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19화 (119/145)

# 119 < 최초의 생존 게임 영화 <배틀 필드> (3) >

209.

1993년 봄.

영화 <배틀 필드>가 크랭크인 됐다.

이번 영화도 총제작비 1억 달러가 넘는 블록버스터급 영화였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반영된 미래 세계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다량의 CG 사용이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CG 영화의 제작 비용이 비싼 주된 이유는 인건비에 있다.

해당 컷 하나하나가 모두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이번 영화 <배틀 필드>에도 CG 제작에만 총 1,000여 명에 가까운 시각효과 스태프가 투입됐다.

‘그래도 주연 배우들이 대부분 무명이기 때문에 개런티 부분에서 많은 제작비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었지.’

영화 시장이 커짐에 따라,

할리우드 배우들의 몸값도 덩달아 치솟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제작비 대부분을 배우들의 출연료로 사용하는 영화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전생의 기억 덕분에 앞으로 할리우드를 주름잡을 유명 배우가 누구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일찌감치 그들을 발굴해 영화에 출연시켰고,

이는 제작비 절감 효과와 더불어 배우를 보는 탁월한 눈을 가진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나에게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번 영화 <배틀 필드>도 마찬가지지. 앞으로 할리우드를 주름잡을 명배우인 맷 데이먼과 안젤리나 졸리를, 그것도 겨우 몇만 달러밖에 되지 않은 비용으로 섭외를 할 수 있었고, 나중에 이들이 유명세를 떨치게 되면 이 두 사람을 최초로 발굴한 감독인 나의 명성 또한 더불어 높아지게 될 테니까 말이야.’

맷 데이먼과 안젤리나 졸리의 리허설 장면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의 뒤로 조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독님, 촬영 준비 모두 끝났습니다.”

“그래요?”

“예. 리허설 끝나는 대로 곧바로 촬영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가장 처음 촬영할 씬이......”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대본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주인공 워렌과 니즈가 게임 참여를 위해 격리 구역을 떠나 로열 계층의 거주 지역으로 이동하는 장면이군요?”

“예.”

“이번 씬은 CG가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니까, 촬영 끝나는 대로 곧바로 필름을 ILM으로 넘겨서 CG 작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감독님.”

잠시 후,

“카메라 스탠바이, 레디, 액션!”

메가폰을 타고 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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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오오오오!

비행기 한 대가 상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게임 참가를 위해 로열 계층이 거주하는 뉴월드(New World) 도심으로 이동하는 주인공 워렌과 니즈를 태운 비행기였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격리 지역을 떠나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의 눈에 비친 도심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격리 지역의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와는 달리 도심은 고층 빌딩과 각종 첨단 시설, 화려한 조명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도심에 거주하는 로열 계층의 차림새도 그에 못지않게 무척이나 화려했다.

형형색색의 머리 색깔을 한 로열 계층은 화려한 의상과 각종 장신구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이들의 주거 공간 또한 각종 첨단 시설과 신비한 인테리어 장식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어, 엄청나군.”

비행기 창문을 통해 도심을 내려다보던 워렌이 감탄을 내뱉었다.

그의 얼굴에는 비참한 노멀 생활을 벗어나 고귀한 로열 계층이 되어 도심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해 보였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워렌과 니즈 두 사람을 인솔하고 있는 게임 마스터가 말했다.

“어때요? 정말 멋지지 않아요?”

“그렇네요.”

“어쩌면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이곳에서 살 기회가 올지 몰라요.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에서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지만.”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란 말에,

워렌의 표정의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게임의 최종 우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격리 지역의 경쟁자와 더불어 자신의 연인인 니즈마저도 죽여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려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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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씬은 유독 CG가 많이 들어가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로열 계층이 거주하는 화려한 도심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는 노멀 계층의 거주 지역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이번 영화의 의미를 한층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노멀 계층의 거주 지역인 격리 구역은 온통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의 무채색 화면이 주를 이룰 예정이지. 하지만 주인공 일행이 도심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화면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지. 유채색의 무척이나 밝고 화려한 모습으로 말이야.’

무채색의 노멀 격리 구역과 유채색의 로열 거주 도심.

이는 현대 사회의 빈부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촬영 단계에서는 배우들이 아직 이 같은 배경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 CG로 처리되는 장면은 모두 크로마키 배경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이에 배우들은 오직 대본과 감독인 나의 설명에 따른 상상력에 의존해 연기를 펼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할리우드 영화계에 CG를 사용한 영화들이 자주 만들어짐에 따라 스태프와 배우들도 여기에 많이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지. 전면적인 CG가 최초로 사용된 영화 <키메라> 촬영 때만 해도 다들 무척이나 힘들어했었는데 말이야.’

뒤이어 다음 씬 촬영이 계속되었다.

이번 장면은 주인공인 니즈와 워렌 두 사람의 갈등이 증폭되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이에 배우들의 표정과 감정 연기와 무엇보다 중요한 씬이었다.

“카메라 스탠바이, 레디, 액션!”

메가폰을 타고 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이번 영화의 주연인 맷 데이먼과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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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의 격리 구역에서 선발된 총 40명의 참가자들.

이들은 약 3개월간에 걸친 특별 훈련을 거쳐 본격적인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니즈.”

훈련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니즈를 웨렌이 붙잡았다.

“할 말이 있어, 니즈.”

“뭔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면 무조건 날 따라와.”

“왜?”

“내가 널 지켜줄게. 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다른 구역 참가자들을 모조리 해치워버리자.”

“그런 후에는?”

“뭐?”

“그런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

워렌의 말문이 턱 막혔다.

운이 좋아 두 사람이 마지막까지 남게 되더라도,

둘 중의 한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사랑하는 연인의 손에.

“날 죽여.”

워렌의 말에 니즈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

“마지막에 우리 두 사람이 남게 되면 니즈 네가 날 죽이라고. 그래서 최종 우승자가 되라고.”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어차피 이 게임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야. 난 그 한 사람이 니즈 네가 되었으면 해.”

“......”

“......”

서로 말없이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두 사람.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니즈였다.

“못 믿어.”

“뭐?”

“내가 워렌 널 믿지 못하겠다고. 마지막 순간에 내 등에 칼을 꽂을지도 모르니까.”

“니, 니즈......”

“워렌 네 말대로 운이 좋아 가장 마지막에 우리 두 사람이 남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 둘이 최선을 다해 싸우자. 그게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그러지 말고 날 믿어, 니즈. 난 절대 널 배신하지 않아.”

“아니.”

니즈가 차갑게 돌아서며 말했다.

“네가 구역 사람들의 맹세를 배신하고 이 게임에 자원하는 그 순간, 너와 나의 신뢰는 이미 깨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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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메가폰을 타고 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스태프들이 곧바로 현장 수습에 나섰다.

그사이 나는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와 함께 촬영된 화면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무명 배우치고......”

로저 디킨슨 감독이 나를 향해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연기가 꽤 준수하군요?”

“그러게요. 덕분에 촬영이 보다 수월해질 수 있을 것 같네요.”

“역시 킴입니다. 배우 보는 눈이 예나 지금이나 아주 탁월해요.”

“뭘요. 그보다 다음 씬은 다소 속도감이 필요한 장면이니, 촬영 감독인 로저가 신경 좀 많이 써서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210.

영화 <배틀 필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영화였다.

권력을 가진 로열 계층은 ‘배틀 필드’라는 이름의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노멀 계층에게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의 반란을 무마시키려 한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과 ‘기회의 제공’을 표방하는 ‘배틀 필드’는 사실 희박한 확률에 미천한 희망을 갖게 함으로써 절대다수를 지배하려는 수단에 불과했다.

아울러 20개 격리 구역에 거주하는 노멀 계층들을 서로 분열시켜 단합된 저항을 방해하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격리 구역과 도심의 대비되는 모습은 이러한 영화의 의도를 더욱 잘 보여준다.

도심에 거주하는 로열 계층의 삶은 무척이나 화려하고 풍족하다.

반면 격리 구역에 사는 노멀 계층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나무껍질까지 먹을 정도로 비참하다.

노동은 오직 노멀 계층만이 전담하고, 로열 계층은 그저 이를 향유할 뿐이다.

영화 <배틀 필드>에는 이처럼,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빈부 격차, 생존경쟁, 비인간화 등과 같은 많은 모순을 담고 있는 영화였다.

“다 좋은데......”

나와 함께 지금까지 촬영된 장면들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조지 루이스가 말했다.

조지 루이스는 이번 영화에 제작자로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여주인공인 니즈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너무 큰 것 아니야? 남주인공인 워렌에 비해서 말이야.”

“그 문제는 대본 제작 과정에서 이미 논의된 부분이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막상 화면으로 보니까 그런 면이 더욱 도드라져 보여서. 사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런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는 좀처럼 보기 힘들잖아. 특히나 이렇게 호전적인 성향을 가진 캐릭터는 더더욱.”

조지 루이스의 말마따나,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계는 철저하게 남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왔다.

유명 영화감독 가운데서도 ‘영화에 여성이 필요한 이유는 엉덩이와 가슴 때문’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1991년에 만들어진 영화 <델마와 루이스>, 이 영화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온갖 무법 행위를 일삼는 두 명의 여성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보던 여성 관객들이 큰 해방감을 느끼며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 영화 <배틀 필드>에는 앞선 <델마와 루이스>보다 더 강하고 당당하며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가진 ‘니즈’라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는 아직은 보수적인 성향의 할리우드 영화계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면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조지 루이스가 염려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조지. 이전 영화 <에일리언>이나 <원더우먼> 같은 영화에서도 ‘니즈’와 같은 전투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했으니까요. 게다가 흥행 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요.”

“흠, 물론 그렇긴 하지만......”

조지 루이스가 살짝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할리우드 영화계에 미운털이 잔뜩 박혀 있는 킴인데, 또 이런 여성 캐릭터를 영화의 전면에 내세웠다가 관계자들의 호된 비판을 받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서.”

“괜찮아요, 조지. 내 생각에는 우리 영화의 이런 면이 오히려 흥행이나 평가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억압받아 온 여성들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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