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 세기의 재난 로맨스 영화 <타이타닉> (3) >
“있잖아요, 조지.”
내가 조지 루이스를 향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방금 헤즈브로 사에서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했어요?”
“맞아.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 관련 장난감도 더불어 잘 팔려나가게 될 테니까. 일종의 마케팅 수단이라고 할 수 있지.”
“실사로 만들면요?”
“응?”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사로 만들면 어떻겠냐고요. 그것도 어린이가 아닌 성인들까지 대상으로 해서요.”
“뭐?”
조지 루이스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로봇을, 그것도 형태가 자유자재로 변하는 ‘변신 로봇’을 주제로 한 영화는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었겠지. 이런 류의 영화는 정교한 CG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 제작이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전생의 내 기억에 따르면,
영화 <트래스포머>가 극장에서 개봉된 것은 2007년 무렵이었다.
반응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어린 시절 상상으로만 그려오던 거대 로봇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정교한 형태로 변신하는 모습에 관객들은 엄청난 충격을 느꼈고, 이에 환호했다.
그 결과,
‘영화 <트랜스포머>는 월드 박스 오피스 7억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 3개 부문의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었지.’
“그러니까 지금 킴의 말은......”
조지 루이스가 살짝 흥분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헤즈브로 사에서 제작할 예정인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형태로 제작하겠다는 거야?”
“네. 그래서 말인데요, 조지. 제가 헤즈브로 사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게 연결을 좀 시켜주시겠어요?”
“그건 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가능은 하겠어? 거대 로봇을, 그것도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신시킬 수 있는 로봇을 화면으로 구현해내는 일이 말이야.”
“현재 우리 ILM이 가진 기술력이면 아마 충분히 가능할 거예요.”
물론 상황에 따라 전생의 그것보다 완성도가 다소 떨어질 수는 있겠지만,
‘최초의 거대 변신 로봇 영화’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좋아, 그럼 내가 지금 당장 헤즈브로 사 관계자들과 미팅 약속을 잡아보지. 대신에......”
조지 루이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 영화도 내가 같이 참여하는 거야, 킴.”
“물론이죠. SF 영화계의 거장인 조지가 도와주면 이번 영화 제작이 훨씬 더 수월해질 수 있을 거예요.”
221.
1994년 여름.
영화사 Film Kim이 투자, 제작, 배급을 맡은 영화 <타이타닉>이 크랭크 인 됐다.
이번 영화의 제작은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된 상태에서 진행됐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다른 회사에서 어떤 영화를 만든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곧바로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만들어서 미리 초를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영화의 제목도 ‘플레넷 아이스’라는 가짜 이름을 붙여서 촬영 기간 내내 사용했다.
‘물론 영화의 스케일이 워낙 커서 다른 영화사가 이를 흉내내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야.’
가장 먼저 촬영된 장면은 타이나닉호의 첫 출항 장면이었다.
사실 원래 제임스 카메룬이 쓴 시나리오에는 오프닝 장면으로 대서양 바다 한가운데 가라앉아 있는 실제 타이타닉호의 모습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실화를 표방하고 있는 영화다운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군. 전생에서 내가 본 영화 <타이타닉>의 첫 장면은 분명 많은 사람의 환호 속에서 타이타닉이 첫 출항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제임스 카메룬이 쓴 시나리오 원본에는 이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것이 말이야.’
아마도,
이 장면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나 다른 누군가의 건의로 촬영 중간에 수정이 이루어진 듯했다.
‘안 되지. 타이타닉의 화려한 첫 출항 장면은 뒤이어 등장하는 침몰한 타이타닉의 모습과 묘하게 오버 랩 되면서 이번 영화의 의미를 더욱 크게 부각시키는 중요한 영화적 장치 가운데 하나니까.’
영화 <타이타닉>의 크랭크 인을 며칠 앞두고,
내가 제임스 카메룬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저기, 지미.”
“네, 킴.”
“이번 영화의 오프닝 장면 말이에요, 내 생각에는 조금 수정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요?”
“원래 영화 시나리오에는 바다에 침몰한 실제 타이타닉호를 탐사하는 장면이 가장 먼저 등장할 예정이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킴과 내가 몇 달을 고생해가며 그 장면을 촬영했잖아요.”
“내 생각에는 그 장면 앞에 타이타닉호의 첫 출항 장면을 먼저 넣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첫 출항 장면을요?”
“예. 그것도 수많은 사람의 환호를 받으며 멋지게 항해에 나서는 모습을요. 그런 직후 곧바로 바다 깊숙이 침몰한 타이타닉의 모습을 연달아 보여주는 거죠.”
뛰어난 영화적 감각을 가진 제임스 카메룬 답게,
곧바로 내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그가 자신의 무릎을 치며 말했다.
“아!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요, 킴. 영화의 시작 부분에 대서양 바다 한가운데 누워있는 유령선 같은 모습과 대비되는 찬란했던 과거의 타이타닉 모습을 보여주면 이 두 장면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영화의 메시지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출항 장면은 뉴스 릴과 같은 다큐멘터리적인 효과를 가미해서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관객들이 훨씬 더 사실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역시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감독인 킴다운 발상이네요. 그럼 아직 촬영까지 며칠 시간이 남아 있으니, 곧바로 스크립트 수정 작업에 들어가도록 할게요.”
그렇게,
영화 <타이타닉>의 첫 장면은 원래 제임스 카메룬이 쓴 시나리오에 나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보다 완성도 있는 장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
영화의 도입부 촬영이 끝나고,
곧바로 이어진 촬영은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인 침몰 직후 주인공 잭이 바다를 표류하는 장면이었다.
사실 많은 영화는 대본 순서대로 촬영이 진행되지 않는다.
촬영 현장이나 배우 스케줄에 따라 선택적으로 촬영이 진행된다.
특히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있는 경우 필요한 장면을 한 번에 몰아서 촬영하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이다.
문제는 이런 촬영 방식이 배우의 감정선 유지나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영화사 Film Kim에 제작되는 모든 영화는 시나리오 순서에 따라 촬영이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타이타닉>의 두 번째 촬영이 가장 마지막 씬이 된 것은,
‘영화 세트장 제작이 아직 마무리되지 못했기 때문이지. 이번 영화는 실제 타이타닉호와 거의 흡사한 크기의 대규모 세트를 건설해 촬영이 진행될 예정인데,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예정된 크랭크 인 날짜에 맞추어 공사가 끝나지 못하게 되었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번 한 번만 예외적으로 시나리오 순서를 따르지 않고 촬영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고.’
촬영은 별도로 마련된 대형 물탱크에서 이루어졌다.
주변 배경은 추후 별도의 CG 작업을 통해 완벽하게 덧입혀질 예정이었고.
“오래간만입니다, 킴.”
촬영 시작 직전,
이번 영화의 주연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를 향해 인사를 해왔다.
예전에 영화 을 찍을 때만 해도 열 살도 채 안 된 아역배우에 불과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였는데, 어느새 스무 살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오, 레오.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그동안 별일 없었죠?”
“그럼요. 감독님 덕분에 그동안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하하.”
호탕하게 웃음을 짓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할리우드가 낳은 최고의 꽃미남 배우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무척이나 돋보이는 외모를 가진 그였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외모보다는 연기력에 집중하며 전성기때의 외모가 사라져가긴 할 테지만.
“듣자니 이번 영화에 저를 주인공으로 추천해준 사람이 킴이라고 하더군요?”
“예. 내가 레오를 어린 시절부터 봐와서 잘 알잖아요. 얼마나 훌륭한 배우인지를 말이죠.”
“사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킴의 추천만 아니었다면 전 이번 영화 출연을 결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요?”
“이번 영화의 주인공인 ‘잭 도슨’이 제가 선호하는 유형의 캐릭터가 아니었거든요. 저는 보다 모험적인 배역을 연기하고 싶은데, 잭 도슨은 너무 평범한 캐릭터인 것 같아서요.”
전생에서도 그랬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그다지 튀지 않는 평범한 캐릭터’라는 이유로 <타이타닉>의 출연을 거절했다.
이에 연출을 맡은 제임스 카메룬은 수차례 그를 직접 찾아가 설득을 했고, 마침내 그의 허락을 얻어낸 것이다.
당시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감독인 제임스 카메룬의 영화 출연을 거절할 정도로 당돌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렇지 않아요, 레오. 이번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잭 도슨은 절대 평범한 캐릭터가 아니에요. 이건 레오가 앞으로 직접 연기를 해보면 분명하게 알게 될 거고요.”
“그래요?”
“예. 내가 장담하는데 이번 영화로 레오는 할리우드 최고의 명배우로 거듭날 수 있을 거예요.”
“하하, 다른 사람도 아닌 킴이 그렇게 말해주니 다소 안심이 되는군요. 그럼 전 이만 촬영 준비하러 가볼게요, 킴.”
“그래요, 레오.”
잠시 후,
촬영 준비가 모두 완료되고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카메라 스탠바이, 레디, 액션!”
메가폰을 타고 제임스 카메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출연 배우들이 곧바로 연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컷! 컷!”
완벽주의자이자, 촬영장의 폭군이라 불리는 제임스 카메룬답게 연거푸 NG가 나며 재촬영이 이루어졌다.
덕분에 배우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김이 날 것을 우려해 약 15도 정도에 불과한 차가운 물 속에서 장시간 물에 젖은 옷을 입고 촬영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여주인공인 케이트 윈슬렛의 경우 얇은 드레스 하나만 걸치고 일체의 보온장비도 없이 촬영하는 바람에 감기 기운마저 생길 정도였다.
‘내가 촬영 전에 배우와 스태프들을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역시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군, 흐흐.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이게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스타일인 것을.’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며,
내가 완성된 영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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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잭.”
여주인공 로즈가 애절한 눈빛으로 잭을 바라보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타이타닉의 침몰로 차가운 바다에 빠지게 된 두 사람.
다행히 배의 파편 하나를 발견하게 된 잭은 연인인 로즈를 그 위에 올라타게 하고, 자신은 그냥 바다에 빠진 채로 점점 몸이 얼어붙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타이타닉의 표를 구한 것은 내 생에 최대의 행운이었어요, 로즈. 왜냐하면......”
잭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을 만났으니까. 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요.”
“흐흑.”
“살아남겠다고 약속해줘요, 로즈.”
“절대... 절대 포기하지 않을게요, 잭.”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사람의 체온은 점점 떨어져만 갔다.
결국 온몸이 꽁꽁 언 채로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 잭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런 그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으며 로즈가 흐느끼듯 말했다.
“포기하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잭.”
그런 그녀의 뒤로,
구명보트 하나가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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