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 한국 영화 시장 진출 (3) >
166.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이 모두 끝이 났다.
실제 촬영에 소요된 기간은 불과 두 달 남짓.
많은 소품과 별도의 세트 제작을 필요로 하는 할리우드 대작 영화와 달리 배우들의 연기 위주로 촬영이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가 한국 영화사에 남긴 족적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영화 개봉 직후 각종 언론과 영화 잡지 등을 통해 보도된 영화 관계자들의 평론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 영화 <장군의 아들>은 한국판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의 시초이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한국 영화 시장의 투자 규모는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 영화 <장군의 아들>은 한국 영화 배우들의 세대교체를 이루어낸 작품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다수 배우는 신인 배우들로 이번 영화를 통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주연인 박상민과 더불어 조연인 신현준, 이일재, 김승우, 김형일, 송채환 등의 배우는 앞으로 우리나라 영화계를 이끌어갈 중심이 될 것이 틀림없다.
- 영화 <장군의 아들>은 한국 액션 영화의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이다. 기존의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판에 박힌 액션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액션, 그리고 이를 다양한 각도에서 잡아낸 카메라 앵글은 우리나라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지표를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영화 <장군의 아들>에 사용된 카메라 기법과 촬영 도구는 한국 영화 발전을 수십 년 이상 앞당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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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들의 호평만큼이나,
영화 <장군의 아들>의 흥행도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다.
장장 8주간에 걸쳐 극장에서 상영된 이번 영화는 누적 관람객 수 200만 명, 총 흥행 수익 100억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1980년대 말 당시의 경제 여건이나 문화 수준을 감안하면 이는 실로 엄청난 흥행 성적이었다.
‘하지만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할 뿐이지.’
내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한국 영화 산업은 1990년대 들어 본격적인 성장을 한다.
영화 <장군의 아들>을 시작으로 <남부군>, <하얀 전쟁>, <투캅스> 등과 같은 흥행작들이 대거 상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덕분에 그동안 공짜 초대권이나 오면 보는 영화, 스크린쿼터제 땜방용 영화, 저예산 벗기기 영화 취급을 받아오던 한국 영화의 수준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 같은 흥행 영화 시나리오가 대거 우리 Film Kim으로 들어올 확률이 높아지게 되었다는 것이지. 이번 <장군의 아들>이란 영화를 통해 Film Kim이 얼마나 뛰어난 자금력과 기술력을 가진 회사인지를 충무로 영화인들에게 여실히 보여주었으니까.’
167.
Film Kim의 한국 영화 시장 데뷔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할리우드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새 영화 제작에 돌입했다.
영화 <키메라> 이후 나는 제작에만 관여해왔을 뿐 직접적인 영화 연출은 꽤 오래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사 경영과 다른 영화 투자를 통해 큰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영화를 만드는 일만큼 나에게 큰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일도 없지.’
사실 영화감독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뼈를 깎는 고통과 맞먹을 정도로 힘든 작업이다.
특히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감독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매번 새로운 내용의 작품을 구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나는 아직도 무궁무진한 영화 소재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만든 영화보다 앞으로 만들 영화가 훨씬 더 많이 남아 있지.’
이번에 내가 만들 영화는 재난 영화였다.
사실 ‘재난’이라는 주제는 영화계에서는 흔하디흔한 주제였다.
자연재해에서부터 전염병, 괴수 출몰, 우주 재해에 이르기까지 재난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이를 다룬 영화 또한 무척이나 많았다.
하지만 이는 CG 기술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의 이야기이다.
재난 영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대규모의 재앙을 소재로 한 영화인만큼 전통적인 특수효과 기술만으로는 이를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재난 영화하면 기본적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지. 재난 상황이 발생할 것을 미리 예측하고 경고를 하는 천재 과학자와 그런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며 무시하는 다른 학자와 정부 기관, 재난 발생 직전에 나타나는 동물들의 이상 행동들, 극한의 상황 속에서 기지를 발휘에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며 결국 인류를 구한 영웅으로 등극하는 주인공 등이 바로 그것이지.’
만약 내가 전생에서 이런 내용의 재난 영화를 만들었다면 뻔한 클리셰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류(類)의 영화들은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0년대 말은 달랐다.
이 시기에는 제대로 된 재난 영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십 년 전의 조잡한 기술로 만들어진 작품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만약 실감 나는 재난 상황을 그린 영화를 만들어낸다면......’
영화 관계자들의 호평은 말할 것도 없고, 흥행 면에서도 엄청나게 큰 성공을 거둘 것이 분명했다.
생각을 마친 내가 시나리오 작성을 위해 펜을 들려는 순간,
- 딸깍!
사장실 문이 열리면서 조지 루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조지가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에요?”
“지나가는 길에 킴 얼굴 좀 보고 가려고. 점심은 먹었어?”
“아직요.”
“시간이 몇 신데 아직 점심도 안 먹고 그러고 있는 거야?”
“원래 적당한 시장기는 뇌를 긴장시켜 일에 집중력을 높여주잖아요.”
“참 특이한 체질이라니까. 난 배고프면 화부터 나던데, 흐흐.”
조지 루이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참, 그보다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이요?”
“요번에 워너 브라더스가 크게 한 건 했다는 소식 말이야.”
최근 들어,
워너 브라더스를 비롯한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들은 매번 신통치 않은 흥행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원래대로라면 그들이 제작했어야 할 영화들을 우리 Film Kim이 먼저 선점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있는 사이 대작 영화 한 편이 북미 영화시장을 거의 휩쓸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 영화는 바로,
<배트맨>
DC 코믹스의 만화 주인공을 소재로 할리우드 빅식스(Bix Six) 영화사 가운데 하나인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한 영화였다.
‘배트맨은 슈퍼맨과 더불어 DC 코믹스를 대표하는 슈퍼 히어로이지.’
사실,
전생 초기부터 나는 영화 배트맨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비긴즈,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이어지는 배트맨 시리즈는 전생에서 나도 무척이나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Film Kim이 이 배트맨 시리즈를 제작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지. 그 이유는 배트맨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DC 코믹스가 워너 브라더스의 자회사이기 때문이고.’
“만날 죽만 쑤던 워너 브라더스가 오래간만에 대박을 터트린 모양이군. 듣자니 북미 지역 수익만 2억 달러가 넘었다고 하던데?”
“그래요?”
“그래. 거기에 해외 수익까지 더하면 못해도 족히 4억에서 5억 달러 정도의 수익은 가뿐히 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워너 브라더스야 언제든지 이런 흥행 대작을 만들어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저력 있는 영화사니까요.”
“Film Kim은 어때?”
“뭐가요?”
“Film Kim도 워너 브라더스의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슈퍼 히어로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냐고. 내가 볼 때 앞으로 할리우드 영화시장은 이런 슈퍼 히어로를 다룬 영화들이 꽤나 유행하게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역시나,
SF 영화계의 거장 조지 루이스의 안목은 남달랐다.
영화 <배트맨>이 큰 흥행 성적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이 소재가 얼마나 상품 가치가 있는지를 단번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지 루이스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오래전부터 DC 코믹스의 대표적인 슈퍼 히어로인 슈퍼맨과 배트맨에 대항할 수 있는 캐릭터를 확보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것이지. 그것은 바로 DC와 더불어 미국 만화계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마블 코믹스이고.’
사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DC보다 마블이 더 매력적인 회사였다.
슈퍼맨과 배트맨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대중적인 캐릭터가 없는 DC에 비하면 마블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케릭터를 가진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마블을 인수할 수는 없었다.
마블은 세계 곳곳에 꽤 많은 매니아 층을 거느린 건실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마블에 재정 위기가 닥쳐왔고, 몇 년 뒤에는 회사 주가가 1달러까지 곤두박질할 정도로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된다.
‘바로 그때가 우리 Film Kim이 마블 인수를 시도할 타이밍이고.’
이런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조지 루이스가 나를 향해 말했다.
“어때, 킴? 이번 기회에 Film Kim에서도 워너처럼 그럴듯한 슈퍼 히어로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 킴의 재능이라면 아주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말이야. 제작비는 내가 반을 대지.”
“으, 이번에도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거예요? 지난번 <쥐라고 공원> 제작 때도 조지는 앉은 자리에서 수천만 달러를 거저 가져간 것이나 다름없었잖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조지 루이스는 매번 제작자로 참여하는 영화에서 많은 공헌을 해왔다.
그가 가진 SF 영화의 거장이라는 별명답게.
“어허, 킴은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 내가 그냥 앉아서 수천만 달러를 벌었다니. 나도 나름 제작자로서 영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조지는 저를 영화계로 입문시킨 스승이자,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잖아요. 그래서 매번 조지와 함께 작업하는 것이 저도 무척이나 즐거워요.”
“그야 당연하지. 솔직히 내 이름값만으로도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수만 명은 더 늘어날 거라고, 하하하.”
“조지도 참.”
내가 다시 조지 루이스를 향해 말했다.
“사실은요, 조지. 저도 언젠가는 워너 브라더스처럼 슈퍼 히어로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었요. 근데 지금 당장은 좀 힘들 것 같아요.”
“왜?”
“이번에 제가 새로 구상하고 있는 영화가 따로 있거든요.”
“새영화? 그건 어떤 영환데?”
“그게요......”
내가 조지 루이스에게 이번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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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령 스발바르 군도.
쉐빙선 한 대가 얼음을 부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배에 타고 있는 이들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소속의 기상 연구팀이었다.
이들이 북극의 관문이라 불리는 스발바르 군도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최근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극지방의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기 시작했고, 이에 직접 실태조사를 위해 기후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이곳으로 급파된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망원경을 통해 피오르드 주변을 관찰하던 기후학자 스티브 발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빙하의 상태가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만 해도 이 정도 상태까지는 아니었는데, 북극의 빙하가 녹는 속도가 한층 빨라지고 있는 모양이군.”
때마침 연구원 중의 하나가 발머 박사를 향해 달려왔다.
“박사님! 이걸 좀 보십시오.”
“뭔가?”
“딕슨 피오르 주변에서 채취한 빙하 조각입니다. 분쇄기를 이용해서 이 빙하 조각을 분쇄했더니......”
유리병 안에 담겨 있는 빙하 결정들을 살펴보던 발머 박사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에. 결정이 이렇게나 빨리 녹아내리다니......”
“일반 얼음은 분쇄해도 이렇게 빨리 녹지는 않잖아요.”
“그렇지.”
“이유가 뭘까요?”
“내 생각에는 빙하 내부에 상당량의 공기 구멍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아. 대기 중에 떠 있는 메탄가스와 같은 유해 물질이 빙하에 스며드는 바람에 내부에 공기 구멍이 만들어졌고, 그래서 빙하가 녹는 속도가 더욱 빨라진 것이 분명해.”
“그렇다면 상황이 더욱 심각한 것 아닌가요?”
“물론이지. 이대로라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을 수 있어.”
발머 박사가 연구원들을 재촉했다.
“다른 지역의 빙하의 상태도 이곳과 같은지, 최대한 깊숙이 들어가서 살펴봐야겠어. 다들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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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 킴의 말은......”
조지 루이스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지구 전체가 물에 잠기는 재난 상황을 그린 영화를 만들겠다는 거야?”
“아뇨. 원인은 그건데, 결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죠.”
“전혀 다른 상황?”
“네.”
잠시 뜸을 들인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지구에 일시적인 빙하기가 찾아오는 상황, 그래서 북반구 전역이 마치 얼음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버리는 상황, 바로 이런 상황을 영화로 만들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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