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 실사 동물영화 <늑대 왕 로보> (3) >
197.
영화사 Film Kim 대회의실.
영화 <늑대 왕 로보>의 출연 배우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영화 최종 시나리오 리딩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리 프로덕션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최종 시나리오 리딩은 무척이나 중요한 작업이었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 및 대사, 감정 등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최종 리허설에 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아무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일일 촬영 계획표 작성이 이루어진 후 영화는 곧바로 크랭크 인에 들어가게 된다.
내가 회의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주연 배우인 윌리엄 포드가 말을 건네 왔다.
“오셨습니까, 감독님.”
“아, 윌리엄. 컨디션은 좀 어때요?”
“최상입니다. 오늘을 위해 일부러 컨디션 관리를 해왔으니까요.”
“역시 프로답네요, 하하.”
“감독님도 아시잖습니까? 이번 영화에 제가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영화 <레이더스> 출연 이후 무려 10년 만에 다시 감독님과 함께하는 작업이라서 더더욱요. 그래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모든 작업에 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자, 그럼......”
내가 책상 위의 시나리오를 펼쳐 들며 말했다.
“본격적인 시나리오 리딩을 시작해보도록 하죠.”
“예, 감독님.”
내가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조감독이 본격적인 진행에 나섰다.
“지금부터 영화 <늑대왕 로보>의 최종 시나리오 리딩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씬의 지문은 조연출인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다들 집중해주세요.”
조감독이 첫 번째 지문을 읽기 시작했다.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뉴멕시코 커럼보 초원 지대. 한 무리의 이리 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늑대 왕이라 불리는 ‘로보’였다. 보통의 늑대보다 몸집이 두 배 이상 컸고, 눈빛 또한 무척이나 매서웠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진 늑대 로보는 벌써 4년 넘게 이 지역 농장주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뒤이어 배우들의 대사가 시작됐다.
철저한 캐릭터 연구와 오랜 연습 기간 덕분에 그들의 대사는 실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사실감이 있었다.
‘역시 프로는 프로군. 시나리오 리딩이 시작되자 다들 순식간에 자신이 맡은 배역에 몰입하기 시작했으니 말이야.’
배우들의 시나리오 리딩을 지켜보며,
나는 실제 현장 촬영을 통해 만들어질 영화의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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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의 의뢰를 받은 주인공 시튼은 본격적인 ‘로보’ 사냥에 나서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가 준비한 것은,
“이게 뭐예요, 시튼?”
마을 처녀 루시의 물음에 시튼이 대답했다.
“암소 콩팥이요. 기름기가 많아서 늑대 같은 동물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죠.”
“독극물을 쓰려고요?”
“예.”
“소용없을 텐데. 마을 사람들에게 듣지 않았어요? 일전에 한 사냥꾼이 독이 든 미끼를 사용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했다는 사실을. 로보 그 녀석이 후각이 무척이나 뛰어나거든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튼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를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았다.
먼저 암소의 콩팥에 치즈를 섞은 후 쇠 냄새가 나지 않도록 미리 준비된 도자기 그릇에 끓인다.
마찬가지로 쇠 냄새 방지를 위해 뼈 칼로 고기를 자르고 그사이에 냄새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특별히 캡슐 형태로 제작된 독약을 삽입하고 치즈로 구멍을 막는다.
작업 내내 암소의 피로 적신 장갑을 끼고, 마스크로 입을 막아 입김이 닿지 않게 주의한다.
마지막으로 암소 생간과 피를 담은 자루에 미끼를 같이 넣은 후 말에 매달아 한 시간 정도 땅에 끌고 다닌다.
“휴......”
루시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엄청난 정성이시네.”
“놈의 귀신 같은 후각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하하.”
“정말이지 이번에는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로보 때문에 그동안 마을 사람들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숫제 마을을 떠난 사람들도 있다고요.”
“나만 믿어요. 야생 동물 사냥 경험은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으니까.”
하지만,
첫 번째 대결은 시튼의 완패였다.
“이, 이럴수가......”
자신이 뿌려둔 미끼를 확인하러 길을 나선 시튼이 뭔가를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신음을 내뱉었다.
그 이유는,
늑대 로보가 시튼이 설치한 미끼를 모두 모아 한 곳에 쌓은 후, 마치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 위에 똥을 갈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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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 처녀 루시는 원작에는 없는, 내가 새로 각색해서 만든 인물이었다.
원작이 단편 소설이다 보니 시튼과 로보의 대결을 중심으로만 단순하게 서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루시를 비롯한 몇몇 인물과 사건을 새로 창조해 이야기의 흥미를 더했던 것이다.
‘물론 원작 소설 내용을 심하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말이지.’
내가 다시 배우들의 시나리오 리딩에 집중했다.
벌써 한 시간 남짓 시간이 흘렀지만, 배우들은 여전히 집중력을 잃지 않은 채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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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도가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가고,
시튼은 다시 두 번째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덫이에요?”
마을 처녀 루시의 물음에 시튼이 대답했다.
“맞아요.”
“근데 모양이 좀 독특하네요?”
“내가 있는 연구실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특별히 만든 덫이죠. 루시도 봐서 알겠지만 웬만해서는 발견하기 힘든 모양을 하고 있죠. 게다가......”
시튼이 또 한 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설치도 아주 특별한 방법을 쓸 예정이에요.”
“어떤 방법요?”
“원래 노련한 늑대들은 덫 주위를 뱅뱅 돌면서 탐색을 하는 습성이 있어요. 난 바로 이점을 이용할 생각이에요. 다시 말해 하나의 덫 주변에 다른 덫을 H자 형태로 배치해서 걸려들게 만드는 거죠.”
하지만,
시튼의 두 번째 시도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로보는 마치 비웃듯이 덫이 설치된 곳을 교묘하게 비켜서 지나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시튼은 매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뭐해요, 시튼? 내가 지켜보니까 한참 동안 여길 떠나지 않고 뭔가를 관찰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게......”
자신이 설치한 덫 주변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시튼이 대답했다.
“드디어 로보를 잡을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네? 그게 정말이에요?”
“확실해요. 이 방법을 이용하면 정말로 로보 녀석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시튼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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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약 두 시간에 걸친 최종 시나리오 리딩이 모두 끝났다.
딕션(발음)이 애매한 몇 가지 단어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수정 사항이 발견된 것은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일일 촬영 일정표 작성 후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번 달 15일로 하죠. 크랭크 인 날짜는.”
나의 말에 모여 있던 간부급 스태프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감독님.”
198.
영화사 캐넌 필름.
1967년에 처음 만들어진 이 회사는 저예산 영화를 주로 만드는 곳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오래전부터 슈퍼 히어로물에 관심을 가지고 <슈퍼맨4>,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흥행에서 참패를 기록했고, 이에 최근에는 다시 저예산 영화 제작에만 집중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새 영화 <늑대왕 로보>의 크랭크 인을 며칠 앞둔 바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캐넌 필름을 직접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예전에 마블이 이 회사에 팔아넘긴 스파이더맨의 영화 판권을 다시 찾아오기 위함이었다.
‘수백 개에 달하는 마블의 슈퍼 히어로 캐릭터를 대표하는, 그것도 가장 수익성이 높은 캐릭터가 바로 스파이더맨이었기 때문이지.’
“처음 뵙겠습니다, 제임스 킴입니다.”
“크리스 골란입니다. 유명하신 분을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무척이나 영광입니다.”
“별말씀을요.”
비즈니스적인 만남답게,
몇 차례의 의례적인 인사가 오가고 곧바로 본론이 논의되기 시작되었다.
“예전부터 제가 여러 번 사장님을 뵙고 싶다고 연락드렸었는데......”
내가 크리스 골란 캐넌 필름 사장을 향해 말했다.
“별다른 응답이 없으시더라고요.”
“영화제작 일로 계속 해외에 나가 있어서요. 그래도 직원들을 통해 상황은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 듣자니 스파이더맨의 영화 판권을 회수하고 싶어 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우리 Film Kim이 마블을 인수하기 이전에 이미 이곳 캐넌 필름에서 스파이더맨 영화 판권을 구입하셨더라고요.”
“근데 이를 어쩌나......”
크리스 골란 사장이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스파이더맨은 우리가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캐릭터라서 말이지요. 게다가 이미 티저(Teaser;예고편) 영상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라서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약 파기에 다른 위약금과 더불어 티저 영상 제작에 들어간 비용까지 모두 우리가 부담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약금과 티저 영상 제작비를 모두 다요?”
“그렇습니다.”
크리스 골란이 눈빛이 번뜩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연이은 영화 흥행 실패로 현재 캐넌 필름은 심각한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실제 영화 스파이더맨 제작도 매우 불투명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할리우드 최대 규모의 영화사인 Film Kim이, 그것도 사장이 직접 나서 막대한 위약금까지 제시해가며 영화 판권을 회수한다고 하니, 크리스 골란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크리스 골란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제가 스파이더맨의 영화 판권을 포기하면 Film Kim에서는 얼마를 보상해주실 생각입니까?”
“사장님이 먼저 제시해보십시오. 그럼 저도 최대한 그 금액에 맞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500만 달러.”
“500만 달러요?”
“예. 500만 달러를 위약금으로 주시면 저도 깔끔하게 스파이더맨의 영화 판권을 넘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알기로,
5년 전 캐넌 필름이 스파이더맨 영화 판권 구입에 사용한 비용은 약 22만 달러.
그런데 지금 그는 무려 20배가 넘는 돈을 위약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티저 제작 보존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꽤 큰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죠.”
“예?”
“지금 즉시 500만 달러를 캐넌 필름 쪽 계좌에 입금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사장님께서는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시면 됩니다.”
“......”
크리스 골란 사장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 무리한 금액이라,
그래서 당연히 조정을 요구해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내가 너무 쉽게 승낙을 해버린 것이었다.
“허, 역시 듣던 대로 대범하신 분이군요. 이런 큰 액수를 일말의 고민도 없이 선뜻 결정하시다니......”
“승낙의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실무진들을 통해 계약 완료 후 곧바로 대금 지급을 해드리겠습니다.”
“그, 그러시죠.”
이로써,
스파이더맨의 영화 판권은 다시 마블, 아니 우리 Film Kim의 소유로 넘어오게 되었다.
“저기, 킴.”
캐넌 필름을 나서기가 무섭게 레이첼이 나를 향해 말했다.
“500만 달러면 위약금치고는 너무 큰 금액이 아닌가요? 아무리 킴이 스파이더맨 캐릭터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에요.”
맞는 말이었다.
통상 위약금은 해당 금액의 두 배 내지는 세 배 정도가 일반적인데, 지금 나는 무려 20배가 넘는 금액을 주고 판권을 다시 되찾아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레이첼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지. 그것은 바로 지금 스파이더맨 판권을 회수하지 못하면 나중에 이보다 더 큰 금액을 들여서, 그것도 오랜 법적 분쟁을 겪고 나서야 겨우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전생의 내 기억에 따르면,
자체적으로 스파이더맨을 영화화할 수 있는 능력도, 자금도 없었던 캐넌 필름은 계약 기간이 넘어서자 무단으로 판권을 프랑스의 한 영화사에 팔아넘기게 된다.
이후 오랜 법적 분쟁을 거쳐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 가운데 한 곳이 이를 다시 사들이게 되는데 그 금액은 무려 4억 달러에 달했다.
‘그에 비하면 500만 달러는 거저 준 것이나 다름없는 금액이지. 더불어 앞으로 스파이더맨이 본격적으로 영화화되면 캐릭터 상품 판매 금액과 더불어 수십억 달러의 돈을 벌어들이게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레이첼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난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레이첼?”
“예?”
“난 애초에 천만 달러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캐넌 필름 사장이 그 반밖에 부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오케이 해버렸죠, 하하.”
“......”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레이첼.
그런 그녀의 어깨를 내가 감싸 안으며 말했다.
“자, 자. 오늘 성공적인 계약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오래간만에 한국 음식 어때요? 전에 레이첼이 도전했다가 실패한 김치찌개에 한 번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어휴, 킴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요. 그래요, 가요, 가, 한국 식당. 안 그래도 나도 속 터져서 매운 음식이 확 당기던 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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