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 세기의 재난 로맨스 영화 <타이타닉> (2) >
219.
우여곡절 끝에,
제임스 카메룬과 나는 바다 깊숙이 침몰해 있는 실제 타이타닉호의 모습을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 과정은 몹시도 길고 험난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술적 한계로 인한 제한된 촬영 시간 때문이었고.’
이번 해저 촬영에 사용된 특수 카메라의 촬영 가능 시간은 최대 12분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탐사선을 여러 번 반복해서 내려보내야 했고, 그때마다 적게는 수천 달러에서, 많게는 수만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영화의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몹시도 부담스럽고 답답할 수밖에 상황이었지만,
‘나는 다르지.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나는 이번 영화 <타이타닉>이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이에 감독인 제임스 카메룬에게 아낌없는 투자를 할 수가 있었지.’
그 덕분에,
전생에서 내가 본 영화 <타이타닉>의 도입부는 실제보다 더욱 퀄리티 있는 화면을 만들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실제 타이타닉의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이지. 침몰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많은 부분이 부식되고, 이끼마저 끼어있어 마치 유령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수백만 개의 리벳(금속 핀)이 박혀 있는 거대한 형체의 타이타닉호를 처음 봤을 때의 전율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엄청난 기억이 될 것이 분명해.’
전생 이후,
수많은 명작 영화에 제작자로 참여하면서 실제 그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감격스럽게 지켜봐 온 나였지만,
이렇게 벅찬 감동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일 정도였다.
“지미.”
촬영을 무사히 끝내고 회사로 복귀하는 차 안,
내가 다소 무거운 표정으로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처음 지미에게 타이타닉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는 머릿속으로 아주 멋진 스펙터클 서사극을 그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실제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오만한 생각은 깨끗이 사라졌어요. 대신 이번 영화는 타이타닉 희생자들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그런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킴. 저도 이번 영화를 통해 타이타닉이 침몰하던 당시의 상황과 희생자들의 심경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이번 심해 촬영 경험을 통해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전생에서 영화 <타이타닉>이 왜 그렇게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하게 되었는지를.
‘<타이타닉>이 역대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제임스 카메룬이 실제로 침몰한 타이타닉호를 봤을 때 느꼈던 감정, 그 감정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 됐기 때문이지.’
***
해저 촬영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돌아온 제임스 카메룬과 나는 곧바로 배우 캐스팅에 돌입했다.
이번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기반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리얼리티’를 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에 남아 있는 기록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타이타닉에 탑승했던 승객들과 최대한 가까운 외모를 가진 배우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주인공 두 사람은 예외였다.
주인공인 ‘잭’과 ‘로즈’는 제임스 카메룬이 창조한 인물이었고, 이에 영화의 내용을 잘 살릴 수 있는 배우가 캐스팅되어야 했다.
그 때문에 연출을 맡은 제임스 카메룬의 고민도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배우가 좋을까요, 킴?”
주연 배우 캐스팅을 앞두고 제임스 카메룬이 나에게 물었다.
이번 영화는 내가 제작자로 참여하고 있었고, 이에 제임스 카메룬은 영화 제작 전반에 관한 사항을 나와 상의해서 결정하고 있었다.
“글쎄요, 이번 영화의 각본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미가 직접 썼고, 그래서 시나리오에 가장 잘 어울릴 만한 배우가 누구인지는 지미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먼저 지미의 생각부터 한번 들어보죠.”
“일단은 기성 배우보다 신인 배우를 위주로 캐스팅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좋은 생각이에요. 사실 나도 영화를 찍을 때 신인 배우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관객들에게 보다 신선함을 줄 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더욱 고민이 되긴 하네요.”
영화에 출연할 주연 배우를 결정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어떤 배우가 그 배역을 연기하느냐에 따라서 영화의 분위기가 180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제임스 카메룬도 한동안 말없이 주연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배우들의 사진을 반복해서 넘겨보고만 있을 뿐, 좀처럼 결정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지미.”
“네.”
“레오는 어때요?”
“레오요?”
“아역배우 출신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말이에요. 예전에 내가 영화 을 촬영할 때 함께 작업한 적이 있는데, 연기력이 꽤 훌륭하더라고요. 게다가 최근에 그가 주연을 맡은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영화에서도 매우 훌륭한 연기를 선보여서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고요.”
사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제임스 카메룬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이번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할 것이 분명했다.
상대역인 케이트 윈슬렛도 물론 마찬가지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직접 이번 영화의 주연 배우들을 추천하고 나선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그것은 바로......’
전생의 내 기억에 따르면 영화 <타이타닉>의 캐스팅 작업은 영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느리게 진행됐다.
배우 캐스팅에만 무려 3개월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물론 이는 모두 제임스 카메룬 특유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답게 그는 출연 배우들 또한 최대한 실제 인물에 가까운 외모를 지닌 배우들을 캐스팅하려 했고, 특히 주연인 ‘잭’과 ‘로즈’는 그 어떤 배역보다 심혈을 기울여 캐스팅 작업을 진행했다.
‘영화 <타이타닉>은 제작 기간이 길기로 유명한 영화이지. 준비기간과 실제 촬영 기간을 합치면 무려 7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으니 말이야. 따라서 내가 직접 나서 배우 캐스팅과 같은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고, 차라리 그 시간을 실제 촬영에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어.’
결심을 굳힌 내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화 <타이타닉> 출연 배우들을 하나하나 제임스 카메룬에게 추천하기 시작했다.
“레오와 더불어 여주인공 로즈 역에는 <천상의 피조물>과 <센스 앤 센서빌리티>라는 영화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인 케이트 윈슬렛을 추천하고 싶네요. 또한 나이 든 로즈 역에는 글로리아 스튜어트, 백만장자 칼 역은 빌리 제인, 보물 사냥꾼인 브록 역에는 빌 팩스톤이 잘 어울릴 것 같고요. 게다가......”
“자, 잠깐만요, 킴. 좀 천천히 불러줘봐요.”
제임스 카메룬이 내가 불러준 배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수첩에 옮겨적기 시작했다.
물론 깐깐하고 고집 센 그의 성격답게 아직은 못미더운 표정이 잔뜩 얼굴에 묻어나 있긴 했지만.
‘하지만 제임스 카메룬도 알게 되겠지. 머잖아 본격적인 오디션이 시작되면 방금 전에 내가 추천한 배우들이 이번 영화에 꼭 맞는 캐릭터를 가진 배우라는 사실을 말이야. 왜냐하면 이 배우들은 전생에서 그가 직접 하나하나 공을 들여 캐스팅한 배우들이니까 말이야. 흐흐흐.’
220.
영화사 Film Kim.
내가 데이비드 오웬 부사장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최근 우리 회사에서 새롭게 시작한 ‘온라인 영화 렌탈 서비스’의 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어때요, 데이비드. 이번에 새로 시작한 사업의 시장 반응은 괜찮은 편인가요?”
“생각보다 반응이 꽤 좋습니다. 특히 우리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넓어 대여점을 직접 방문하기가 번거로운 나라에는 아주 적합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지요.”
“흠, 그럼 정말 다행이고요.”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수익성입니다. CD 제작비나 유통과정에서의 파손, 그리고 우편 요금 등을 감안하면 지난 6개월간의 수익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서요.”
“일단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고객 확보입니다. 충성도 높은 고객만 확보되면 수익은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아 참, 그보다......”
내가 다시 데이비드 오웬 부사장에게 물었다.
“시네매치 서비스는 언제부터 가능할 것 같아요?”
“회사 개발팀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는 한데,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빠르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서비스가 가능할 것도 같고요.”
“시네매치 서비스는 이번 사업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많은 영화 가운데 고객의 취향에 딱 맞는 영화를 추천해주는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객들이 우리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할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더욱이 추후 온라인 통해 직접 영화를 다운로드 하거나 실시간으로 시청이 가능한 때가 오면 이는 더욱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게 될 테고요. 그러니 데이비드가 특별히 이 부분에 신경을 좀 써주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데이비드 오웬 부사장이 사장실을 나가고 얼마 뒤,
조지 루이스가 사장실로 나를 찾아왔다.
얼굴에는 미소를 잔뜩 머금고, 손에는 선물 보따리를 한 아름 가득 안은 채로.
“이게 다 뭐예요, 조지? 오늘 무슨 날이에요?”
“아, 이거?”
조지 루이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킴 주려고 가져온 건 아니니까 신경 꺼.”
“으, 그럼 왜 가지고 왔어요?”
“킴 아들 주려고. 이번에 레이첼이 킴 닮은 듬직한 아들을 낳았잖아. 그러니 삼촌 된 도리로 내가 그냥 있을 수 있나? 우리 조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잔뜩 준비했지, 하하하.”
얼마 전,
레이첼이 드디어 사랑스러운 나의 2세를 낳았다.
비록 마흔에 가까운 늦은 나이에 얻은 아이이긴 했지만.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조지 루이스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이렇게 선물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읔. 조지. 이게 다 뭐예요?”
“뭐긴 뭐야, 장난감이지.”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요? 장난감이 죄다 로봇들만 있어서 그런 거지.”
“왜, 로봇이 어때서? 남자라면 어릴 때 다들 로봇 장난감에 빠져서 지내잖아. 난 지금도 심심할 때 로봇 프라모델 같은 거 조립하면서 시간 때우곤 하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겨우 갓난쟁이에 불과한 우리 아들이 어떻게 이런 로봇을 가지고 놀아요? 곰 인형도 겨우 가지고 놀 만한 수준이구만.”
“그, 그런가?”
조지 루이스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영화 제작 일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완전 허당끼를 가진 것이 그의 또 다른 매력이기는 했다.
“아쉽네. 이게 올해 미국 최고의 장난감 회사인 ‘헤즈브로’ 사에서 만든 최신 변신 로봇 시리즈인데.”
“헤즈브로요?”
“그래. 원래는 예전에 킴이 만든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에 나온 자동차 완구 판권을 사간 마텔 사가 국내 최고의 장난감 회사였는데, 요 근래 헤즈브로 사가 일본의 변신 로봇 장난감 라이센스를 따서 만든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끄는 바람에 순위가 뒤바뀌게 됐지. 최근에는 관련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에도 나서서 그 회사 사정을 내가 잘 알게 되었고.”
조지 루이스의 말을 듣는 순간,
잊고 있었던 영화 한 편이 내 머릿속에 번뜩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영화 <트랜스포머>. 남자라면 어렸을 적 한 번쯤은 가지고 놀았을 법한 변신 로봇을 실사 영화로 재현해서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한 영화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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