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17화 (117/145)

# 117 < 최초의 생존 게임 영화 <배틀 필드> (1) >

생존(Survival) 게임.

‘라스트 맨 스탠딩’ 내지는 ‘데스매치’라고도 부르는 이 게임은 단 한 명의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계속되는 죽음의 게임을 뜻한다.

사실 이는 영화적으로는 매우 흔한 소재였다.

당장 기억 나는 영화만 해도 열 손가락으로 꼽고도 남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처음 이 소재를 다룬 영화가 등장했을 당시의 충격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영화 <배틀 로얄>. 2000년도 후카사쿠 긴지라는 일본인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은 서바이벌 데스매치 영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지.’

<배틀 로얄>은 일명 ‘BR법’이라 부르는 교육 개혁법에 의해 게임에 참가한 42명의 중학생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고 죽이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줄거리가 충격적이고, 잔혹한 장면이 많아 개봉 당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소재의 참신성 덕분인지 큰 흥행 성공과 더불어 전 세계 영화 관계자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기도 했다.

‘영화 <배틀 로얄>에 이어 서바이벌 데스매치를 소재로 또 한 번 큰 히트를 기록한 영화가 있지. 게리 로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 <헝거 게임>이 바로 그것이고.’

<헝거 게임>은 수잔 콜린스가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독재 국가 ‘판엠’에서 매년 일정 숫자의 10대 남녀를 선발해 마지막 한 명의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과정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앞선 영화 <배틀 로얄>과 다른 점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게임의 과정이 도시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현실의 자극적인 미디어 보도의 문제점을 풍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영화가 모두 흥행 성적 면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지.’

영화 <배틀 로얄>의 최종 흥행 수익은 30억엔.

당시 일본의 영화 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이는 꽤나 큰 금액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헝거 게임>은 세계 최고의 영화 시장인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덕분이지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의 원조 격 영화인 <배틀 로얄>보다 훨씬 많은 흥행 수익을 거두게 된다.

‘영화 <헝거 게임>의 최종 흥행 수익은 약 7억 달러, 여기에 뒤이어 만들어진 3편의 시리즈 전체 수익을 합치면 총 30억 달러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게 되지. 하지만 내가 이 두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보다 훨씬 이른 지금 시기에 이와 유사한 소재를 가진 영화 <배틀 필드>를 선보이게 된다면......’

엄청난 흥행 수입과 더불어 향후 만들어지는 서바이벌 데스매치 영화 장르의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 분명했다.

“어때요, 조지? 이번 소재, 영화화하기에는 제법 그럴듯한 소재이지 않아요?”

“역시......”

조지 루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킴은 천재야. 영화적 아이디어로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뭘요.”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영화 이 실패한 이유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의 묘사에 치중한 나머지 대중적인 요소가 다소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아. 그런데 여기에 만약 킴이 말한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소재가 첨가된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군.”

“제 말이 바로 그 말이에요. SF 영화 연출 경험이 풍부한 조지가 세계관을 만들고, 여기에 내가 게임적인 요소를 첨가해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영화를 만드는 거죠.”

“오케이, 그럼 한번 제대로 시작해보자고.”

그날 이후,

조지 루이스와 나는 매일 사무실에 함께 모여 영화 <배틀 필드>의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렸다.

조지 루이스가 가지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에 관한 지식과,

전생의 내 영화적 경험이 더해진 덕분에 작업을 시작한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가 완성될 수 있었다.

206.

로스 펠리츠의 고급 주택.

넓은 정원과 개인 수영장까지 딸린 이 집은 레이첼과 나의 새 보금자리였다.

물론 아버지도 함께 이 집에서 거주하고 있었고.

“벌써 나가는 거예요, 킴?”

이른 아침부터 출근 준비를 서두르는 나를 향해 레이첼이 물었다.

“오늘이 새 영화 프리 들어가는 날이잖아요. 일찍 가서 이것저것 좀 챙겨야 할 일이 제법 있어서요.”

“<늑대 왕 로보> 개봉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또 새 영화예요? 아무튼 킴은 잠시도 쉬려고 하지 않네요.”

“하하. 내가 가족 다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영화 만드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번 영화는 어떤 영화예요? 시나리오 완성됐으면 좀 줘봐요. 내가 읽고 평가해 줄테니까.”

“음, 안타깝지만 이번 영화는 시나리오도, 영화도 둘 다 안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아니, 왜요?”

“영화가 좀 폭력적이고 잔인한 편이라......”

내가 침대에 누워있는 레이첼의 배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아이 태교에 안 좋을 것 같아서요.”

“킴도 참......”

“오늘 오후에 병원 간다고 했죠?”

“네.”

“이따 같이 가요. 비서실에 이야기해서 차 보낼게요.”

“괜찮아요. 킴 새 영화 프리 때문에 바쁠 테니까 아버님이랑 둘이 갔다 올게요.”

“그건 안되죠. 아까도 말했듯이 나한테는 가족이 1순위고, 그 다음이 영화니까요. 게다가......”

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마 우리 아기도 할아버지보다 아빠를 더 보고 싶어 할 테니까요, 하하하.”

***

1992년 겨울.

영화 <배틀 필드>의 프리 프로덕션이 시작됐다.

이번 영화에는 예전부터 많은 영화 작업을 함께해 온 ‘제임스 킴 사단’과 더불어 특별히 조지 루이스가 제작자로 참여하고 있었다.

SF 영화계의 거장인 그의 안목과 경험이 이번 영화의 세계관을 만드는데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조지 루이스가 나를 향해 말했다.

제작자인 그는 연출을 맡은 나보다 훨씬 더 이번 영화에 열의를 보이고 있었다.

그건 그만큼 이번 영화의 소재가 참신하고 흥미롭다는 뜻이었고.

“시나리오 보드 작성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대본을 최종 점검해보자.”

“그래요, 조지.”

점심 대용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미리 책상 위에 준비해 둔 채로,

조지 루이스와 내가 최종 시나리오 점검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영화의 첫 장면을 장식할 오프닝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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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한 가운데 우뚝 솟은 거대한 빌딩.

‘뉴 월드(New World)’의 창조주이자, 일명 ‘은혜로운 분’으로 불리는 고든이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노멀 계층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발생한 폭동과 이를 무력 진압하고 있는 나이트 계층의 모습이 중계되고 있었다.

“노멀들의 폭동이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제 놈들이 누구 덕에 그나마 목숨 붙이고 사는지 모르고 시건방지게......”

로열 계층의 지도자 카멜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든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각 구역에 나이트를 대거 파견해서 주동자들을 색출하고 있으니 조만간 폭동도 사그라들게 될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 대중들이란 원래 용수철과도 같은 존재들이라 누르면 누를수록 더 크게 반발해서 튀어 오르는 법이지.”

“하오면 그들의 불만을 억누를 다른 방법이라도 있다는 것입니까?”

“물론이지.”

“그게 무엇입니까?”

“희망(Hope). 노력하면 자신들도 우리같은 고귀한 로열 신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들에게 심어주는 것이지.”

“노멀들에게 일종의 신분 상승 사다리를 만들어주겠다는 뜻입니까?”

“그래. 하지만......”

고든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희망이 결국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매한 저들은 절대 모를 것이야,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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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조지 루이스가 나를 향해 물었다.

“이번 영화에 그래픽 디자이너 랄프 맥쿼리도 참여하기로 했다면서?”

“네. 첨단 과학 기술로 무장한 ‘뉴 월드’의 모습을 구현하기에는 랄프 씨만큼 적합한 사람도 또 없으니까요.”

“하긴. 랄프가 디자인적으로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예전에 내가 만든 <스페이스 워즈>도 그렇고, 킴이 만든 <체이스 오브 리벤지> 속편과 도 그렇고, 모두 랄프의 손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토록 뛰어난 영화의 미장센이 만들어지지 못했을 테니까.”

“맞아요. 그래서 제가 이번 영화에 로열 계층이 거주하는 도심과 노멀 계층이 거주하는 격리 구역의 디자인을 모두 랄프 씨에게 맡긴 거예요.”

“근데......”

조지 루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현대 사회의 빈부 격차를 풍자하려는 의도 맞지?”

“네. 지금 당장 LA 지역만 봐도 그렇잖아요. 제가 살고 있는 로스 펠리츠와 한인과 흑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격차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크잖아요.”

“흠, 근데 로스 펠리츠의 궁궐 같은 대저택에 사는 킴이 그런 말을 하니 왠지 와닿지가 않는 것 같군.”

“예?”

“하하, 농담이야, 농담. 킴은 그래도 자선 사업을 통해 해마다 엄청난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으니까.”

“쉰 소리 그만하고, 다음 씬이나 얼른 점검해봐요, 조지.”

“오케이, 그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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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구역.

노멀 계층이 거주하는 20개 격리 지역 가운데 하나인 이곳은 주인공 니즈와 워렌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꼭 가야 하는 거야?”

여주인공 니즈가 슬픈 표정으로 연인이자 영화의 남주인공 워렌을 향해 물었다.

“그래, 가야 해.”

“왜?”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까. 니즈 너도 들었지? 이번에 개최되는 ‘배틀 필드’의 최종 우승자는 로열 계층으로 신분 상승되어 도심 지역에서 살 수 있다는 거. 가족들도 모두 다 함께 말이야.”

“바보야, 그게 저들이 노리고 있는 거야. 우리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던져주고 서로 분열시켜 싸우게 만들려는 거.”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이 더러운 격리 지역에서 평생 광산 일이나 하면서 살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내가 꼭 이번 게임에서 우승해서 널 데리러 올 테니까.”

“워렌......”

그로부터 며칠 뒤.

제13구역 사람들이 모두 광장에 모여 있었다.

오늘이 바로 ‘배틀 필드’에 참가할 두 명의 구역 대표를 선발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다수 노멀들은 이번 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그래서 로열 계층의 이 같은 야비한 수작에 넘어가지 않을 것을 다짐한 상태였다.

그런데.

- 번쩍!

정적을 뚫고 한 사람이 손을 들어올렸다.

주인공 워렌이었다.

이를 본 ‘게임 마스터’가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역시나! 현명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줄 알았다니까. 자, 다들 한번 생각해봐요.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벌레보다 하찮은 당신들에게 로열 계층이 되어 화려한 도심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니까? 이래도 게임에 참가하지 않을 작정이에요?”

“......”

“좋아요, 일단 첫 번째 참가자부터 단상으로 모실게요.”

- 저벅, 저벅.

다른 노멀들의 원망 섞인 눈빛을 애써 외면한 채로,

워렌이 단상으로 올라섰다.

온갖 미사여구를 섞어 워렌을 칭찬하던 ‘게임 마스터’가 다시 군중들을 향해 물었다.

“자, 이제 마지막 한 자리가 남았어요. 누구 희망하는 사람 없어요?”

“......”

“음, 그럼 나도 어쩔 수가 없네요. 룰에 따라 추첨으로 참가자를 선발하는 수밖에.”

‘게임 마스터’가 유리 통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쪽지 하나를 뽑아 들었다.

그런데.

“아, 안 돼!”

두 번째 참가자로 뽑힌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니즈의 어린 여동생이었다.

“오, 이런. 운명의 신은 참으로 가혹하기도 하시지. 어쩜 저런 어린 애를 지목하셨을까? 뭐, 그래도 혹시 모르죠. 저 아이가 아주 유별난 재주를 가지고 있어 이번 게임의 첫 우승자가 될지, 호호호호호.”

두려움에 눈물까지 흘리는 니즈의 여동생.

그런 그녀를 껴안고 함께 우는 니즈의 어머니.

그런데.

“잠깐만요!”

갑자기 군중 속에서 니즈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제가 참가할게요. 동생 대신 제가 이번 게임에 참가하겠다고요!”

그 순간,

가장 놀란 것은 그녀의 연인인 워렌이었다.

게임의 우승자가 되어 로열 계층으로 신분 상승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연인을 죽여야만 하는 비정한 상황에 놓인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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