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42화 (142/145)

# 142 < 히어로 영화 시대의 시작 (3) >

255.

최근 영화사 Film Kim의 규모는 이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특히 회사 내에는 특정 영화 제작을 전담하는 부서들이 여럿 있었는데,

가령 예를 들면 이번에 제작하고 있는 영화 <스파이더맨>과 같은 히어로 영화를 전담하는 부서, 앞선 영화 <트랜스포머>를 전담하는 부서, 그리고 최근 우리 회사가 병합한 뉴라인시네마의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 제작을 전담하는 부서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영화들은 앞으로도 연속적인 시리즈로 제작될 예정이었고, 업무의 연속성을 위해 전담 부서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부서들 하나하나가 모두 웬만한 중견 영화사와 맞먹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것이지. 각 부서가 독립된 건물 전체를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야.’

마치 대기업이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것처럼,

우리 Film Kim 산하에도 여러 시리즈 영화를 제작하는 전담 부서들이 만들어져 각기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Film Kim은 할리우드, 아니 세계 영화 영화계의 독보적인 ‘빅 원(Big One)’으로 완벽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도훈이 너 기억나냐?”

병실 침대에 누운 아버지가,

다소 힘겨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최근 들어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무척이나 악화됐다.

이미 여든에 가까워진 아버지의 나이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요즘 집에 있는 날보다 병원 침대에 누워 지내는 날이 훨씬 더 많았다.

“뭐가요?”

“처음 도훈이 네가 영화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말이다. 그때 내가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영화로 성공하는 일을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힘든 일이라고 말렸었지.”

“기억나요. 그래도 아버지 말로만 그러셨지, 물심양면으로 저를 도와주셨잖아요. 첫 영화 제작비도 직접 지원해주셨고요.”

“그때는 나도 네가 이 정도까지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무척이나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보란 듯이 세계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었구나. 그것도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사를 소유한.”

“그러니까 아버지가 더 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해요. 저도 그렇고, 우리 Film Kim도 그렇고 앞으로 더욱 멋진 영화를 많이 만들어낼 테니까요.”

“흐흐, 도훈이 너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다. 지금까지 만든 영화보다 더 훌륭한 영화를 아주 많이 만들 수 있을 거야.”

“물론이죠.”

“도훈아.”

“예, 아버지.”

“이 아버지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뭔 줄 아냐?”

“글쎄요?”

“그건 도훈이 너나, 내 손자 손녀들이 나처럼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도훈이 너도 알지? 아버지가 처음 미국으로 이민 와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특히 네 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더더욱 힘들었다.”

“아버지......”

“그래도 도훈이 네가 있어서 아버지가 버틸 수 있었어. 너 고생 안 시키려고, 너만큼은 아버지처럼 힘들게 살지 않게 하려고 내가 정말 안 해본 일이 없다.”

“저도 잘 알아요. 아버지가 머나먼 타국에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를. 그래서 더더욱......”

아버지의 이런 약한 모습을 보는 게 힘들다고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 때문에 차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할아버지!”

때마침 다행스럽게도,

레이첼과 나의 아들, 딸이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 덕분에 나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겨우 훔칠 수 있었다.

“어이구! 내 이쁜이들. 할아버지 보러 왔어?”

“네, 할아버지.”

“어디 보자, 제이미는 요즘 더욱 이뻐진 것 같구나. 아무래도 네 엄마의 미모를 닮아서 그런 것 같아. 이거 이러다 조만간 영화배우로 데뷔하는 거 아냐?”

“저도 그러고 싶은데, 아빠가 안 된대요. 연기는 외모로만 하는 게 아니라면서. 할아버지가 좀 이야기해주세요. 아빠가 할아버지 말이라면 죽는시늉도 하는 사람이잖아요.”

“다른 건 몰라도 영화 관련 일은 이 할아버지도 어쩔 수가 없단다. 네 아버지가 명색이 세계 최고의 영화감독이잖냐.”

“으, 할아버지도 아빠랑 똑같아.”

“하하. 원래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다. 아, 그리고 스티브, 넌 요즘 한국말 연습 많이 하고 있냐? 이 할애비가 늘 이야기했듯이 우리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 돼. 내가 틈날 때마다 너희들을 한인 단체 행사에 데리고 가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야. 게다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 손자 덕분인지,

다소 기운을 차린 아버지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며 레이첼이 나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뭐래요?”

“그게......”

“왜요? 많이 안 좋으시대요?”

“워낙 연세가 많으셔서요.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하신 탓에 앓는 지병도 제법 있으시고. 그래서 장담은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레이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살아 계신 동안만큼은 행복하게 지내시도록 해드려요. 우리가 병원도 더 자주 찾아뵙고요.”

“그래요. 아, 그리고 고마워요, 레이첼.”

“뭐가요?”

“나 대신 아버지 잘 챙겨줘서요. 평소에도 그렇고, 아버지 아픈 이후에도 그렇고.”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 인걸요. 게다가 킴이 좀 바쁜 사람이어야 말이죠.”

“이제는 회사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겠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이라도.”

“그보다 킴.”

레이첼이 다시 말을 이었다.

“킴이 직접 아버님을 위한 영화를 한 편 만들어보는 것이 어때요?”

“아버지를 위한 영화요?”

“네. 아버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일이 킴이 만든 영화를 보는 거잖아요. 아픈 와중에도 항상 킴이 만든 영화가 개봉하면 손수 극장까지 찾아가서 보실 정도로요.”

“하긴, 우리 아버지가 내 영화의 1등 고객이죠. 지금까지 내가 만든 영화는 단 한 번도 개봉 첫날에 가서 보시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요.”

“그니까 이참에 아버님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아버님께도 아주 의미 있는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특히 미국 이민자로 아버님께서 여태 살아오신 삶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면 꽤 감동적인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겠어요?”

레이첼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영화 한 편이 있었다.

‘영화 <미나리>. 미국 이민 1세대의 애환과 아픔을 담은 휴먼 영화로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이슈가 된 영화였지. 덕분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를 포함해 총 7개의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고.’

미국은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릴 만큼 많은 인종이 섞여 사는 나라이다.

이 때문에 이민자들의 삶을 그린 영화는 꽤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 한국인 이민자들을 주제로 한 영화는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영화 <미나리>가 만들어진 것은 내가 전생을 하기 직전, 그러니까 2020년 즈음에 이르러서였으니까.’

따라서 지금 내가 이 같은 한국 이민 1세대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게 되면 당사자인 아버지에게는 무척이나 의미 있는 영화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한국 이민자를 소재로 한 영화라, 듣고 보니 아버지에게는 아주 뜻깊은 영화가 될 수 있겠네요.”

“맞아요, 킴.”

“그럼......”

내가 옷가지들을 챙겨 들며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당분간 또 아버지 좀 잘 부탁해요, 레이첼. 내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영화를 한번 만들어볼게요.”

“그래요, 킴.”

256.

영화사 Film Kim.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내가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영화의 제목은,

<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미국을 찾아온 외국 이민자들이 희망 찬 미래를 꿈꾸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냉혹했다.

대다수 이민자는 현지인들의 냉소와 차별 속에서 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게 된다.

‘영화 <아메리칸 드림>은 바로 이 같은 미국 이민자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예정이고.’

이번 작품은 그동안 내가 만든 영화와는 사뭇 성격이 달랐다.

기존에 내가 만든 영화들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영화였다.

목적 또한 영화의 흥행과 그로 인한 큰 수익을 얻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단 한 사람,

앞으로 삶의 여정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나의 아버지를 위해 만든 영화였다.

그 때문에 이번 영화의 의미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전생에서 같은 성격의 영화 <미나리>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실제 재미교포 2세였기 때문이지. 그가 미국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경험들이 영화에 아주 잘 녹아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본 관객들도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거야.’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록 새로 얻은 삶이기는 하지만,

또 그 덕분에 다른 한국인 이민자들에 비해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아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나 LA 한인 타운의 사람들을 통해 미국 이민자들의 삶이 얼마나 가혹하고 힘들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나의 경험을 영화에 잘 녹여내면 전생의 <미나리>라는 영화만큼이나 성공적인 이민자들의 삶을 그려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야.’

생각을 마친 내가 다시 시나리오 작성을 이어가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런데,

“킴, 여태 퇴근 안 하고 뭐해요?”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 지미. 일이 좀 있어서 다시 사무실에 나왔어요. 근데 지미는 이 시간에 회사에 웬일이에요?”

“그동안의 촬영분을 다시 한번 살펴볼까 해서요. 요즘 영화 제작이 막바지로 접어들어서 그런지, 많이 바쁘네요. 그래서 거의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요.”

“알겠어요, 킴. 아, 내친김에 킴도 같이 한번 보실래요? ILM에서 갓 CG 작업을 끝내고 넘어온 영상이 있는데.”

“그래요.”

내가 제임스 카메룬과 함께 별도의 편집실로 이동했다.

제임스 카메룬의 말마따나 최근 그가 촬영하고 있는 영화 <스파이더맨>은 거의 제작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내년쯤이면 본격적인 극장 개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번 영화 <스파이더맨>은 우리 회사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 될 예정이지. 왜냐하면 이번 영화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Film Kim표 히어로 영화 시대가 개막될 예정이니까.’

“어때요, 킴?”

준비된 영상의 재생이 끝나고,

제임스 카메룬이 나를 향해 물었다.

확실히 이번에 그가 연출을 맡은 영화 <스파이더맨>은 내가 전생에서 본 그것과는 성격이 확연히 달랐다.

원작을 토대로 만든 덕분에 영화의 전반적인 철학은 이전과 거의 비슷했지만, 시각 연출 부문에 있어서는 제임스 카메룬표 <스파이더맨>이 훨씬 더 뛰어났던 것이다.

‘전생의 내 기억에 따르면 영화 <스파이더맨>은 전 세계적으로 무려 8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렸지. 아마도 이번 영화는 제임스 카메룬의 명성과 그의 뛰어난 시각 효과 연출 능력이 더해져 전생의 그것보다 훨씬 큰 흥행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군.’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말했다.

“좋네요. 더 이상 손볼 데가 없을 정도로.”

“그래요?”

“예. 지미가 ILM의 벤자민을 얼마나 닦달해서 이번 영상을 뽑아냈을지 안 봐도 눈에 훤하네요.”

“아, 그래서 요즘 벤자민이 나만 보면 자꾸 자리를 피했던 거군요, 하하하.”

“아마도요, 하하.”

한참을 웃어 젖히던 내가 다시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말했다.

“영화 후반 작업 들어가면 나도 곧바로 개봉관 확보에 들어가야겠네요.”

“이번 영화도 전 세계에 동시 개봉할 예정인가요?”

“네.”

“무척 기대되네요. 이번 영화가 마이블 히어로 영화를 실사화한 최초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더욱 더요.”

“너무 염려하지 말아요. 원작이 한때 대중들의 큰 인기를 끌었던 만큼 영화도 분명 큰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