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07화 (107/145)

# 107 < 논란의 영화 (5) >

로저 디킨스 촬영 감독이 나에게 말했다.

“이번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 제프의 회상 씬을 흑백 필름으로 촬영하자고 한 킴의 제안은 정말이지 신의 한 수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네. 촬영 회의 당시 킴이 그런 제안을 처음 했을 때는 솔직히 전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철 지난 흑백 필름을 사용하자고 했으니까요.”

로저 디킨스의 말마따나,

나는 이번 영화 에 등장하는 주인공 제프의 회상 씬을 흑백으로 촬영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촬영팀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컬러 영화가 너무나도 당연해진 시기에 굳이 화질이 떨어지는 흑백으로 영화를 촬영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지. 그것은 바로 스태프들 가운데 흑백 영화를 촬영해 본 경험이 있는 스태프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지.’

흑백 촬영은 단순히 필름이나 카메라만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배경, 특히 세트장 제작에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가령 예를 들어,

컬러 영화를 찍던 방식으로 세트를 만들면 면과 면의 명암 차이가 크지 않아 촬영 시 화면이 뭉개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인위적인 색을 덧칠해서 세트의 명암을 세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컬러 촬영보다 오히려 더 준비 과정에 손이 많이 가는 것이 바로 현대식 흑백 촬영이지.’

“흑백 촬영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것은 저지만,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모두 로저 감독님 덕분이죠. ‘영상의 마술사’라 불릴 정도로 특출난 실력을 가진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이번 씬 촬영이 이처럼 순조롭게 진행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무슨 말씀을요. 제가 그런 별명을 가지게 된 것도, 또 아카데미 촬영상을 무려 3번이나 수상하게 된 것도 모두 킴 덕분입니다.”

‘영상의 마술사’ 또는 ‘신이 내린 천부적인 재능의 촬영 감독’이라 불리는 로저 디킨스.

하지만 그의 이런 능력을 십분, 아니 백분 발휘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내가 개발한 최신 촬영 기법과 장비들이었다.

‘<체이스 오브 리벤지> 시리즈에서 선보인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추격씬, 에서 사용된 획기적인 원 컨티뉴어스 숏 기법, 그리고 이러한 촬영을 가능하게 만든 스테디캠과 크레인 카메라 등과 같은 장비는 모두 내가 만들어낸 것이었고, 그 덕분에 로저 디킨스도 보다 뛰어난 촬영 기술을 선보일 수 있었지. 이로 인해 아카데미 촬영상도 여러 번 수상할 수 있었고 말이야.’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촬영하고 있는 영화 도 흑백 영상과 컬러 영상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며 종전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한 화면 기법을 선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번 영화의 촬영 기법은 빅터 플레밍 감독이 1939년에 만든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오즈의 마법사>요?”

“예. 그 영화에 보면 첫 장면은 컬러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화면이 흑백으로 바뀌면서 본 내용이 시작되죠.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가면 시점이 현재로 바뀌면서 다시 화면이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이 되죠. 이번 영화 은 바로 이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용된 기법을 반대로 적용한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도 이 흑백 촬영 기법이 사용되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 같은 사실감을 관객들에게 안겨 주었다.

‘이처럼 흑백 영상은 잘만 이용하면 컬러로 촬영된 영상보다 효과적인 의미 전달이 가능하지.’

“그러고 보니 저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군요.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용된 흑백 전환 기법은 관객에게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구별할 수 있게 만든 중요한 장치였었죠.”

“그렇습니다.”

“하여튼......”

로저 디킨스가 감탄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매 영화 촬영 때마다 선보이는 킴의 그 참신한 아이디어들은 정말이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군요.”

“뭘요. 그나저나 스태프들의 촬영 준비가 거의 다 끝나가는 것 같으니 슬슬 다음 씬 촬영을 시작하도록 하죠.”

“예, 감독님.”

***

오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촬영할 장면은 주인공 제프 일행이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 ‘붉은 5월’의 조직원 한 명을 암살하는 장면이었다.

“스탠바이, 레디, 액션!”

메가폰을 타고 나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면서 곧바로 영화 촬영이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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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서안의 가자 지구.

인파(人波)를 헤치며 아랍인 남자 하나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남자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무리가 있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구인 ‘모사드’ 소속 요원들이었다.

“표적 확인됐습니다.”

동료의 무전을 받은 제프가 망원경을 들어 남자의 움직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남자의 얼굴은 얼마 전 미하엘 차장으로부터 넘겨받은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 ‘붉은 5월’의 조직원 한 명의 얼굴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마호메트 함샬리. ‘붉은 5월’의 행동 대장이자, 예배당에 폭탄을 설치한 놈 중의 하나이지.”

제프가 부하 직원 에브라임을 향해 말했다.

“폭탄은?”

“지금 한스와 칼이 놈의 차량에 설치하고 있습니다. 돌아와 차량에 시동을 거는 순간......”

에브라임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런 그를 향해 제프가 말했다.

“절대 실수해서는 안 돼. 이번에 놓치면 두 번 다시 놈을 찾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예, 대장.”

제프가 다시 망원경을 들어 표적의 움직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프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혼자 차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마호메트 함샬리가 자신의 아내와 두 아들을 모두 데리고 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죠, 대장?”

에브라임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죄 없는 희생자, 특히 어린 아이 둘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제프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그냥 예정대로 진행한다.”

“하지만, 대장. 지금 놈의 어린 두 아들이......”

“모든 작전에는 불가피한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야. 게다가 지금 놈을 놓치면 또 언제 그를 찾아낼지 모른다고.”

“대, 대장......”

에브라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프가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한스. 놈이 차에 탑승하는 것을 확인했다. 차량이 시가지 외곽으로 빠지면 곧바로 폭파시켜.”

“예, 대장.”

무전기 너머로 제프의 부하 요원인 한스의 음성이 들려오기 무섭게,

- 콰콰쾅!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폭발음과 함께 마호메트 함샬 리가 탄 차량이 불꽃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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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내가 스태프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하도록 합시다. 다들 현장 정리되는 대로 숙소로 복귀하도록 하세요.”

185.

영화사 Film Kim.

내가 레이첼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은 촬영이 없는 날이었고, 이에 나는 레이첼과 함께 회사 경영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마블 코믹스 인수가 완료되었다고요?”

나의 물음에 레이첼이 대답했다.

“네, 킴. 법적인 문제까지도 아주 깔끔하게 완료되었어요.”

“고생 많았어요, 레이첼. 나 대신에 회사 인수 문제를 직접 진행하느라요.”

“뭘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걸요.”

“그나저나 마블이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들은 다 확인해봤어요? 혹시 다른 회사에 판권이 넘어간 경우는 없었어요?”

내가 마블 코믹스를 인수한 것은 순전히 마블이 소유하고 있는 캐릭터들 때문이었다.

앞으로 본격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 시대가 개막되면, 마블이 보유하고 있는 이 캐릭터들은 최소 수십에서 수백억 달러의 수익을 우리 Film Kim에 안겨다 줄 것이다.

“이게......”

레이첼이 서류철 하나를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현재 마블이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와 관련 사업들을 정리한 자료예요. 왠지 킴이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할 것 같아서 제가 챙겨 왔어요.”

“고마워요, 레이첼.”

내가 잠시 서류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서류에는 지난 수십 년간 마블이 창조해낸 슈퍼 히어로 캐릭터와 이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 현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서류를 살펴보던 나는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스파이더맨. 아이언맨과 더불어 마블 코믹스를 대표하는 슈퍼 히어로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이 보유 목록에서 빠져 있잖아?’

전생의 내 기억에 따르면,

스파이더맨은 단일 캐릭터로는 가장 많은 영화 수익을 올린 캐릭터였다.

총 6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제작되는 동안 누적 관람료 수익이 무려 50억 달러에 육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마블을 대표하는 또 다른 캐릭터인 <아이언맨> 영화 시리즈보다 두 배나 많은 금액이었다.

‘관람료 수익뿐만이 아니지. 스파이더맨은 인형, 피규어, 의류 같은 2차 상품 판매 수익으로도 수십억 달러의 돈을 벌어들이게 되니까 말이야.’

“저기, 레이첼.”

“네.”

“내가 목록을 쭉 살펴보니까, 마블 코믹스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이 빠져 있는 것 같은데, 혹시 그 이유를 알고 있어요?”

“아, 그건요......”

레이첼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레이첼의 말은 회사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블이 1985년에 이미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캐넌 필름’이라는 곳에 판매했다는 것입니까?”

“네. 대신 특정 기간 내에 스파이더맨을 영화화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고요.”

“그 기간이 언제까지입니까?”

“원래는 올해까지였는데, 작년에 계약을 다시 맺는 바람에 1994년까지로 연장이 되었어요.”

“1994년이라. 그럼 앞으로 5년 정도가 남았군요.”

“네.”

“저기, 레이첼. 아무래도 캐넌 필름 쪽과 이야기해서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우리가 다시 찾아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킴. 그렇게 되면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상관없습니다. 스파이더맨의 판권만 다시 찾아올 수만 있다면요.”

전생의 내 기억에 따르면,

마블이 보유하고 있는 슈퍼 히어로 캐릭터 가운데 유독 법적 분쟁이 많았던 것이 바로 스파이더맨이다.

그 이유는,

‘원래 스파이더맨은 1994년 다시 마블 코믹스로 판권이 넘어오게 되어 있었지. 하지만 당시 판권을 소유하고 있던 회사인 캐넌 필름이 프랑스 쪽 영화사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스파이더맨의 판권도 그쪽으로 넘어가게 되고, 여기에 원 소유주인 마블 코믹스마저 부도 처리되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게 되지. 이후 마블은 길고 복잡한 법적 분쟁을 거쳐 10년 만에 겨우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되찾아 오게 되고 말이야.’

무엇보다 염려되는 점은,

이 과정에서 누군가 먼저 스파이더맨을 영화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스파이더맨 판권은 일정 기간 내에 영화화한다는 조건으로 판매된 것이었고, 이에 판권을 매입한 회사의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그냥 돈만 날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레이첼.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캐넌 필름 사장과 약속을 좀 잡아줘요.”

“지금 당장요?”

“예. 내가 직접 캐넌 필름 사장을 만나서 스파이더맨 판권 회수 문제를 논의해보려고요.”

“알겠어요, 킴. 제가 지금 바로 연락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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