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18화 (118/145)

# 118 < 최초의 생존 게임 영화 <배틀 필드> (2) >

207.

멕시코 로자리토(Rosarito) 해안가.

엄청난 장비와 인력이 투입된 대규모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현장에 영화사 Film Kim 관계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공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사장인 나와 영화감독인 제임스 카메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랬다.

지금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의 공사는 바로 영화 <타이타닉> 촬영에 필요한 세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길이 270m, 높이 32m에 달하는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실제 모형과 더불어 이를 일정 각도까지 기울일 수 있는 별도의 세트, 여기에 침수 장면 촬영을 위한 대형 물탱크 등등 촬영에 필요한 대부분의 세트가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공사 초기 단계로 실제 촬영이 가능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더 필요했고.

‘역대 최고의 흥행작 가운데 하나인 영화 <타이타닉>의 세트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실제 눈으로 지켜볼 수 있다니,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군.’

내가 영화 <배틀 필드> 제작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수시로 이곳을 찾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세계 영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명작 영화의 제작 과정을 하나하나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에.

“듣자니......”

만들어지고 있는 세트장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말했다.

“이번 영화의 세트를 제작하기 위해 실제 타이타닉호를 건조한 선박회사로부터 설계도까지 사들였다고요?”

“네. 이번 영화가 실제 역사적 사실을 다룬 시대극인 만큼 고증 부문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하니까요.”

“시나리오도 마찬가지더군요. 내가 전에 지미가 보내준 영화 시나리오를 아주 꼼꼼하게 읽어봤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일화들이 대부분 실제 있었던 사실들을 바탕으로 아주 치밀하게 만들어졌더라고요.”

영화 <타이타닉>은 제임스 카메룬 특유의 ‘사실에 대한 집착’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가령 예를 들면,

영화에 등장하는 갑판 위에서 팽이를 돌리는 아이, 빙상조각으로 축구를 하는 삼등석 승객들, 승객이 배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기물을 파손한 것에 대해 따지는 승무원의 모습 등은 모두 실제 자료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진 장면이다.

이 때문에 영화 <타이타닉>은 제작 준비 기간만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다시 제임스 카메룬에게 물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잭과 로즈는 왜 가상의 인물로 설정한 거예요? 그것도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상당한 비중을 두면서까지.”

“그건......”

제임스 카메룬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실제 타이타닉호의 침몰 과정을 직접 경험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예요. 관객들의 영혼을 100년 전에 만들어진 타이타닉호의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한 심리적인 유도자로서 잭과 로즈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죠.”

사실 ‘타이타닉 침몰 사건’은 이전에도 이미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었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 <타이타닉호의 비극>과 <타이타닉의 최후>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 두 영화는 모두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타이타닉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에 감정적인 동조를 느끼지 못했다.

반면 제임스 카메룬이 만든 영화 <타이타닉>은 달랐다.

자칫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줄 수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출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주인공인 잭과 로스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에 영화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관객들이 더 큰 공감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적 장치를 만든 것이다.

‘가히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영화감독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군, 제임스 카메룬이란 사람은.’

동시에 전생의 내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함께 이루어졌다.

전생의 나는 영화의 작품성과 대중성을 별개로 놓고, 오로지 작품성에만 치중한 영화를 만들었는데,

바로 이것이 관객들이 내가 만든 영화에 큰 공감을 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결국 영화는 감독도, 제작자도, 비평가도 아닌 대중들이 보는 것인데, 나는 그런 대중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나저나, 킴.”

“네.”

“듣자니 킴이 얼마 전에 스파이더맨 영화 판권을 다시 회수해왔다고 하더군요?”

“맞아요. 마블이 보유하고 있는 케릭터 가운데 유독 스파이더맨의 판권만 다른 영화사가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무리를 해서 다시 판권을 되찾아왔어요. 앞으로 만들어질 마블 영화에 통일적인 세계관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스파이더맨 케릭터가 꼭 필요하거든요. 그것도 다른 영화사가 미리 만든 영화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스파이더맨 케릭터가.”

“그럼 스파이더맨의 영화화는 언제 시작할 예정이에요?”

“글쎄요, 그건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기술적인 뒷받침이 가능할지에 대한 검토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요.”

“만약에 말이죠, 킴. 킴이 스파이더맨 영화 작업을 직접 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제가 한번 연출을 맡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지미가요?”

“예. 제가 어렸을 때부터 마블 코믹스의 열혈 팬이었거든요. 특히 스파이더맨은 더더욱.”

제임스 카메룬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생에서 제임스 카메룬은 스파이더맨을 영화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지. 그래서 원작자를 직접 만나 스파이더맨을 영화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논의했고 말이야.’

하지만 제임스 카메룬의 이러한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

당시 스파이더맨의 영화 판권을 둘러싸고, 여러 영화사가 각종 법정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스파이더맨 영화화를 포기하고, 대신 새로운 영화 <타이타닉>의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감독이자, 영상의 마술사라 불리는 제임스 카메룬이 연출한 <스파이더맨>이라. 왠지 구미가 당기는데?’

“일단은......”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말했다.

“이번 영화 <타이타닉>부터 먼저 끝내놓고 다시 이야기하는 걸로 해요. 어차피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지금 당장 스파이더맨을 제작하는 것은 힘든 상황이니까.”

“그래요, 킴.”

208.

영화사 Film Kim.

이른 시간부터 꽤 사람이 회사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오늘이 영화 <배틀 필드>에 출연할 배우들의 오디션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지.’

이번 영화에는 꽤 많은 배역이 등장한다.

영화의 스토리상 ‘노멀’ 계층이 거주하는 20개의 거주 지역에서 각 2명씩, 총 40명의 참가자가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조연 배우에 한해서이다.

실제 영화를 이끌어갈 주연 배우는 이미 내가 조지 루이스와의 상의를 통해 결정해 둔 상태였다.

먼저 주인공 ‘워렌’ 역을 맡을 배우는 바로......

“맷 데이먼?”

“예, 조지. 무명이긴 하지만 아역배우 출신이라서 연기력이 꽤 탄탄해요.”

“글쎄, 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인데?”

조지 루이스가 살짝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조지 루이스는 예전부터 영화에 무명 배우보다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배우를 쓰는 것을 선호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을 충분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준수한 외모에 뛰어난 연기력, 여기에 탁월한 영화적 감각까지 갖추고 있는 배우가 바로 맷 데이먼이지. 운 나쁘게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걸출한 배우에 가려져 아역 시절에는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말이야.’

내가 이번 영화 <배틀 필드>의 주인공 역으로 맷 데이먼을 캐스팅하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전생에서 그가 영화 <굿 윌 헌팅>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과 <본 시리즈>에서 보여준 독특한 액션 연기는,

신분 상승의 꿈과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 ‘워렌’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일단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 8할은 킴이 썼고, 그래서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가 누구인지는 킴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 대신 여주인공은 좀 인지도 있는 배우를 쓰는 것이......”

내가 조지 루이스의 말을 잘랐다.

“아뇨. 이번 영화의 여주인공 ‘니즈’역도 남주인공인 ‘워렌’과 마찬가지로 신인배우를 쓸 예정이에요.”

“......여주인공마저도?”

“예, 조지.”

“그러다 영화 폭삭 망하면? 내가 예전부터 누누이 말했잖아. 일단 영화에 이름 없는 배우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이 외면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저도 항상 말해왔잖아요. 영화만 잘 만들어진다면 무명 배우의 출연이 오히려 영화의 신선함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요.”

“그래서, 여주인공은 또 어떤 배우를 생각하고 있는데?”

“안젤리나 졸리라고, 모델 출신인데 TV 드라마나 인디 영화에 주로 출연해온 배우가 있어요. 제 생각에 이번 영화의 여주인공 ‘니즈’역으로 안젤리나 졸리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가 없을 것 같아요.”

“끙. 이번에도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배우군.”

그렇겠지.

안젤리나 졸리가 영화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는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1990년대 후반에 가서니까.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신비스러운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 무엇보다 흥행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툼 레이더>라는 영화에서 보여준 화려한 액션 연기는 서바이벌 데스 매치라는 치열한 사투를 그린 이번 영화에 누구보다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

이런 내 생각을 꿈에도 알 리 없는 조지 루이스가 또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사실 내가 다른 사람 같으면 절대 양보 안 하는데, 상대가 킴이라서 특별히 양보하도록 하지. 그동안 킴이 발굴한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가 한둘이 아니니까 말이야.”

조지 루이스의 말마따나,

그동안 내가 만든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유명 배우가 되었다.

물론 이는 모두 내가 가지고 있는 전생의 기억 덕분이었다.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나는 앞으로 할리우드를 대표할 영화 배우로 성장할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너무나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이에 한발 앞서 그들을 내 영화에 캐스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신에......”

조지 루이스가 다소 과장된 어투로 말했다.

“오늘 오디션 봐서 수준 미달이라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탈락시킬 거야. 킴도 알지? 내가 얼마나 배우 고르는 눈이 높은지.”

“하하.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조지.”

***

앞서도 말했다시피,

이번 영화는 작품 특성상 많은 배우들이 출연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게임에 참가하는 배우들만도 모두 40여 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주인공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는 것으로 계획됐다.

이에 미국 전역에서 무려 5,000명에 가까운 지원자가 오디션에 참가했는데,

여러 번의 테스트 과정을 거쳐 최종 38명의 배우가 출연이 확정됐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번 오디션을 통해 뽑힌 조연 배우들 가운데 나중에 할리우드를 뒤흔들 유명 배우들도 몇몇 섞여 있다는 점이지. 내가 특별히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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