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 소리로 보는 영화 (3) >
234.
영화 <고스트 하우스>의 촬영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갔다.
최소한의 배우와 세트장, 그리고 장비가 투입된 저예산 영화이기 때문이다.
‘마치 전생에서 대학 졸업작품을 찍는 느낌이군. 그때도 최소한의 장비로 감독, 촬영, 조명, 편집 구분 없이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했었지, 흐흐.’
대규모의 자본과 기술이 동원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찍는 것만큼이나,
이런 형태의 저예산 영화를 찍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일전에 영화 으로 세운 제작비 대비 가장 높은 흥행 수익을 올린 영화 1위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할 수 있다는 것이지. 이번 영화는 불과 2만 달러의 초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이지만, 전생에서 이미 흥행이 검증된 영화적 기법을 도입한 영화니까 말이야.’
영화 <고스트 하우스>는 집 안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을 파헤쳐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공포 영화답게 90분의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공포감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하지만,
‘사이코나 살인마, 악령이 나와 주인공을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일반적인 공포 영화와는 전혀 다르지. 일전에 내가 만든 영화 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도 인간의 말초적인 심리적 공포를 자극하는 영화이니까 말이야.’
무엇보다 이번 영화는,
청각을 통해 관객들의 공포심을 자극한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최근 스카이워커 사운드에게 개발한 음향 시스템인 THX였다.
즉,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입체적인 사운드는 관객들을 마치 영화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고스트 하우스 안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그 때문에 관객들이 느끼는 심리적 공포는 더욱 극에 달하게 된다.
‘눈’이 아닌 ‘소리’로 보는 영화.
이것이 바로 이번 영화 <고스트 하우스>의 핵심 컨셉이었다.
***
“자, 그럼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영화 <고스트 하우스> 촬영 첫날.
카메라 앞에 선 두 주인공 배우를 향해 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치열한 오디션을 뚫고 선발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신인인지라 두 사람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감독인 나는 그들의 이런 긴장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첫 촬영이라고 너무 긴장하지는 말고요, 아까 리허설 때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요. 알겠죠?”
“네, 감독님.”
“좋아요, 그럼 시작합시다. 카메라 스탠바이, 레디, 액션!”
메가폰을 타고 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대망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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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치익!
잠깐의 화면 노이즈 현상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아름다운 2층 저택 하나가 화면에 나타났다.
주인공인 존과 케이티의 새 보금자리가 될 집이었다.
“뭐야, 그게?”
케이티의 물음에 존이 대답했다.
“비디오카메라.”
“카메라?”
“그래. 오늘이 우리가 새집에 처음 입주하는 날이잖아. 이런 역사적인 장면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을 수 없지.”
“못 말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마추어 사진 기사인 존은 연애 시절부터 두 사람의 중요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추억으로 남겨왔다.
“그나저나, 이 집......”
존이 케이티를 향해 말했다.
“정말 싸게 잘 산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주변 시세보다 무려 절반이나 싸다니.”
“혹시 무슨 하자라도 있는 거 아니야?”
“하자라니?”
“비만 오면 물이 샌다든지, 아니면 어딘가 심하게 부서져 있다든지.”
“에이, 설마. 그리고 내가 부동산 중개인이랑 같이 꼼꼼히 둘러봤는데 별다른 이상은 없었어. 아마 시내와 조금 동떨어진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럴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구석구석 카메라로 잘 찍어둬야겠어. 그래야 나중에 문제 생기면 증거로 쓸 수 있을 테니까.”
존이 손에 든 카메라를 들고 집안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된 흔들리는 카메라의 시점은 집 안 곳곳의 풍경을 더욱 사실감 있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괜찮은데?”
“그러게.”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 우리가 가진 돈으로 어디 가서 이런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겠어?”
“맞아.”
“그럼 우리 새집에 들어온 기념으로......”
존이 케이티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음흉한 눈빛을 보냈다.
케이티 또한 싫지 않은 표정이었고.
“어때, 케이티?”
“음, 나 아직 정리할 게 많은데......”
“천천히 하면 돼지, 뭐. 앞으로 우리 계속 여기서 살 텐데.”
“사랑해, 존.”
“나도 사랑해, 케이티.”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던 존과 케이티가 이내 침실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주방 테이블에 놓인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촬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 쿵.
갑자기 거실 한쪽에 매달려 있던 액자가 바닥에 떨어지며 큰소리가 났다.
속옷 차림으로 황급히 거실로 달려 나온 존.
그런 존의 뒤로 케이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존?”
“아, 별거 아니야. 그냥 벽에 걸린 액자가 바닥에 떨어졌어.”
“못을 좀 튼튼하게 박을 걸 그랬나?”
“그러게.”
다시 침실로 들어가는 존.
뒤이어 두 사람이 격정적인 애정 행각을 벌이는 소리가 거실 밖으로 새어 나왔다.
물론 카메라가 주방에 놓여진 탓에 화면은 평범한 거실 풍경만을 비추고 있었고.
- 띠띠띠.
잠시 후,
카메라 화면에 떠 있던 배터리 표시가 깜박이더니, 곧바로 화면이 검게 변했다.
배터리 방전으로 카메라가 꺼지면서 다음 화면으로 전환되는 영화 상의 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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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첫 촬영이 끝나고,
내가 두 명의 주인공 배우와 함께 화면을 모니터하기 시작했다.
이번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을 이용한 영화이다.
따라서 사실적인 연기와 더불어 다소 아마추어적인 화면 연출이 필수였다.
이에 나는 무명의 배우를 주인공으로 선택했고, 카메라 구도도 일부러 고정된 시점을 채택했다.
더불어 후반 작업에서는 실제 비디오카메라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화면 효과들,
예를 들면 화면 한쪽에 날짜와 시간, 배터리 용량 등을 표시해 관객들이 마치 실제 기록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도록 할 예정이었다.
“좋네요. 화면 구도도 그렇고, 두 사람의 연기도 그렇고.”
“정말이에요, 감독님?”
나의 칭찬에 영화의 주연을 맡은 두 배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네. 그럼 곧바로 다음 씬 촬영에 들어가죠. 내가 스태프들과 함께 촬영 준비하는 동안 두 사람은 다시 한번 더 대본을 점검하도록 해요. 영화의 특성상 대다수 씬이 원테이크로 촬영이 이루어지는 만큼 대사 하나하나도 실수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네, 감독님.”
235.
폴리 아티스트(Foley Artist).
영화의 음향 효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직업을 말한다.
사람 목소리와 음악을 제외한 영화의 모든 소리는 이들의 손을 거쳐 재창조된다.
폴리 아티스트라는 명칭은 할리우드 효과음의 전설로 불리는 ‘잭 폴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930년대부터 활동한 그는 발소리만으로도 캐릭터를 표현해낼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에 당시 할리우드 유명 영화의 효과음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 제작이 이루어지곤 했다.
‘이번에 내가 제작하고 있는 영화 <고스트 하우스>는 이 같은 폴리 아티스트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시되는 영화이지. 전통적인 공포 영화와 달리 이번 영화는 오직 ‘소리’로만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선사하는 영화니까 말이야.’
영화 <고스트 하우스>는 시작 장면부터 소리로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갑작스럽게 떨어진 거실의 액자 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는 영화가 진행되어 갈수록 점점 더 강도가 높아진다.
시도 때도 없이 집안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괴이한 소리는 불안에 떠는 주인공만큼이나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공포감을 더욱 심화시킨다.
특히나 이런 일이 사람들이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 믿는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공포감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했다.
‘영화 <고스트 하우스>는 기존의 공포 영화와 달리 유령, 살인마와 같은 시각적 공포를 유발하는 존재가 거의 등장하지 않지. 시각적 공포 유발 장치는 기껏해야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겨우 한 장면 정도 등장할 뿐이니까.’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관객들의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였다.
왜냐하면 공포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불안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90분의 러닝타임 동안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오로지 소리로만 표현되는 공포에 관객들이 완전히 사로잡히게 만드는 것이 이번 영화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지.’
이에 나는,
스카이워커 사운드에 소속된 음향 전문가(폴리 아티스트)들과 함께 효과적인 음향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어때? 촬영은 잘 돼 가고 있어?”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나를 향해 조지 루이스가 물었다.
“물론이죠. 빠르면 아마 다음 주 안으로 모든 촬영을 끝마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나 빨리? 이번 영화 크랭크 인 한 지 아직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잖아?”
빠르긴.
이번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불과 18시간 만에 모든 촬영을 끝마쳤는데.
한정된 배우와 제한된 공간 덕분에,
이번 영화는 2주 정도면 충분히 모든 촬영을 끝마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것도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파라노말 액티비티>보다 훨씬 더 완성도 있는 형태로.
“말했잖아요. 이번 영화, 실제 촬영은 보름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긴. 출연 배우라고는 고작 두 명에, 그것도 집안에만 모든 촬영이 이루어지니 시간이 오래 걸릴 것도 없겠지.”
“대신 후반 작업에 좀 더 심혈을 기울일 생각이에요. 특히 음향 부분은 특히나 더 신경을 써서요.”
“우리 회사의 음향 효과 전문가들이 많이 도움이 될 거야. 무엇보다 이들은 THX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이번 영화의 음향 제작에 있어 가장 적임자라고 할 수 있지.”
“안 그래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그보다 조지, 극장주들 반응은 어때요? THX 시스템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이번 영화 <고스트 하우스>는,
스카이워커 사운드가 개발한 음향 표준인 THX를 북미 극장가에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영상 기기의 발전과는 달리 아직 극장의 음향 시스템은 1980년대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그 때문에 관객들도 제대로 된 영화의 음향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조지 루이스와 나는 이번 영화의 개봉 조건으로 극장주들에게 THX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기존의 낙후된 극장의 음향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그게......”
조지 루이스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직 100여 개 정도의 개봉관밖에 확보하지 못했어. 극장주들이 대부분 다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서 말이야.”
“그래요?”
“응. 극장 음향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돈이 제법 들어가는 일이잖아? 공사 기간 동안 영화 상영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손해도 감수해야 하고. 그래서인지 새로 만들어지는 극장들만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고, 기존 극장주들은 대부분 우리 제안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어.”
예상했던 일이기는 했다.
우리 Film Kim이 할리우드 영화계, 특히 극장주들에게 있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음향 시스템의 전면적인 교체를 쉽사리 받아들일 극장주들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불과 몇만 달러의 제작비밖에 들어가지 않은 저예산 영화의 개봉을 위해 큰돈이 들어가는 설비 투자를 강요하는 것은 분명히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번 영화가 개봉되면 극장주들의 태도도 분명 달라지게 될 거야. 이번 영화를 통해 음향의 중요성을 경험하게 된 관객들은 앞으로도 계속 ‘THX 인증’을 받은 영화관을 우선적으로 방문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게다가 추후 제작되는 Film Kim의 모든 영화의 개봉 조건 또한 ‘THX 인증’을 받은 영화관으로 한정하게 되면 극장주들도 분명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들이 소유한 극장의 음향 시스템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야,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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