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11화 (111/145)

# 111 < 실사 동물영화 <늑대 왕 로보> (1) >

193.

할리우드 인근의 한 고급 호텔 연회장.

윌리엄 포드, 톰 크루즈, 베니 스콧, 안소니 홉킨즈, 브루스 윌리스 등등 이름만 대면, 아니 얼굴만 봐도 알만한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속속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지 루이스,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룬, 마틴 스콜세지 등등 소위 할리우드의 흥행 보증 수표라 불리는 거장 감독들도 하나둘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얼핏 아카데미 같은 유명 시상식이라도 열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오늘은 나와 레이첼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세계 최고의 영화감독이자, 세계 최대 영화사 오너(Owner)의 결혼식답게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관계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여기에 월가를 주름잡고 있는 유명 경제계 인사들,

그리고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한인과 흑인 지도자들도 다수 참석했고, 현장 취재를 위한 기자들도 상당수가 모여들었다.

이로 인해 운동장 정도의 크기를 가진 대형 호텔 연회장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게 되었다.

“축하해, 킴.”

누구보다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네온 것은 다름 아닌 조지 루이스였다.

“킴도 이제 드디어 지옥문을 통과하게 되는구먼.”

“이제 막 결혼하는 사람에게 그게 할 소리예요?”

“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나저나 오늘 킴 정말 멋진데? 만날 청바지에 허름한 티만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다가, 이렇게 멋지게 턱시도까지 갖춰 입은 모습을 보니까 아주 멋져. 이거 아무래도 내 다음 영화 주연으로 킴을 캐스팅 해야 되겠는걸?”

“쉰 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서 사회 볼 준비나 해요. 알죠? 오늘은 절대 NG 나면 안 되는 거?”

“흠. 그러고 보니 오늘 씬은 컷 없이 롱 테이크로 가야 하는 고난이도 작업이군.”

누가 영화감독 아니랄까 봐,

영화 촬영 용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를 우리 두 사람이었다.

“근데 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결혼식 사회를 보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아. 난 이미 결혼에 한 번 실패한 사람이잖아. 그러니 나보다는 모범적인 가정을 일구고 사는 다른 사람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일종의 경각심 차원이죠. 조지를 교훈 삼아서 앞으로 더욱 잘살아 보려는.”

“끙. 킴은 말을 해도 꼭......”

조지와 내가 소리 없이 마주 보고 웃었다.

아내 아멜리아와 이혼한 지 꽤 시간이 지난 탓에,

이제 조지 루이스와 나는 이런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럼 난 이만 들어간다. 킴에게 인사하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눈치 때문에 뒤통수가 다 따까워서 더 있고 싶어도 있을 수가 없네.”

“그래요, 조지. 좀 이따 다시 봐요.”

조지 루이스가 사회 준비를 위해 성큼성큼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많은 사람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하나같이 TV 혹은 스크린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유명 인사들이었다.

“휴, 오늘 보니 정말 실감 난다, 도훈아.”

하객들과의 인사가 어느 정도 끝나갈 무렵 곁에 있던 아버지가 나를 향해 말했다.

“뭐 가요, 아버지?”

“도훈이 네가 얼마나 유명 인사인지가. 이건 뭐, 완전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네. 할리우드 톱배우들을 눈앞에서 실제로 보고 있으려니 말이야.”

“그걸 이제 아셨어요?”

“자식이 겸손하지 못하고.”

“흐흐, 농담이에요, 농담.”

“그나저나, 도훈아.”

“네.”

“앞으로 레이첼이랑 다투지 말고 오순도순 잘 살아야 한다. 내가 보기에 세상에서 레이첼 만큼 좋은 여자도 없는 것 같으니까.”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레이첼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그러니 아버지도 마음 푹 놓으셔요. 다른 사람들 보란 듯이 잘 살 테니까요.”

“그래, 그래.”

아버지가 지나가는 투로 덧붙여 말했다.

“휴, 이런 날 네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얼마나 기뻐했겠냐.”

“......그러게요.”

“으, 내가 또 괜히 주책을 떨었나 보구나. 야야, 이제 식 시작되는 것 같다. 신랑 먼저 입장해야 하니까 얼른 가보거라.”

“예, 아버지.”

“긴장해서 넘어지지 말고.”

“아버지도 참.”

잠시 후, 본격적인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아버지 헨리 도나의 손을 잡고 다소곳이 나를 향해 걸어오는 레이첼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영화 촬영장에서 본 그 어떤 할리우드 여배우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미국 하와이의 쿠알로아 랜치.

영화 <쥐라기 공원>의 로케이션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레이첼과 내가 신혼여행지로 선택한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신혼여행지를 굳이 이곳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지. 그것은 바로......’

“영화 테마 파크요?”

“그래요, 레이첼. 앞으로 난 이곳에 Film Kim의 이름으로 대규모의 영화 테마 파크를 만들 생각이에요. 그래서 회사 직원들에게 이 지역의 땅을 좀 매입하라고 지시했고요.”

Film Kim Movie Land.

이 지역에 앞으로 내가 건설할 예정인 영화 테마 파크의 이름이었다.

‘Film Kim Movie Land에는 그동안 우리 회사가 제작한 영화의 캐릭터와 소품, 세트장을 그대로 옮겨와 관객들이 실제 영화에서 본 장면들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곳이지. 아울러 리조트와 놀이 기구, 워터 파크와 전시관 같은 다양한 시설들을 겸비해 해마다 대규모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만들 예정이지.’

마치 미국 플로리다에 위치한 ‘디즈니 랜드’처럼,

이곳 하와이 쿠알로아 랜치에도 ‘Film Kim Movie Land’라는 이름의 테마 파크가 세워지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게 되겠지만.

“우리 Film Kim이 만든 영화를 주제로 한 테마 파크라니, 생각만 해도 정말 멋지네요.”

“앞으로 레이첼이 많이 도와줘야 해요. 저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니까.”

“그야 물론이죠. 앞으로 킴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 저도 적극적으로 돕도록 할게요.”

“자, 그럼......”

내가 레이첼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으며 말했다.

“오늘만큼은 일 얘기는 일체 접어두고 한번 실컷 놀아봐요. 밤새도록.”

194.

영화사 Film Kim.

결혼식과 신혼여행으로 일주일가량 자리를 비운 탓에,

회사에는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한국과 홍콩 지점, 그리고 이곳 할리우드 지역의 영화감독들이 보내오는 시나리오를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일이지.’

회사 창립 이후,

내가 손댄 영화는 하나같이 흥행에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이는 모두 내가 가진 전생의 기억 덕분이었음을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 때문에 지금도 회사로 들어오는 영화 시나리오 투자는 일일이 내 손을 거쳐 최종적인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지.’

그렇게 장시간에 걸쳐 시나리오 선별 작업을 끝낸 나는,

곧바로 새로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그 어떤 일도 영화 연출 일보다는 우선순위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 킴.”

한동안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내 귀에 낯익은 조지 루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조지. 어서 와요.”

“어떻게, 여행은 잘 다녀왔어?”

“네. 모처럼 아주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그럼 다행이고. 근데......”

조지 루이스가 내 책상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뭐 하는 거야? 설마 오자마자 또 새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는 거야?”

당연하지.

인생은 짧고, 만들 영화는 많으니까.

“어휴, 징글징글하구먼. 한시도 쉬지 않고 영화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그래서, 이번 영화는 또 어떤 영화야? 그 시나리오 나도 좀 볼 수 있어?”

“그게요......”

내가 시나리오 대신 사진 몇 장을 조지 루이스의 앞에 내밀었다.

“뭐야, 이게?”

“이번 영화의 주인공요.”

“영화 주인공?”

조지 루이스가 손에 든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동안 사진을 보고 있던 조지 루이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킴은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이건 사람이 아니라 개, 아니 늑대인가? 뭐 어찌 됐든 간에 영화의 주인공이 동물이라니,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진심이죠, 그럼.”

“허어......”

“조지. 사실 얘가 ‘로보’라는 이름의 늑대인데요......”

내가 조지 루이스에게 이번 영화의 컨섭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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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4년 미국 뉴멕시코.

양이나 염소, 소 같은 동물을 키우는 목축업이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지역 농장주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4년 전,

정체불명의 이리 떼가 등장해 지금까지 무려 수천 마리에 달하는 동물들을 물어 죽인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이리 떼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재미’로 이 같은 짓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화가 난 농장주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리 떼를 사냥하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이들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리 떼들은 멀리서 사람의 인기척만 들려도 순식간에 달아나버리기 일쑤였고, 또 사람들이 몰래 설치한 온갖 함정과 속임수에도 좀처럼 걸려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리 떼의 우두머리인 ‘로보’가 무척이나 머리가 좋아 매번 함정과 속임수를 간파하고 피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튼’이라는 이름의 전문 사냥꾼이 우연히 이 마을을 지나가다 ‘로보’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흥미를 느낀 시튼은 농장주들로부터 로보를 잡을 경우 1만 달러의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직접 사냥에 나서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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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 킴의 말은......”

조지 루이스가 나를 향해 말했다.

“늑대왕 ‘로보’와 인간 사냥꾼의 숨 막히는 대결을 그린 동물 영화를 만들겠다는 거야? 그것도 실사로?”

“맞아요, 조지.”

사실,

할리우드 영화에 동물이 등장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부분 애완용 내지는 사냥감 용도로만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물론 동물이 주인공이나 비중 있는 조연을 맡는 영화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대부분 애니메이션 형태로 제작되곤 했다.

실사 영화로 만들기에는 동물을 컨트롤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좀 다르지. 이번 영화는 ‘로보’를 중심으로 한 늑대 무리가 영상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늑대 무리의 움직임을 아주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해 낼 예정이라는 것이지.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이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말이야.’

“흠.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한데, 실제 촬영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동물이 사람 말귀를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매번 감독이 의도한 대로 움직여줄 리가 만무할 테니 말이야.”

“그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조지.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늑대 무리는 진짜 동물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과 스톱 모션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가상의 동물이니까.”

“가상의 동물?”

“네. 앞선 영화 <쥐라기 공원>이나 <키메라> 촬영에 사용했던 CG나 스톱 모션 기술을 이용하면 실제 동물보다 훨씬 정교하고 사실적인 움직임을 구현해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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