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15화 (115/145)

# 115 < 실사 동물영화 <늑대 왕 로보> (5) >

201.

Kim′s Foundation.

LA에 위치한 이 회사는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회복지재단이었다.

물론 재단의 설립 주체는 할리우드 최대 영화사인 Film Kim이었고.

사실 미국 내에는 유명 기업들이 설립한 수많은 복지재단이 활동하고 있었다.

미국 사회 특유의 활발한 기부 문화와 더불어 절세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Film Kim도 마찬가지였다.

해마다 수익의 일정부분을 Kim′s Foundation에 출자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함과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많은 세제 혜택을 누려왔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로 하여금 Kim′s Foundation이라는 재단을 설립하도록 한 주된 목적은 따로 있지. 그것은 바로 LA 지역 한인과 흑인 간의 갈등 관계를 개선해 조만간 있을 LA 폭동 사태에서 한인들이 입게 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이지.’

그동안 Kim′s Foundation은 한인과 흑인들의 교육과 복지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더불어 Film Kim이 제작하는 영화에 한인과 흑인들의 참여를 유도해 일자리나 투자 이익금 같은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중개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이런 Kim′s Foundation의 적극적인 활동 덕분에 이곳 LA에 살고 있는 한인과 흑인들의 복지와 생활 수준이 제법 높아지게 되었고, 이는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지속되어온 한인과 흑인들의 갈등을 개선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모를 일이지.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올해 LA 폭동의 발단이 되는 일명 ‘로드니 킹 사건’의 재판 결과가 나오게 되는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흑인들이 어떤 짓을 저지르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까.’

내가 영화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아버지를 찾아온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노력과는 별개로 한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또 다른 안전장치를 한 가지 마련해둘 필요가 있었기에.

“아무래도 이곳 LA 흑인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

아버지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

“재판지가 한 차례 변경됐음에도 불구하고 로드니 킹 사건 배심원들이 모두 백인과 히스패닉으로 구성됐어. 흑인은 단 한 명도 배심원으로 배정하지 않은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인종 차별이야. 이런 상황에서 재판 결과가 나온다고 한들 흑인들이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지.”

로드니 킹 사건.

LA 폭동의 원인이 된 이 사건은 백인 경찰관 4명이 흑인 용의자인 로드니 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집단 구타를 가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백인 경찰관들은 폭행죄로 기소되어 재판정에 서게 된다.

문제는 판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배심원들이 전부 백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었다.

만약 이 백인 배심원들이 사건을 무죄로 판결하게 되면 가뜩이나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에 불만을 품고 있는 흑인들이 그냥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지금 아버지의 말은 로드니 킹 사건 재판 결과가 무죄로 나올 확률이 높다는 뜻이에요?”

“그래. 그 때문에 지금 흑인 단체에서 조직적인 시위를 준비하고 있어. 재판 결과가 뜻대로 나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야.”

그 시위가 결국 유혈 사태를 동반한 폭력 시위로 확대되게 된다는 것은 지금은 오직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저기, 아버지.”

“응.”

“만에 하나 흑인들의 시위가 과격해지면, 그래서 혹시 폭력적인 시위로 번지게 되면, 이곳 한인들도 좀 위험해지지 않을까요?”

“에이,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다. 도훈이 너도 알다시피 그동안 한인 단체와 흑인 단체가 결연을 맺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까지 발전했잖아. 무엇보다 이 사건의 본질은 백인들의 흑인 차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우리 한인들에게 불똥이 튈 이유가 전혀 없지 않겠냐.”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게다가 옛말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를 다치게 한다는 말도 있고요.”

“......그래서, 도훈이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그게 말이죠, 아버지.”

내가 아버지에게 미리 생각해온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한참 동안 내 말을 듣고 있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훈이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사실 나도 마음 한구석에는 조금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기는 했다. 흑인들이 다혈질적인 면이 좀 있어서 막상 일이 벌어지면 어디로 튈지 모르거든.”

“아버지가 그래도 한인 사회에서는 영향력이 크니까 사람들을 한번 설득해보세요. 장기적인 한인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알았다. 한인회 지도부들과 함께 한번 상의를 해보도록 하마.”

202.

미국 뉴멕시코 커럼포 평야 지대.

영화 <늑대 왕 로보>의 로케이션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영화가 크랭크 인 된 지도 어느덧 3개월,

촬영은 이제 엔딩을 장식할 몇 개의 씬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제작 기간이 꽤 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 한, 프로덕션이라 부르는 실제 촬영 기간은 평균 100일 내외에 불과하다.

‘전생에 내가 충무로에 몸담고 있을 때, 한국 영화의 평균 촬영 기간이 적게는 6개월에서 많게는 1년 이상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되는지를 여실히 알 수가 있지.’

내가 스토리보드를 살펴보고 있는 사이,

조감독이 다가와 촬영 준비가 다 됐음을 알려왔다.

“자, 그럼 97씬 촬영 시작합니다. 카메라 스탠바이, 레디, 액션!”

- 탁!

둔탁한 슬레이트 소리와 함께,

드디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할 엔딩 씬 촬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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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의 아내 블랑카의 사냥에 성공한 시튼은 곧바로 무리의 우두머리인 로보의 사냥에 나섰다.

가장 먼저 그는 로보의 행동이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졌음을 포착하게 된다.

그동안 무척이나 침착하고 영악한 모습을 보이던 로보가 평정심을 잃고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 블랑카를 잃은 충격과 슬픔, 그것이 지금 로보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이지.’

로보를 사로잡기 위한 덫을 놓으러 가는 길.

시튼의 조수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루시가 말했다.

“한낱 포악한 짐승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로보가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게요. 사람이나 짐승이나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느끼는 슬픔은 똑같은가 봐요.”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일이겠죠? 마을 사람들을 위해 로보를 잡아야 하는 일은.”

“물론이죠. 대신 이번에는 죽이지 않고 생포할 생각이에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일부러 오늘 로보를 잡으러 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고요.”

“근데......”

루시가 시튼을 향해 물었다.

“로보가 정말 걸려들까요?”

“그럴 거예요. 지금 로보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걸려들지 않았던 이런 단순한 덫에도 쉽게 걸려들고 말 거예요.”

시튼의 예상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평소 같으면 절대 걸려들지 않았을 덫에 너무나도 쉽게 걸려든 것이다.

물론 그 가장 큰 이유는 시튼이 블랑카의 시체를 끌고 다니며 덫 주변에 블랑카의 냄새가 배어들게 했고, 또 블랑카의 발을 잘라 발자국까지 찍었기 때문이었다.

“로, 로보예요! 드디어 로보가 덫에 걸려들었어요.”

현장을 확인한 루시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절대 잡히지 않을 것 같았던 커럼포의 늑대 왕 로보가 드디어 시튼의 손에 붙잡히게 된 것이다.

네 발이 모두 덫에 걸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로.

그런데.

평소 같으면 이빨을 드러내며 경계심을 드러냈을 로보가 웬일인지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그냥 바닥에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로보의 행동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시튼이 생포한 로보를 마을 한곳에 묶어두고 먹이까지 손수 가져다 주었지만,

로보는 단 한 점의 고기도, 단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고 외면한 채로 자신이 살던 커럼포 계곡과 초원만을 응시하다 스스로 굶어 죽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시튼.”

마을 사람들이 내건 1만 달러의 현상금과 최초의 늑대왕 로보 사냥꾼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까지 얻은 채로 마을을 떠나는 시튼을 배웅하며 루시가 말했다.

“결국 시튼이 이겼네요.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늑대 왕 로보와의 대결에서.”

“글쎄요,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네요.”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시튼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난 이번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사랑하는 배우자를 먼저 죽이는 정말 비열한 방법을 썼으니까요.”

“......”

“마지막으로 부탁이 하나 있어요, 루시.”

“뭔데요?”

“로보를 블랑카가 있는 곳에 같이 묻어줘요. 둘이 죽어서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꼭 그렇게 할게요.”

서로 악수를 나누고 헤어지는 두 사람.

멀어져 가는 시튼의 뒤로 다음과 같은 자막이 흘러나왔다.

- 1894년 1월 31일, 인간과 네브라스카 늑대의 치열한 대결은 결국 인간의 승리로 끝이 났다.

- 로보가 죽자, 그간 로보의 악행에 시달려온 마을 사람들은 로보의 가죽을 벗겨 보란 듯이 마을 입구에 전시했다. 대신 남은 시체는 그의 아내 블랑카와 함께 묻어주었다.

- 로보의 가죽은 지금도 뉴멕시코의 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이를 사냥한 시튼은 ‘동물기’라는 책을 통해 그 과정을 자세하게 밝혀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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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스태프들을 향해 말했다.

“현장 정리하고 철수합니다. 그동안 다들 고생 많았어요.”

203.

영화 <늑대 왕 로보>가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 들어갔다.

여기서는 영상 편집, 색 보정, 음악 내지는 음향 추가 그리고 그동안 현장 촬영과 함께 진행되어온 CG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영화 후반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되어갈 무렵,

미국 사회를 뒤흔든 중요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

1992년 4월.

미국 사회의 초미의 관심사인 ‘로드니 킹 사건’의 재판 결과가 언론을 통해 발표되었다.

결론은 4명의 백인 경찰관 모두 무죄.

배심원 전원이 백인과 히스패닉계로 구성된 탓에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재판 결과에 분노한 LA 흑인들이 길거리도 뛰쳐나와 대규모의 시위를 벌인 것이다.

급기야 시위는 폭동 수준의 폭력 시위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가지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LA 흑인들과 결연 관계를 맺어온 한인들도 이번 판결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일제히 가게 셔터를 내리고 동맹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물론 이번 일은 아버지와 내가 LA 지역의 한인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고.’

그 덕분에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LA 폭동의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제아무리 극도로 흥분한 흑인들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뜻에 동조하며 파업까지 불사한 한인들을 함부로 공격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불어 원래 백인 거주지로 가는 길을 막아 한인들을 폭동의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던 백인들도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대략 6일간에 걸쳐 진행된 LA 폭동은,

수천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낳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사람도 만 명을 훌쩍 넘었다.

이후 사건은 원인 제공자인 백인 경찰관 4명이 연방 민권법 위반 혐의로 재기소 됨에 따라서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었다.

더불어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문제가 다시금 도마에 오르게 되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많은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 역사와는 다르게 이번 LA 폭동으로 다치거나 사망한 한인 피해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그리고 이는 순전히 아버지와 나의 노력 덕분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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