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 논란의 영화 (3) >
180.
1990년 가을.
영화 <늑대와 춤을>이 개봉됐다.
이번 영화는 Film Kim의 제작비 지원을 받아 배우인 케빈 코스트너가 직접 연출과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흥행을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사회에 참석한 영화 관계자조차도 악평을 쏟아낼 정도로 영화의 내용이 난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철 지난 서부극이라는 장르적 특성도 한몫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영화가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물론 다른 대작 영화들처럼 개봉과 동시에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른다든지,
영화를 보기 위해 관객들이 극장 앞에 긴 줄을 늘어서는 것과 같은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 상영 기간 내내 꾸준히 관객을 끌어모으며 북미 지역에서만 무려 2억 달러에 가까운 흥행 성적을 올렸다.
해외 시장에서의 반응도 뜨거워 북미 시장에 버금가는 관람료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영화 <늑대와 춤을>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진기록을 하나 세우게 되었으니......
‘그것은 이 영화가 ‘역대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지 못한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흥행 성적을 거둔 영화’로 기록됐다는 것이지. 제작비 2,200만 달러로 4억 달러가 넘는 관람료 수익을 올렸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케빈 코스트너는 자신이 제작에 참여한 또 한 편의 영화를 흥행에 성공시키게 되는데,
‘영화 <보디가드>, <늑대와 춤을>과 더불어 케빈 코스트너를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 제작자 겸 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지.’
이에 나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곧바로 다음 영화에 대해 케빈 코스트너와 논의하기 시작했다.
“축하해요, 케빈. 영화 <늑대와 춤을>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7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네요.”
“이 모든 게 다 킴 덕분이죠. 다른 제작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나리오를 킴이 뛰어난 안목으로 발굴해 제작비 지원을 해준 덕분에 이런 영광을 누릴 수 있었으니까요.”
“뭘요. 그보다 이번 영화로 그동안 침체에 빠져있던 서부극이라는 장르가 부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사가 앞다투어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제작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다른 영화사로부터 캐스팅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영화 내용은 대부분 다 서부극이고요, 하하.”
“역시 유행에 민감한 할리우드답네요, 하하.”
내가 다시 케빈 코스트너를 향해 말했다.
“아 참, 케빈. 내친김에 우리 Film Kim과 같이 영화 작업 하나 더 하실래요?”
“영화요?”
“예. 마침 케빈에게 어울릴 만한 영화 시나리오가 하나 있어서요.”
“저야 좋은 시나리오만 있으면 언제든지 출연할 생각이 있죠. 그래서, 이번 영화는 어떤 영화입니까?”
“그게......”
내가 영화 시나리오 한편을 케빈 코스트너에게 내밀었다.
제목은,
<보디가드(Bodyguard)>
영화 <늑대와 춤을>과 더불어 케빈 코스트너 최대의 히트작인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유명 각본가인 로런스 캐스던이 쓴 작품이었다.
‘로런스 캐스던은 <스페이스 워즈>와 <레이더스> 촬영 때부터 나와 영화 작업을 함께 해오던 친한 동료 중의 한 사람이지. 그가 이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고.’
사실 <보디가드>는 로런스 캐스던이 당대 최고의 흑인 여가수 ‘다이애나 로스’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투자자를 만나지 못해 거의 10년 가까이 그의 책상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내가 로런스 캐스던으로부터 이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즉시 영화 판권을 사들인 것이었다.
‘바로 오늘과 같은 날을 대비해서이지.’
영화 <보디가드>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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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대통령 경호원 출신의 주인공 프랭크.
그는 당대 최고의 여가수 레이첼의 경호를 맡게 된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성격의 레이첼은 경호 문제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프랭크와 충돌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클럽 공연 도중 위험에 빠진 레이첼을 프랭크가 구해주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서로 묘한 감정을 느낀 두 사람은 의도치 않게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제대로 된 경호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프랭크는 일부러 레이첼을 멀리하게 되고, 이러한 프랭크의 태도에 화가 난 레이첼도 일부러 그를 차갑게 대한다.
나아가 프랭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해 협박범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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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와 사랑에 빠지는 보디가드에 관한 이야기라......”
잠시 시나리오 내용을 살펴보던 케빈 코스트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내용이 좀 진부하지 않은가요, 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죠. 하지만 이번 영화는 캐스팅의 측면에서 제법 파격적인 면이 있을 예정입니다.”
“파격적인 캐스팅요?”
“예. 전 이번 영화에서 케빈과 호흡을 맞출 여주인공 역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여가수라 불리는 휘트니 휴스턴을 캐스팅할 예정이거든요.”
나의 말에 케빈 코스트너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이유는,
‘휘트니 휴스턴이 흑인 여가수이기 때문이지. 1990년대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의 로맨스는 다소 충격적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영화 <보디가드>의 여주인공으로 휘트니 휴스턴을 캐스팅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그녀의 출연은 영화의 OST와 더불어 다소 진부한 내용의 이번 영화를 흥행 성공으로 이끈 일등 공신이었기 때문이다.
“톱가수 역에 휘트니 휴스턴을 캐스팅한다니, 확실히 파격적이기는 하군요. 그런데 그녀가 출연을 허락할까요?”
“아직은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할리우드에서 최고로 핫한 케빈이 주연을 맡고, 우리 Film Kim이 제작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영화라면 휘트니 휴스턴도 제법 구미가 당기지 않을까요?”
“흠.”
“일단 케빈이 먼저 출연 여부를 결정해주면, 우리 회사에서 총력을 다해 휘트니 휴스턴 캐스팅에 나설 예정입니다.”
내가 케빈 코스트너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어떻게, 이번 영화에 출연할 생각이 있어요, 케빈?”
181.
영화 <보디가드>의 제작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케빈 코스트너에 이어,
또 다른 주인공 역할을 맡을 휘트니 휴스턴의 캐스팅이 확정된 것이다.
여기에 영화의 백미(白眉)가 될 OST의 제작도 함께 진행됐다.
‘이제 남은 것은 이번 영화의 완성본이 극장 스크린에 걸리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지.’
영화 <보디가드>의 제작 준비가 원만하게 진행되어 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새 영화 각본 제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미국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몰고 오게 될지도 모를 영화 의 각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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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서부의 한 유대교 예배당.
유대인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을 맞아 대규모의 인파가 예배당을 찾았다.
그런데.
- 쾅! 콰쾅!
지출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예배당 주변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무려 100여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낳은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붉은 5월’ 조직원들의 소행이었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졸지에 나라를 잃게 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런 테러 활동으로 이스라엘에 저항해왔는데,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테러는 약소국이 강대국에 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라는 신념하에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붉은 5월’은 서방 국가의 조직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해 끊임없는 테러를 자행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주인공 제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국) 소속 요원인 그는 다른 임무 수행 도중 상관의 귀환 명령을 받아 급히 귀국한 참이었다.
“찾으셨습니까, 차장님.”
“그래.”
정보국 차장 미하일이 서류 뭉치를 제프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중에 혹시 아는 얼굴이 있나?”
“글쎄요. 다들 처음 보는 얼굴......”
이라고 말하려던 제프가,
사진 속에서 낯익은 남자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말을 멈추었다.
이를 본 미하일이 말했다.
“라시드 할리디. 1987년부터 시작된 1차 인티파다를 이끈 핵심 인물이지. 최근에는 여러 비밀 조직을 만들어 우리 이스라엘에 테러 활동을 일삼고 있고.”
“......”
“제프 자네도 아마 언론을 통해 들었을 걸세. 얼마 전 예루살렘 서부 예배당 테러 사건에 대해서 말이야.”
“설마 그 일에 이자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확실해. 라시드 할라디가 최근에 조직한 ‘붉은 5월’ 조직원들이 이번 사건의 주범들이야.”
“그, 그런......”
미하일이 제프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에 말이야, 제프. 내 집에 쥐새끼 같이 숨어 들어와 내 가족들에게 강도짓을 일삼는 놈이 있다면 제프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처참하게 찢어 죽여야지요. 두 번 다시는 내 집에 발을 댈 엄두도 나지 않게.”
“바로 그거야.”
미하일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보국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네. 그러니 제프 자네는 여기 이놈들을 찾아서 놈들의 목을 야드 바셈(Yad Vashem;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추모관)에 가져다 바치게. 우리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들게 되찾은 우리의 집을 반드시 지켜낼 것이란 사실을 자네와 나의 부모님 앞에 보여드리자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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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한참 각본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나의 귀에 레이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레이첼.”
“뭘 그렇게 열심히 하길래 노크 소리도 못 듣는 거예요?”
“하하. 미안해요. 이번에 새로 들어갈 영화 각본을 좀 쓰느라고요.”
“새 영화라면......”
레이첼이 살짝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이전에 아버지가 킴에게 부탁한 그 영화를 말하는 거예요?”
“네. 근데 꼭 레이첼 아버지 때문에 이번 영화 제작을 결심한 것은 아니에요. 영화 제작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주제를 다루고 싶어 하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문제는 영화의 시각이죠. 우리 아버지가 예전부터 급진적 유대주의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아온 분이시거든요. 그런 아버지의 의견이 만약 킴이 만드는 이번 영화에도 녹아 있다면......”
“우리 Film Kim에 대한 미국 사회의 주류 유대인들의 압박이 상당하겠죠.”
“킴은 그걸 알면서도 이번 영화를 만들려는 거예요?”
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에 조지가 그러더라고요. 꿀을 따려면 벌에 쏘일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고요.”
“그 벌이 단순한 꿀벌이 아니라 말벌 수준이니까 하는 말이죠. 그냥 잠깐 따끔한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요.”
“기억 안 나요, 레이첼?”
“뭐가요?”
“예전에 내가 란 영화로 미국의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룬다고 했을 때, 그때도 레이첼은 지금과 같은 걱정을 하며 나를 말렸었죠. 하지만 결과는 레이첼의 예상과 달랐죠. 그 영화 덕분에 사람들이 미국 사회의 인종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많은 유대인이 이번 영화를 비판하고 나서겠죠. 나아가 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상영금지 조치를 하려 들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만든 영화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있을 거예요. 레이첼의 아버지처럼 깨어 있는 생각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는요.”
세상을 바꾸는 영화의 힘.
이는 영화 에 이어 이번 영화 에서도 또 한 번 증명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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