집 사세요.”
“언제는 사지 말라면서. 하긴 네 말 듣고 안 사기를 백 번 천 번 잘했지. 지금도 그거 생각하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IMF 이후, 수많은 가계가 거리로 나앉았다. 그런 일은 공장 사람들 주변에도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부동산의 상승 기류를 타고 싶어 했다. 시세차익, 즉 공돈을 바랐던 것이다.
스스로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예측했더라면 조심했을 것이나, 그러기에는 경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배앓이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도 같이 사야 하는 법이다.
성공해도 같이하고, 망해도 같이할 테니까. 죽어도 같이 죽으면 덜 억울하지 않겠나!
그리고 십중팔구는 망했다. 그것도 쫄딱 망했다. 오죽하면 자살을 하겠는가!
조장은 나에게 신기가 있다면서 무당을 하라는 헛소리를 해댔었다. 김대중도 맞췄다면서, 쳇.
김대중 아니면 김종필인데, 김종필 안 나왔으니 누가 될지 뻔한 거 아닌가!
“그때랑 지금이랑 다르잖아요. 경매장 가면 집들이 널렸어요!”
“경마장?”
‘헐. 이젠 사오정이냐!’
“경매요, 경매. 대충 보시고 울산 시내 한복판에 2번 이상 유찰된 거 있으면 사세요. 부동산에 먼저 물어보시고.”
“…….”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인다. 경매로 집을 살 생각을 하니, 벌써 집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공부 확실히 해서, 알기 전에는 끼어들지 마시고. 사기꾼 많으니까. 저번 농심 주식처럼 몰빵 하지도 마시고.”
“알았어! 내가 애냐?”
주식에 몰빵 했다가 내 가슴을 철렁하게 했고, 그 뒤로도 몇 번 귀찮게 하길래, 주식으로 망한 사람들을 읊어주며 겁을 주었다.
형님이 돈을 번 것은 단지 ‘초심자의 행운’일 뿐이라고 말해줬다. 지식 없이 뛰어들 세계가 아니라고.
쉽사리 유혹을 떨치기는 어렵겠지만, 차기 대통령까지 맞춘 내 말을 따르는 듯했다.
어쨌거나 내가 가졌던 정신적 부채는 이걸로 끝이다.
잘되든 못 되든 자기 복이다.
학교 정문에 차가 멈췄다.
조장이 어깨를 두드리며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형님! 다음에 한번 찾아뵐게요. 건강하세요.”
공장에서의 9개월은 지난 삶을 돌아보며 각오를 다질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미래가 현실과 얼마나 매치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토니 블레어는 영국 총리가 되었다. 한신그룹은 부도가 났고,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울산은 광역시가 되었다.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서 추락했다.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죽었고, 테레사수녀가 죽었다.
역사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똑같이 흘러갔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계속 똑같을 것이다.
이제는 나라가 망할 거라고 설레발치던 IMF가 지나갔다.
새로운 세상이여! 내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