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09화 (109/145)

# 109 < 논란의 영화 (7) >

188.

영화 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하지만 개봉까지는 아직 몇 개월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영상 편집, 색 보정, 음악 내지는 음향 추가, 시각적 특수효과 등과 같은 포스트 프로덕션(후반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는 대부분 장면이 유럽과 중동 등지의 해외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됐다.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보다 현장감 있게 다루기 위해서였다.

물론 영화 전반부에 등장하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장면은 별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세트장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오래간만에 서로 얼굴을 마주한 조지 루이스가 나를 향해 말했다.

“일단 촬영은 모두 끝이 났군.”

“그러게요.”

“후반 작업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두어 달 정도면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편집 과정에서 특별히 재촬영해야 할 부분이 발견되지 않는다면요.”

“킴이야 완벽한 스토리보드를 만들어서 촬영에 들어가는 걸로 워낙 유명한 사람인데 재촬영할 일이 생기겠어?”

“그야 모를 일이죠.”

“그나저나 시사회는 언제 할 생각이야? 지금쯤이면 슬슬 시사회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시사회는......”

잠시 뜸을 들이던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필요하다면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들과 함께 기술 시사회 정도만 하려고요.”

“뭐? 별도의 공개 시사회를 하지 않는다고?”

조지 루이스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홍보에 있어 시사회만큼이나 좋은 수단은 없기 때문이지. 특히 기자(언론) 시사회의 경우 영화 관련 기자와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종 언론매체나 잡지를 통해 영화 개봉 소식을 관객들에게 손쉽게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지. 이 때문에 많은 영화사가 영화 개봉 직전에 대대적인 시사회를 여는 것이고.’

하지만 이번 영화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혹시나 영화의 내용이 미리 알려지면 미국 사회를 주름잡고 있는 유대인들이 크게 발발할 수 있고, 심한 경우 개봉조차도 불투명해질 수 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영화부터 개봉해 놓고, 평가와 비판은 나중에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어차피 Film Kim의 이름이면 극장주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스크린을 내어줄 것이 분명하니까. 관객들 또한 내가 만든 영화라면 일단 믿고 극장을 찾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킴의 말은......”

조지 루이스가 나를 향해 말했다.

“개봉 전부터 괜한 논란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시사회를 아예 배제하고 곧바로 극장 상영부터 하겠다는 거야?”

“예. 그래야 사람들이 선입견 없이 이번 영화를 볼 수 있을 테니까요.”

“허 참, 예나 지금이나 킴의 그 무모함은 정말 알아줘야 한다니까.”

“대신에......”

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특별 시사회는 있을 예정이에요.”

“특별 시사회?”

“네. 조지와 레이첼, 그리고 레이첼의 아버지인 헨리 도나 씨 등등 이번 영화를 편견을 가지지 않고 봐줄 사람들만 몇몇 초청해서요.”

“그나마 다행이군. 킴의 영화 팬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이번 영화의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했었는데, 그나마 특별 시사회에는 초청해준다니 말이야.”

조지 루이스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 요즘 관객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니까 킴이 어떤 의도로 이번 영화를 만들었는지 다들 알아줄 거야. 그 왜,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는 말도 있잖아?”

“고마워요, 조지. 늘 제 편에 서서 응원해줘서요.”

“새삼스럽게 뭘. 자, 그럼 시사회 날에 다시 보자고. 그동안 촬영하느라 고생했으니 당분간은 푹 좀 쉬고.”

***

그로부터 며칠 뒤,

영화 의 비공개 특별 시사회가 시작됐다.

참석자는 불과 열 명 남짓,

나와 레이첼, 레이첼의 아버지인 헨리 도나, 그리고 조지 루이스를 비롯한 몇몇의 친분 있는 영화감독이었다.

“킴. 그동안 고생 많았지? 듣자니 해외 촬영 때문에 거의 밖에 나가 있다시피 했다면서?”

시사회 시작 직전,

헨리 도나가 나를 향해 물었다.

이번 영화 은 헨리 도나의 제안으로 시작한 영화였고, 제작비 또한 전액 그가 부담하고 있었다.

명문 유대 가문 출신이자, 월가의 유명한 금융가인 헨리 도나.

하지만 그는 유대인들의 맹목적인 시오니즘을 비판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이번 영화의 제작을 나에게 의뢰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고.

“날씨 때문에 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만족할 만한 영상이 나와서 다행입니다.”

“그동안 내가 자네에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을 많이 했네.”

“아닙니다. 헨리 씨 덕분에 제 필모(Filmography)를 장식할 자랑스러운 작품이 또 하나 탄생하게 됐는걸요, 하하.”

물론 자랑스러운 작품이 될지,

아니면 흑역사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일이겠지만.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조감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명이 꺼지면서 본격적인 영화 상영이 시작했다.

189.

소위 잘 만들어진 영화에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영화 한 편에 인간의 희노애락과 같은 감정이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이지. 두 시간 정도의 러닝타임 동안 때론 관객을 울게 만들고, 때론 웃게도 만드는 영화, 또한 관객들의 가슴 속에 진한 울림을 남겨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도 한참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영화, 바로 이런 영화가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할 수 있지.’

이번 영화 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을 울고, 웃고, 여기에 긴 여운까지 줄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곳곳에 들어 있었다.

먼저 오프닝에 등장하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장면은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눈물짓게 만들기 충분했다.

수용소 곳곳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총성들,

매일 반복되는 극심한 노동과 비인격적인 대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심리적 불안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유대인들,

노동 부적합 판정을 받아 처형당하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깨물어 나온 피를 얼굴에 발라 혈색을 좋게 보이려는 유대인 여성 등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장면이 불과 10살 남짓의 어린 제프의 눈을 통해, 그것도 사실감을 더해주는 흑백 영상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내가 영화의 초반부에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유대인 대학살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한 이유는 바로 현대의 유대인들에게 과거 자신들의 모습을 잊지 말라는 의미이지. 또한 혹시 자신들도 지금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나치와 같은 괴물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를 되돌아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

영화의 중반부부터는 본격적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을 다루고 있었다.

주인공 제프가 속해 있는 이스라엘 정보국과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인 붉은 5월이 서로 죽고 죽이는 악순환의 반복,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등장인물들의 불안한 심리 상태와 인간적인 갈등,

이를 통해 영화는 사실상 지금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상황이 과거 유대인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같은 영화의 메시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영화의 엔딩에 등장하는 주인공 제프와 상관인 미하일 이스라엘 정보국 차장의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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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하네, 제프. 자네는 우리 이스라엘의 영웅이야.”

모든 임무를 끝내고 돌아온 제프.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함께 임무 수행에 나선 동료 요원들은 모두 보복 암살을 당하거나, 불안감과 죄책감에 못 이겨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또한 ‘붉은 5월’은 와해 되었지만, 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테러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더욱 강경한 성향을 가진 조직이 그 자리를 대체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정부에서 받은 훈장도,

상관의 칭찬과 진급도 제프에게는 모두 허무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가?”

“이번 작전의 시발점이 된 이스라엘 예배당 테러 사건, 정말로 ‘붉은 5월’의 소행이 맞습니까?”

미하일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사실 이스라엘 예배당 테러 사건의 배후가 붉은 5월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눈엣가시와 같은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을 없애는 것이 이스라엘의 목표였고,

제프의 팀은 이를 위한 이스라엘 정보국 산하의 수많은 조직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자네의 짐작이 맞아. 그 사건, 붉은 5월이 연루되어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어. 하지만 그들이 우리 이스라엘의 적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지.”

“......”

“우린 그저 집(HOME)이 필요할 뿐이야, 제프. 자네와 내가 싸우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고.”

“그들도......”

제프가 뒤돌아서며 말했다.

“우리와 똑같죠.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집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죠.”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제프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을 암살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집 어딘가에 자신도 모르는 폭탄이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결국 제프는 수시로 창밖을 내다보며 수상한 인물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또 집안의 모든 가구와 전자기구를 미친 듯이 분해하고 난 뒤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동이 틀 무렵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제프가 겨우 잠이 든 곳은 놀랍게도 자신의 방 옷장이었다.

얼마 전에 살해당한 자신의 동료 에브라임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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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사회가 모두 끝나고,

- 팟!

꺼졌던 조명이 다시 켜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잘 만든 영화가 갖추어야 할 요건인 ‘긴 여운’이 아직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흥건히 젖은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으며 헨리 도나가 나에게 건넨 말은,

“수고했네, 킴.”

이 딱 한 마디였다.

하긴.

그 이상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마는.

190.

1991년 여름.

올해 Film Kim이 야심차게 만든 영화 가운데 하나인 <보디가드>가 극장 개봉을 시작했다.

반응은 내 예상대로였다.

개봉과 동시에 북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그야말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대 최고의 톱스타였던 케빈 코스트너와 휘트니 휴스턴의 출연,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았던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의 로맨스, 여기에 휘트니 휴스턴의 뛰어난 가창력이 더해진 영화 OST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

그 덕분에 북미 극장가는 한동안 영화 <보디가드>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총 5주에 걸쳐 상영된 <보디가드>의 흥행 수익은 1억 2천만 달러.

하지만 아직 해외에서의 흥행 수익이 남아 있었다.

특히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이 영화가 큰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화 <보디가드>의 총수익은 4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4천만 장이 넘게 판매되는 OST 앨범 수익까지 더하면 근래에 Film Kim이 만든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영화 <보디가드>의 상영이 끝나기 무섭게 Film Kim의 이름으로 만든 또 한 편의 영화가 극장 개봉을 시작했으니,

그 영화는 바로 앞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오게 될 영화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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