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44화 (144/145)

# 144 < 아버지를 위한 영화 <아메리칸 드림> >

259.

영화 <아메리칸 드림>의 제작은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앞선 두 달간의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통해 촬영장소 섭외 및 스튜디오 제작, 스태프 구성, 스토리보드 등은 이미 완벽하게 준비가 됐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에서 배우들이 입국하기를 기다린 후 리허설 및 실제 촬영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번 영화는 순제작비 200만 달러 정도의 저예산 독립 영화이기 때문에 프로덕션 과정 또한 길어야 한두 달 정도면 충분히 완료될 수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임스 킴입니다.”

출연 배우들과의 첫 미팅 자리에서 내가 인사를 건넸다.

한국에서는 나름 이름있는 배우들이었지만, 영화의 본고장인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감독이라는 후광효과 덕분인지 배우들은 하나같이 나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참 묘한 기분이 드는군. 전생에서는 이런 유명 배우들을 내가 만든 영화에 섭외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힘든 일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만든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올 정도니 말이야.’

스태프와 배우들의 인사가 끝나자,

곧바로 조감독이 나서 촬영 일정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빠른 영화 제작을 위해 다소 빽빽하게 잡힌 촬영 일정이었지만, 그 누구도 여기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에......”

내가 빙긋 웃으며 배우들을 향해 덧붙여 말했다.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은 최고의 숙소와 최적의 환경에서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우리 회사 관계자들에게 이야기하시면 되고요.”

“저희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제임스 킴 감독님과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하하.”

나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

이번 영화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제임스 역을 맡고 있는 배우였다.

아울러 그는 한국 내에서 ‘국민 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가 있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감독님.”

또 다른 배우 하나가 나를 향해 물었다.

훤칠한 키에 호남형의 얼굴을 가진 그는 최근 총관람객 수 700만 명이라는 역대 최고 히트 영화의 주연을 맡으며 충무로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인물이었다.

“무슨 질문입니까?”

“혹시 이번 영화가 감독님의 미국 이민 생활을 토대로 한 자전적 성격의 영화인가요? 시나리오만 읽어도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내용이 아주 사실적이어서요.”

“제 경험도 있고, 우리 가족의 경험도 있고, 또 그동안 제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보고 들은 이민자들의 실제 이야기가 모두 시나리오에 녹아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아무튼 다들 잘 부탁드립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영화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제가 만든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의미가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아서 말이지요. 어쩌면 제 감독 인생의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감독님의 마지막 영화라니요?”

“이제부터는 영화 연출보다 제작 일에 더욱 집중할까 해서요. 요즘 우리 Film Kim의 규모가 워낙 커져서 예전처럼 제가 연출까지 모두 감당하기에는 벅찬 감이 없잖아 있네요. 더군다나 이제는 좋은 후배 영화감독들을 발굴하는데 더 신경 쓸 필요도 있을 것 같고요.”

“가능하다면 한국 영화계 발전에도 많이 신경 써 주십시오, 감독님. 물론 지금도 우리 충무로 영화인들이 충분히 Film Kim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다들 숙소로 돌아가셔서 푹 쉬고,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촬영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컨디션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 주시고요.”

“예, 감독님.”

260.

영화 <아메리칸 드림> 촬영 현장.

바쁜 촬영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스태프들이 촬영 현장을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출연 배우들은 별도로 마련된 연습실에서 오늘 촬영분 리허설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고.

‘이번 영화 <아메리칸 드림>은 새로운 꿈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온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 하지만 그들 각자가 처해 있는 현실은 조금씩 다르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조금씩 삶의 터전을 일구어간 이민 1세대, 갑자기 바뀐 생활 환경과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는 이민 1.5세대, 그리고 피부색은 다르지만 사고는 완전한 미국인인 이민 2세대가 한 가정 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영화가 이런 가족의 모습을 무척이나 담담한 어조로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플래시 백(flashback) 기법이 자주 활용된다는 점이 특징인데, 이를 통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실제 주인공이 겪었던 경험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 점이 바로 이번 영화의 사실감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지.’

또한 이번 영화는 전생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예술 영화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영화였다.

그 덕분에 영화의 전체적인 미장센은 물론 카메라 구도와 이야기 전개 방식에 이르기까지 기존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주인공인 제임스, 에릭, 토미의 각기 다른 삶이 마치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듯한 방식의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 사람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다른 듯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 전체의 서사 구조와 설정 체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전생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찍은 내 첫 장편 영화가 평단의 큰 주목을 받으며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었지. 물론 그 성공에 취한 나머지 스스로를 고정된 틀에 가두어버렸고,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실패 원인이 되기도 했었지만 말이야.’

“자, 준비 다 됐으면 바로 촬영 들어갑니다. 카메라 스탠바이, 레디, 액션!”

메가폰을 타고 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영화 <아메리칸 드림>의 대망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260.

영화 <아메리칸 드림>의 프로덕션 과정은 총 45일 정도가 소요됐다.

예상보다 2주 정도는 더 단축된 촬영 기간.

이는 감독인 나와 배우들의 호흡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덕분이었다.

여기에 할리우드 특유의 철저한 프리 프로덕션 과정이 한몫했고.

이제 남은 것은 편집, 음향, 색 보정 등과 같은 영화 후반 작업.

이 작업이 모두 끝나면 비로소 극장 스크린을 통해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게 될 예정이었다.

“아버지가 좋아하실까요?”

병실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내가 레이첼에게 말했다.

“이번에 킴이 만들고 있는 영화 <아메리칸 드림> 말이에요?”

“네.”

“호호, 의외네요. 킴이 이렇게 자신 없는 모습을 다 보이고. 그동안 킴은 누가 뭐래도 자신이 만든 영화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이번 영화의 경우는 좀 다르잖아요. 특히 내가 아버지와 같은 미국 이민 1세대의 삶을 영화로 잘 표현해냈을지가 무척 의문스러워서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킴.”

레이첼이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 영화, 지금까지 킴이 만든 그 어떤 영화보다 킴의 진심이 담겨 있는 영화잖아요. 영화를 보는 사람들 또한 그 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고요. 특히 킴처럼 영향력 있는 영화감독이 미국 이민자와 같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더욱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 틀림없어요.”

“고마워요, 레이첼. 그렇게 말해줘서.”

“시사회는 언제 할 예정이에요?”

“지금 후반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니, 조만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전에 먼저 아버지가 거동을 하실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호전되어야 하지만.”

최근 들어 건강 상태가 더욱 악화되 거동조차 힘들어진 아버지.

그 때문에 일단 아버지를 위한 영화를 만들기는 했지만, 직접 극장에 가서 보실 수 있을지가 의문스러운 상황이었다.

“염려 말아요. 킴이 당신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을 들으면 아마 아버님께서도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실 테니까요. 아버님은 킴이 만든 영화의 열혈 팬이시잖아요, 호호.”

“하하, 나도 그랬으면 너무 좋겠네요.”

“뭐, 정 안 되면 여기 병원에다 아예 소극장을 하나 지어버리면 되죠.”

“예?”

“킴도 알잖아요. 이 병원이 아버님 자선 재단에서 상당한 자금을 지원받아 운영되는 병원이라는 것을.”

“그렇죠. 예전에 아버님이 비싼 미국의 의료비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한인과 흑인들을 위해 이 병원을 지으셨죠.”

“그러니 병원 쪽의 협조를 구해 아버님을 위한 임시 소극장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닐 거에요. 조지 루이스 씨에게 부탁해서 사운드워커 사의 도움을 받으면 웬만한 최신 극장 못지않은 관람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고요.”

“듣고 보니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요, 레이첼?”

“그럼 우리......”

레이첼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한번 준비해볼까요?”

***

그로부터 얼마 뒤.

영화 <아메리칸 드림>의 특별 시사회가 시작됐다.

이번 시사회는 글자 그대로 정말 ‘특별한’ 시사회였다.

상영되는 영화도, 영화가 상영되는 병원 내의 소극장도 오직 단 한 사람, 아버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우리 가족,

LA 한인 타운에 거주하는 지인들,

그리고 친분 있는 몇몇 영화감독들을 초청해서 진행된 이번 시사회의 반응은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영화 상영 내내 손수건으로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훔쳐냈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미국 땅에 거주하는 모든 ‘검은 머리’ 이민자들을 위한 영화이기 때문이었다.

“고맙다, 도훈아. 내 평생 이처럼 감동적인 선물은 받아본 적이 없구나.”

영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내 손을 부여잡고 또 한 번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는 아버지.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번 영화 <아메리칸 드림>이 본격적인 극장 상영을 시작하면서 평단의 뜨거운 찬사를 받게 된 것이다.

- 제임스 킴 감독의 신작 영화 <아메리칸 드림>, 인종의 용광로 속에서 살아가는 동양인 이민자의 삶을 아름답게 그려내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 칸 영화제, 오스카 시상식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 영화 <아메리칸 드림>

- 아름다운 영상미와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주제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영화 <아메리칸 드림>

-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감독인 제임스 킴, 화려한 CG와 유명 배우 없이도 얼마든지 좋은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 <아메리칸 드림>을 통해 또 한 번 증명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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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처음에는 한산했던 상영관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관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칸과 오스카가 주목한 영화라는 수식어가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의외의 반응이군. 이번 영화 <아메리칸 드림>은 평론가들은 몰라도 관객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말이야.’

사실 이번 영화는 내용 자체가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영화였다.

게다가 대사가 절반은 영어로, 절반은 한국어로 이루어져 있어서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는 영화가 매우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다수 외국 영화들이 북미 극장가에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화면에 나오는 자막을 같이 읽어야 한다는 소위 ‘1인치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 <아메리칸 드림>은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꽤 괜찮은 대중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흥행 수익도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2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번 영화의 흥행과 많은 수상 실적을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원동력인 아버지가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이 영화를 직접 보시고, 또 충분히 만족해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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