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 재난 영화 <프로스트(Frost)> (1) >
168.
끔찍한 자연재해를 다룬 최초의 영화는,
존 포드 감독이 1937년에 만든 <허리케인>이라는 영화였다.
당시로서는 거액인 2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는 엄청나게 많은 물을 사용해 실감 나는 허리케인의 모습을 재현해냈다.
하지만.
‘이런 재난 상황은 극히 일부 장면에서만 사용되었을 뿐이지. 그 주된 이유는 당시의 기술적인 한계 때문이고.’
이후에도 여러 편의 재난 영화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앞선 영화 <허리케인>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획기적인 수준의 재난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에 내가 만들 영화는 기존의 재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 같은 한계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재난 영화가 시초가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프로스트(Frost)>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영화 시나리오의 제목이었다.
제목 그대로,
기상 이변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도래한 빙하기로 북반구 전체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재난 상황을 그린 영화였다.
------
1990년 미국 뉴욕 기후변화 회의장.
기후학자 스티브 발머 박사가 연단에 서서 최근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회의에 참석한 고위 관료 하나가 발머 박사에게 물었다.
“지금 박사의 말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지구에 다시 빙하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종래의 학설은,
극지방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 상승이 나타나고, 이로 인해 지대가 낮은 많은 지역이 물에 잠길 위험이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발머 박사가 발표한 새 학설은 극지방의 빙하가 녹는 것은 해수면의 상승뿐만이 아니라, 해류의 움직임을 변화시켜 지구 곳곳에 엄청난 한파를 발생시킨다는 새로운 주장이었다.
그러니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할 수밖에.
“핫!”
좀 전에 발머 박사에게 질문한 고위 관료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거 완전 공상 과학 소설이 따로 없구먼. 책으로 나오면 아주 베스트셀러가 되겠어요.”
“현재 저를 비롯한 연구진들이 NASA의 협조를 받아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정확한 빙하기 도래 시기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 데이터가 나오면 방금 제가 한 말이 헛된 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발머 박사가 지금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뭡니까?”
“그건......”
발머 박사가 자신의 뒤쪽에 있는 미국 지도의 중앙에 가로로 긴 줄을 그으며 말했다.
“이 선 위쪽에 있는 주민들을 모두 최대한 남쪽으로 대피시켜야 합니다. 극심한 한파가 이곳을 완전히 뒤덮기 이전에 말이죠.”
발머 박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한 번 회의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
.
.
장면이 바뀌고,
회의장을 나서는 발머 박사를 향해 동료 하나가 다가오며 물었다.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글쎄, 일단은 다들 깜짝 놀랐겠지.”
“놀란 정도가 아니야. 날 아주 미친놈 취급하더군.”
“......”
“데이터는? NASA로부터 결과는 언제 받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아마 며칠 내로 결과를 받아볼 수 있을 것 같아.”
“결과가 나오면 언론사에 가장 먼저 뿌리자. 일단 많은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해.”
“......사람들이 과연 우리 말을 믿어 줄까?”
“글쎄, 그건 나도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살려야 하니까.”
------
영화 였다.
이번 영화의 모티브가 된 영화는.
특히 이 영화는 흥행 성적만 놓고 보면 재난 영화 가운데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수익을 올린 영화였다.
‘5억 달러. 전생의 내 기억에 따르면 영화 는 전 세계적으로 무려 5억 달러가 넘는 흥행 성적을 올렸지. 하지만 이 영화는 고증의 측면에서는 엄청난 비판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지. 실제 지구에 빙하기가 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북반구 전체를, 그것도 단시간에 급속도로 주변의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상황은 과학적으로 일어나기 불가능한 현상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실감 나는 영상,
그리고 주인공에게 닥친 다양한 위기 상황과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이 영화를 재난 영화의 대명사 반열에 올려놓기 충분했다.
‘얼마 전 언론에서 기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일본 교토에 모인다는 소식을 전한 적이 있지. 내 기억이 맞다면 이 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협약을 채택하게 되고. 따라서 만약 이번에 내가 만든 영화 <프로스트(Frost)>가 개봉되면 이 기후 협약 내용과 맞물리면서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게 될 것이 분명해.’
영화는 그 내용만큼이나 개봉 시기가 중요하다.
특히 사회적으로 큰 관심이 쏠린 사건과 유사한 주제를 다룬 영화가 같은 시기에 개봉되면 그 시너지 효과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머잖아 이루어질 기후 회의 기간에 맞춰 영화를 개봉하려면 조금 서둘러 영화 제작을 할 필요가 있겠어.’
생각을 마친 내가 다시 펜을 들고 시나리오의 다음 내용을 부지런히 이어가기 시작했다.
------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내리며,
지구에 극심한 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스티브 발머 박사의 예견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세계 곳곳에서 갑작스러운 기상 이변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속보입니다. 오늘 일본 도쿄에 거대한 우박이 떨어져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역사상 유례없는 이번 기상 이변의 원인에 대해 기후학자조차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현재 캐나다 노바스코샤에 강력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번 폭풍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초속 25피트의 속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LA 지역에 대규모의 토네이도가 발생해 인근 지역에 커다란 피해를 주고 있어......”
“미 항공 우주국(NASA)이 언론을 통해 북반구에 발생한 3개의 거대한 허리케인 형상의 슈퍼 스톰 사진을 공개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이 슈퍼 스톰은 대류권 상층부의 차가운 공기를 중심부로 끌어들이며 영하 100도 이하의 강력한 한파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TV를 통해 연일 계속되는 기상 이변을 지켜보고 있던 스티브 발머 박사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 대회 출전을 위해 뉴욕으로 간 아들 샘의 위치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큰일이군. 태풍의 눈과 같은 극저온의 공기를 품은 거대폭풍이 이제 곧 뉴욕을 덮치게 될 텐데......’
그 순간.
- 따르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수화기를 낚아챈 발머 박사의 귀에 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저예요.”
“샘! 너 지금 어디니?”
“뉴욕 시립 도서관 공중전화 박스에요. 항공기도 버스도 모두 끊기고, 통신망도 모두 두절 됐어요.”
“샘. 내 말 잘 듣거라.”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발머 박사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거길 벗어나면 안 돼. 앞으로 폭풍이 더 거세질 거야. 허리케인 형의 눈보라로 변할 거다. 그 상황에서 밖에 나가면 당장 얼어 죽어.”
“그럼 어쩌죠?”
“잘 들어. 절대 밖에 나가지 마. 최대한 체온을 유지하며 기다려야 해.”
결연한 표정으로 발머 박사가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아버지가 지금 곧장 널 구하러 갈 테니까.”
------
영화 <프로스트>는,
크게 두 가지의 내용이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하나는 관객을 영화에 완전히 몰입시킬 정도로 강렬한 재난 발생 장면이다.
‘재난 영화 속 스펙터클 한 재난 발생 장면은 영화의 성공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 실제 전생에서 <딥 임팩트>, <2012>, <투모로우>, <샌 안드레아스>와 같은 재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도 화려한 CG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사실감 있는 재난 상황을 화면으로 구현했기 때문이고.’
따라서 이번 영화 <프로스트>에도,
그동안 ILM이 축척 해온 독보적인 CG 기술을 바탕으로 완벽한 재난 발생 상황을 영상으로 만들어낼 예정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가족애. 재난 영화에 절대 빠지지 않는 가족애가 바로 이번 영화 <프로스트>의 또 다른 핵심 내용이지. 보다 구체적으로는 주인공인 발머 박사가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한파로 얼어붙은 뉴욕으로 가서 자신의 아들 샘을 무사히 구출해내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처럼 영화 <프로스트>에는,
전생에서 내가 본 재난 영화들의 흥행 요소들이 총망라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나는 이번 영화의 성공도 충분히 자신할 수 있었다.
169.
영화 <프로스트>의 제작 준비가 한창 진행되어 갈 무렵,
Film Kim이 소유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자회사가 주식 시장에 상장되었다.
세계 애니메이션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였다.
픽사는 원래 ILM 내에 있던 소규모의 컴퓨터 그래픽 제작 부서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 덕분에 픽사의 미래를 훤히 꿰뚫고 있던 나는 이를 별도의 자회사로 독립시켜 많은 연구 개발비를 쏟아부었다.
그 결과 픽사는 세계 최초의 풀 3D CG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냈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는,
올해 상장된 픽사의 주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ILM과 마찬가지로 픽사의 주식도 상장과 동시에 3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공모가 대비 400%가 넘는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ILM과 픽사 모두 내가 소유하고 있는 영화사 Film Kim이 최대 주주라는 점이지. Film Kim은 나와 레이첼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이고.’
따라서 이번 ILM과 픽사 두 회사의 기업 공개로,
내가 가진 자산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었다.
단순 계산 만으로도 30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자산을 가지게 된 것이다.
‘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0조가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지.’
사실 나는 이 300억 달러라는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가 잘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언론사들이 발표한 보도를 통해 나는 현재 내가 가진 자산 규모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bbes)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미국 내 셀리브리티(유명 인사) 가운데 가장 많은 자산을 가진 사람은 영화 제작자 겸 감독인 ‘제임스 킴’으로 알려져.
- 영화사 Film Kim의 창립자 제임스 킴, <스페이스 워즈>를 제작한 영화감독 조지 루이스를 제치고, 미국 셀리브리티 가운데 최고의 부자로 선정돼.
- 추정 자산 300억 달러로 올해 포브스 선정 미국 셀러브리티 가운데 최고의 부호로 선정된 제임스 킴.
.
.
.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는,
재산의 규모와 사회적 영향력이 비례하기 마련이다.
특히 수십 조 단위의 부호는 웬만한 정치가들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경영하는 기업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무척이나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지. 앞으로 Film Kim이 만드는 영화가 계속해서 흥행에 성공을 거두게 되면 우리 회사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