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12화 (112/145)

# 112 < 실사 동물영화 <늑대 왕 로보> (2) >

195.

영화 <늑대 왕 로보>.

내가 직접 연출을 맡은 아홉 번째 영화이다.

사실 이 영화는 이미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이었다.

동물학자 ‘어니스트 시튼’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시튼 동물기>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시나리오 작업에 앞서 원작 소설의 영화 판권은 이미 확보를 해 둔 상태였고.

‘무려 9권에 달하는 소설 <시튼 동물기>에는 저자 시튼이 경험한 여러 동물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 어렸을 적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내용이 바로 늑대 왕 로보에 관한 이야기이지. 그래서 언젠가 이 내용을 영화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이번 생이 될지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군.’

그런데.

내가 <늑대 왕 로보>라는 영화를 만들기로 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동물을 주인공이나 비중 있는 조연으로 다룬 영화가 없었다는 점이지. 왜냐하면 영화에 출연하는 동물을 시나리오 내용이나 감독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연기하게 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동물을 주제로 한 영화는 모두 애니메이션으로만 제작이 이루어져 왔어.’

전생의 내 기억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 제대로 된 실사 동물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 영화 CG 기술이 동물의 모습을 실사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 있을 만큼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라이온 킹>과 <정글북>이라는 작품이고.’

<라이온 킹>과 <정글북>은 모두 기존의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이전까지는 동물의 움직임이나 세세한 표정 변화를 실사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오직 애니메이션에만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 시기에 오면 이를 구현할 CG 기술이 완벽하게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이 영화들은 관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월드 박스 오피스 10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관람료 수익을 기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지. 이번에 내가 최초로 CG 기술을 활용한 완벽한 실사 동물 영화를 만들어내게 되면 <라이온 킹>이나 <정글북>과 같은 영화 못지않은 큰 인기를 누리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바로 이것이,

내가 이번 영화 <늑대 왕 로보>를 만들기로 한 또 다른 이유였다.

생각을 마친 내가 다시 펜을 들었다.

이번 영화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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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멕시코 커럼포(Currumpaw) 지방.

영화의 주인공이자 동물학자인 ‘시튼’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일명 ‘늑대 왕’이라 불리는 ‘로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시튼이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냥꾼이 로보를 잡기 위해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돌아갔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대체 어떤 방법들을 썼길래요?”

“그게......”

마을 사람들이 그동안 로보를 사냥하기 위해 썼던 방법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사용한 방법은 최신형 덫을 설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덫이요?”

“예. 그렇다고 단순히 덫만 설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주변에 사람 발자국도 없애고, 또 냄새까지 없애려고 방취제나 동물 피를 바르기도 했죠. 그 때문에 덫을 설치하는 데만 무려 반나절 이상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보기 좋게 실패했군요?”

“예. 걸리는 건 죄다 들개나 코요테 같은 다른 동물이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경악하게 한 것은 늑대 왕 로보가 주변의 돌을 발로 차서 덫을 모조리 망쳐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예. 로보 그놈은 정말이지 예사 늑대가 아닙니다. 완전 사람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 놈이지요.”

“흠.”

시튼이 다시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 외에 로보를 잡기 위해 사용한 다른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두 번째는 독극물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보는 직접 사냥한 동물 고기 외에는 절대 입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이 방법은 실패했죠. 그래서 우리는 로보가 사냥한 소에 독극물을 직접 바르기로 했습니다. 로보가 소를 사냥하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달려가 쫓아내고, 그 사이에 몰래 소의 몸 여기저기에 독극물을 바른 것이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우리는 로보의 행각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죠?”

“로보 그놈이 독을 바른 부위를 피해 안전한 부위만을 실컷 뜯어먹고 간 것입니다. 마치 우리더러 보란 듯이 말이죠.”

“허, 정말 귀신같은 놈이군요.”

“그렇습니다. 이후에도 다른 방법들, 예를 들면 로보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굴에 폭약을 설치하거나 수십 마리의 사냥개를 동원한다든지, 하다못해 부적이나 주술 같은 미신적인 방법까지 모조리 시도해봤지만 결국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요.”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시튼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시튼 씨께서 저 영악하기 짝이 없는 로보 놈을 잡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쉬운 일은 아닌 것 같군요. 하지만......”

시튼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찾아보면 분명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한낱 늑대 우두머리에 불과합니다. 절대 우리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인간 ‘시튼’과 늑대 왕 ‘로보’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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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의 성공적인 흥행을 가져올 핵심 요소는 크게 두 가지이지. 하나는 주인공인 시튼과 로보 사이에 벌어지는 숨 막히는 머리싸움을 아주 흥미롭게 그려내는 것이지. 관객들이 잠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리고 또 하나는,

‘늑대 왕 로보는 물론 그를 따르는 늑대 무리를 실제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사실감 있게 구현해내는 것이지. 그들의 움직임이나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모두 다.’

전생과 현생에서 쌓은 나의 영화 연출 능력을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

여기에 지난 십수 년 넘게 축적해온 ILM의 CG 기술력이 더해진다면,

‘전생에서 관객들의 극찬을 받은 <라이온 킹>이나 <정글북>을 뛰어넘는 최고의 실사 동물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도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196.

1991년 가을.

영화 <늑대 왕 로보>가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갔다.

이번 영화는 할리우드 최초로 100% CG로 만든 실사 동물 캐릭터가 등장할 예정이었다.

늑대왕 로보와 그를 따르는 다섯 마리의 늑대 무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정교한 CG 작업을 통해 움직임과 표정, 나아가 몸에 난 털과 얼굴 수염 하나하나까지 실제 늑대의 그것과 동일하게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지. 이를 위해서는 할리우드 최고의 CG 제작 전문회사라 불리는 ILM의 기술력이 반드시 필요할 테고.’

이 때문에 나는 이번 영화의 프리가 시작됨과 동시에 매일 ILM에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하며 CG 제작에 매달리고 있었다.

“일단은......”

ILM의 CG 기술 개발을 총책임지고 있는 수석 엔지니어 벤자민 파웰이 나를 향해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연출한 영화의 CG 작업을 거의 도맡다시피 해오고 있었다.

“실제 늑대의 움직임을 분석해서 이를 디지털화하는 모델링 작업은 거의 끝마친 상태입니다.”

“그래요?”

“예. 덕분에 팀원들과 함께 LA 동물원을 수십 차례도 넘게 드나들었지요. 도심 한가운데서 늑대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거기 밖에는 없으니까요.”

“으, 내가 벤자민 얼굴 보기가 미안하군요. 매번 힘들고 어려운 작업만 맡기는 것 같아서요.”

“뭘요. 어쨌든 늑대의 움직임을 담은 동영상과 그곳 사육사들의 조언을 참고해서 영화에 사용할 늑대의 형상을 모델링하는 것은 비교적 쉬웠는데, 문제는 랜더링 작업이에요, 킴.”

“랜더링이요?”

“예. 킴이 원하는 수준의 퀄리티를 가진 영상을 만들어내려면 한 프레임을 작업하는데 최소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린다는 것이죠.”

CG 제작에 있어 모델링이 대상의 기본적인 골격을 만드는 과정이라면 랜더링은 만들어진 골격에 정교한 표면처리를 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림에 비유하면 모델링은 스케치, 랜더링에 채색에 해당하는 것이다.

문제는 랜더링 과정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특히 실사에 가까운 정교한 영상을 요하는 영화일수록 랜더링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력과 장비를 최대한 동원하면요?”

나의 물음에 벤자민 파웰이 대답했다.

“그것 때문에 제가 킴에게 이런 말을 드리는 것입니다. 장비야 이번에 픽사에서 개발한 고성능 그래픽 컴퓨터를 최대로 동원하면 비용 추가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인력은 그렇지 않아서요. 작업에 필요한 인원을 추가로 고용하면 그만큼 제작비 지출이 늘어날 테니까요.”

“내가 매번 이야기하지만, 제작비 문제는 벤자민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원하는 퀄리티의 영상을 구현할 수만 있다면 제작비가 얼마가 들어가든 크게 개의치 않을 테니까요.”

“그럼......”

그제야 벤자민 파웰이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킴의 말대로 제작비 신경 쓰지 않고 작업에 필요한 인원을 대거 고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대신에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늑대왕 로보와 그 무리들을 진짜 늑대와 전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구현해내야 해요.”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킴. 제가 진짜 늑대보다 더 진짜 같은 완벽한 영상을 만들어낼 테니까요, 하하.”

***

벤자민 파웰과의 만남을 끝내고 온 나는 곧바로 영화의 주연 배우 섭외에 나섰다.

사실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부터 내가 주인공으로 미리 점찍어 두고 있던 배우가 두 사람 있었다.

한 명은 예전에 영화 <레이더스>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윌리엄 포드,

그리고 또 한 명은 얼마 전에 성공적인 상영을 끝마친 영화 <늑대와 춤을>과 <보디가드>를 통해 친분을 쌓은 케빈 코스트너였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중후한 외모와 더불어 시대극을 촬영한 경험도 있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 아주 잘 어울리는 배우이지. 게다가 연기력도 할리우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출중하기도 하고.’

물망에 오른 윌리엄 포드와 케빈 코스트너,

두 사람 가운데 최종 캐스팅이 확정된 배우는 윌리엄 포드였다.

케빈 코스트너는 이미 알프레드 스톤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의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는 무척이나 아쉬움을 표하며 나에게 이번 영화 출연을 정중하게 거절해왔다.

‘케빈 코스트너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하지. 영화 는 전 세계적으로 2억 달러 이상의 흥행 성적을 올리며 아카데미 상을 받기도 하는 영화니까 말이야.’

어쨌든,

주연 배우인 윌리엄 포드의 합류로 영화 <늑대 왕 로보>의 프리 프로덕션도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이 지났고,

영화는 드디어 최종 시나리오 리딩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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