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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화 (2/427)

건축의 신 2화

새로운 인생(1)

“아들! 밥 묵으라. 엄마 일 나간데이.”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사이에 더운 바람이 들어왔다.

5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나는 새우처럼 구부리고 누워 있었다. 자세를 바꿔서 바로 누우려 하다가 옷장 모서리에 발가락을 찧었다.

“앗, 쓰…….”

아리는 발가락을 움켜잡으며 눈을 떴다.

한참을 누운 채, 멍하니 눈 앞의 천장을 보고 있었다.

일어서면 머리가 닿을 거리.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매번 그랬으니까.

20년 전 내가 살던 방이었다. 얼마나 이곳의 기억을 떨치려고 애썼던가?

단지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서 대학을 갔고, 자취를 한다는 핑계로 돌아오지 않았던 집이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5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오지 않았던 집인데.

머리를 쥐어뜯었다. 꿈이라면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짧아서 쥘 수가 없었다.

“엇? 왜 머리가?”

벌떡 일어나서 벽에 걸린 거울을 봤다.

갓 제대한 듯한 스포츠머리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22살 파릇파릇한 얼굴이었다.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허허허.”

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널따란 옥상이었다.

그렇다. 어머니와 나는 부산 어딘가의 옥탑방에서 살고 있었다. 부엌까지 합해서 4평 정도의 방이었다.

옥상 난간에 기대서 밖을 내려다보았다.

“제대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런 개꿈이나 꾸는 거지? 재수 없게.”

추리닝 주머니를 뒤지며 담배를 찾았다. 헐렁한 주머니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방에서 동전들을 모아서 밖으로 나갔다. 말보로 한 갑을 사면서 사천오백 원을 들이밀었다. 점방 할매가 날 미친 놈 보듯이 쳐다봤다. 라이터까지 포함해서, 천육백 원 내고 나머지를 추리닝에 찔러 넣었다.

점방 앞의 평상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이십 년은 담배를 펴온 관록 있는 모습이었다.

“콜록! 콜록! 에이, 퉤퉤퉤.”

혀끝에 감도는 쓴맛과 폐를 가득 채운 매캐한 연기에 담배를 끄고 말았다. 이 무렵의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 장자의 호접지몽처럼 현실에 발을 딛고 있음에도 도드라지는 느낌! 혼자 발가벗겨져 사막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확인할 사람은 할머니밖에 없었다.

“할머니, 오늘 며칠이에요?”

“촌놈이 무신 서울 말투고? 뭐 잘못 무긋나?”

서울 말투가 거슬리는지 할머니는 짜증을 부렸다. 서울 놈들은 전부 사기꾼이니까.

“그냥 며칠인지나 말해주세요.”

“28일이다.”

“몇 월요?”

“이 문디자슥 보래이! 씅질 테스트하는 기가? 4월이다. 4월 28일. 와? 년도까지 말해주까? 1997년이다. 됐나?”

할매는 눈을 희번뜩하며 툴툴거렸다.

“야야, 술 적당히 무그라. 느그 어무이 고생하는 거 안 비나? 정신 똑바리 채리고 살아레이, 문디손아.”

할머니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알고 있다. 지금이 그 시절이라는 것. 하지만 또 하나의 사실.

내 머리에 각인되어 남아있는 나의 인생.

전생이라고 할까. 하지만 보통 전생이란… 죽은 다음에 살게 되는 게 아니었던가?

그래, 나는 죽었다. 마지막 뇌리에 스쳐 지나간 파노라마로 볼 때,  100% 죽었다.

‘그래도 몇 겁은 지나서 환생해야 전생인 거지. 이건 뭐지!’

다른 사람의 인생? 주인공이 난데?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했는데!

뺨을 때려봤다. 꼬집어도 봤다. 벽이 울리도록 머리도 박아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정신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꿈이었나? 믿을 수 없다. 꿈이었다고 무시해 버리기엔 너무 생생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내 인생이었다.

그럼 지금이 꿈인가? 어디가 현실인 건가?

그 꿈에서는 이곳으로 되돌아오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었는데, 막상 이곳에 있으니 다시는 그 꿈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꿨던 꿈은 기나긴 악몽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정신병원에 감금되겠지. 이왕 다시 한 번 주어진 인생.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면 된다. 누구에게? 그런 거 모른다. 신의 실수인가 보지.

“또다시 그 꿈으로 돌아간다면? 그때 돼서 생각하자. 엄마를 만난 게 어디냐?”

어머니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정작 나는 그녀가 어디서 일하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곳 지리도 모른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 즈음이었던가?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인한 충격으로 쓰러지셨고, 결국은 지병이었던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빚쟁이에게 쫓겨 다니셨다. 지금도 빚쟁이를 피해 숨어서 살고 있었다.

나는 빚쟁이가 찾아올 수도 있는 이 집이 싫었다. 어머니의 집은 몇 번 명절 때 들르고는 온 적이 없었다.

그나마도 취업을 하고 서울로 올라간 뒤로는 한 번도 오지 않았었다.

빚이 얼마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 금전적, 정신적 부채를 물려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거의 연을 끊다시피 15년을 살았고, 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이모들을 통해서 그 빚을 다 갚았다는 것. 나에게 빚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슬퍼서 울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다음 날은 또 일을 해야 했으니까. 나도 갚을 빚이 많았다.

아파트 대출금, 자동차 할부금, 밀린 카드값.

아무리 짜증 나는 일이 있어도, 아무리 욕을 먹어도 일해야 했다. 하루라도 쉬게 되면 빚이 눈덩이처럼 커질 테니까. 하루하루가 공포스러웠다.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몇 개 없었다.

일, 술, 죽음.

다시 그 꿈을 꾸게 된다면 난 그냥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게 악몽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꾸고 싶지 않은 악몽.

“그래, 전부 꿈이었던 거야. 맞아.”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익숙한 동작으로 라이터를 켜려다가 멈칫 했다. 담배를 갑에 꽂아 넣었다.

옥상 평상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내 인생이었어. 또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건가?’

지금이라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전생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이왕 시작할 거라면 다르게 살고 싶었다.

귀찮다고 하지 않았던 공부 때문에 출세하지 못했다. 힘이 들어 미뤄둔 일 때문에 무능력자로 낙인찍혔다.

그 이후 그것들을, 그 신뢰들을 복구하기 위해 애썼지만 한 번 찍힌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다.

하기 싫은 일들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졌다. 하기 싫어도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엄마한테서 또 도망가고 싶지는 않은데. 어떡한다…….”

뭔가를 할 필요가 있었다. 이 상태로라면 나는 한 달쯤 있다가 울산으로 갈 것이다.

거기서 친구들과 어울릴 것이다. 술도 마시고, 돈이 필요하면 공단에서 일하고, 일당 받으면 다시 술 마시고.

꿈이 아니라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아니까. 꿈치고는 너무 리얼하기도 했다.

‘등록금은 엄마가 마련할 테니까, 니는 공부나 열심히 하그라.’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전생에 있었던 일들을 노트에 적었다.

잘했던 일과 후회스러운 일들을. 했어야 했던 일과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내용이다.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어쩜 사람의 인생이 이따위란 말인가!

타고난 스펙은 나쁘지 않았다. 머리도, 육체도, 부모가 준 것들은 상급 아이템이었다. 제대로 쓰지 않은 것뿐이다.

그저 게을렀고, 뭐가 더 중요한 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될 대로 되라면서 살았지. 직업도 되는 대로 정했고, 여자도 그랬지. 누구랑 살아도 같을 거라 생각했잖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 인생에 대한 배려가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했어야 했다.

나는 나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나는 나라고 하는 슈퍼 엔진을 한 번도 제 출력대로 밟아본 적이 없었다.

험한 길도 달려보고, 아우토반도 달려보고, 삼 일 밤낮도 달려봤어야 했다. 그러기에는 나는…….

그저 남들 사는 대로 살다가 남들 죽을 때 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죽지도 못했지만.

“참, 병신같이 살았네. 병신.”

지난 꿈에서의 20년을 돌아본 내 짧은 감상이었다. 이제 꿈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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