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4화 (4/427)

건축의 신 4화

때를 기다리다(1)

주로 하는 일은 청소 아니면  업무 보조였다.

조장이 말했다.

“한 사람은 배관 안에서 청소하시면 됩니다.”

같이 왔으니 니들끼리 알아서 일할 사람을 뽑으라는 의미였다.

노인네 둘이 서로 눈치만 보면서 하지 않으려 했다. 모두 일당쟁이로 잔뼈가 굵은 50대 후반의 베테랑이었다.

똑같은 돈을 받는데 힘든 일을 피하려 하는 닳디 닳은 사람들이었다.

이럴 거라 예상했다. 내가 조장에게 말했다.

“제가 할게요.”

조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조장이 지명을 해야 하지만 그도 나쁜 사람이 되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간단하게 요령을 알려주고는 다른 일을 지시하러 2명을 데리고 갔다.

같이 온 일용직 둘이 나에게 연민의 눈빛을 보내며 열심히 하라고 위로했다.

‘뭐가 뭔지 모르니 저러는 거지.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가만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쯧쯧’

그들이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웃어주었다.

이전 삶에서도 이랬다. 하지만 그때는 노인네들보다 내가 젊으니까, 내가 사정을 봐주지 하는 마음으로 했었다.

어리고 착했다. 그래 봐야 저들에게는 봉일 뿐이었지만.

지금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가 바라마지 않던 절호의 기회였다.

‘ 이렇게 기회가 빨리 올 줄이야!’

일용직은 하루 일당을 받는다. 그들은 일정한 직장이 없다. 그런 사람들의 마인드는 단순하다.

‘같은 돈인데, 적당히 하자. 다치면 나만 손해야. 일 많이 하는 놈이 병신이지.’

그래서 평생을 일용직으로 살아간다. 꿈도 희망도 없이. 그들만의 사정은 각자 있겠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안정을 찾는다고 말은 하지만, 진정으로 안정을 찾으려면 정규직이 되기를 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직원이 되기를 애초에 포기하고, 왜 열심히 일하느냐고 그들을 무시한다. 바보라고. 그렇게 타성에 젖어서 살아간다. 마음속으로는 안정된 직장을 원하면서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직원처럼 되는 법’은 간단했다.

현장 감독자에게 잘 보이면 된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면 된다.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

‘내가 그렇게 일용직 노동자를 관리할 감독을 뽑았었거든. 내가 수천 세대를 다 돌면서 감독할 수는 없잖아.’

나는 그 사람을 십장으로 뽑아서 우리 회사 직원처럼 썼었다. 정직원은 아니지만, 그 아저씨는 일 년 동안 내 업무를 많이 줄여주었다.

그 사람은 남들이 이틀 일하고 하루 쉴 때, 쉬지 않아도 되었다. 직업소개소에 수수료도 내지 않았다.

무려 10%가 넘는 돈을 모두 세이브했다. 그러고도 그는 나 모르게 직업소개소 소장과 딜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알면서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건 그 사람의 재량이었고, 일에는 차질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나중에 현장을 종료하고 나올 때는 건설사 직원에게 말해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나왔었다.

그를 뽑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나에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서 열심히 하겠다는 열의가 없었다면 그럴 능력이 없었다면 내가 뽑았을까? 절대 아니다.

그는 내가 부른 만 명의 일용직 중에 한 명이었다.

그들의 생각은 누구보다 잘 알았고, 어떤 사람이 일시키는 자의 마음에 드는지도 알고 있었다.

온몸에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무릎을 꿇으면 등이 닿을 듯한 배관에서 실리콘 찌꺼기를 긁어내는 간단한 일이었다.

식기는 했지만 화학공정의 열기가 남아 있는 데다 통풍도 되지 않아 찜통이 따로 없었다. 어설픈 체력으로 덤볐다가는 쓰러지기 십상이다.

절대로 쉽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간단하니까 쉽잖아!’라고 말한다면, 인생 공부를 다시 하라고 말해주겠다.

“후.”

대화할 사람도 없으니, 들리는 소리는 내 숨소리뿐이었다.

화학제품 특유의 구리구리한 냄새가 났다. 이런 상황을 겪어본 사람들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아까 아저씨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이 하려고 하지 않으니, 항상 자리가 있는 것이다.

왜 나는 이 일이 기회라고 생각했을까?

공장직원들이 하지 않으려고 하니, 외부 인력에게 맡기는 것이다. 훨씬 비싼 임금을 주고.

용역을 데리고 와도 하지 않으려고 발을 빼는 일이다. 그나마 해도 게으름을 피우고 잘 긁어내지 않는다. 재수가 없어서 이 일에 뽑혔기 때문이다.

그럼 조장은? 일을 시킬 때마다 용역들과 정신적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돈을 주고 시키면서 갑질을 못 하는 일이 이것이다.

반대로 돈을 받고 일하면서 갑질할 수 있는 일이 이 배관 청소였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나에게 기회였다.

‘이 일은 내가 아도 친다!’

정신없이 긁어냈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실리콘 찌꺼기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솔직히 해도 티가 안 나는 일이다.

칼로 뜯어낸 찌꺼기들을 배관 입구 쪽으로 밀어냈다. 시간이 얼마나 갔는지도 모른다.

배관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꺼운 합금으로 된 배관이라 소리가 쨍쨍 울려 퍼졌다.

배관 입구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마 내 얼굴은 온통 땀범벅이었을 것이다.

아까의 조장이었다. 한 30살 정도 되었으려나.

“많이 힘들죠? 사실은 이 일 아무도 안 하려고 하거든요.”

그는 양손에 음료수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잘하는지 확인하러 온 것이리라. 씨익 웃어주었다.

힘들다고 배관 밖에서 쉬고 있었으면 혼을 낼 요량으로 왔을 것이다. 내 눈에는 훤히 보였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젊은 놈이 땀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하고 있으니, 미안해서 음료수라도 들고 왔을 것이다. 나도 그래 봤으니 잘 안다.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친구야!’

“비키세요, 조장님.”

긁어 놓은 실리콘 찌꺼기를 입구 밖으로 내던졌다. 한 아름 정도의 찌꺼기가 나왔다.

조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켜본 일용직들 중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과거의 그 사람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대충대충이라는 일용직의 마인드를 모르고 열심히 할 때의 기억이다.

“우와! 뭐 이렇게 많이 했어요. 윽! 이 땀 봐라.”

더 놀래라고 한 움큼을 더 끄집어내었다.

“또 있어? 얼마나 열심히 한 거야!”

‘앞으로 일로는 나에게 뭐라고 못 하겠지!’

내 손을 끌면서 선풍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바람이나 좀 쐬고 하라고 했다.

따악-

음료수를 마시면서 조장이 말을 건넸다.

“젊은 친구가 대단하네. 천천히 해요. 그러다가 쓰러진다고.”

“네, 하루 이틀 할 일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말씀 낮추세요.”

조장은 아직 어려서 깊이 생각하지 않겠지만, 기억에는 확실히 남을 것이다.

하루 이틀 하고 말 일이면 이렇게 오버액션 안 하지! 이걸로 팔 개월은 버틸 거거든.

조장에게 각인을 시켜놓을 필요가 있었다. ‘믿음직하게 일하는 친구구나’ 하는 각인!

첫인상은 잘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신뢰는 첫인상이 전부다.

“그럴까? 그런데 한 번도 안 나오고 일한 거야?”

고개를 끄덕였다.

“좀 있으면 점심시간이야. 그때까지 쉬다가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쉬었다. 시원한 바람에 온몸이 상쾌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