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 한국 영화 시장 진출 (2) >
164.
1989년 봄.
‘Film Kim 코리아’의 첫 번째 한국 영화 시장 진출작 <장군의 아들>이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총제작비는 10억 원.
이 가운데 절반은 주무 부처인 문교부가, 나머지 절반은 우리 Film Kim이 부담하기로 했다.
더불어 영화의 수익금은 전액 한국 영화 발전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일종의 투자 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리 Film Kim이 이번 영화의 제작을 맡은 것도, 또 수익금 전액을 영화 발전을 위해 기부하기로 한 것도.’
1980년대 말 한국 영화 시장의 파이는 무척이나 작았다.
해마다 백 편이 넘는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기껏해야 제작비 몇백에서 몇천만 원 정도의 독립 영화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전국의 상영관 숫자도 500여 개 남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앞으로 Film Kim이 만드는 영화가 큰 인기를 끌게 되면 한국 영화 시장의 파이도 무척이나 커지게 되겠지. 극장을 찾는 관객의 수도,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의 수도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당연히 우리 Film Kim의 수익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테고.’
전생의 내 기억에 따르면,
한국 영화 시장은 미국, 중국, 일본 다음으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불과 몇십 년 만에 이 같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낸다.
양적으로도 그렇고, 질적으로도 그렇고 한국 영화시장은 앞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굳이 수익률도 낮은 한국 영화에 투자를 하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지. 앞으로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는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먼저 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우리 Film Kim이 보다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게 될 테니까.’
하지만 한국 영화 시장이 무엇보다 매력적인 점은,
영화 제작사가 자체적인 극장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할리우드에서는 매번 흥행 영화를 만들어 낼 때마다 60%의 수익을 극장주가 가져간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한국은 영화 사업자가 제작사와 극장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이에 흥행 수익 전체를 사업자가 가져갈 수 있었다.
‘전생에서는 CV나 로테 시네마, 메가맥스와 같은 기업이 전국 스크린의 90% 이상을 장악하면서 한국 영화 시장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었지. 하지만 이번 생은 달라. 이번 생에서는 우리 Film Kim이 이들 세 기업보다 훨씬 많은 스크린을 보유한 거대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
서울 남산에 위치한 힐튼 호텔.
내가 한 남자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의 정체는 한국에서는 꽤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영화감독인 임건택 감독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임스 킴입니다.”
“임건택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임스 씨.”
“편하게 킴이라고 불러주세요.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요.”
“알겠습니다, 킴.”
사실,
임건택 감독과 나는 초면이 아니었다.
전생에서 영화 시사회나 시상식장 등에서 몇 번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물론 당시 임건택 감독은 한국 영화계의 거장(巨匠)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무명 감독에 불과한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치의 인물이기는 했지만.
‘기분 참 묘하군. 전생에서는 먼발치에서나 겨우 바라볼 수 있었던 유명 감독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 보며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야.’
“듣자니......”
임건택 감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에게 영화 연출을 맡기실 생각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굉장히 상업적인 영화인 것 같은데, 왜 굳이 저 같은 예술 영화 전문 감독을 섭외하려고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무엇보다 상업 영화는 저보다 킴이 더 전문이 아닙니까? 그러니 킴이 직접 메가폰을 잡는 것이 훨씬 영화의 흥행 측면에서 유리할 텐데 말이죠.”
그야 임건택 감독 당신이 이 영화의 실제 연출을 맡았던 사람이니까.
원작이 가진 감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기술적인 부분만 보완하는 것이 이번 영화 제작의 주된 목표이니까.
“사실 제가 한국 출신이기는 하지만, 거의 미국에서만 살다시피 해서 이런 시대극을 연출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관련 영화 연출 경험이 많은 임 감독님을 특별히 이번 영화의 감독으로 모신 것입니다. 대신 이번 영화는 제가 제작자로 참여하는 만큼, 감독님을 비롯한 많은 한국 영화인들이 할리우드의 발달된 영화 제작 기술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번 영화를 위해 제가 특별히 할리우드의 영화 촬영 장비들을 대거 미국에서 공수해 올 예정이거든요.”
“그게 정말입니까?”
“예. 장비뿐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각 분야의 전문 인력도 다수 초빙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한국 영화 제작 수준을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이는 것이 저의 또 다른 목표이지요.”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이 사실인가 보군요. 킴이 이번에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우리나라의 영화산업 발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보도 말입니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국이 저의 고국인 만큼 최대한 많은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킴의 그 말이 진심이라면, 저도 그 뜻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이번 영화의 연출, 제가 직접 맡아서 한번 해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감독님. 대신에 연출 외적인 부분은 제가 전담을 했으면 합니다. 감독님은 오로지 영화의 연출에만 전념해달라는 뜻입니다.”
“영화의 연출만요?”
“그렇습니다.”
한국의 영화 제작 시스템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과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제작자와 감독의 역할이었다.
충무로에서는 제작자가 아닌 감독이 영화 제작의 전권을 행사한다.
영화 제작 전반에 관한 사항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할리우드 제작자와는 달리 충무로의 영화 제작자는 그저 ‘투자금을 끌어오는 사람’ 정도로만 취급되고 있을 뿐이었다.
‘지난 10년 넘게 영화를 만들면서 내가 느낀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철저한 분업화와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지. 이는 감독의 폭주로 영화의 내용이 산으로 가는 것을 막고, 보다 효율적인 영화 제작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지.’
한동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임건택 감독이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킴의 말은 이번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와 같은 체계적인 영화 제작 환경을 우리 충무로 영화계에도 자리 잡게 만들겠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영화산업도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좋습니다. 저도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영화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협조할 마음이 있으니까요.”
165.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 현장.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현장 리허설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장군의 아들>은 액션씬이 유독 많은 영화였다.
영화의 내용이 일제 강점기 종로를 주름잡았던 주먹패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현재 충무로에는 제대로 된 무술 감독이나 전문 스턴트 배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에 나는 홍콩 지점을 통해 현지의 유명 무술 감독을 섭외해 실감 나는 액션 장면을 연출하기로 했다.
더불어 할리우드의 전문 촬영 스태프들도 다수 불러들여 박진감 넘치는 영상을 구현했다.
원작의 감성에 충실하면서도 기술적으로는 현시대의 그것을 훨씬 앞서는 영화,
이번 생에 내가 영화 <장군의 아들>의 제작자로 참여함에 따라 나타난 가장 큰 변화였다.
“자, 그럼 촬영 시작합니다.”
메가폰을 타고 임건택 감독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리허설은 곧바로 실제 촬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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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밑에 선 봉선화야, 내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날에~”
거나하게 술에 취한 신마적이 패거리들과 함께 단골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죄송합니다. 오늘은 손님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뭐?”
입구를 막아선 종업원을 향해 신마적이 버럭 화를 냈다.
“술집에서 손님을 안 받겠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오늘 우리 가게에서 하야시 상의 생일 파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합니다.”
“야이 새끼야! 여긴 조선 땅이야! 내 나라 땅을 내가 못 밟는다는 게 말이 돼?”
만류하는 종업원의 손길을 거세게 뿌리치며 성큼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신마적.
결국 가게 안은 신마적 패거리와 하야시 패거리와의 싸움으로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잠시 후 장면이 바뀌고,
“형님! 두한이 형님!”
한 남자가 헐레벌떡 김두한이 있는 술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방금 전 하야시 패거리와 싸움을 벌인 신마적 패거리의 일원이었다.
“무슨 일이야?”
“신마적 형님이, 신마적 형님이 하야시 패거리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뭐?”
김두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어디야? 형님이 계신 곳?”
“혼마찌의 기꾸스이입니다.”
“얼른 가보자!”
황급히 신마적이 있는 술집으로 달려간 김두한.
가게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는 하야시 패거리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한다.
- 퍽! 퍽! 퍼퍽!
- 악! 으악!
김두한의 주먹에 하나둘 나가떨어지기 시작하는 하야시 패거리들.
이를 지켜보던 하야시가 자신의 심복인 김동회를 불러낸다.
“다들 멈춰! 김두한은 내가 상대한다.”
성큼성큼 김두한의 앞으로 걸어 나오는 김동회.
그는 어린 시절 김두한과 친구 사이였던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싸움에 나름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김동회도 타고난 싸움꾼인 김두한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결국 김두한의 주먹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 저벅, 저벅!
김동회마저 때려눕힌 김두한이 최종 보스인 하야시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로부터 한동안 지속되는 두 사람의 눈싸움.
하지만 먼저 눈을 피한 것은 하야시였다.
야쿠자의 후원을 받는 일본 최고의 건달 하야시도 호랑이 같은 김두한의 기세에 그만 꼬리를 내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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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메가폰을 타고 임건택 감독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스태프들이 우르르 현장 수습에 나섰다.
그 틈을 타서 내가 임건택 감독에게 말을 건넸다.
“배우들의 액션이 굉장히 박진감 넘치는데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임건택 감독이 대답했다.
“이게 다 킴이 섭외한 전문 무술 감독과 스턴트 배우들 덕분입니다. 그들이 짠 완벽한 동선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멋진 액션 장면을 구현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고요.”
“제 생각에 이번 영화는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역대 우리나라 액션 영화 가운데 이 정도로 화려하고 박력 넘치는 액션 장면은 없었으니까요.”
확실히,
영화 <장군의 아들> 액션씬은 전생에서 내가 본 원작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액션씬 촬영 노하우나 스턴트 배우에 대한 개념이 잡혀 있지 않던 시기에 촬영된 원작과 달리 이번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실제 영상으로 구현된 장면은 이보다 훨씬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될 것이지. 카메라 앵글이 거의 고정된 상태로 촬영된 원작과 달리 이번에는 지미집 카메라와 스테디 캠과 같은 동적인 영상 촬영 장비가 더해졌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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