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06화 (106/145)

# 106 < 논란의 영화 (4) >

182.

1990년 겨울.

영화 의 프리 프로덕션이 시작됐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각본 및 스토리보드 작성, 배우 캐스팅, 스태프 구성, 예산 계획 및 촬영 스케줄 작성 등과 같은 전반적인 영화 촬영 준비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각본’ 제작과 ‘배우’ 캐스팅이다.

각본과 배우는 ‘연출’(감독)과 더불어 영화의 3요소라 불릴 정도니까.

‘그동안 계속된 작업으로 영화 시나리오는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지. 이제 다음 할 일은 영화에 출연할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인데......’

늘 그렇듯,

이번 영화도 시나리오 작성과 배우 캐스팅은 스태프들에게 맡기지 않고 전적으로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영화와 달리 이번 영화는 배우 캐스팅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Film Kim 내지는 제임스 킴이라는 이름만 보고도 득달같이 달려왔을 할리우드 배우들이,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에는 좀처럼 응답을 보내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나도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고.

‘이번 영화 이 유대인들의 이중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자칫 이 영화에 잘못 출연했다가 미국의 주류 세력인 유대인들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앞으로 배우 생활이 무척이나 힘들어질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에 나는 전생의 기억을 총동원해 이번 영화에 출연할 만한, 다분히 반(反) 유대적 성향을 가진 배우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인물은 바로......

“정말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감독님. <체이스 오브 리벤지2>가 마지막이었으니, 감독님과 제가 함께 작업한 지도 거의 7, 8년은 더 지난 것 같군요.”

“그 중간에 영화 촬영 때 잠깐 봤었잖아요.”

“그건 진짜 잠깐이고요. 그 영화에는 제가 까메오로 출연했을 뿐이니까요, 하하.”

베니 스콧이었다.

이번에 내가 주인공 제프 역을 맡기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호주 출신의 영화배우 배니 스콧.

그와의 인연은 나의 첫 연출작인 <체이스 오브 리벤지>에서부터였다.

전생의 기억 덕분에 그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배우로 성장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명인 그를 영화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체이스 오브 리벤지>가 큰 흥행 성공을 거두게 됨에 따라 베니 스콧의 인기도 덩달아 오르게 되었다.

뒤이어 <체이스 오브 리벤지2>와 <특수 경찰> 등의 출연작도 연달아 흥행에 성공했고,

그 덕분에 현재 베니 스콧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액션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감독님. 이번 영화 시나리오가 꽤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더군요.”

“맞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 영화가 개봉되면, 미국 전역이 좀 시끌시끌해지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언제는......”

베니 스콧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조용한 적이 있었습니까? 매번 감독님의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큰 화제가 되곤 했지 않습니까, 하하하.”

“문제는 이번 영화의 경우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논란이 된다는 것이지요.”

“......”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는 베니 스콧이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근데 왜 하필 접니까, 감독님? 할리우드의 많은 배우들 가운데 왜 하필 이번 영화의 주인공으로 저를 선택하신 겁니까?”

“그건 베니만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영화배우도 드물기 때문이죠.”

진심이었다.

지금 내가 베니 스콧에게 한 말은.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전생에서 베니 스콧은 반(反)유대적인 발언과 영화 제작으로 한때 큰 논란이 되기도 했던 인물이지. 언론에 유대인을 비판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또 예수를 처형한 유대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예수의 최후>와 같은 영화를 만들기도 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런 행동과는 다르게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을 위한 활발한 기부 활동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베니 스콧이 가진 이런 반유대주의적 성향은 영화 과 아주 잘 맞아떨어질 것이고,

그 때문에 내가 그를 이번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2000년대 초, 베니 스콧이 처음으로 직접 연출을 맡은 영화 <예수의 최후>, 이 영화는 종교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당시 할리우드 대다수 영화 관계자의 예상을 깨고 무려 6억 달러, 2차 시장 판권까지 합치면 9억 달러 이상의 흥행 성적을 올린 대작 영화가 됐지. 이는 역대 R등급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흥행 성적이었고.’

R등급은 15세 이상 관람가와 청소년 관람 불가 사이에 위치한 등급을 말한다.

<예수의 최후>가 R등급을 받은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는 모습을 거의 고어물에 가까울 정도로 잔혹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에 만약 이 영화가 종교 영화가 아니었다면 R등급보다 더 높은 등급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유대인들에 대한 베니 스콧과 나의 생각이 상당수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추후 그가 연출하게 될 <예수의 최후>라는 영화도 우리 Film Kim의 이름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거야.’

생각을 마친 내가 베니 스콧을 향해 대답했다.

“예전에 영화 작업을 함께 하면서 나는 여러 번 느꼈습니다. 베니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번 영화는 저보다 감독님께 더 큰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영화는 출연 배우보다 감독의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하는 법이니까요.”

“그 점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 정도 각오쯤은 충분히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저도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겠군요. 무엇보다 제임스 킴 감독님이 만드는 영화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번 영화에 출연할 충분한 이유가 될 테니까요.”

베니 스콧의 합류로,

영화 의 프리 프로덕션은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최종 시나리오 리딩과 촬영 스케줄 작성. 이 작업만 끝나면 본격적인 영화 크랭크 인이 이루어지게 되겠군.’

***

영화 의 크랭크 인을 며칠 앞두고,

내가 아버지와 함께 LA 한인타운 북쪽에 위치한 로스 펠리츠를 향하고 있었다.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고급 저택이 즐비한 로스 펠리츠는 할리우드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또한 이곳은 미국 영화 산업의 본고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월트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KCET 등과 같은 영화사와 TV방송국들의 초창기 스튜디오가 로스 펠리츠 서쪽의 버몬트 길 인근에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집?”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나를 향해 아버지가 물었다.

“갑자기 웬 집을 보러 간다는 거야?”

“그게요, 아버지. 이번에 제가 로스 펠리츠에 괜찮은 집을 하나 샀거든요. 그래서 가장 먼저 아버지께 보여드리려고요.”

“도훈이 너, 설마......”

뭔가를 눈치챈 듯한 표정으로 아버지가 나를 향해 말했다.

“이제 드디어 결혼할 결심을 한 거냐? 그래서 결혼해서 살 집을 새로 산 거야?”

“맞아요, 아버지. 저나 레이첼이나 결혼할 시기가 한참 지났잖아요. 무엇보다 아버지 성화를 더 이상 이겨낼 자신도 없고요, 흐흐.”

“아주 잘 생각했다, 도훈아. 이제 나도 한시름 놓을 수 있겠구나. 근데 집은 내가 아니라 레이첼에게 가장 먼저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야?”

“레이첼도 곧 올 거예요. 바이어와의 미팅이 예정보다 늦게 끝나는 바람에 곧장 이리로 오기로 했거든요.”

“그래? 그럼 난 안 갈란다.”

“예?”

“인마, 그 집은 너네 두 사람이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 집인데, 내가 거길 왜 끼냐? 그러니 나 그냥 여기 내려주고 도훈이 너 혼자 가라.”

당장이라도 차를 세우고 내릴 듯한 자세를 취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붙잡으며 내가 말했다.

“안 돼요, 아버지. 아버지도 꼭 같이 가셔야 해요. 왜냐하면 그 집은 아버지도 우리 두 사람과 같이 살 집이니까요.”

“뭐? 나더러 그 집에 들어와서 같이 살라고?”

“예, 아버지. 그리고 이건 레이첼이랑도 이미 이야기된 부분이에요. 그러니 아버지 절대 다른 말씀하시면 안 돼요.”

“허어......”

“다 왔어요, 아버지. 얼른 내리세요.”

내가 아버지의 손을 잡아끌다시피 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새로운 집을 둘러보던 아버지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집의 크기와 인테리어가 아버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고급스러웠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LA 최고의 부촌이라 불리는 로스 펠리츠에서도 가장 비싼 집이 바로 이 집이니까.’

“킴!”

뒤이어 레이첼도 합류를 했고,

우리 세 사람은 앞으로 함께 살게 될 새로운 집을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레이첼.”

새로 이사할 집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가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뭐가요?”

“아버지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 의견에 흔쾌히 동의해줘서요.”

“뭘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 인걸요. 그보다 킴, 우리 셋이 살기에는 집이 너무 큰 것 같지 않아요?”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앞으로 우리 둘이 결혼해서 아이를 왕창 낳으면 되니까요. 집이 좁다고 느껴질 정도로요.”

“뭐, 뭐라고요?”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새로운 집에서 꿈꾸는 희망찬 미래만큼이나,

왠지 이번 영화 도 만족스러운 성과가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184.

1991년 봄.

영화 이 크랭크 인 됐다.

이번 영화는 유대인을 주제로 한 영화였다.

세계 2차 대전 과정에서 있었던 ‘홀로코스트’, 그리고 전쟁 이후 이어지는 ‘이스라엘 건국’과 ‘팔레스타인 문제’ 등과 같은 유대인과 관련된 문제를 기존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때론 진실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 그래서 이번 영화가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그렇지만 평가는 어디까지나 관객들의 몫이다.

그 때문에 나는 프로덕션 기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촬영에만 매진하기로 결심했다.

“자, 준비 다 됐으면 곧바로 슛 들어갑니다. 각 팀별로 준비 상황을 무전으로 회신해주세요.”

“스탠바이, 3, 2, 1, 레디, 액션!”

메가폰을 통해 나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드디어 영화의 첫 촬영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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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봄.

독일 나치군은 유대인 거주 지역을 강제 폐쇄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되는데......

- 탕! 타탕!

- 으악!

- 두두두두!

- 아아악!

독일군이 내지르는 총에 유대인들은 제대로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한 채 수천 명이 희생당했다.

겨우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강제 수용소로 이송당하게 되고, 그 안에서 또 한 번의 대학살을 경험해야만 했다.

일명 가스실이라 불리는 곳에서 매일 대규모의 유대인들이 잔혹한 최후를 맞아야만 했던 것이다.

후대에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이는 10살 무렵부터 수용소 생활을 해온 어린 제프 뇌리에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제프가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매일 밤 꿈에서 반복되는 플라초프 수용소의 악몽(惡夢),

이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제프를 괴롭히고 있었다.

- 삐리리리리!

때마침 침대맡의 전화벨이 울렸다.

제프가 수화기를 귀에 가져가자 익숙한 동료 요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표적 위치 확인 완료됐습니다, 팀장님.”

“어딘가?”

“요르단 수도 암만의 발라드 시장입니다. 현재 우리 요원 한 명이 그자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한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절대 표적을 놓쳐서는 안 돼.”

“알겠습니다.”

제프가 서둘러 장비를 챙겨 들었다.

유대교 예배당 테러를 자행한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붉은 5월’의 일원 가운데 하나를 처단하러 가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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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좋았어요.”

메가폰을 타고 나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스태프들이 우르르 현장 수습에 나섰다.

그 틈을 타서 촬영 감독인 로저 디킨스가 나에게 말을 붙여 왔다.

“감독님.”

“아, 로저. 영상은 좀 어때요? 콘티대로 잘 나온 것 같아요?”

“예. 그래도 감독님이 재차 확인해보시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럴게요.”

“그나저나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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