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31화 (131/145)

# 131 < 소리로 보는 영화 (2) >

231.

LA에 위치한 스카이워커 사운드.

루카스 필름의 자회사인 이곳은 TV나 영화의 음향 효과 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오늘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스카이워커 사운드에서 개발한 음향 표준 규격인 ‘THX’를 몸소 체험해보기 위함이었고,

또 하나는 북미 극장가에 ‘THX 인증 제도’를 보급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영화 <고스트 하우스>의 시나리오를 조지 루이스와 함께 검토하기 위함이었다.

“킴, 왔어?”

사무실로 들어서는 나를 조지 루이스가 반갑게 맞았다.

“별일 없으시죠?”

“별일 있을 것이 뭐 있나. 그보다 시나리오는?”

“여기요.”

내가 시나리오 책자 하나를 조지 루이스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시나리오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새로운 음향 시스템인 ‘THX’부터 한번 체험해볼 테야?”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직접 시스템을 경험해봐야 영화 제작에 있어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수 있을 테니까요.”

“좋아. 그럼 날 따라오도록 해.”

조지 루이스가 나를 회사 내의 영사실로 안내했다.

실제 영화관을 축소해 놓은 듯한 모양의 영사실에는 일반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스피커들이 여러 장소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독특한 특징이었다.

“THX의 핵심은 바로 스피커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지.”

“스피커 시스템요?”

“그래. 현재 북미 대다수 극장은 알텍 A4 스피커를 중심으로 배우들의 대사를 극장 안에 골고루 전달하기 위해 주로 중음 대역이 강조되고 있지. 반면 저음과 고음은 매우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고. 게다가 대음량 사용 시에는 왜곡률이 굉장히 높고, 또 위치에 따라 음압이 크게 달라지는 문제점도 발생하고 있지.”

“잘은 모르겠지만, 현재의 극장 음향 시스템으로는 영화의 사운드를 관객들에게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다는 뜻이군요?”

“맞아.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는 별도의 THX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조지 루이스가 ‘THX’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비전문가인 나는 그의 말을 절반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영화판에서 굴러먹은 통박이 있는지라,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마디로 말해 ‘THX’는 스피커 시스템의 재배치를 통해 최적의 음향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거군요?”

“맞아. THX 시스템은 우리 회사의 기술자가 모든 기기를 설치한 후 소음, 주파수 등을 측정해서 적정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공식 THX 영화관으로 인증을 해주는 제도이지. 이 때문에 THX 인증을 받은 영화관은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동일한 음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백 마디 말보다 한번 경험해보는 것이 더 낫다고, 일단 한번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좋아, 그럼 내가 <스페이스 워즈>의 일부 장면을 재생해볼 테니까 기존의 영화관과 느낌이 얼마나 다른지 한번 경험해보라고.”

***

확실히,

THX 시스템은 기존의 영화관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운드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측면에서 후방으로 돌아 나오는 소리와 정면에서 바로 뒤를 관통하는 소리 등 사운드가 마치 머리 위를 지나가는 것과 같은 이동감을 보다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따라서 만약 이런 음향 시스템이 실제 극장에 적용된다면,

‘관객들은 마치 실제 영화 촬영 장소에 있는 것과 같은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가 있겠군.’

“자, 그럼......”

조지 루이스가 나를 향해 말했다.

“이번에는 킴이 쓴 시나리오를 한번 검토해보도록 할까?”

“그래요, 조지.”

“장르는 공포고, 기법은 페이크 다큐 형식을 취할 예정이라고?”

“맞아요. 소리로 관객들을 영화에 빠져들게 만들기에는 공포 영화만큼 좋은 장르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영화의 사실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기법이기도 하고요.”

“그렇긴 하지.”

한참 동안 주의 깊게 시나리오를 읽어가던 조지 루이스가 다시 나에게 말했다.

“시나리오의 전반적인 구성은 나쁘지 않군. 꽤나 흥미로워. 역시 킴이야.”

“다행이네요.”

“제작비와 제작 기간은 얼마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제작비는 2만 달러, 제작 기간은 프리와 포스트 프로덕션을 모두 합쳐 한두 달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이, 이만 달러? 게다가 제작 기간도 불과 한두 달이라고?”

조지 루이스가 몹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만 달러는 한화로 약 2천만 원의 초저예산이었고, 제작 기간도 일반적인 영화 촬영 기간의 10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는 실험적인 성격의 저예산 영화라서요. 게다가 주연 배우 두 명과 촬영에 필요한 세트장 하나면 모든 준비가 끝이고요.”

“아무리 그래도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감독인 킴이 불과 2만 달러의 제작비로 영화를 만들다니......”

“요즘 언론에서 그런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제임스 킴 감독은 CG와 천문학적인 제작비로 밀어붙이는 감독이라고.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 말이 틀렸다는 것도 한번 증명해 보이려고요.”

“허 참, 킴은 언제나 내 예상을 한참이나 빗나간다니까. 그래서, 촬영은 언제부터 시작할 거야?”

“다음 주부터 당장요.”

“그렇게나 빨리?”

“네. 그러면 공포 영화의 성수기인 여름 즈음이면 충분히 극장 개봉을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좋아, 그럼 난 극장주들을 만나 THX가 얼마나 효율적인 음향 시스템인지 적극적인 설득에 나서도록 하지. 킴이 이번에 제작하는 영화 <고스트 하우스>의 취지도 적극적으로 설명하면서 말이야.”

232.

영화 <고스트 하우스>의 촬영을 며칠 앞두고,

내가 미국 최대의 완구 회사인 해즈브로 사를 찾았다.

현재 우리 Film Kim과 해즈브로는 세계 최초의 실사 변신 로봇 영화를 만들기 위한 대규모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첫 번째 단계로 기존에 판매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완성도 있는 로봇 장난감을 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킴이 연락도 없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사무실로 들어서자,

해즈브로 사의 사장인 앨런 브릭스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았다.

“트랜스포머 디자인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마침 근처에 볼일도 있고요.”

“안 그래도 완성된 디자인 시안을 Film Kim에도 발송할 예정이었습니다. 이왕 오신 김에 직접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앨런 브릭스의 지시를 받은 디자인 팀 직원이 곧바로 사장실로 디자인 시안들을 들고 왔다.

한참 동안 이를 자세히 살펴보던 내가 말했다.

“확실히 기존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에 비해서는 한층 퀄리티가 나아졌군요.”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로봇에서 다시 자동차로 변신이 가능한 형태로 제작되어야 하다 보니, 디자인 팀에서도 고충이 많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기존 제품들을 만들면서 쌓인 많은 노하우가 있으니 조만간 양산 가능한 모델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아, 그리고......”

앨런 브릭스 사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Film Kim에서 파견한 직원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3D 모델링 기법으로 가상의 공간에서 디자인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더군요.”

“그래픽 디자인 기술 쪽은 현존하는 회사들 가운데는 우리 ILM이 최고라고 자부할 만하니까요.”

“본격적인 영화 제작은 언제쯤 가능하겠습니까?”

“지금 할리우드의 유명 각본가들과 함께 한창 진행 중에 있습니다. 변신 로봇이 중심이 되는 영화라고 해서 단순히 볼거리에만 치중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화려한 영상에, 탄탄한 스토리까지 갖춘 완벽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이번에 제가 세운 목표입니다.”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감독인 킴이 직접 나선 작품이니 어련하겠습니까, 하하하.”

“아, 그리고......”

내가 책상 위에 놓인 디자인 시안 가운데 두 장을 뽑아 앨런 브릭스 사장에 내밀며 말했다.

“디자인 팀에 지시해서 이 두 로봇 캐릭터는 더욱 디테일에 신경을 써달라고 해주세요.”

“이번 영화의 중심이 될 로봇 캐릭터인가 보죠?”

“예. 스토리상 하나는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캐릭터이고, 또 하나는 쾌활하고 코믹한 성향을 가진 캐릭터로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앨런 브릭스 사장이 내가 내민 두 장의 디자인 시안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전생에서 내가 본 영화 <트랜스포머>의 중심 캐릭터인 ‘옵티머스 프라임’과 ‘범블비’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233.

1996년 늦은 봄.

나는 기존의 내 영화 제작 스타일과 전혀 다른 실험적인 영화 한 편의 제작에 돌입했다.

일명 ‘B급 영화’라 불리는 저예산 영화였다.

할리우드에서는 유명 배우와 스태프,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서 만드는 A급 영화와 무명 배우가 출연하는 저예산의 B급 영화가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다.

특히 최근에는 첨단 기술과 자본을 쏟아부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에 B급 영화는 갓 영화판에 뛰어든 초보 감독이나, 규모가 작은 영화 제작사의 전유물이 되어 아주 극소수만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블록버스터 영화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내가 불과 2만 달러 안팎의 저예산 B급 영화의 제작에 나선다니, 우리 회사 직원이나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에게는 모두 의외의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영화 제작에 있어 막대한 제작비와 이를 바탕으로 한 화려한 특수효과 기술은 확실히 영화의 흥행과 질적 수준을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 하지만 저예산으로도 충분히 좋은 영화를 만든 사례는 얼마든지 있어. 특히 흥행의 측면에서도 제작비의 수백 배가 넘는 초흥행 영화가 탄생하기도 했었지.’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가장 적은 예산을 들여 만든 영화는 1905년 세실 헤프워드 감독이 만든 <유랑자에 의한 구출>이다.

이 영화는 단돈 37달러 40센트로 만들어진 초저예산 영화이다.

하지만 흥행의 측면에서 그리 높은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실제 저예산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흥행 성적을 올린 영화는 단연 <파라노말 액티비티>라 할 수 있다.

오렌 펠리 감독이 15,000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이 영화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주제로 한 공포 영화로 북미 지역에서만 1억 달러, 월드 박스 오피스 성적으로는 2억 달러에 가까운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제작비 대비 무려 2만 배의 흥행 성적을 올린 것이다.

‘이번에 내가 만들 영화 <고스트 하우스>도 <파라노말 액티비티>와 비슷한 컨셉을 가진 영화라고 할 수 있지. 공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점프 스퀘어 기법조차도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음향 효과를 이용해 관객들이 엄청난 심리적 공포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이니까 말이야.’

※ 점프 스퀘어: 사람이나 사물이 갑자기 튀어나와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기법

그리고,

만약 이 같은 내 의도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면,

‘이번 생에 2만 배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며 역대 제작비 대비 흥행 수익이 가장 높은 영화로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되는 영화는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아닌 내가 만든 <고스트 하우스>가 될 수도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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