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04화 (104/145)

# 104 < 논란의 영화 (2) >

178.

다른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유독 회사 간의 인수, 합병이 많이 일어난다.

해마다 수천억을 영화 제작에 쏟아붓는 영화사의 특성상 회사 재정 상황이 갑자기 악화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현재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주름잡고 있는 빅식스(Big Six) 영화사들도 모두 이러한 인수, 합병 과정을 거쳐 거대 영화 제작사로 성장했지. 그리고 이런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데, 2000년대 들어 발생한 아마존의 MGM 인수, 월트 디즈니의 20세기 폭스사와 루이스 필름 인수, 워너 브라더스의 뉴라인 시네마 인수 등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변화였지.’

전생의 기억 덕분에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앞선 ‘유니온 픽처스’와 ‘콜롬비아 픽처스’의 인수 합병을 통해 Film Kim의 규모를 계속 성장시켜 왔다.

그 결과 Film Kim은 현재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영화사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Film Kim에서는 앞으로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또 한 번의 인수, 합병을 계획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슈퍼 히어로 영화계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 ‘마블 코믹스’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들어 마블 코믹스는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의 영화 제작 판권을 다른 영화 제작사에 팔기 시작하지. 그 결과 마블 캐릭터들은 여러 영화사로 흩어지면서 캐릭터 소유권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말이야. 하지만 만약 지금 내가 마블 코믹스를 인수하게 된다면......’

무려 500개에 달하는 마블 캐릭터의 영화 판권을 우리 Film Kim이 모두 독차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우리 Film Kim이 세계 슈퍼 히어로 영화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게 될 것이 분명했고.

이에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나는 마블 코믹스를 인수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

영화사 Film Kim.

내가 마블 코믹스 관계자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회사 관계자를 통해 여러 차례 마블 코믹스의 인수 의향을 전해왔고,

마블 코믹스 쪽에서도 여기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오고 있었다.

‘현재 마블 코믹스는 재정 상황이 무척이나 좋지 않은 상황이고, 우리 Film Kim과의 합병은 이를 타개할 수 있는 좋은 돌파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실제 마블은,

계속된 재정 적자에 허덕이다가 1990년대 중반 토이 비즈라는 장난감 회사와 합병에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확보된 자금을 바탕으로 마블은 자체적인 영화 제작에 나서게 되는데, 이것이 세계 슈퍼 히어로 영화 시장을 휩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역사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지. 전생의 기억 덕분에 이러한 마블의 역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이보다 앞서 마블을 인수해 우리 Film Kim의 자회사로 만들기로 했지. 그렇게 되면 앞으로 마블이 만들어낼 수많은 슈퍼 히어로 영화가 모두 우리 Film Kim의 것이 될 테니까 말이야.’

“듣자니......”

마틴 리버 마블 코믹스 사장이 나를 향해 말했다.

마블 코믹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스파이더맨, 엑스맨, 아이언맨, 헐크 등의 유명 슈퍼 히어로 캐릭터를 창조한 당사자이기도 했다.

“Film Kim에서 우리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를 실사 영화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내가 마틴 리버 사장을 향해 말했다.

“사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최근 워너 브라더스 사가 DC코믹스의 슈퍼 히어로인 배트맨을 실사 영화로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보다 앞서서는 슈퍼맨을 영화화해서 큰 성공을 거둔 적도 있고요.”

“그 점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Film Kim에서도 DC코믹스의 슈퍼맨과 배트맨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슈퍼 히어로 영화를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여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현재 마블 코믹스가 보유하고 있는 여러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이 제가 지금 마블 코믹스를 인수하려는 결정적인 이유이고요.”

“저희 마블의 입장에서는 Film Kim과 같은 건실한 회사와의 합병은 현재 우리 회사가 처해 있는 재정적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킴의 인수 제안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해오고 있었고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다만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현재 우리 마블이 안고 있는 막대한 부채입니다. 코믹북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회사가 꽤 오랫동안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거든요.”

“그 점은 전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마블이 가지고 있는 모든 부채를 우리 회사가 전액 떠안을 생각이니까요.”

앞으로 마블이 벌어들일 돈에 비하면,

현재 마블이 가지고 있는 부채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마틴 리버 사장이 말했다.

“이번 인수가 그동안 우리 마블 코믹스가 추구해왔던 가치관을 훼손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마블은 수많은 만화 캐릭터를 창조해왔고, 이 캐릭터들은 각자 고유한 능력과 개개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하나의 방대한 세계관으로 연결이 되어 있고요. 그런데 타 회사와의 합병, 그리고 이러한 캐릭터들이 실사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마블의 캐릭터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러한 특성들이 훼손되지는 않을까에 대해 저나 회사 직원들이 무척이나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 점은 전혀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Film Kim은 현재 마블이 가지고 있는 인력과 회사 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회사를 인수할 계획이니까요.”

“인력과 회사 체계를 그대로요?”

“예. 더불어 실사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현재 마블이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의 특성과 세계관을 훼손하지 않을 것을 분명하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틴 리버 사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회사의 매각을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겠군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사장님. 그럼 곧바로 담당 직원들을 통해 구체적인 인수 절차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로써,

DC 코믹스와 더불어 미국 코믹북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던 마블 코믹스는 영화사 Film Kim 산하의 자회사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세계 영화산업의 판도를 바꿀 엄청난 사건이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179.

할리우드 인근의 한 레스토랑.

내가 조지 루이스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Film Kim에서 새로 제작을 준비하고 있는 영화 에 서로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전생 초기부터 함께 영화 작업을 해온 조지 루이스.

그는 나에게 있어 좋은 친구이자, 한편으로는 멘토(mentor)와 같은 존재였다.

“확실히......”

조지 루이스가 영화 시나리오 책자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내용의 영화군.”

“그렇죠?”

“그래. 특히 미국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유대인들이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은 영화야.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유대인을 항상 나치 학살의 피해자로만 그려왔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잖아. 유대인을 나치와 똑같은 가해자로 그리고 있으니까 말이야.”

“만약 조지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나?”

“네. 조지가 저라면 이 영화를 만들 것 같아요, 아니면 만들지 않을 것 같아요?”

“그것 참 어려운 질문이군.”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조지 루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킴의 친구로서 조언하자면, 난 킴이 이번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면 해.”

“왜요?”

“킴도 아마 들었을 거야. 요즘 정계와 재계 쪽에서 Film Kim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것을. 킴도 알다시피 미국은 기업의 특정 산업 독점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엄격하잖아? 1890년 셔먼법이 제정된 것도, 1914년 크레이튼 법이 제정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고.”

조지 루이스의 말마따나,

미국 사회에서는 특정 기업의 시장 독점 행위가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었다.

특정 기업이 합병이나 담합을 통해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행사하거나 경쟁을 저하시키는 경우 엄청난 불이익이 뒤따른다.

그 때문에 라이벌 관계에 있는 회사가 부도가 날 위기에 처할 경우 경쟁사가 도와주기도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현재 Film Kim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콜롬비아 픽처스 합병 이후 Film Kim은 북미 영화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에 기존의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들을 중심으로 우리 Film Kim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조지의 말은 우리 Film Kim이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 이후 북미 영화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이 반독점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래. 지금 정계나 재계에서 연일 Film Kim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고.”

“하지만 영화산업은 다른 산업과 성격이 좀 다르잖아요? 공정한 경쟁을 통해 관객들의 선택을 받는 곳이 영화 시장인데, 어떻게 이걸 불공정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원래 법이란 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법이야. 특히 관습법 체제하에 있는 미국에서는 더더욱 그래.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킴이 현재 정, 재계를 주름잡고 있는 유대인들의 심기에 거슬리는 영화를 만들었다가 지금과 같은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것이지.”

“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재 미국 사회에는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무척이나 컸고,

이런 상황에서 자칫 그들에게 밉보였다가는 어떤 정치적 보복을 당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지 루이스가 다시 말했다.

“킴의 친구가 아닌 한 사람의 영화인으로서 조언을 하자면 이번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어.”

“그건 또 왜죠?”

“영화 예술이 가진 표현의 자유는 그 어떤 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 되니까. 그 대상이 유대인이 아니라 유대인 할아버지라고 해도 말이야.”

“조, 조지......”

“만약에 말이야, 킴이 만든 이번 영화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면 내가 직접 앞장서서 변호에 나설 거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곳 할리우드 영화인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러니 킴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킴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도록 해. 꿀을 따려면 벌에 쏘일 각오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고마워요, 조지.”

내가 조지 루이스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사실 조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번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는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가 뭐래도 이번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요. 조지의 말마따나 영화가 가진 표현의 자유는 어떤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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