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33화 (133/145)

# 133 < 소리로 보는 영화 (4) >

236.

영화 <고스트 하우스>의 초반부는 새집으로 이사해 온 두 부부의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함께 집안 여기저기를 꾸미는 모습,

한낮의 마당 수영장에서 서로 장난치며 즐겁게 노는 모습,

정원에서 와인을 곁들인 바비큐 파티를 하는 모습 등등이 일종의 홈 비디오 형식으로 화면에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사실 이 같은 영화의 도입부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지. 영화를 보러온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극한의 공포이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부부의 일상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러한 일상적인 모습들이 오히려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하는 이번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두 부부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지켜보면서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 영상이 연출이 아닌 진짜 영상이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객들의 이러한 믿음이 어느 정도 굳어졌을 때부터 영화는 본격적인 긴장과 스릴을 연출해낸다.

정체불명의 공포가 두 부부를 서서히 옥죄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슬래셔 무비와 같은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장면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들이 집안 곳곳에서 일어날 뿐이다.

하지만 서서히, 아주 느린 템포로 엄습해오는 공포는 지금까지 관객들이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심리적 불안감을 유발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관객들을 더 큰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여기에 화룡점정(畵龍點睛) 격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특수 음향 효과이지. 적재적소에 울려 퍼지는 사실감 있는 음향은 가뜩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관객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줄 것이니까.’

“감독님, 촬영 준비 끝났습니다.”

스태프의 말을 전해 들은 내가 곧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오늘 촬영할 장면은,

평온했던 집안 곳곳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현상들이 일어나면서 주인공인 존과 케이티가 점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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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아내 케이티의 다급한 목소리에 존이 황급히 거실로 달려 나왔다.

그의 손에는 소형 비디오카메라가 들려 있었는데, 이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케이티?”

“여기 이것 좀 봐.”

존의 시선이 케이티가 가리킨 곳을 향했다.

거실 바닥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잡다한 물건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경악하게 만든 것은,

거실 벽에 걸려 있는 두 사람의 결혼사진 액자 유리가 금이 간 채로 깨져 있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벌써 여러 번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밤마다 들려 오는 괴이한 소리와 함께 집안 물건이 이유 없이 바닥에 떨어져 있거나 부서져 있는 모습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존이 이 집으로 이사 온 이후로 단 한 순간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 놓기 위해서.

“그게 정말 사실인 걸까?”

“그거라니?”

“이 집에 악령이 깃들어 있다는 소문 말이야.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이 집을 일명 ‘고스트 하우스’라고 부른다고 하잖아.”

“말도 안 돼.”

“생각해봐, 존. 왜 이 집이 주변 시세보다 싸게 나온 걸까? 왜 이렇게 크고 좋은 집에 사람들이 살려고 하지 않는 걸까?”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어서 그런 걸 거야, 케이티.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좀 무서워, 존.”

“그럼 우리 이렇게 한번 해보자.”

“어떻게?”

“내가 오늘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해둘게. 그런 후에 녹화된 화면을 다시 돌려보면 왜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야.”

그날 이후 존은,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괴이한 현상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시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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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는,

크게 두 종류의 카메라 시점이 사용되고 있었다.

하나는 핸드헬드 기법을 이용한 것으로 주인공인 존이 직접 손에 카메라를 들고 촬영한 장면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존이 집안 곳곳에 설치한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고정된 시점의 화면이었다.

‘이 두 카메라 시점은 모두 주인공인 존과 케이티 두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의 사실감을 더해주고 있지. 특히 집안 곳곳에 설치된 고정된 시점의 카메라는 주로 어두운 한밤중의 집안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공포감을 더욱 자극하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고.’

사실,

전생에서 <파라노말 액티비티>라는 영화가 큰 흥행 성공을 거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두 카메라 시점이 적절하게 혼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영화의 모든 화면이 주인공 두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영상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더욱 사실감을 가지게 되고, 이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를 ‘진짜 다큐멘터리’ 영화로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자, 그럼 곧바로 다음 씬 촬영 들어갑니다.”

뒤이어 촬영된 장면은,

주인공 케이티가 서서히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설정상으로는 악령이 수시로 케이티의 몸을 드나들면서 남편인 존에게까지 위협을 가하면서 결국 두 사람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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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안.

존과 케이티가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 스르르륵!

갑자기 케이티가 몸을 일으켰다.

사람의 형체 정도만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어두운 방 안,

여기에 길게 풀어 헤쳐 허리까지 닿을 정도로 긴 케이티의 머리는 가뜩이나 음침한 집안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만들고 있었다.

“......”

한동안 말없이 잠든 존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케이티.

그런 그녀가 갑자기 뒤돌아서더니 방에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 걸어왔다.

동시에 어두워서 식별이 불가능했던 그녀의 얼굴 표정이 서서히 카메라에 잡히기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보통 사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과 같은 기괴한 표정으로 케이티가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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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영화 <고스트 하우스>은 할리우드 영화계에 꽤 큰 화제를 낳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대명사인 내가 불과 2만 달러의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지.’

최근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었다.

참신한 소재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할리우드 영화 제작 수준을 수십 년 이상 앞당겼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볼거리에만 치중한 상업적인 영화를 반복해서 찍어내는 바람에 전체적인 영화의 질이 낮아진 것은 물론 다른 신예 감독들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 <고스트 하우스>가 성공을 거두게 되면 나를 둘러싼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도 사라지게 되겠지. 참신한 소재만 있다면 카메라 한 대만 있어도 얼마든지 흥행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냈으니 말이야.’

영화 <고스트 하우스>가 화제가 된 또 다른 이유는 독특한 영화의 개봉 조건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 감독은 되도록 많은 개봉관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일단 개봉관이 많으면 관객들이 해당 영화를 선택할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거꾸로 제작사가 개봉관을 선택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 그것도 까다로운 ‘THX 인증’을 받은 영화관만을 한정해서 개봉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말이야.’

최근 영화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관객들의 수준도 꽤나 높아져 있었다.

영화관의 물리적 환경도 영화를 즐기는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하고, 최적의 환경을 갖춘 영화관을 찾아 영화를 관람하려는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극장주나 극장 체인 오너들의 이기심은 이 같은 관객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이번 영화 <고스트 하우스>의 개봉은 기존의 영화 관람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여기에,

영화 이후로 제대로 된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에 목말라 있던 관객들은,

이 분야의 시조나 다름없는 내가 다시금 메가폰을 잡고 같은 류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에 엄청난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기대감을 한 몸에 받으며,

영화 <고스트 하우스>는 드디어 마지막 엔딩 씬 촬영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

LA 도심 외곽의 한 주택.

영화 <고스트 하우스> 촬영을 위해 내가 특별히 임대한 집이었다.

이번 영화 촬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집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 그럼 마지막 씬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촬영할 씬은 이번 영화에서 유일하게 ‘점프 스퀘어’ 기법이 사용될 예정이었다.

공포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점프 스퀘어 기법은 사람이나 사물이 갑작스럽게 등장해 관객들을 놀래키는 영화적 기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 <고스트 하우스>는 이런 고전적인 공포 영화 기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여기에서 기인하는 심리적 공포를 관객들이 느끼게 하는 것이 이번 영화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제일 마지막 장면에는 이런 점프 스퀘어 기법을 한번 사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관객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등장하는 이 장면은 다른 공포 영화의 그것보다 훨씬 더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카메라 스탠바이, 레디, 액션!”

메가폰을 타고 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본격적인 영화의 엔딩 씬 촬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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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반복되는 아내 케이티의 이상 행동들.

존은 처음에는 단순한 몽유병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그것이 아니었다.

집안 어딘가에 숨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악령.

그 악령이 케이티의 몸에 빙의해 밤마다 그녀의 몸을 조종했던 것이다.

물론 존은 아직 그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 스르륵!

깊은 밤,

케이티가 또다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침실에 설치된 카메라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화면에 비춰지는 그녀의 얼굴은 역시나 무척 기괴했다.

뒤이어,

- 스윽!

남편 존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촬영된 카메라를 통해 매일 밤 케이티가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한 존은 그날 밤 몰래 그녀의 뒤를 따라가 상태를 확인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 슬금, 슬금.

존이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마찬가지로 침실 카메라를 스쳐 지나가는 그의 표정은 긴장으로 잔뜩 굳어져 있었다.

최대한 케이티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그녀의 뒤를 쫓아가던 존.

그런데.

- 콰앙!

출입문을 나서던 존의 몸이 갑자기 방안으로 튕겨져 들어왔다.

이와 동시에 기괴한 표정의 케이티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존이 쓰러져 있는 카메라 근처로 다가왔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듯이 순식간에 카메라와의 거리를 좁히면서.

그리고 다음 날.

집안으로 들이닥친 경찰들이 발견한 것은 온몸이 난도질당한 채로 처참하게 죽어 있는 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내 케이티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집에 살고 있지 않았던 사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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