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 논란의 영화 (8) >
191.
영화 <보디가드>의 상영이 끝나기가 무섭게,
Film Kim이 제작한 또 한 편의 영화가 북미 극장가에서 상영되기 시작했다.
나의 여덟 번째 연출작인 영화 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개봉 직후부터 미국 전역에 꽤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영화는 별다른 홍보 없이도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큰 화젯거리가 되고 있었다.
언론에서도 이번 영화와 관련된 소식이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었다.
- 논란의 중심에 선 제임스 킴 감독의 신작 영화 .
- 영화 , 불편한 진실인가? 아니면 왜곡된 거짓인가?
- 공식 성명을 통해 영화 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나선 유대인 단체들, 법적인 소송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혀.
- 유대인 단체, 연방 법원에 영화 에 대한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해.
- 올해 할리우드의 뜨거운 감자가 된 영화 을 둘러싼 각계각층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어.
유명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이들의 의견은 영화에 대한 비판과 옹호로 극명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 영화 을 관람하는 두 시간 내내 불편함과 거북함을 감출 수 없었다. 유대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를 한 번이라도 공감해본 사람은 섣불리 이 영화에 동조하기 힘들다.
- 유대인과 홀로코스트는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 위로할 부분이 있다면 위로하고, 비판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비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제임스 킴 감독의 영화 은 그동안 금기시되어온 유대인 문제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좋은 영화이다.
- 영화 은 교묘한 방법으로 테러리즘을 옹호하고 있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지만 경우에 따라 예외는 존재한다. 이스라엘처럼 국가의 주권과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서 사용될 때가 그렇다.
- 영화 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에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는 이스라엘과 폭탄 스위치를 누르는 팔레스타인이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오히려 숫자만 놓고 보면 이스라엘이 훨씬 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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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가 상영되는 5주의 기간 내내,
이 같은 논란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와 영화사 Film Kim은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야만 했고.
***
영화사 Film Kim.
레이첼이 사장실 문틈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뭐해요, 킴?”
“아, 레이첼.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왜 그러고 있어요?”
“킴 요즘 많이 심란할 텐데 제가 괜히 방해될까 봐서요.”
“그럴 리가요.”
레이첼이 내 책상 위에 놓인 신문과 영화잡지들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요즘 많이 시끄럽죠? 영화 때문에요.”
“예상했던 대로죠, 뭐. 나야 그렇다 쳐도 직원들이 정신이 없나 봐요. 각종 단체에서 얼마나 많은 항의 전화가 오는지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하더라고요. 기자들은 또 어찌나 뻔질나게 찾아오는지......”
“그래도 법원에서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미국 사회가 원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편이잖아요. 조지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이번 영화에 대해 지지하고 나서기도 했고요.”
“그러게요. 이번 영화의 주연 배우인 베니 스콧은 물론 윌리엄 포드, 톰 크루즈,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같은 킴과 인연이 있는 유명 배우들이 이번 영화를 적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섰잖아요. 심지어 같은 유대인인 스필버그 감독님도 이번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으니까요.”
“그점은 나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보다 레이첼은 괜찮아요?”
“괜찮다니, 뭐가요?”
“같은 유대인으로서 유대인들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따가운 시선 같은 것이 분명히 있을 거잖아요.”
“상관없어요.”
레이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유대인이라고 해서 유대인들의 옳지 못한 행동까지 모두 감싸 안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전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 진짜 유대인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다행이고요. 어쨌든 이번 일로 당분간은 유대인들이 우리 Film Kim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것이 분명해요. 이번 영화 이 숨기고 싶어 했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니까.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Film Kim을 압박해 올지도 모르겠네요.”
“아버지가 힘이 되어 주실 거예요. 게다가 지금 많은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킴의 편에 서주고 있잖아요. 그러니 힘내요, 킴.”
“후후. 그럴게요.”
“그럼 킴. 우리 오늘은 일찍 집에 들어가서 쉬어요. 따뜻한 물에 몸도 좀 담그고, 와인도 한잔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질 거예요.”
“그래요.”
“그나저나 우리 킴......”
레이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혹시나 누가 해코지라도 할까 무서워서 오늘부터 옷장 속에 들어가서 자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이번 영화의 주인공 제프처럼.”
“......”
“호호, 농담이에요, 농담.”
당연히 농담이겠지.
그런 일은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일 뿐이니까.
***
영화 의 최종 흥행 수익은 9천만 달러 남짓.
내가 직접 연출한 역대 영화 가운데 가장 저조한 흥행 성적이었다.
또한 이는 ‘할리우드의 흥행 보증 수표’라 불리는 나의 명성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성적이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의도하지 않은 노이즈 마케팅 덕분인지 손익 분기점은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번 영화가 흥행보다는 사회적 메시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이지.’
사실 이번 영화 은 ‘무비 저널리즘’의 성격을 가진 영화였다.
무비 저널리즘이란 TV 시사 프로그램처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사건을 다룬 영화를 가리키는데,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하는 시사 프로그램과 달리 관객의 감성에 호소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훨씬 더 크게 와 닿게 된다.
‘전생에서 내가 몸담고 있던 충무로에서도 이런 무비 저널리즘의 성격을 가진 영화가 자주 만들어지곤 했지. <도가니>, <부러진 화살>, <변호인> 등의 영화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고 말이야.’
이번 영화는 흥행의 측면에서는 기존의 나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성적을 올린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영화의 오락적 기능과 사회적 비판적 기능을 훌륭하게 조화시킨 ‘웰 메이드’ 영화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작용했기 때문인지 내가 만든 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단 한 분야의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기는 했지만.
192.
영화 을 둘러싼 논란이 거의 식어갈 무렵.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오래간만에 나를 찾아왔다.
최근 그는 두 가지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하나는,
1990년대 후반 전 세계를 강타할 대작 영화 <타이타닉>의 사전 제작 준비 작업이었다.
‘총제작비 2억 5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2천억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된 영화 <타이타닉>은 그 수익 또한 22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기록했지. 이는 역대 영화 흥행 순위 3위에 빛나는 엄청난 성적이었고.’
하지만 영화 제작 과정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실제 타이타닉 호와 같은 대형 모형 선박 제조, 정밀한 컴퓨터 그래픽, 시대극에는 반드시 뒤따라야 할 정확한 고증 등등 보통의 영화보다 몇 배는 더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이 영화는 제작 준비기간만 5년, 실제 촬영은 2년, 도합 7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내가 제임스 카메룬에게 일찌감치 영화 <타이타닉>에 대한 소스를 준 것도 바로 그 때문이고.’
더불어 최근 제임스 카메룬이 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작업은,
“영화 시나리오요?”
나의 물음에 제임스 카메룬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 킴. 영화 <타이타닉> 준비기간이 생각보다 훨씬 길어질 것 같아서 그 중간에 따로 영화 한 편을 더 찍으려고 시나리오를 한번 써봤어요.”
“나도 그렇지만 지미도 참 대단하네요. 보통의 영화감독은 영화 한 편 준비하는 것도 벅차 하는데, 그사이에 또 한 편의 영화를 준비하다니요.”
“킴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죠. 킴은 영화 각본, 제작, 연출, 거기에 더해 회사 경영까지 모두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잖아요. 저도 킴의 반의반만이라도 따라가려고 노력해야죠, 하하하.”
“그래서......”
대충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물었다.
“이번 영화는 어떤 영화에요?”
“그게......”
제임스 카메룬이 나에게 시나리오 책자 하나를 내밀었다.
제목은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트루 라이즈(True Lies)>
클로드 지디 감독의 프랑스 영화 <라 토탈>을 리메이크 한 영화였다.
‘트루 라이즈.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연출한 영화 가운데 드물게 코믹 장르의 영화이지. 물론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첩보물에 가까운 내용이지만 말이야.’
할리우드 영화사에 있어 <트루 라이즈>란 영화가 중요한 이유는 엄청난 수준의 특수효과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다리 폭파 장면, 그리고 최첨단 전투기의 등장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인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었다.
“프랑스 영화 <라 토탈>을 리메이크한 코믹 첩보물이라. 진지한 SF 영화의 선두 주자인 지미에게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영화인 것 같은데요?”
“저 나름대로 새로운 변신을 한번 해보려고요. 무엇보다 새로운 형태의 특수 시각 효과를 이번 영화에 도입할 생각도 가지고 있고요.”
“흠.”
“......킴이 보기에는 별로인가요?”
제임스 카메룬이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영화 <어비스>로 이미 한 차례 나에게 투자를 거절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제작비는 얼마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7천만 달러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그보다 조금 더 들어갈 수도 있고요.”
7천만 달러는 무슨.
물 먹는 아니, 제작비 먹는 하마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번 영화의 제작비도 초반 계획보다 훨씬 초과해 1억 달러 이상이 사용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흥행에는 꽤 성공해 제작비의 3배가 넘는 수익, 대략 3억 달러 이상의 큰 수익을 올린 영화가 바로 <트루 라이즈>이지. 따라서 이번 영화의 투자는 크게 망설일 필요가 없는 것이고.’
“좋아요, 지미.”
“네?”
“이번 영화 시나리오에 제가 투자를 하겠다고요.”
“그게 정말이에요?”
“예, 대신......”
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지미 스타일 대로 제작비에 크게 구애받지 말고 마음껏 한번 만들어봐요. 아, 그렇다고 영화 <타이타닉> 제작 준비에도 소홀하면 안 되고요.”
“그야 물론이죠,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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