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28화 (128/145)

# 128 < 세기의 재난 로맨스 영화 <타이타닉> (6) >

226.

영화 제작은 사전 준비 단계에 해당하는 프리 프로덕션, 실제 촬영이 이루어지는 프로덕션, 그리고 후반 작업이 이루어지는 포스트 프로덕션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CG가 영화에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CG 작업을 모든 촬영이 끝난 후인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러닝타임 전체를 통틀어 CG가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몇 분 내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CG의 비중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영화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고, 이에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촬영과 CG 작업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촬영 기간보다 CG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영화 <타이타닉>도 마찬가지였다.

로사리토 해안의 세트장에서 촬영된 영상은 최종 확인 과정을 거쳐 곧바로 ILM의 전담팀으로 넘겨졌고, 여기서 스토리보드에 따른 CG 작업이 이루어졌다.

물론 CG 작업 전 영상이나 CG 작업 후 영상 모두 제작자인 나와 제임스 카메룬의 최종 컨택을 받아야만 했고.

“이번 장면은 초반의 로맨스적인 영화의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며 재난 영화의 성격으로 전환되는 장면이지.”

영사실에 홀로 앉아,

방금 막 CG 작업을 끝낸 영상을 지켜보던 내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은 순항하던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충돌하며 침몰하기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특히 이 장면은 생존자들의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철저한 고증 과정을 거쳐 매우 정확하게 재현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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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추워.”

망루에 선 선원 두 명이 몸을 벌벌 떨며 어두운 밤바다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들의 임무는 혹시 모를 암초나 빙산의 출현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 저게 뭐야!”

“맙소사!”

선원 중의 하나가 황급히 망루에 매달린 종을 쳤다.

그들의 눈앞에,

커다란 빙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빙산이다! 전방에 빙산이 나타났다!”

망루의 연락을 받은 조타실 선원들이 황급히 키를 돌려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엔진실에서도 배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 쿵!

- 콰콰콰쾅!

선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이타닉호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빙하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다.

뒤이어 파손된 배의 이곳저곳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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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갑작스러운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목소리에 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 지미.”

“촬영본 확인하고 있었나 보군요?”

“네. CG가 자연스럽게 아주 잘 나온 것 같아 다행이네요.”

“ILM의 기술력이야 할리우드 아니, 세계 최고 수준이니까요.”

“내가 볼 때 이번 영화는 화려한 CG 기술보다 이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한 지미의 센스가 더욱 돋보이는 것 같아요. 영화에 사용된 대다수 특수효과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자연스러운 플롯 전개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니까요.”

영화 <타이타닉>은 엄청난 특수효과 기술이 사용된 영화이다.

최첨단 CG 기술에서부터 모션 캡쳐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특수효과 기술이 총집대성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 같은 사실을 잘 눈치채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번 영화 <타이타닉>의 특수효과는 관객들이 특수효과임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사실적인 특수효과를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필수도구로서 특수효과가 사용되고 있었다.

이는 그동안의 특수효과 역사를 뒤엎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시도였다.

‘제임스 카메룬의 특수효과 사용 센스가 가장 돋보이는 장면이 바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화면이 디졸브 되는 장면이지. 영화 <타이타닉>은 과거와 현재 시점을 수시로 오가는 매우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그는 이러한 시간 변화를 특수효과를 이용해 아주 자연스러운 시각적 연출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말이야.’

내가 머릿속으로 제임스 카메룬의 이같은 특수효과 연출 능력이 돋보이는 대표적인 장면들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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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랑하는 연인 잭 앞에,

벌거벗은 나신으로 소파에 몸을 누이고 있는 로즈.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잭은 부지런히 캔버스로 옮겨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카메라가 그녀의 눈을 향해 점점 클로즈업 되기 시작했다.

뒤이어 화면을 가득 채운 그녀의 눈에 점점 주름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나이 든 로즈,

다시 말해 타이타닉 침몰 이후 수십 년이 지난 현재 시점의 로즈의 모습으로 변화됐다.

비록 늙고 병든 현재의 로즈였지만,

과거 잭과 함께 했던 시간의 설레임과 추억은 그대로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 이 장면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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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로즈의 눈과 현재의 로즈의 눈이 오버랩 되는 이 장면은 고난이도의 특수 CG 효과 기술이 사용된 장면이지. 배역을 맡은 각기 다른 두 배우의 눈을 이질감 없이 표현하는 일명 모프(Morph) 작업은 숙련된 기술을 가진 ILM의 프로그래머들에게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고, 그 때문에 이 한 장면에 소요된 시간만도 수개월이 소모되었지.’

※모프(Morph): 하나의 객체를 다른 객체로 변화시키는 컴퓨터 그래픽 작업

뒤이어 제임스 카메룬의 특수효과 연출 능력이 돋보이는 또 하나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특히 이 장면은 영화 <타이타닉>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장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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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쏴아아아!

타이타닉호가 북대서양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배의 갑판 앞쪽 난간에는 주인공 잭이 우수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 왔어요, 잭.”

어느 틈엔가 잭의 뒤로 다가온 로즈.

그런 그녀를 돌아보며 잭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손 이리 줘봐요.”

로즈가 내민 손을 부드럽게 잡아끌며 잭이 다시 말했다.

“눈을 감아요. 그리고 이쪽 난간으로 올라와요.”

로즈가 난간 위로 올라서자, 잭이 그녀의 뒤로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는 손으로 그녀의 양팔을 넓게 벌렸다.

“이제 눈을 떠요.”

“날고 있어요, 잭! 내가 날고 있다고요!”

작렬하는 석양을 뒤로한 채,

거대한 여객선 타이타닉의 가장 선두에 양팔을 활짝 펼친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창공을 가로지르는 자유로운 한 마리의 새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사랑해요, 잭.”

“사랑해요, 로즈.”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

그런데.

화면이 서서히 바뀌면서 북대서양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던 타이타닉호는 심해 깊숙이 침몰한 유령선 같은 타이타닉의 모습으로 디졸브(Dissolve) 됐다.

※ 디졸브(Dissolve): 한 화면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다른 화면이 나타나는 장면 전환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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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내가 다시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물었다.

“이번 영화에 삽입될 OST 작업도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면서요?”

“예. 어제 제임스 호너 음악 감독이 데모 테이프를 가져왔는데, 퀄리티가 상당하더라고요. 이번 영화의 분위기와 딱 들어맞는 훌륭한 음악이에요.”

제임스 카레문의 말에 내가 속으로 빙긋 웃음을 지었다.

아직 듣지는 않았지만,

그가 나에게 들려줄 곡이 어떤 곡인지를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으로 무척이나 유명한 음악이지. 영화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이 음악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말이야.’

영화 <타이타닉>의 음악은 천부적인 영화음악 작곡가인 제임스 호너가 만든 곡이었다.

로맨틱한 분위기의 이 노래는 영화의 흥행과 함께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그 덕분에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 전생의 내 기억에 따르면 제임스 카메룬은 이 음악을 가사 없는 연주곡으로만 삽입하기를 희망했는데, 작곡가인 제임스 호너의 계속된 권유로 힘들게 보컬이 들어가게 되었지. 물론 이는 신의 한수라고 할 수 있는 선택이었고.’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제임스 카메론에게 말했다.

“그럼 어디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래요, 킴.”

제임스 카메룬이 CD 하나를 오디오에 넣고 재생했다.

그러자,

전생에서 수십, 아니 수백 번도 넘게 들어 너무나도 귀에 익숙한 노래 하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저기, 지미.”

한참 동안 음악을 듣고 있던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말했다.

“뭔가 좀 허전한 것 같지 않아요?”

“허전하다니, 뭐가요?”

“음악 자체는 훌륭한데, 뭔가 좀 심심한 느낌이 없잖아 있어서요.”

“글쎄요, 전 괜찮은 것 같은데요?”

“보컬이 들어가는 건 어때요?”

“보컬요?”

“예. 주인공인 잭과 로즈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진솔하게 가사로 표현한 뒤 유명 보컬리스트를 섭외해서 녹음을 하는 거죠. 그럼 영화의 감성이 더욱 풍부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될 것 같아서요.”

“글쎄요, 전 너무 상업적인 느낌이 들 것 같아서 별로인데......”

살짝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제임스 카메룬.

하지만 나는 이번 영화의 투자자이자, 제작자이다.

더불어 지금까지 연출한 모든 영화를 예외 없이 흥행시킨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에는 제임스 카메룬도 쉽사리 반대하고 나설 수만은 없었다.

“킴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하지만......”

내가 빙긋 웃으며 제임스 카메룬의 말을 잘랐다.

“지미가 듣고 아니다라는 판단이 들면 나도 더 이상 고집하지 않을게요. 그러니 이후 작업은 전적으로 나를 믿고 한번 맡겨봐요.”

“알겠어요, 킴.”

***

그로부터 며칠 뒤,

영화사 Film Kim 내에 설치된 음악 스튜디오.

한 여성 가수가 엄청난 성량을 뽐내며 노래 한 곡을 녹음하고 있었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가 될 이라는 노래였다.

“Every night in my dreams, I see you, I feel you~~”

(매일 밤 꿈속에서 그대를 보고, 그대를 느끼죠.)

“Near, far, wherever you are, I believe that the heart does go on~”

(가까이에, 멀리에, 그 어디에 있든지 당신의 그 마음은 계속되리라 믿어요.)

.

.

.

셀린 디옹의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녹음실 가득 울려 퍼졌다.

노래를 듣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스태프들은 왜 그녀가 당대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라 불리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최고의 영화음악 작곡가 제임스 호너의 명곡 ,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 바로 셀린 디옹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지. 만약 그녀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이 노래는 절대 세계적인 명곡이 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해.’

제임스 카메룬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보컬 없이 연주만으로 이루어진 곡을 영화에 삽입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그였다.

하지만 셀린 디옹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제임스 카메룬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연주로만 이루어진 것보다 보컬이 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영화의 감성을 풍부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의견이 옳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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