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 논란의 영화 (1) >
“킴, 자네 혹시 ‘IJAN’이라고 들어봤나?”
“IJAN요?”
“그래.”
“글쎄요, 저는 영화 제작 일 말고는 크게 아는 것이 없어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헨리 도나가 나를 향해 말했다.
“1933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붕괴되면서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나치스트가 독일 정권을 장악했지. 이후 나치스트는 유대인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이를 피해 유럽의 수많은 유대인이 대거 미국으로 망명했어. 나 또한 그중의 한 사람이고.”
“그 일은 레이첼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일로 유대인들은 절실하게 깨닫게 됐지. 지금처럼 나라 없이 떠돌이 신세로 사는 한, 이 같은 불행한 역사가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유대인들은 유대 국가 건설을 위한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지. 그것이 이른바 시오니즘 운동이라는 것이고.”
시오니즘이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19세기 말에 처음 등장한 이 사상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본격화되어, 1948년에는 실제 이스라엘이라는 유대 국가가 건설되기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이미 그 땅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이지.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결국 시온주의자들은 무력으로 이들을 몰아내고 유대 국가를 만들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문제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헨리 도나가 말을 이었다.
“이 과정에서 홀로코스트, 다시 말해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그렇게 비판하던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지. 약속의 땅이 어쩌니 하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면서 말이야.”
“......”
“아까 내가 말한 ‘IJAN(국제 반시오니스트 유대인회)’은 바로 이러한 유대인들의 비인도적 행위를 비판하면서 만들어진 단체이지. 유대인 내부의 이런 자정 움직임이 없다면 우린 그 옛날 나치와 전혀 다를 바가 없을 존재일 뿐이니까 말이야.”
다소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아는 유대인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건국을 지지하고, 또 이를 위해 자신들이 가진 막대한 자본력으로 미국과 영국과 같은 강대국을 뒤에서 조정하는 것이었는데, 이와 다른 생각을 가진 유대인들도 존재하고 있었다니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헨리 도나가 나를 향해 말했다.
“난 자네가 이런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영화를 한 편 만들어줬으면 하네.”
“영화요?”
“그래. 킴도 알다시피 이곳 할리우드는 꽤 오래전부터 유대 자본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지 않은가? Film Kim을 제외한 할리우드 빅식스(Bix Six) 영화사들의 주인이 모두 유대인일 정도로 말이야. 그러다 보니 유대인에 관한 영화는 죄다 유대인을 피해자로만 그리고 있고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할리우드의 유대인 관련 영화는 천편일률적으로 ‘홀로코스트’라는 주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유대인들을 순교자 내지는 피해자로 인식하게 만들어 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저지르는 만행을 숨기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헨리 씨의 말은......”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유대인 문제를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리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까?”
“그렇지. 때론 백 마디 연설보다 영화 한 편이 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곤 하니까. 앞서 자네의 영화 <프로스트>가 사람들에게 환경 문제에 관한 큰 관심을 가지게 만든 것처럼 말일세.”
“솔직히 굉장히 의외군요. 저는 헨리 씨를 비롯한 모든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꼭 그렇지만도 않다네. 시온주의자들처럼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유대인들도 있고, 나처럼 이들의 폭력적인 행위를 비판하는 유대인들도 있고, 또 요즘 젊은 유대인 청년들처럼 민족이나 사상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미국인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그렇군요.”
“중요한 것은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내가 IJAN 쪽에 서기로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고.”
헨리 도나가 다시 나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킴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는가? 영화 제작비는 내가 전액 지원해주도록 함세.”
“일단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관련 자료 조사도 좀 필요할 것 같고요.”
“그렇게 하게.”
177.
미국 서부의 배드랜드 국립공원.
영화사 Film Kim이 투자한 또 한 편의 영화 촬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늑대와 함께 춤을>. 앞선 영화 <프로스트>의 주연을 맡은 케빈 코스트너가 각본, 제작, 연출을 모두 맡은 영화이지.’
이번 영화는 전생에서 나도 무척이나 감명 깊게 본 영화였다.
무려 3시간 가까운 긴 러닝타임에,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액션 장면도 없었지만,
‘사우스 다코타 주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화면, 잔잔한 스토리 전개, 여기에 멋진 배경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조금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던 영화였지. 그 덕분에 불과 2,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4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흥행 수익을 올릴 수 있었고.’
사실,
이번 영화의 제작을 두고 Film Kim 직원들의 걱정이 무척이나 컸다.
영화의 장르가 이미 철 지난 서부극에다, 3시간이 넘는 긴 상영 시간, 여기에 전체 영화 대사의 4분의 1이 원주민의 언어인 라코타 어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도 그랬지. 영화 <늑대와 춤을>의 시사회에 참여한 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절대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영화라고 평가했지. 그중의 몇몇은 한때 잘나가던 영화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의 문을 닫게 만든 서부영화 <천국의 문>에 빗대어 이 영화를 <케빈의 문>이라 부르며 조롱 아닌 조롱을 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이들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영화 <늑대와 춤을>은 흥행 성공은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무려 7개 부문의 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아울러 미국 의회 도서관이 선정한 ‘미 국립영화등기부에 영구 보존할 작품’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내가 회사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에 투자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고.’
“킴.”
오전 촬영을 모두 끝낸 케빈 코스트너가 나를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미리 연락도 하지 않고 어쩐 일이에요?”
“그래도 명색이 내가 제작자인데, 촬영장에 직접 안 와볼 수 없죠. 어떻게, 촬영은 잘 되고 있어요?”
“아직은요. 언어적인 문제가 좀 걸림돌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라코타 어 전문가를 초빙해서 꽤 오랫동안 출연 배우들을 교육시킨 덕분에 촬영을 진행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내가 다시 케빈 코스트너에게 물었다.
“오후 촬영 씬은 어떤 거예요?”
“주인공이 수우 족 친구들과 함께 버팔로를 사냥하는 장면인데, 좀 있으면 제작진이 인근 농장에서 대여한 버팔로를 데리고 이곳으로 올 거예요. 아, 실제 사냥에 사용될 버팔로는 가짜 모형을 사용할 예정이지만.”
케빈 코스트너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영화 <늑대와 춤을>에 등장하는 버팔로 사냥 씬이 그려졌다.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소위 ‘킬링 포인트’ 가운데 하나였다.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케빈 코스트너를 향해 말했다.
“버팔로 사냥 씬이라, 꽤 흥미롭고 멋진 장면이 만들어지겠군요.”
“이번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죠.”
“그럼 나도 이 장면을 촬영하는 모습은 꼭 보고 가야겠군요.”
“그렇게 해요. 연출 경험이 많은 킴이 옆에서 조언해주면 저도 더욱 힘이 날 테니까요.”
케빈 코스트너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전 이만 촬영 준비 상황 좀 점검하러 가볼게요.”
“그렇게 해요, 케빈.”
잠시 후,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이미 전생에서 스크린을 통해 보기는 했지만, 실제 눈으로 본 현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메라 스탠바이, 레디, 액션!”
메가폰을 타고 케빈 코스트너의 음성이 흘러나오기 무섭게,
언덕 너머에서 수백 마리의 버팔로가 일제히 질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한 가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놀랍게도 이 수백 마리의 버팔로가 모두 한 개인 농장주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지.’
178.
할리우드 영화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다.
전쟁, 타임머신, 외계인, 좀비, 전염병, 스파이, 폭력조직 등등이 그것이다.
이번에 내가 새로 쓰고 있는 영화 시나리오도 마찬가지였다.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 가운데 하나인 이른바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과정에서 발생한 유대인 대학살은 영화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이지. 당장 기억나는 영화만 해도 <인생은 아름다워>,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안네의 일기>, <굿바이 칠드런> 등이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번에 내가 만들 영화는 달랐다.
‘유대인’과 ‘홀로코스트’라는 뻔한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기존의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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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아버지인 헨리 도나의 부탁을 받아,
이번에 내가 직접 쓴 영화 시나리오의 제목이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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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초 독일.
무려 600만 명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유대인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후대에 ‘홀로코스트’로 불리게 되는 이 사건은 유대인 절멸을 위해 히틀러 중심의 나치스트들이 벌인 일이었다.
주인공 ‘제프’는 불과 10살의 나이에 그의 부모와 함께 유대인 수용소에 감금된다.
그곳에서 그는 수많은 유대인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 안에는 그의 부모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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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내가 만들 영화 의 핵심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지.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 있었던 유대인 대학살 사건을 사실감 있게 그리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유대인들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사실 여기까지의 내용은 유대인을 주제로 한 기존 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영화의 내용은 전혀 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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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패망으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제프.
성인이 된 그는 열렬한 시오니스트가 되어 유대 국가 건설 운동에 앞장서게 된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는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국)의 핵심 요원으로 일하며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의 핵심 인물을 암살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冷血漢).
동료 요원들은 제프를 그렇게 불렀다.
임무 수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뒤따르는 민간인 희생도 제프는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제프를 이런 행동은 모두 유년 시절의 경험 때문에 비롯된 것이었다.
그가 가진 홀로코스트의 상처는,
유대인들을 지켜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임무 수행 과정에서 그는 점차 깨닫게 된다.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과거 유대인들이 처해 있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들도 유대인 만큼이나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집(HOME)’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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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 은 이 같은 주인공 제프의 심경 변화를 통해 극우 성향의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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