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14화 (114/145)

# 114 < 실사 동물영화 <늑대 왕 로보> (4) >

199.

영화 <늑대 왕 로보>가 크랭크 인 됐다.

이번 영화는 미국 남서부의 뉴멕시코 지역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이 이루어졌다.

실제 원작 소설의 배경이기도 한 이곳은 탁 트인 하늘과 드넓은 대지를 배경으로 자연과 야생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화면에 담아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영화 촬영 현장은 좀 다르지. 이번 영화가 CG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영화이다 보니, 현장에는 각종 첨단 장비와 기술들이 총동원되고 있지.’

무엇보다,

늑대가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는 실제 늑대가 단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상에 등장하는 늑대 왕 로보와 그 무리는 모두 ILM의 정교한 CG 기술로 구현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끔은 모형으로 만들어진 늑대가 화면상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자, 준비 다 됐으면 곧바로 슛 들어갑니다.”

메가폰을 타고 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부산했던 현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졌다.

앞서 몇 차례의 리허설을 이미 끝낸 상태라 실제 촬영은 별다른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었다.

“카메라 스탠바이, 3, 2, 1, 레디, 액션!”

드디어 오늘 촬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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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늑대 왕 로보의 사냥에 실패한 시튼.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블랑카?”

루시의 물음에 시튼이 대답했다.

“네. 은빛 털을 가진 늑대 블랑카. 이 암컷 늑대가 바로 로보의 아내죠.”

“그게 정말이에요?”

“네. 못 믿겠으면 여길 한번 봐봐요.”

시튼이 자신이 설치한 덫 주변에 이리저리 찍혀 있는 늑대 발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통 늑대 무리가 이동할 때는 우두머리 늑대가 가장 선두에 서서 걷죠. 그런데 여기 발자국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로보보다 앞서 걷는 늑대가 한 마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흠.”

“만약 다른 늑대가 그랬다면 로보는 당장 그를 물어 죽였을 거예요. 짐승의 무리에서 서열만큼 중요시되는 것은 없으니까. 그런데 로보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블랑카가 다소 멋대로 앞서 걸어도 로보는 모른 척 용인하고 있는 것이죠. 그 이유는 바로 블랑카가 로보의 아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고요.”

“그래서 시튼은 어떻게 할 생각인 거예요?”

“먼저......”

시튼이 눈빛이 반짝이며 말했다.

“블랑카를 잡는 거죠. 그 이후에 이 블랑카를 이용해서 다시 로보를 잡는 거고요.”

그날 이후,

시튼은 마을 한 곳에 임시로 마련된 자신의 거처에 틀어박혀 로보의 아내 블랑카를 먼저 사로잡기 위한 방법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

“컷! 오케이.”

메가폰을 타고 나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스태프들이 우루루 현장 정리에 나섰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내가 다시 말했다.

“오전 촬영은 이 정도로 하고, 점심 식사 후에 다시 촬영 재개합니다. 모두 식사 맛있게 하세요.”

***

점심 식사 시간.

스태프들이 케이터링 트럭(밥차) 앞으로 몰려들었다.

영화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할리우드답게 이곳에서는 배우와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케이터링 서비스가 일찌감치 발달해 있었다.

하지만 Film Kim의 케이터링 트럭은 다른 영화사들이 제공하는 그것과 질적으로 달랐다.

마치 고급 연회장에 온 것 같은 각종 음식이 무한으로 제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이 케이터링 서비스 때문에 일부러 Film Kim이 제작하는 영화만 골라 참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이는 모두 전생의 충무로에서 겪은 내 경험 때문이지.’

전생에서 충무로 영화감독으로 있던 시절,

대부분의 영화 제작자들은 이 식비를 아끼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영화 제작비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컸기 때문이다.

이에 단가가 낮은 식당과 단체 계약을 맺는다든지, 값싼 도시락을 주문해서 나누어준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식비를 절감하곤 했다.

물론 그에 비례에 식사의 질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고.

식비가 이럴 진데, 스태프의 임금 또한 제대로 지급될 리가 없었다.

노동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이 지급되기 일쑤였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부족한 제작비를 식비와 교통비 같은 운영비 절감과 스태프들의 열정 페이로 메꾸곤 했던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어리석은 짓이었지. 영화에 참여하는 스태프들의 사기가 영화의 퀄리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데, 그들을 열악한 상황에 내팽겨쳐 두고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전생 이후 Film Kim을 창립하면서부터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매번 영화 촬영 때마다 식사와 간식, 더 나아가 적정 급여와 같은 스태프들의 복지 문제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적어도 나와 함께 작업을 하는 스태프들은 만족스러운 촬영 환경과 더불어 일한 만큼의 대가를 제공해주기로 한 것이다.

‘영화는 감독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참여하는 스태프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작업이라는 것을 전생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지.’

***

점심 식사가 끝나고 오후 촬영이 재개되었다.

스태프들이 촬영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주연 배우인 윌리엄 포드와 촬영감독을 포함한 몇몇 감독급 스태프들과 다음 촬영 장면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었다.

이번 씬은 영화의 전환점이 되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늑대 왕 로보를 잡기 위한 주인공 시튼의 여러 차례의 시도가 드디어 첫 성과를 보이는 장면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나는 스태프들과 함께 촬영 컨셉에 대해 여러모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감독님, 촬영 준비 모두 끝났습니다.”

조감독의 말을 들은 내가 곧바로 감독석으로 이동했다.

뒤이어 메가폰을 타고 촬영 시작을 알리는 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48씬 촬영 시작합니다. 카메라 스탠바이 하시고, 3, 2, 1, 레디,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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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왕 로보의 아내 ‘블랑카’의 존재를 확인한 시튼은,

로보를 잡기에 앞서 먼저 블랑카부터 잡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그가 사용한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일부러 허술한 함정을 짠 다음, 그 옆에 진짜 덫을 놓아 블랑카가 걸려들게 만든 것이다.

“정말 이 방법이 통할까요, 시튼?”

루시가 시튼을 향해 물었다.

두 사람은 지금 며칠 전에 블랑카를 잡기 위해 설치한 덫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었다.

“물론이죠. 전에도 내가 말했다시피 늑대 사회에서는 우두머리보다 앞서가는 것은 반항이나 반역을 의미하는 것인데, 로보가 블랑카에게만 유독 이를 허용하고 있다는 건 둘 사이가 매우 각별하다는 의미가 분명하죠.”

“그럼 이번에도 틀림없이 블랑카가 앞장서다가 우리가 설치한 함정을 발견하면......”

“쉿!”

갑자기 시튼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뒤이어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은빛 털을 가진 늑대 한 마리가 덫에 걸려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맙소사!”

“블랑카예요. 늑대 왕 로보의 아내 블랑카가 틀림없어요.”

- 크르르!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블랑카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협적인 블랑카의 표정과는 다르게, 그 자태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 탕!

- 타당!

갑자기 울려 퍼지는 총소리.

시튼을 뒤따라오던 마을 사람들이 블랑카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놀란 나머지 그만 총을 발사하고 만 것이다.

“그, 그만둬!”

“쏘지 마요!”

시튼과 루시가 황급히 마을 사람들을 말리고 나섰지만 이미 늦었다.

늑대 왕 로보의 아내 블랑카는 이미 은빛 털이 피로 새빨갛게 물든 채로 죽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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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합니다. 다들 현장 정리하고 숙소로 복귀하세요.”

200.

현장 촬영과 더불어,

이번 영화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늑대 왕 로보 무리의 모습을 CG로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나는 촬영이 없는 날마다 계속 ILM에 들러 작업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어떻게, 작업은 잘 돼가고 있어요, 벤자민?”

“그게......”

나의 물음에 이번 영화의 CG 제작을 총책임 지고 있는 벤자민 파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더라고요.”

“그래요?”

“예. 지금까지 제가 킴과 함께 여러 편의 영화 CG 작업을 해왔지만, 역대 가장 어려운 영화가 바로 이번 영화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킴이 충분한 인력을 뒷받침해줬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아마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번 영화의 CG 제작에 참여한 인원은 대략 3백여 명,

그것도 다년간의 경험을 가진 전문 그래픽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앞선 영화 <쥐라기 공원>이나 <키메라>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자민 파웰이 이렇게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

이번 영화에는 늑대 왕 로보를 비롯해 총 5마리의 늑대가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 늑대의 모습을 실제와 똑같이 CG로 구현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외형만이 아니었다.

움직임과 표정 심지어 울음소리 하나까지 진짜 늑대와 동일하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작업은 늑대의 몸에 난 털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CG 기술이 웬만큼 발달한 시대에도 동물의 털을 CG로 표현하는 것은 신의 영역으로 여길 만큼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랜더링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난 화면부터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보다가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해줘요. 체크 해뒀다가 나중에 보완 작업을 할 테니까요.”

“알겠어요, 벤자민.”

벤자민 파웰과 내가 곧장 영사실로 이동을 했다.

그가 보여준 영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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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컹! 컹!

십 수 마리의 사냥개가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무언가를 뒤쫓고 있었다.

그 뒤로는 손에 총을 든 남자들이 말을 타고 뒤따르고 있었다.

늑대 왕 로보 무리의 사냥에 나선 전문 사냥꾼들이었다.

하지만,

로보의 무리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수풀 속으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분명히 이 근처에 숨어 있어.”

“얼른 개들을 풀어서 놈들을 찾게 해!”

잔뜩 흥분한 사냥꾼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막 로보 무리가 무려 200마리가 넘는 양을 물어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먹기 위해서가 아닌 단순히 재미로만.

- 그르르, 컹! 컹!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자 사냥꾼 하나가 황급히 그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그런데,

“이, 이럴 수가.”

찰나의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이빨에 목이 뜯겨나간 자신의 사냥개가 그곳에 죽어 있었던 것이다.

뒤이어,

- 부스럭!

어둠 속에서 검은 형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의 늑대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거대한 몸집.

은은한 달빛 때문인지 유난히 더 윤기가 흘러 보이는 갈색 털.

보는 이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 정도로 살기 가득한 눈과 두 입술 사이로 드러난 날카로운 송곳니.

늑대 왕 ‘로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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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멋진데요?”

정지된 영상 속의 늑대 왕 로보의 모습을 살펴보던 내가 감탄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면 속의 로보의 모습은 실제 늑대의 모습을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한 사실감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보보다 더욱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다음 화면에서 등장한 또 다른 늑대 블랑카였다.

순백색의 하얀 털을 가진 블랑카의 모습은,

은은한 달빛에 반사되어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그 덕분에 들판을 떠도는 한 마리의 야수(野獸)가 아닌, 하나의 멋진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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