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 세기의 재난 로맨스 영화 <타이타닉> (1) >
217.
1994년 새해 들어,
영화사 Film Kim에 새로운 부서 하나가 신설됐다.
신설된 부서의 주된 업무는 고객이 신청한 영화 CD를 우편으로 발송하고 회수하는 일종의 ‘온라인 영화 배달 서비스’였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매우 넓은 나라이다.
이 때문에 고객이 직접 영업장을 방문해 영화 CD를 대여하는 것은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특히 대여한 CD를 제때 반납하지 못해 고액의 연체료를 물어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따라서 이 온라인 영화 배달 서비스는 미국의 환경에 매우 적합한 아주 편리한 서비스였다.
더군다나 이 시기는 온라인 통신 서비스가 서서히 확대 보급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업에 필요한 인프라도 충분히 확보된 상태였다.
문제는 수익성이었다.
현재 Film Kim이 도입한 이 사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편당 대여금을 받는 방식이 아닌 월정액제 방식이었다.
즉, 일정액의 월 사용료를 내면 1인당 최대 3개의 영화 CD를 기간 제한 없이 대여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영화를 대여할 때는 반드시 기존 대여 CD를 반납하는 조건이었는데, 왕복 우편 요금을 제외하면 순수익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의 수입이 아니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지. 실제 2000년대 들어 온라인 영화 시장을 장악한 넷플릭스도 미국 내 비디오 대여 사업을 통해 확보한 고객과 이를 토대로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니까.’
바로 이것이,
내가 다소 수익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영화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였다.
***
“이게 뭐예요, 레이첼?”
출근길에 나서던 내가,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낯익은 봉투 하나를 발견하고는 레이첼에게 물었다.
봉투의 겉면에는 ‘Kim′s 온라인 렌탈 영화 서비스’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뭐긴 뭐예요. 올해 Film Kim에서 새로 시작한 홈 렌탈 영화 서비스죠.”
“아는데, 이게 왜 여기에......”
“데이비드 부사장에게 회사에서 새로운 서비스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가장 먼저 회원가입을 하고 서비스 신청을 했죠. 아마 그게 Film Kim이 발송한 1호 서비스일 거예요, 호호.”
“레이첼도, 참.”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레이첼이 고른 영화는 어떤 영화예요?”
“<체이스 오브 리벤지> 1, 2편과 <레이더스>, 이렇게 세 편이에요.”
“그거 다 내가 감독 데뷔 초창기에 만든 영화잖아요?”
“맞아요. 오래간만에 보니까 굉장히 새롭던데요? 예전 추억도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 같고요.”
“그럼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의 입장에서 의견을 한번 말해봐요. 이번에 새로 시작한 우리 회사의 영화 렌탈 서비스가 어떤지.”
“일단은 무척 편리해요. 굳이 대여점을 찾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클릭만 하면 집으로 곧바로 배송이 이루어지니까요. 다만 영화 종류가 너무 많아서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가 살짝 고민되기는 하지만.”
현재 Film Kim의 온라인 영화 배달 서비스는 우리 회사에서 제작된 영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판권 계약을 맺은 다른 영화사의 방대한 영화들도 대부분 대여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이 숫자는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이었고.
“그 점은 앞으로 ‘시네매치’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충분히 보완될 수 있을 거예요.”
“시네매치 서비스요?”
“네. 지금 개발팀에서 고객의 영화 취향을 분석해서 자동으로 영화를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거든요. 만약 이 ‘시네매치’ 서비스가 제대로 자리 잡게 되면 우리 회사의 온라인 영화 배달 서비스도 꽤 큰 인기를 누리게 될 거예요.”
“우, 정말이지 킴은 못하는 게 없네요. 영화 연출 능력도 그렇고, 사업적인 능력도 그렇고.”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이번 영화 렌탈 서비스의 궁극적인 목적은 언제든지 온라인으로 원하는 영화를, 그것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원하는 영화를 온라인으로 실시간으로 감상한다고요?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물론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
하지만 머잖아 그렇게 될 것이다.
굳이 극장을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안방에서 언제든지 최신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올 것이다.
앞으로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변하게 될 테니까.
“레이첼도 파라마운트 합의 명령에 대해 잘 알고 있죠?”
“물론이죠. 특정 영화사의 스크린 독점 행위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반독점법 중의 하나잖아요.”
“맞아요. 특히 이 파라마운트 합의 명령은 영화사가 직접 극장 체인을 갖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죠. 그 때문에 내가 오래전부터 극장 체인을 설립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죠. 그런데......”
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온라인 쪽은 아직 이 파라마운트 합의 명령의 대상이 아니에요.”
“네? 그게 무슨......”
“오프라인 극장 대신에 온라인 안방극장을 우리 회사에서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앞으로 개봉되는 작품들을 극장과 온라인으로 동시에 개봉하게 된다면 말이에요.”
“우, 정말이지 킴은 못하는 게 없네요. 영화 연출 능력도 그렇고, 사업적인 능력도 그렇고.”
레이첼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남자 하나는 정말 잘 고른 것 같네요, 호호.”
“그걸 이제 알았어요? 하하.”
“킴도 참.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요. 전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아직 다 못 본 영화 감상 좀 해야겠어요.”
“그래요. 이따 저녁에 봐요, 레이첼.”
218.
북대서양 바다 위.
해양 탐사선 한 대가 거친 물살을 일으키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배에 타고 있는 이는 나와 제임스 카메룬, 그리고 수십 명의 스태프와 선원들이었다.
제임스 카메룬과 내가 직접 해양 탐사선을 타고 대서양 한가운데로 나간 이유는 간단했다.
최근 우리 Film Kim이 야심차게 제작하고 있는 영화 <타이타닉>의 도입부에 들어갈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실제 바닷속에 침몰해 있는 타이타닉호의 모습을 말이야.’
과정은 대략 이랬다.
영화 <타이타닉>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제임스 카메룬은 곧바로 나를 찾아와 다음과 같은 부탁을 한 것이다.
“킴.”
“무슨 일이에요, 지미?”
“제가 킴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요?”
“물론이죠. 이번 영화 <타이타닉> 제작과 관련해서 지미가 어떤 요구를 하든 무조건 수용해주기로 내가 약속했잖아요. 그러니 편하게 말해봐요.”
“그게......”
제임스 카메룬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번 영화 도입부에 실제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모습을 넣고 싶어요.”
“실제 타이타닉의 모습을요?”
“예. 킴도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몇 해 전에 드디어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선체가 발견되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제가 직접 해양 촬영전문가들을 동원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타이타닉호를 촬영한 후 영화의 첫 장면에 삽입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
순간 내 머릿속에 전생에서 본 영화 <타이타닉>의 첫 장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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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우우웅!
거대한 배 한 척이 검은 연기를 휘날리며 첫 출항을 시작하고 있었다.
길이 270m, 높이 32m, 무게 약 46,000톤에 달하는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였다.
영국의 영국 사우스샘프턴에서 출발한 타이타닉호는 드넓은 대서양 바다를 가로질러 미국 동부의 뉴욕항에 입항할 예정이었다.
타이타닉호가 출항하는 항구에는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 있었다.
역사상 유례없는 대형 여객선의 첫 출항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기자들,
그리고 긴 항해를 떠나는 여행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가족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번 항해가 타이타닉호의 첫 항해임과 동시에 마지막 항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잠시 후,
화면이 바뀌면서 거대한 해양 탐사선 한 대가 깊은 심해(深海) 한가운데에 내려앉았다.
탐사대원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미 녹슬 대로 녹슬어 버린 거대한 배 한 척.
수십 년 전 거대한 빙산과의 충돌로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였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탐사대원들은 해저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타이타닉호의 모습을 구석구석까지 카메라에 옮겨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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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는군. 영화 <타이타닉>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선체를 탐사하는 장면은 실제 촬영과 세트장에서 촬영된 장면을 교묘하게 결합해서 완성했다는 사실이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지미의 말은......”
내가 제임스 카메룬에게 물었다.
“영화의 도입부에 실제 타이타닉호의 탐사 장면을 촬영해서 넣을 생각이라는 거예요?”
“예. 제 생각에 아마도 이점이 이전에 같은 타이타닉을 주제로 만든 여러 영화와 이번에 우리가 만들 영화를 차별화 시켜주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아요. 더불어 앞으로 전개될 영화의 내용 전체에 리얼리티를 부여해서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중요한 역할도 할 것이고요.”
“흐음......”
만약 이번 영화의 제작자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제임스 카메룬의 이 의견에 분명히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다.
세트나 미니어처를 이용해도 충분히 촬영이 가능한 장면을 굳이 수백만 달러의 추가 비용을 들여가며 촬영하는 것은 무척이나 비효율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룬의 이러한 열정과 리얼리즘 추구를 위한 노력이 영화 <타이타닉>을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으며, 큰 흥행 성공을 가져온 중요한 요인이었지.’
“좋은 생각이네요, 지미. 그런데 지금까지 심해 깊숙이까지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촬영한 사례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과연 이런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요.”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킴. 제가 예전에 영화 <어비스>를 촬영하면서 수중 촬영에 대한 굉장한 노하우를 쌓았으니까요. 그 경험을 살려서 수중 촬영에 필요한 장비를 만들면 충분히 이번 촬영에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지미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한번 시도해보는 것으로 하죠.”
결국 이렇게,
제임스 카메룬과 나 두 사람은 해양 탐사선 타고 직접 대서양 한가운데로 나오게 된 것이다.
“다행히......”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말했다.
“날씨도 좋고, 파도도 그리 높지 않아서 촬영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군요.”
“그러게요. 그럼 킴, 전 촬영 준비 상황을 좀 점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지미.”
제임스 카메룬과 스태프들이 촬영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촬영에 필요한 장비를 점검하는 일이었다.
이번 촬영을 위해 제임스 카메룬은 수백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심해 촬영에 특화된 장비들을 제작했다.
엄청난 수압을 견뎌낼 수 있는 무인 해저 탐색 잠수정(ROV),
일반 카메라보다 두 배 이상 길게 촬영할 수 있는 심해 촬영용 특수 카메라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제임스 카메룬의 신호에 맞춰,
무인 해저 탐색 잠수정 한 대가 바다 한가운데로 투입되었다.
잠수정의 외부에 설치된 카메라는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팬-틸트 촬영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원격 조정이 가능한 조명 시스템도 탑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첫날 촬영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심해에서의 시계(視界)는 생각보다 좁았고, 조명도 제대로 비춰지지 않았으며, 무인 해저 탐색 잠수정 또한 생각만큼 매끄럽게 움직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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