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 히어로 영화 시대의 시작 (1) >
251.
할리우드 영화계에는 이른바 ‘빅 식스(Big Six)’ 영화사가 존재했다.
이들은 엄청난 회사 규모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매년 수억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리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만들어내면서 전 세계 영화 산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지금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이전의 ‘빅식스(Big Six)’라는 용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지. 대신 우리 Film Kim의 독보적인 위상을 보여주는 ‘빅 원(Big One)’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고.’
창립 이후,
Film Kim은 무려 20년 넘게 엄청난 흥행작들을 계속해서 쏟아냈다.
역대 할리우드 영화 흥행 순위 100위 안에 드는 영화들 대부분이 우리 Film Kim에서 제작된 영화로 채워져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는 영화 외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후반의 경제 위기를 기회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사인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한 Film Kim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여러 중소규모의 영화사를 병합하면서 회사의 외형을 키워나갔다.
사업 영역 또한 지속적인 확장세를 거듭해 현재 영화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 진출해 있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우리 Film Kim이 지금의 ‘빅 원(Big One)’의 위치까지 오르게 된 것이지.’
그리고 올해 Film Kim은,
또 다른 영화사 하나를 인수 합병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뉴라인시네마요?”
피터 에반스 부사장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법률 전공인 그는 회사의 법적 분쟁이나 인수 합병과 같은 문제를 전담하고 있었다.
“네. 규모가 아주 큰 영화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성적을 올린 영화를 여러 편 만들어낸 건실한 영화사입니다.”
“저도 이름은 익히 들어본 영화사입니다. 이 회사에서 만든 영화 <마스크>와 <닌자 거북이>는 흥행 면에서 꽤 성공했으니까요.”
“제가 듣기로 요즘 뉴라인시네마가 자금난에 많이 허덕이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제작에 들어간 영화의 제작비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들어서 말이죠.”
“그런데 사장님. 인수 합병을 통해 회사의 규모를 키우실 생각이라면 뉴라인시네마보다 더 큰 영화사를 물색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가령 예를 들면 20세기 폭스사나 MGM, 혹은 파라마운트 같은 회사 말입니다. 이 회사들은 모두 최근 잇단 흥행 참패로 회사의 매각을 고려할 정도로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라 우리가 쉽게 인수 합병을 진행할 수 있을 듯합니다.”
최근 들어,
할리우드 대부분 영화사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히트작은 모두 우리 Film Kim에서 거의 독점 제작하다시피 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다른 영화사들은 겨우 회사의 명맥만 유지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영화사도 인수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회사의 인수 합병은 조금 조심해서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지. 셔먼법과 같은 반독점법이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섣부른 회사의 인수 합병은 여러 가지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부사장님의 의견도 일리가 있기는 합니다. 언급하신 세 영화사는 전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사이고, 우리가 이 회사들을 합병하게 되면 안팎으로 엄청난 시너지를 창출해낼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또다시 이런 대형 영화사의 인수에 나설 경우, 정부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우리 Film Kim이 미국 영화 산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고 하니까요. 무엇보다......”
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뉴라인시네마가 최근에 제작하고 있는 영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군요.”
“뉴라인시네마가 제작하는 영화요?”
“예. 1950년대 발표된 장편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인데, 뉴라인시네마가 이번 영화의 제작에 회사의 사활까지 걸고 나섰다는군요. 하지만 현재 뉴라인시네마의 재정 상황으로는 수억 달러의 제작비가 소요되는 이번 영화의 제작이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이번 영화가 실패할 경우,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사장님의 지금 그 말씀은......”
잠시 말을 끊은 피터 에반스 부사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설마 뉴라인시네마에서 제작 예정인 그 판타지 영화의 흥행 성공을 확신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부사장님도 겪어봐서 잘 아시잖습니까? 제가 다른 사람에 비해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 꽤 높다는 사실을요.”
“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회사 직원들, 아니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이 모두 다 인정하는 사실이지요. 지금까지 사장님이 선택한 영화 시나리오는 단 한 편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영화는 지금까지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정통 판타지’라는 장르를 개척한 선구적인 영화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장님의 뜻이 정 그렇다면 제가 직접 뉴라인시네마 쪽 관계자들을 만나 한번 논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부사장님.”
***
내가 할리우드의 여러 쟁쟁한 영화사들을 제쳐두고 하필 뉴라인시네마를 눈독 들인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현재 뉴라인시네마에서 제작하고 있는 판타지 영화, 그 영화가 바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타지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반지의 제왕>이기 때문이지.’
사실 <반지의 제왕> 이전에도 판타지 영화는 종종 제작이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영화의 스케일도 그렇고 완성도도 그렇고, 관객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사 뉴라인시네마는 회사의 명운을 건 엄청난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무려 3억 달러에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간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의 제작을 시도한 것이다.
할리우드 빅식스 영화사에 비하면 중소규모 영화사에 불과한 뉴라인시네마가,
그것도 당시로서는 비인기 장르에 지나지 않는 정통 판타지 영화를 엄청난 비용을 투입해 제작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모험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뉴라인시네마의 이 선택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지. 왜냐하면 총 3편의 시리즈로 제작된 영화 <반지의 제왕>은 월드 박스 오피스 30억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추후 제작되는 판타지 영화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게 되니까.’
이처럼,
우리 Film Kim의 뉴라인시네마 인수 합병은 회사의 외연을 확장함과 동시에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대작 영화까지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었다.
252.
2000년 초.
새 밀레니엄 시대가 밝았다.
일부에서는 밀레니엄 버그가 어떻니, 지구 종말이 어떻니 하는 그럴듯한 음모론을 쏟아냈지만,
새천년의 첫 아침은 이 같은 의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척이나 맑고 화창한 날씨로 시작되었다.
“아, 지미. 안 바쁘면 나 좀 잠깐 봐요.”
회사에 출근하기가 무섭게,
내가 제임스 카메룬 감독을 사장실로 불러들였다.
현재 그는 Film Kim의 이름으로 제작하는 첫 마블 히어로 영화 <스파이더맨> 제작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무슨 일이에요, 킴?”
“영화 <스파이더맨> 촬영 준비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궁금해서요.”
“지금 각본가들과 함께 한창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원작의 기본 줄거리를 토대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해, 기존의 코믹북 팬들도 꽤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각색하고 있고요.”
“CG는요? 효과적인 CG 제작을 위해서는 ILM의 벤자민과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어 볼 필요가 있을 텐데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오후에 제가 직접 ILM으로 가서 벤자민을 한번 만나볼 생각이에요. 이번 영화는 도심의 빌딩 한가운데를 자유자재로 누비고 다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영상으로 구현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가만 보니......”
내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 영화에 임하는 지미의 자세가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요? 예전의 그 촬영장의 독불장군이라 불리던 지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 같군요. 여러 스태프와의 협업에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
“킴과 약속했잖아요. 이번 영화는 제 고집이나 주관보다 앞으로 제작될 마블 실사 영화의 세계관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제작하겠다고.”
“그랬었죠.”
“말 나온 김에 킴도 같이 가실래요? 지금 막 시나리오 회의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좋죠. 대신 끝나고 점심은 내가 살게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하하.”
***
Film Kim 소회의실.
열띤 분위기 속에서 영화 <스파이더맨>의 각본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단연 연출을 맡은 제임스 카메룬이었고.
“내 생각에는 말이죠......”
제임스 카메룬이 다른 각본가들을 향해 의견을 제시했다.
“원작에 등장하는 웹 슈터를 없애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요?”
“웹 슈터를요?”
“예. 원작 만화에 보면 주인공 피터가 자신이 얻은 능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거미줄이 발사되는 웹 슈터를 하룻밤 만에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게 좀 비현실적인 것 같아서요. 대신 자체적인 능력으로 몸에서 생체 거미줄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설정을 두는 거죠.”
“흠.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네요. 사실 고등학생에 불과한 주인공 피터가 수십 미터 이상 발사되는 거미줄을, 그것도 하룻밤 만에 만들었다는 원작의 설정은 조금 말이 안 되는 설정이기는 하죠.”
“맞아요.”
“하지만 원작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올드팬들이 그냥 있을까요? 웹 슈터는 스파이더맨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장비인데.”
“그럼 웹 슈터는 그대로 두고 생체 거미줄만 새로 도입하면 어떨까요? 우연히 거미가 몸속으로 들어간 주인공 피터가 거미와 같은 거미줄 재생 능력을 가지게 된다, 이후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 웹 슈터를 제작해서 입는다, 그리고 이 웹 슈터는 처음에는 조금 조잡한 형태를 하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교한 형태로 발전하는 거죠.”
“오!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요? 원작의 웹 슈터는 그대로 살리면서 보다 현실적인 스파이더맨의 능력을 부여하는.”
“그럴까요? 아, 그리고......”
제임스 카메룬이 주도하는 각본 회의를 지켜보며,
내가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모습은 예전의 제임스 카메룬에게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지. 원래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그냥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지, 다른 사람과의 의견 조율을 거치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흐흐.’
“아 참, 킴 생각은 어때요?”
제임스 카메룬이 갑자기 나를 향해 물었다.
“뭐가요?”
“스파이더맨이 착용하는 웹 슈터 설정 말이에요.”
“음, 제 생각에도 지미의 의견이 더 좋을 것 같네요. 사실 영화가 원작과 항상 같을 수만은 없잖아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한 판단이니, 이 정도 각색은 원작 팬들도 크게 반발하지 않을 것 같네요.”
“킴이 그렇게 말해주니 다소 안심이 되네요. 자, 그럼 다음으로 논의할 내용이......”
그렇게 한동안,
영화 <스파이더맨>의 각본 회의가 진행됐다.
내 역할은 그저 이들의 회의내용을 내가 알고 있는 전생의 기억과 비교해서 간간이 조언 정도만 해주는 것으로도 충분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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