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 논란의 영화 (6) >
186.
요르단 현지의 영화 촬영 현장.
로케이션 촬영 일정으로 인해 나를 비롯한 촬영팀들은 벌써 한 달 넘게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연일 계속되는 고온의 날씨.
이 때문에 이번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으, 오늘도 날씨가 푹푹 찌는구먼.”
“다른 건 다 적응해도 이곳 날씨는 영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뜨거운 햇빛에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모래 바람까지......”
마치 현지인들처럼 쿠피야(두건)를 얼굴에 둘둘 감은 스태프들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면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촬영에 몰입하곤 했다.
“오늘 촬영일정표와 대본입니다, 감독님.”
“고마워요.”
조감독으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내가 오늘 촬영할 내용들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영화 촬영이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이번 영화를 통해 내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주제가 주연 배우들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현재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 다시 말해 스스로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지금 나치 독일과 똑같은 짓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증오의 악순환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특히 이스라엘은 서방 국가의 지원을 받은 압도적인 화력을 바탕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행한 ‘인종 청소’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이번 영화의 중반부부터는 그동안 유대인들이 감춰왔던 바로 이러한 불편한 진실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고.’
“감독님. 촬영 준비 모두 끝났습니다.”
조감독의 사인을 받은 내가 손에 든 메가폰을 들어 올렸다.
오늘 촬영은 신념(信念)과 정의(正義)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과 모사드 요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카메라 스탠바이, 레디, 액션!”
- 탁!
익숙한 슬레이트 소리를 시작으로, 드디어 오늘 첫 촬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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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서안의 안전 가옥.
주인공 제프를 비롯한 이스라엘 정보국 요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첫 작전 성공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브라보!”
술잔을 높이 든 제프가 잔뜩 격앙된 표정으로 말했다.
“자, 다들 고생 많았어. 오늘 하루는 작전이고 뭐고 다 잊고, 실컷 마셔!”
“예, 대장.”
“다음 작전은 이번처럼 쉽지 않을지도 몰라. 이번 일로 놈들이 겁을 먹고 잔뜩 움츠러들 것이 분명하니 말이야.”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죠. 지금 우리 손에 아랍 정보상으로부터 사들인 놈들의 정보가 들어있으니까요, 하하.”
“그나저나......”
제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에브라임은 어디 있어?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
“글쎄요, 아까 바람 좀 쐬러 나간다고 했는데, 아직 안 들어온 모양이네요.”
“혼자 다니면 위험해. 팔레스타인 놈들이 역으로 우릴 공격해올지 모르니까 말이야.”
“제가 나가서 찾아볼까요?”
“아니, 내가 직접 나가보지. 자네들은 그냥 술이나 마시고 있어.”
제프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집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어렵지 않게 마당 한 구석의 벤치에 앉아 있는 에브라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 대장.”
맥주병 하나를 건네주며, 제프가 물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
“아뇨. 그냥 머리가 좀 복잡해서요.”
“설마 낮에 그 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
“......”
“내가 말했잖아. 작전에는 불가피한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라고.”
“하지만 그 애들은 제 아들 샘과 비슷한 나이의 어린아이일 뿐이었다고요.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에브라임.”
제프가 에브라임의 말을 끊었다.
“10살 무렵이었지. 내가 부모님과 함께 폴라초프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간 것이. 그곳에서 나는 아주 많은 것을 보게 되었어. 그리고 그 장면은 지금도 매일 밤 내 꿈속에 선명하게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고 있지.”
“대, 대장.”
“집이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 아나? 그건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해줄 울타리가 없다는 뜻이야. 난 사상이니, 정의니 하는 그따위 어려운 말은 잘 몰라. 내가 아는 건 나라 있는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야. 그게 내 신념이지.”
하지만,
제프 또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 밤 그의 꿈에,
폴라초프 수용소에서의 기억이 아닌 폭사한 마호메트 함샬리의 두 아들이 나타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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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오전 촬영은 여기까지 하고 잠시 쉬었다가 촬영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날 오후,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로 인해 촬영이 좀처럼 재개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교차가 큰 요르단의 특성 덕분에 늦은 오후 무렵이 되자 기온이 상당히 내려갔고, 그 덕분에 촬영이 다시 재개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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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시내의 한 호텔.
- 쾅!
출입문을 박차며 제프를 비롯한 모사드 요원들이 호텔 방에 들이닥쳤다.
그곳에서 그들이 목격한 것은 누군가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동료 한스의 모습이었다.
“개새끼들!”
제프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붉은 5월 놈들의 소행이야. 그놈들이 역으로 우리에게 보복해 온 것이 분명해.”
“대장.”
요원 하나가 제프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프론트에 확인해봤더니, 어제 밤늦게 한스가 여성 한 명과 호텔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꽤 술에 취한 모습으로요.”
“제길!”
대충 상황이 짐작이 갔다.
붉은 5월의 사주를 받은 여성이 술집에서 한스를 유혹해 호텔 침실로 유인한 뒤 기습 살해한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부하 요원의 죽음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앞서 카알도 누군가 전화기에 폭탄을 설치한 것도 모르고 통화를 하려다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모사드 요원과 붉은 5월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죽고 죽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부하 요원 에브라임의 방을 찾은 제프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자신도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증세에 시달린 나머지 방안의 전자기기, 심지어 침대와 탁자까지 모두 분해하고 옷장에 숨어서 잠을 자는 에브라임의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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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영화 과 더불어,
올해 Film Kim에서 야심차게 제작하고 있는 또 한 편의 영화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화 <보디가드>, 앞선 <늑대와 춤을>과 더불어 케빈 코스트너를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배우로 만든 작품이지.’
톱스타와 보디가드의 사랑이라는 다소 진부한 소재의 이 영화가 월드 박스 오피스 4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남자배우인 ‘케빈 코스트너’ 그리고 최고의 여성 디바 ‘휘트니 휴스턴’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이었다.
더불어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의 사랑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영화 내용도 한몫했다.
하지만,
‘영화 <보디가드>가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영화에 삽입된 OST의 힘이라고 할 수 있지. 특히 영화의 메인 테마곡인 는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무려 1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큰 인기를 끌면서 그래미상까지 받게 됐는데, 그 덕분에 영화도 덩달아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지.’
전생의 기억 덕분에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영화 <보디가드> 제작 초기부터 공동 제작자 겸 주연인 케빈 코스트너와 함께 OST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번 영화 메인 테마곡을 킴이 직접 골랐다고요?”
케빈 코스트너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네. 아마 케빈도 알지 모르겠네요. 1970년대 중반에 돌리 파튼이라는 여가수가 부른 란 노래인데, 내 생각에는 이 곡을 리메이크해서 이번 영화에 삽입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노래라면 저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케빈 코스트너가 살짝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노래는 컨트리풍의 노래라 이번 영화의 OST로 사용하기에는 조금 촌스럽지 않을까요?”
“그렇죠. 그래서 이 노래를 R&B 형식으로 리메이크해서 쓰려고요.”
“R&B요?”
“네. 아마 지금쯤이면 우리 회사 소속 음반 프로듀서가 이 노래의 리메이크 작업을 끝마쳤을 테니, 일단 가서 한번 들어보고 판단하죠. 아, 그리고......”
내가 덧붙여 말했다.
“휘트니 휴스턴 양도 같이 스튜디오로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이번 영화의 메인 테마곡은 그녀가 직접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까요.”
***
콜롬비아 레코드.
영화사 Film Kim 산하의 음반 제작 및 유통 전문회사이다.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회사는 원래 콜롬비아 픽처스 산하에 있던 회사였다.
하지만 최근 콜롬비아 픽처스가 Film Kim에 인수됨에 따라 우리 회사의 자회사가 된 곳이었다.
‘내가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한 것은 영화의 투자, 제작, 배급 외에도 TV와 케이블 사업, 음악, 게임 등의 사업에도 진출해 회사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함이었지. 특히 앞으로 영화 OST 시장은 다른 음악 장르 못지않게 큰 성장을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콜롬비아 레코드도 덩달아 크게 성장을 하게 될 테지.’
케빈 코스트너와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휘트니 휴스턴이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어서 와요, 케빈. 킴도 같이 왔네요?”
“오랜만이에요, 니피(Nippy). 요즘 촬영 때문에 고생이 많죠?”
니피(Nippy)는 휘트니 휴스턴의 애칭이었다.
이번 영화 작업 때문에 여러 번 그녀와 만나는 과정에서 나는 애칭을 부를 정도로 친근한 사이가 된 것이다.
“고생은요. 나름 색다른 경험이라 아주 신나게 촬영에 임하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저나 케빈에게 말해줘요. 니피가 최적의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까.”
“고마워요, 킴.”
잠시 후,
이번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포스터의 지휘 하에 본격적인 녹음이 시작됐다.
“And I will always love you, ooh~ will always love you~”
너무나도 귀에 익은 목소리와 가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상하네. 원래 이 노래에 전주가 있었던가?’
전생의 내 기억에 따르면,
휘스트 휴스턴이 부르는 영화 <보디가드>의 OST 는 전주 없이,
노래 시작과 함께 무려 40초 동안 오직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만 들린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전주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조차 있을 정도였다.
“저기, 데이비드.”
“네, 킴.”
“노래 도입부를 반주 없이 가는 것은 어떨까요?”
“예?”
“노래 시작 부분에 반주를 빼고, 휘트니 양의 목소리만으로 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
잠시 뻥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데이비드 포스터.
하지만 조만간 그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나의 이 제안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지를.
‘오로지 휘트니 휴스턴의 가창력으로만 채워진 도입부, 그리고 후반 하이라이트 부분의 강력한 전조, 이는 란 노래를 세계적인 명곡으로 만들어 준 중요한 요인이지. 그 덕분에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무려 4,00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OST 앨범’으로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되게 되지.’
물론 앨범 판매 수익의 상당 부분은 콜롬비아 레코드의 모회사인 우리 Film Kim의 것이 될 것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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